웰컴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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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변하고 마음이 바뀌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계절을 논하는 시점, 아름다운 옷들이 파도처럼 차고 넘치는 하이 패션의 최전선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던 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테다. 수 년 전 패션 필드에서 누구보다 자주 얼굴을 비추다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델들. 중년이 된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은 나이와 같은 것들로 규정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여실하게 깨닫는다. 클래식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도.

크리스티 털링턴 in 마크 제이콥스

크리스티 털링턴

90년대,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클라우디아 쉬퍼, 신디 크로퍼드와 더불어 그 시절을 풍미했던 크리스티 털링턴이 이번 계절, 마크 제이콥스에 등장했다. ‘크리스티 털링턴의 얼굴은 어떤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한다’는 칼 라거펠트의 말처럼 그녀의 얼굴엔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품이 서려있다. 미국적인 우아함으로 논해지던 그녀를 무대에 올린 것에서 마크 제이콥스가 이번 계절 말하고자 했던 바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패티 한슨 in 마이클 코어스

패티 한슨과 마이클 코어스, 베리 매닐로우

패티 한슨

카렌 엘슨

말고시아 벨라

해학과 재치를 옷에 담아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 마이클 코어스에 유독 반가운 얼굴들이 넘쳐났다. 2000년대에 태어난 모델이 판을 치는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마흔을 훌쩍 넘긴 말고시아 벨라와 카렌 엘슨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그 원숙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의 방점은 마지막에 등장한 패티 한슨에 귀결됐다. 70년대 매거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었던 얼굴. 예순이 훌쩍 넘은 그녀의 모습은 마이클 코어스가 그리워하는 70년대에 대한 회상의 결과다.

스텔라 테넌트 in 버버리

스텔라 테넌트

존재 자체로도 사람을 엄숙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모델이 있다. 스텔라 테넌트가 바로 그렇다. 스코틀랜드의 귀족 가문 생이라 그런지 젊은 모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패기나 열정보다는 중성적이면서도 고아한 기질이 그녀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90년대 초, 브루스 웨버나 스티븐 마이젤과 같은 사진가들이 그녀에게 끊임 없는 사랑을 퍼부었던 이유다. 그런 그녀가 리카르도 티시가 군림한 버버리의 뮤즈가 됐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버버리의 모든 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리 소피 윌슨 in 시몬 로샤

클로에 세비니

커스틴 오웬

제나 호워스

마리 소피 윌슨

대담한 형태를 신비로운 소재로 풀어내는 시몬 로샤에 반가운 얼굴이 연이어 등장했다. 수 년 전 맹신적인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클로에 세비니에서부터 90년대를 쥐고 폈던 커스틴 오웬과 제나 호워스처럼 90년대 매거진 속에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볼 수 있던 얼굴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인 건 마리 소피 윌슨이다. 하얗게 바랜 머리, 자연스럽게 진 주름, 조심스럽게 내딛는 걸음이 ‘유스 컬쳐’ 같은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프리랜스 에디터
김선영
사진
Go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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