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누비는 힙스터의 여행법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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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좀 다녀본 취향 좋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기억에 남는 아시아 여행지,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흥미로운 스폿에 대하여. 패션, 음악, 미식, 호텔, 대자연을 아우르는 짧고 굵은 가이드북.

인도네시아, 발리 

# 전통과 힙이 공존하는 레코드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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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테이토 헤드라면 충분히 유명하다. 발리의 수많은 비치 클럽 중 대명사처럼 통용되니까. 하지만 지금 포테이토 헤드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 공간, 스튜디오 엑조티카(Studio Eksotika)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레코드 컬렉터이자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디제이 ‘DEA’가 운영하는 바(Bar) 겸 레코드 숍이다. 한동안 힙스터들의 표적이 된 발리 전통 음악 가믈란부터 전 세계 방방곡곡의 디스코, 록, 재즈, 앰비언트 레코드를 만날 수 있다. 가게 선반에 김완선과 산울림의 음반이 놓여 있다고 놀라지 말길. 그 또한 ‘DEA’와 스튜디오 엑조티카의 컬렉션이다.

# 귀여운 수영장이 있는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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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냑의 꽤 화려한 리조트나 쿠타의 복작대는 게스트하우스에도 묵어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는 프리 발리 에코 비치(Frii Bali Echo Beach)다. 무엇보다 귀여운 수영장 때문이다. 부지런한 서퍼들이 새벽부터 해변으로 빠져나가면, 게으른 사람들은 풀로 모였다. 풀사이드의 반듯한 나무 바닥에 누우면 딱 하늘과 야자수만 보이는데, 그게 좋아 오전 시간 내내 거기서 보냈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수평선까지 탁 트인 루프톱으로 향했다. 그마저 지겨우면 호텔 지하 대여소에서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 길을 나서면 그만. 좌로 에코 비치가, 우로 광활한 라이스 필드가 열린다.

# 로컬 바버숍 & 타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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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취미라면 취미로, 다른 도시에서 머리를 자른다. 그 도시의 스타일을 쇼핑하듯, 그 도시의 그루밍도 경험하고 싶은 맘. 캉구(혹은 짱구)는 호주인과 유기농의 동네지만, 식보이(Sikkboy) 바버숍의 이발사들은 ‘로컬’이다. 과하게 ‘로큰롤’하거나 ‘클래식’하지 않아 편안하게 머리를 맡겼다. 무더운 발리인 만큼 빡빡 미는 머리에 약간의 디테일을 요구했는데, 결국 꽤 맘에 들어 바버숍 로고가 쓰인 티셔츠도 흔쾌히 샀다. 아, 이 추운 날 당장 발리로 떠나 머리부터 맡기고 싶다. 이번엔 타투도. 글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일본 , 도쿄 

# 라프 시몬스 컬렉션이 가득한 아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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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라프 시몬스가 만든 21세기 소년들의 고독한 정서는 2019년의 청년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다. 편집자, 스타일리스트, 사진가와 수집가처럼 직업을 단 하나로 묘사하기 어려운 준스케 야마사키는 라프 시몬스 컬렉션의 열정적인 수집가다. 웬만한 박물관 규모로 모은 수백 벌의 라프 시몬스 옷이 다이칸야마의 9/9 아카이브와 라이라 아틀리에에 있다. 이곳은 ‘메종 빈티지’를 표방한다. 라프 시몬스 초기 컬렉션부터 (마크 제이콥스 시절 ‘그라피티’ 가방으로 유명한) 스테판 스프라우스가 만든 1980년대 기성복 컬렉션, 꼼데가르송이 출간한 잡지 <식스(Six)>, 그리고 마틴 마르지엘라가 디자인한 에르메스처럼 웬만해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약 2,000벌의 컬렉션을 선별적으로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예약제로 운영한다. 라이라 아틀리에의 방대한 컬렉션을 마주하고 나면, 왜 일본이 ‘마니아(오타쿠)’들의 나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 궁극의 청바지를 만날 수 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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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현 코지마는 생지 청바지의 성지로 불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하우스와 고집을 꺾지 않는 장인의 청바지가 오카야마산 데님 원단으로 완성된다. 데님 브랜드 캐피탈(Kapital)은 최근 몇 년 사이 스트리트 패션의 열풍과 함께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데님의 수도를 뜻하는 ‘Capital’에 코지마의 ‘K’를 더한 이름으로, 아버지 도시키요 히라타가 1984년 처음 브랜드를 선보인 이래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아들 가즈히로 히라타가 함께 이끌고 있다. 히피 문화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나라의 군대 문화, 일본 전통 염색 방식과 히말라야산맥의 셰르파에서 영감을 얻은 옷과 장신구가 캐피탈 매장에 걸려 있다. 나는 이곳에서 커다란 버진 울 소재의 남색 셔츠 재킷을 샀다. 거의 입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우아하다.

# 취향 좋은 사람들의 숨은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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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와 작가, 디자이너와 라디오 DJ를 겸하는 구니치 노무라와 ‘마마 루리‘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요리사 루리 시오이가 의기투합한 브렉퍼스트 클럽 (Breakfast Club)은 메구로구 동쪽 한적한 거리에 홀로 있다. 오전이면 브런치를 먹으러 오는 젊은이들이 방문하고 밤이 오면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패션과 문화계 인사들이 드나든다. 레몬 사와부터 온더록 위스키, 아직 일본이라서 가능한 담배 연기의 혼합이 (흡연자로서) 퍽 반가웠다. 아침에 방문해서 이곳의 ‘일본 가정식’ 조찬 메뉴를 주문했다. 꽤 맛있게 먹고 난 후, 커피를 한잔 내려받아 거리로 나서는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글 | 홍석우(패션 저널리스트)

라오스 , 루앙프라방 

#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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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배낭 여행, 값싼 코끼리 바지, 가난한 주머니. 루앙프라 방이라는 지명과 연관된 심상은 대체로 이런 단어였다.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길, 사카린 로드 (Sakkaline Rd.) 한복판에 들어선 어떤 건축물이 옛 이미지를 단박에 바꿨다. 아바니 플러스 루앙 프라방(AVANI + Luang Prabang) 얘기다. 우아한 기품이 깃든 이 신고전주의 저택은 원래 프랑스군의 막사였다. 지난해 건축가 파스칼 트라한에 의해 호텔로 재탄생했다. 겉은 프랑스지만 안은 라오스다. 지역 공예가들의 작품이 객실의 가구와 집기가 됐다. 불편한 소란이 없는 건 방이 53개뿐 이라서. 루앙프라방을 신혼여행지 후보 목록에 올린 적이 있었나? 아바니에서 반쯤 포기했던 ‘결혼’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사랑하는 이와 다시 오고 싶다는 뜻이다.

# 수집 본능을 일깨우는 공예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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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관광청은 루앙프라방을 ‘직조의 수도’로 수식한다. 공예의 도시라는 뜻이다. 왕의 대로로 불리는 사카린 로드엔 일찍이 루앙프라방의 장인들을 포섭한 유럽인이 만든 브랜드 숍이 있다. ‘동양의 섬세한 손기술과 서양의 세련된 디자인이 만난 지점’이라고 미화할 수도 있겠다. 국제 변호사 출신의 프랑스인 베로니크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나카(Anhaka)’, 영국 출신의 조안나와 라오스 출신의 베오마니가 라오스 전역에서 활동하는 500명의 장인과 함께 선보이는 텍스타일 브랜드 ‘옥 팝 톡(OCK POP TOK)’ 등에서 수집 본능을 한껏 발휘해볼 것.

# 메콩강 지나서 만나는 신비로운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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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좀 해본 이는 ‘꽝시 폭포(Kuang si Falls)’를 루앙프라방의 랜드마크로 꼽는다. ‘오버 투어리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맑은 이 옥빛 계곡 말고도 누릴 자연이 많다. 라오스 최초의 식물원 ‘파타드케 보태니컬 가든(Pha Tad Ke Botanical Garden)’은 무동력 배 혹은 크루즈를 타고 메콩강을 천천히 가로지르면 닿는다. 포틀랜드나 브루클린의 ‘세련된’ 원예 상점을 우습게 만드는 이곳은 야생 우림과 단정한 정원 중간 즈음의 매력적인 장소다. 뜨거운 볕, 비옥한 흙이 게워낸 나무와 꽃, 열매 냄새에 취해 산책하기 좋다. 마지막 배를 타고 나가면 메콩강의 숨 막히는 노을도 볼 수 있다. 글 | 류진(여행 작가)

필리핀 , 마닐라 

#이토록 평화로운 루프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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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루프톱 바 (Central Park Hotel Rooftop Bar)에서는 필리핀 마닐라의 소도시 앙헬레스 시티를 한눈에 바라 보며 평화롭게 아이스티 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무더운 날 가만히 앉아 더위를 식히기에도 딱이다. 밤이 되면 ‘내가 잘못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백팔십도 바뀐다. 수영장 옆 작은 무대에서는 밴드가 공연을 시작하고, 그 뒤로 펼쳐진 네온 조명이 하나둘 켜진다.

# 기이한 음악과 술이 흐르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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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헬레스 시티로 이민 온 스위스인이 운영하는 팔리토스 뮤직&스포츠 바(Palito’s Music & Sports Bar)는 2010년 당시 앙헬레스 시티의 유일한 로컬 밴드 공연 장소였다. 또 나의 첫 밴드 공연 장소이기도 하다. 바 내부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오너가 젊은 시절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직접 배우고 연주한 악기들도 있다. 간단한 음식도 파는데, 접시에 대충 담은 파스타면 위에 홈메이드 페스토 소스만 툭 올린 ‘알 페스토’의 맛은 정말로 대단했다. 레시피를 알 수 없는 독극물마냥 검은색에 요상한 단맛이 나는 스페셜 칵테일도 기억에 남는다.

# 추억과 역사가 담긴 필리핀식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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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도스 피자(Historic Camalig Restaurant : Armando’s Pizza)는 100년 이상 된 역사적인 건물에 들어선 레스토랑이다. 앙헬레스 시티를 개척한 가문이 6세대에 걸쳐 이 건물을 보존해오다 1980년도부터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수많은 장식과 소품은 개척 당시 사용했던 물건으로 특유의 빈티지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두껍고 바삭한 도우 위에 꾸덕꾸덕하고 짠맛이 많이 나는 필리핀 로컬 치즈를 뿌려서 만든 필리핀식 피자를 맛볼 수 있다. 10년간 앙헬레스 시티에 살면서 친구의 생일, 혹은 무언가를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이곳을 찾았다. 글 | 정원준(밴드 ‘랜드오브피스’ 멤버)

아시아를 누비는 힙스터의 여행법 vol.2

피처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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