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을 형성안 아시아 여성 뮤지션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아시아 표류기 vol.2 – 이토록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여자들

2019-01-30T08:34:40+00:002019.01.25|FEATURE, 컬처|

 

당신이 트렌드에 민감한 리스너라면,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 뮤지션들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진작 추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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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거대 자본을 들여 요란하게 ‘다양성 배틀’을 벌이고 있다. 그보다는 최근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시아 여성 뮤지션의 활동이 더 의미 있어 보 다. 한국을 거점으로 공연 에이전시 사업을 하고 있는 영국인 ‘패트릭 코너(Patrick Connor)’는 최근 아시아계 뮤지션의 활약을 ‘앵글로색슨족’의 시선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아시아 여성 아티스트에게는 마돈나에서 레이디 가가로 이어지는 북미식걸 크러시나 비요크로 대표되는 유럽식 신비주의와 다른 매력이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위악이나 과장이 없달까? 대신 그 음악은 소수자로서 지켜온 탄탄한 자존감이 표현된 일상어에 가깝다. 다양성이 문화 산업의 키워드로 떠오르지 않았다 해도 지구 어딘가의 방구석에서 계속 플레이되고 있을 음악이다.”

눈에 띄는 아티스트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이름은 물론 예지(Yaeji)다. 국내에서는 애플뮤직의 광고 음악으로 잘 알려진 예지는 대치동 학원 셔틀에서 방금 내린 듯한 표정으로, BBC가 선정한 ‘2018년에 가장 기대되는 아티스트(Sound of 2018)’에 올랐다. 비주얼 아트를 전공한 그녀는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로 초기 팬덤을 형성했다. 뷰티 유튜버들을 비꼬는 ‘Last Breath’의 뮤직 비디오로 자신이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 아티스트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2017년 단독 내한 공연을 했던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는 뮤직비디오에 기모노가 아닌 한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해녀에서 영감을 받은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트위터 프로필에 ‘Im Korean’이라고 써놓은, 한국계 미국인. 2018년 코첼라 페스티벌에 서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한국인 어머니가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과정의 상실과 치유를 담은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일본계 여성 뮤지션 미츠키(Mitski)는 재패니즈 브렉 퍼스트를 비롯해 누군가에게 메시지 있는 음악으로 힘과 영감을 주곤 하는 아티스트다. 가장 유력한 음악 웹진인 <피치포크>는 ‘2018년 올해의 음반(The 50 Best Albums of 2018)’ 1위로 미츠키의 <Be the Cowboy>를 선정했다. 미츠키는 그동안 성평등, 인종 차별 등 주로 정체성과 관련한 메시지를 음악에 담았다. 그 연장선 상에서 <Be the Cowboy>라는 제목이 근사한 역설을 완성한다. 오는 215일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고, 티켓이 30분 만에 매진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운 소식.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 페기 구(Peggy Gou)도 이제 낯선 이름이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한국과 해외에서 소비되는 방식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국내 매체를 통해 페기 구는 사랑했던 남자가 디제이라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패션 피플로 통한다. 음악 자체보다는 유아인 같은 셀렙과의 인맥으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해외 리스너들에게 뮤지션 페기 구의 이름은 흔한 셀렙의 하나처럼 가볍지 않다. 물론 해외에서도 그녀가 스트리트 룩을 소화하는 방식이 언제나 이슈지만, 유명세만으로 베르크하인(Berghain)이나 파노라마 바 (Panorama Bar)같이 신을 상징하는 성지에서 플레이 할 수는 없다.

매년 11월 홍콩에서 열리는 클라켄플랩(Clockenflap) 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일본의 후지록이나 서머소닉과 비교할 규모는 아니지만, 확실한 테이스트로 아시아 각국에 숨은 실력파를 발굴하는 선구안이 뛰어나다. 2018년 출연자인 대만 출신의 재즈 싱어송라이터 9m88과 한국의 씨피카 역시 라이징 스타 중 하나다. 9m88은 매력적인 음색이 일품인데, 한계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대만 인디신의 아티스트로서 현실적인 고충을 털어놓은 초기 가사가 특히 좋다. 2019 S/S 파리 패션위크, 샤넬 크루즈 2019 레플리카 쇼인 방콕에 참석하는 등 패션계가 사랑한다는 점 때문에 페기 구와 같이 언급될 때가 많다. 씨피카는 미국의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틈틈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일렉트로닉 넘버가 마니아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뮤지션으로 전향한 경우다. 그녀는 이후 독일의 리퍼반 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를 포함한 미국 투어를 성황리에 완주했다. 국내 매체가 주목하기 전에 <iD>, <인터뷰> 매거진 등에 오르내리는 한편, 오혁이나 크러쉬 등 여러 뮤지션과 콜라보하면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뮤지션이다. 즉, 클라켄플랩 무대에서는 뮤지션만 잘 추려도 글로벌 대세를 파악할 수 있다.웬스데이 캄파넬라 (Wednesday Campanella)와 레아도우(Leah Dou) 역시 몇 년 전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이들이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웬스데이 캄파넬라의 코무아이는 폭력적인 도축산업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슴을 해부하고 요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하다. <중경삼림>의 배우 왕페이와 록스타 더우웨이 사이에서 태어난 레아도우는 범상치 않은 부모를 둔 덕에 중국, 홍콩, 일본, 미국을 오가며 자랐는데, 퀴어인 그녀의 가사에서는 정체성과 자의식에 대한 고찰을 자주 읽을 수 있다.

물론 다국적 성장 배경을 거치지 않아도 영미권이 주목하는 아시아의 아티스트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그것도 트렌드에서 한발 비켜선 기타팝& 서프록을 하는 세이수미는 보컬 최수미가 프런트인 밴드다. 세이수미는 해외 활동 중 무려 엘튼 존이 애플뮤직의 비트 라디오 ‘Rocker Hour’에 소개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특별히 언급한 팀, 보컬 황소윤이 있는 밴드 새소년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뉴욕, 토론토, 함부르크 등에서 인상적인 무대를 펼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로컬’의 많은 여성 뮤지션이 성공의 기준을 영미권에서의 유명세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활동을 하며, 아시아 안에서의 활발한 교류로 새로운 신을 형성해가고 있다. 인종을 키워드로 한 여러가지 장르명이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아시아 여성 뮤지션들의 최근 활동을 규정할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개개의 뮤지션이 너무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행정적인 국적, 감성적인 정체성과 상관 없이 외모로만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 수 도 있다. 확실한 건 이들의 흐름이 한때의 트렌드로 사그라지지 않을 거라는 점. 앞으로 이 흐름을 뭐라고 부르든, 또 새로운 여성 뮤지션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