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가 나 있어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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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제, 하이브리드, 혁신적, 대담함.’ 힙합 듀오 XXX가 갓 나온 앨범을 들고 미국으로 향하자 유수의 음악 매체에서 사용한 단어다. 그런데 외면이 고요한 두 사람에게서는 들뜬 기색이 전혀 없다. XXX의 속은 여전히, 명백하게, 언짢다.

프랭크가 입은 양가죽 소재 코트는 챈스챈스, 강렬한 프린트 티셔츠는 리얼 배드 맨(by Warped Shop), 알파인 팬츠는 스투시 (by Warped Shop), 스니커즈는 준지, 브림리스 캡은 와일드 브릭스 제품. 김심야가 입은 로고 프린트 패딩은 캘빈 클라인 진, 보일러 슈트는 프롬마크, 안에 입은 프린트 셔츠는 챈스챈스, 스니커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니트 비니는 와일드 브릭스 제품.

프랭크가 입은 양가죽 소재 코트는 챈스챈스, 강렬한 프린트 티셔츠는 리얼 배드 맨(by Warped Shop), 알파인 팬츠는 스투시 (by Warped Shop), 스니커즈는 준지, 브림리스 캡은 와일드 브릭스 제품. 김심야가 입은 로고 프린트 패딩은 캘빈 클라인 진, 보일러 슈트는 프롬마크, 안에 입은 프린트 셔츠는 챈스챈스, 스니커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니트 비니는 와일드 브릭스 제품.

정규 앨범 <Language>를 지난 연말에 발표했다. 앨범을 내자마자 미국으로 가 한 달 정도 프로모션 활동을 한다기에 이렇게 연초까지 기다렸다. 미국 홍보를 마치고 가장 두드러지게 느낀 점은 뭔가?

프랭크 한국이 좋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뭔가를 도모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같은 말을 쓰면서 한 문화권에 있는 사람과 살아가기도 힘든 일인데.

김심야 이제는 막 ‘잘돼야겠다’는 생각을 좀 버렸다. LA 사람들은 쫓기며 사는 느낌이 없더라. 거기서 음악적으로 얻은 것보다 사상적으로 영향 받은 부분이 더 크다. 나도 쫓기는 요인 자체를 안 만들며 살고 싶다.

미국에서 어떤 일정을 소화했나?

김심야 여러 아티스트들과 스튜디오 세션 작업을 했다. 프로듀서나 래퍼들과 합을 맞춰보고, 편하게 곡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그 외에는 인터뷰와 미팅을 했다.

프랭크 작업한 결과물을 발표하겠다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우리가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같이 어우러지는 느낌만 가져보려 했다.

당신들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드문드문 소식이 들려왔다. <뉴욕 타임스>가 호의적인 앨범 평을 내더니, 웹진 <피치포크>는 <Language>를 리뷰하면서 평점 7.3점을 줬다. <피치포크>에서 괜히 다른 아티스트 리뷰를 찾아보니까 퍼렐의 마지막 솔로 앨범이 6.2점이더라. <빌보드>지와는 긴 인터뷰를 했다. 

프랭크 사실 나는 미국에 가기 전에 앞으로 우리 앨범보다는 외주 작업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서 헛된 희망을 얻어 온 기분이다. ‘아, 뭔가 해봐도 되려나? 욕심부려도 될까?’ 같은. 희망은 희망인데, 희망고문에 가까운 느낌이라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빌보드>의 기자는 XXX의 첫 미니 앨범 <KYOMI>를 두고 “김심야의 일상에 대한 터무니없는 가사와 프랭크의 혁신적이면서 뒤틀린 비트가 메종 키츠네, <Hypebeast>, SXSW 페스티벌 등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세상이 이 반항적인 듀오를 주목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신보는 더 대담하고 획기적인 사운드로 한국 힙합을 발전시키는 중이라고. 미국에서 한국의 비아이돌 음악에 대한 ‘힙한 하이프(Hype)’가 살짝 있기도 하다고 들은 적 있는데, 그런 걸 느꼈나?

김심야 우리가 미국에 갔다는 건 아직 ‘하이프’가 없다는 뜻 아닐까? 케이팝을 하지 않는 한국 아티스트가 미국에 많이 진출하면 또 그런 아티스트끼리 일종의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하고, 그런 일은 별로라고 여기니까. 미국에서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데 케이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프랭크 그런 하이프는 이제부터 좀 생기지 않을까 짐작한다.

<빌보드> 기자가 한국 힙합 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었고, 관련 문답을 보니 XXX가 ‘한국 힙합’과 불화하고 있다는 게 충분히 전달됐다(웃음). 

김심야 참고로 미국에서의 인터뷰는 FM 식으로 답변한 게 많 다. 직접 영어를 쓰면서 말하려니 영어가 자꾸 달려서.

프랭크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지만 얘 거기서 말 진짜 잘했다.

프랭크가 입은 프린트 터틀넥 톱과 테일러드 재킷은 프라다 제품. 캡은 본인 소장품. 김심야가 입은 시스루 터틀넥 톱과 테일러드 재킷은 프라다, 갈색 니트 비니는 와일드 브릭스 제품.

프랭크가 입은 프린트 터틀넥 톱과 테일러드 재킷은 프라다 제품. 캡은 본인 소장품. 김심야가 입은 시스루 터틀넥 톱과 테일러드 재킷은 프라다, 갈색 니트 비니는 와일드 브릭스 제품.

앨범의 다소 불편하고 튀는 사운드도 그렇고, 김심야의 독설 과 주류 힙합에 대한 아쉬움을 종합하면 당신들의 음악과 멘트에 서려 있는 감정은 ‘화’ 같다. 적지 않은 래퍼들이 화를 내지만 사실 자기 ‘스웨그’를 드러내길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김심야의 가사를 나오게 만드는 원동력은 어떤 감정인가? 

김심야 나보다 힘 있는 사람의 말을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싫은 말은 당연히 싫고, 좋은 말도 싫다. 반골 기질이 강해서 누가 나에게 뭘 시키면 화가 난다. 그 감정으로 가사를 쓰는 것 같다.

비트를 만드는 프랭크가 신보에서 낯설고 독특한 소리를 많이 담은 이유는 뭔가? 

프랭크 작업하던 당시의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런 소리가 적절한 소스였기 때문이다. 분노, 우울, 짜증 같은 감정.

당신들의 분노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노길래? 

김심야 이건 회사나 프랭크의 생각과는 상관없는 내 입장인데, 우리가 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안 통하길래 결국 미국까지 가나 싶었다. 한국에서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으면 미국행을 택하지 않았을 거다. 보통은 미국이라는 큰 시장으로 나아가면 더 좋은 시도라고 여기지만, 우리처럼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은 게 목표인 사람한테는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선택을 한 셈이다. 물론 미국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고 국내로 일종의 역수입이 될 수도 있겠지. 내가 그런 행위를 적대시한 면이 있어서 더 화가 났다.

그게 정말 그렇게 생각할 일인가? 

프랭크 디테일한 생각은 좀 달라도, 크게 보면 나도 심야와 비슷하게 느낀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만든 음악을 이곳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그걸 발판으로 해외 진출했다면 뭔가 계단을 잘 밟아가는 기분이 들 거다. 물론 어디에서든 우리 음악에 호응해주면 그건 좋은 일이다. 중요한 건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해외에 나가는 일 자체가 피곤하다는 거.

김심야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중국, 호주, 미국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낸 사람인데도 한국과 해외 시장이라는 구분을 명확히 짓는 게 좀 의외다. ‘밀레니얼 세대’는 경계가 없댔는데…. 

김심야 내 음악적 목표 중 하나는 방송 매체 같은 음악 외적인 면의 힘을 빌려서 유명해진 사람을 오직 음악으로만 따라잡고, 지나쳐 가는 거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모르는 내가 볼 때 외국에 나가서 유명해진 다음 역수입되는 건 <쇼미더머니> 나가서 유명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 같거든.

해외에서 먼저 유명세를 얻었다는 수식어를 한국에서 써먹는 건 비겁하다는 뜻인가? 

김심야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리고 그 힘으로 역수입된다고 치자. 역수입이라는 전제를 달고 여기서도 유명세를 타면서 돈 잘 벌려면, 그 수식어를 가지고 결국 또 방송 에 나가야 한다. 어차피 방송에 나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 해외에서 먼저 잘됐어요’ 할 필요 없이 바로 방송 타면 되는 일이다. 애당초 방송 활동 같은 걸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라면 역수입을 노리지 않고 여기서 바로 잘되거나, 역으로 거슬러 올 게 아니라 계속 해외를 무대로 활동하면 되는 일이고.

미국 래퍼들은 그럼 음악만 잘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으면 돈도 잘 벌고 유명해지나? 

김심야 일명 ‘사클 래퍼’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곡을 자기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려서 잘되면 특별한 홍보 활동 없이 바로 한 지역의 스타가 되기도 한다. 그게 미국에서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듯하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한국 음악 시장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리스너들에게 있는 셈 아닌가? 

프랭크 리스너는 죄가 없다. 한 나라의 문화적 환경은 오랜 시간 쌓인 역사를 통해 조성될 텐데,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뭔가를 외부에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역사가 반복됐다고 본다. 온고지신하면서 우리만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보다는 그때그때 의 유행이 문화가 된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서 리스너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심야는 랩에서 “힙합이 뭔지 알고 싶어? 한국에 그런 사치가 있을 리 없지”라고 하거나 다른 래퍼의 행동을 비판하는 듯한 가사를 쓴다. <피치포크>와 <빌보드>도 당신들이 한국 음악 시장의 시스템에 불만이 있다는 걸 쉽게 눈치챌 정도로. 

김심야 오리지낼리티 있으면서 재미가 덜한 음악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저퀄리티라도 저예산으로 굴릴 수 있는 음악을 재밌게 포장해서 돈을 버는 시스템이 사업가에게 효율적이라는 걸 물론 안다. 그런 시스템 때문에 오리지낼리티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는 살아남기가 힘든 법이고. 사실 눈앞에 주어진 예술 말고 더 나은 레벨의 예술을 취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 탓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다수 한국인 대신 외국인이 더 좋아하는 음악이 라고 해서 그것을 고퀄리티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 같다. 또 문화의 퀄리티만 놓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을 잘 아는 게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거기 나가서 영향력을 얻은 아티스트가 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행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는 점, 대중을 상대하는 그 아티스트가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당신들이 스스로 만족할 만큼 유명해지면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나? 

김심야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 회사에 속한 상태로 성공을 하면 사장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고, 이 회사를 나간 후 기존의 방향과 아주 다르게 일했을 때 비로소 성공한다면 사장님을 찾아가 잃어버린 내 시간을 되돌려놓으라고 할 거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회사로 갈 생각은 없다.

프랭크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가정환경, 수중에 있는 돈 등을 충분히 고려한 후 뛰어들라고 말하고 싶다. 내 스웨그가 최고여서 그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죽겠다는 사람 은 부디 금수저이길 바란다. 금수저여야만 할 것이다.

<Language>라는 정규 앨범을 내놓으면서는 퀄리티에 얼마나 만족했나? 

김심야 이렇게 생각했다. 와 이건 ‘간지’다, ‘간지’에 죽고 사는 음악이다!

조만간 그 앨범과 더블 앨범 형식으로 짝을 이룰 <Second Language>도 나온다. 그건 어떤 앨범인가? 

프랭크 <Language>에는 내 감정이 100퍼센트 담겼다면, <Second Language>는 감정은 거의 배제하고 만들어봤다.

김심야 돈 벌려고 만든 음악이다(웃음). 우리 입장에서는 음원 차트 1위를 노리며 최대한 각 잡고 만들었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조기석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메이크업
권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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