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계 뉴요커 억양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당대 최고의 래퍼. 묘한 매력이 넘쳐흐르며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여자.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이자 3천7백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파워 인스타그래머. 지금 가장 뜨겁고도 전투적인 태세로 살아가고 있는 카디 비가 자신의 과거, 일, 사랑,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말한다.

드레스는 지방시, 이어링과 반지는 데이비드 웹, 슈즈는 쥬세페 자노티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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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힙합 스타가 된 이후 카디 비(Cardi B)에게는 삶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20176월 발매된 싱글 <Bodak Yellow>는 불과 석 달 만에 여성 솔로 래퍼로는 이례적으로 ‘빌보드 핫 100’에 올랐다(1998년 로린 힐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해 드레이크는 토론토에서 열리는 ‘OVO 페스티벌’에 그녀를 초빙했다. 작년 4월에 발표한 정규 앨범 <Invasion of Privacy>는 각종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드레이크와 카디 비는 2018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휩쓸었다. 게다가 영화 캐스팅 제안, 2019년 콘서트 투어, 슈퍼볼 하프타임 쇼까지 기다리고 있다. 26세의 카디는 ‘빌보드 핫 100’에 넘버원으로 세 차례 올랐을 뿐 아니라 글로벌한 명성을 얻은 유일한 여성 래퍼가 되었다. 카디 비의 개인적인 삶에 도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20179월에는 미고스의 멤버 오프셋 (Offset)과 결혼해 10월에 아이를 가졌고, 20187월 딸 컬처 키아 리가 태어났다. 그리고 201812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프셋과의 이혼 사실을 밝혔다.

비 오는 어느 가을 오후, 전투적인 카디 대신에 엄마가 된 벨칼리스 알만사르(Belcalis Almanzar, 카디 비의 본명)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몇 시간 후엔 싱글 ‘Money’ 마무리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가, 그런 다음 이틀간은 자리를 비울 것이다. 밀라노 패션위크로 날아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니멀 프린트와 퍼 선글라스를 휘두른 채 돌체&가바나의 프런트로에 앉아 있을 거고, 패션 노바(Fashion Nova)와 함께 준비한 몇몇 의류 라인도 론칭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오늘 카디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흑발 가발만 썼을 뿐이다. 스트라이프 홀터넥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만화 캐릭터 ‘제시카 래빗’ 같은 몸매를 더 강조해준다. 간혹 어르는 소리와 벽면에 기대놓은 카시트를 보니 그녀의 딸이 이 공간에 있는 듯 한데, 어디에도 그녀의 딸 컬처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커튼이 쳐진 저 너머 침실 공간 속에서 카디의 할머니가 아기를 돌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코트는 발렌시아가, 머리에 두른 스카프는 에코, 이어링은 미시 뉴욕, 반지는 포멜라토, 부츠는 지미추 제품. Beauty Note : OGX의 모로코 아르간 오일을 사용하여 컬을 느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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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한 지 4주 후에 브루노 마스와의 가을 투어 리허설이 시작됐어요. 쪼그려 앉을 수도 없었죠.” 카디는 이 투어를 왜 포기했는지 설명한다. “사람들은 임신 후에 겪는 일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요. 어딘가를 꿰매야 한다거나 출산 후 2주간은 변비에 걸린다거나 모유 수유로 질 수축이 일어난다는 것도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몸에 일어나는 그런 현상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고 다만 컬처가 태어났을 때 내가 다시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는 게 중요해요. 모든게 절 울게 만들었고 많은 사랑이 필요했어요.” 카디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어나간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때론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요. 아직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그건 정말 이상한 감정이에요.” 카디 비는 전 남편인 오프셋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의구심을 품은 채 결혼했지요. 우리 관계가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잖아요. 그는 항상 여행하고, 저도 그렇고요. 우린 아티스트니까요. 일주일에 두 번쯤 그를 보는 데 익숙하고, 그는 수많은 여자를 만나온 것으로 알려졌죠. 알다시피 나 역시도 굴욕을 참는 타입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린 정말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고 서로를 잃을까 봐 두려웠어요.”

우린 컬처가 칭얼거리는 소릴 듣고 잠시 대화를 중단했다. 카디는 할머니가 안고 있는 컬처를 보러 갔고 아기에게 입맞춤을 했다. 할아버지까지 합류하자 카디는 포근한 아기 담요로 컬처를 둘러준다. “아기에게 뭘 해줄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해요. 딸이 21세가 되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돈을 얼마나 계속해서 벌 수 있을지, 그러려면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도 생각 중이고요. 5년 뒤쯤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녀는 휴대폰으로 ‘아기상어(Baby Shark)’ 동영상을 틀어 할머니에게 건네준다. “보세요. 애틀랜타에 혼자 있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좋아요. 다들 내 편이잖아요.”

카디는 부모님과 요즘 인플루언서로 떠오른 여동생 헤네시와도 가깝게 지낸다. 두 자매는 뉴욕주 브롱크스에서 태어났고, 아빠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택시운전사, 엄마는 트리니다드 출신의 계산대 점원이었다. 중학생 때 다들 청바지 브랜드 페페 진(Pepe Jean)과 힙합 패션 브랜드 로카웨어(Rocawear)에 열광할 무렵 카디는 핫 핑크 퍼 재킷을 주로 입었다. 좋아하는 디즈니 채널의 <Thats So Raven>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엄마는 엄격해서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카디는 반항심에 오후 수업을 빼먹고 파티에 가곤 했다. 또 1972년 생긴 로스앤젤레스의 갱단 블러즈에도 가입했다. “엄마는 그 모든 걸 멈추려 했지만, 나는 따르지 않으려고 반항했어요. 그때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더 막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죽거나 큰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아니면 10대 시절에 이미 엄마가 됐거나!” 카디는 엄마의 모범적인 태도를 딸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들었지? 밤샘 파티는 진짜 안 된단다. 난 진짜 아이를 엄격하게 키울 거예요. 원하는 건 뭐든 다 가질 수 있지만, 원하는 걸 다 할 수는 없어요.”

톱과 스커트는 샤넬, 이어링은 민디 몬드, 슈즈는 마놀로 블라닉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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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이스트 사이드의 맨션, 그날의 카디는 <W> 화보 촬영을 위해 목욕가운을 입은 채 나타났다. 이번 촬영은 아티스트 미칼렌 토마스가 맡아 마리아 몬테스(Maria Montez), 첼로 알론소(Chelo Alonso), 리타 모레노(Rita Moreno) 등 할리우드를 풍미한 라틴 글래머 퀸의 이미지를 재현했다. “이들은 모두 포용성이 낮은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파워풀한 여성들이었어요”라고 토마스가 말한다. 그녀는 사진과 콜라주 페인팅, 인테리어를 넘나들면서 예술사와 팝 문화 속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파워를 탐구해왔다. 토마스는 카디를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드러내길 원했다. “많은 부분에서 그녀는 남성의 시선을 통해 묘사되어왔어요. 카디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기존에 그녀에게 규정된 개념을 얼마나 넘어서는지 알고 싶었어요.” 카디 역시 지금껏 한 번도 흑인 포토그래퍼가 자신을 찍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화보 촬영을 마치고 얼마 후에 카디는 출산 후 첫 단독 콘서트를 가졌고, 센트럴파크에는 6만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콘서트는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취지로 마련된 글로벌 시티즌 페스티벌의 일환이다. 카디는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였다. 레드 브라와 프린지 팬츠 차림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 블론드 헤어를 하고서 자신감 넘치게 몇 곡을 소화해낸 후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카디는 세트 중앙에서 몰려든 군중을 향해 짤막한 연설을 건네며 유머와 즉흥성을 발휘했다. “미국인은 망가졌어요. 우린 투표할 권리가 있고 아무도 그 권리를 빼앗을 수 없어요. 범죄자가 아니라면!” 카디는 ‘Bodak Yellow’로 공연을 마무리했고, 미셸 오바마의 짧은 영상 메시지도 함께 소개했다.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카디가 미셸에 집중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난 항상 사람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이에요. 항상, 끊임없이.” 이 문장보다 더 완벽하게 그녀를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