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비비에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게라르도 펠로니 (Gherardo Felloni)를 도쿄에서 열린 2019 S/S 프레젠테이션에서 만났다. 유구한 역사의 럭셔리 슈즈 하우스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마침내 자신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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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16년간 로저 비비에를 이끈 브루노 프리조니를 이어 하우스를 지휘할 인물로 게라르도 펠로니가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틸레토 힐을 처음으로 만들고, 이브 생 로랑과 디올을 위해 슈즈를 디자인한 미스터 로저 비비에의 천재적 재능이 낳은 프렌치 슈즈 하우스의 전설을 대표할 새 이름. 앞으로 하우스의 향방을 결정할 그의 데뷔 컬렉 션이 파리를 거쳐 도쿄로 날아왔고, 패션 팬들의 뜨거운 시선이 도쿄에 집중됐다. 100년 넘은 고택 구단 하우스에서 열린 2019 S/S 프레젠테이션 ‘호텔 비비에’에는 전통 악기와 무용, 서예, 분재 등 일본 전통 예술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게스트와 프레스를 맞이했다. 벨벳, 새틴, 자카드 등 다양한 소재와 선명한 핑크와 네이비, 파스텔 같은 여성스러운 색상이 만난 2019 S/S 컬렉션은 훨씬 화사하고 생기발랄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버클을 단 체인 백, 크리스털 장식의 새틴 부츠, 청키한 블록 힐 등 1960년대풍의 레트로 무드가 감지된 그의 컬렉션을 두고 펠로니는 “명랑한 즐거움을 얘기하는 젊은 로저 비비에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대 여성이 원하는 것을 캐치해 디자인에 녹여냈죠”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 그가 묵는 호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20년 가까이 럭셔리 패션계에서 활약해온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늘 영감을 준 로저비비에의 유산, 현대 여성을 위한 고민, 그리고 즐거움의 의미에 대해 시종일관 쾌활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새틴, 벨벳, 자카드 등 다양한 소재와 비비드하고 여성스러운 컬러 팔레트가 사용된 2019 S/S 시즌. 기존 컬렉션에 비해 60년대 레트로풍과 드라마틱한 무드가 강조됐다.

새틴, 벨벳, 자카드 등 다양한 소재와 비비드하고 여성스러운 컬러 팔레트가 사용된 2019 S/S 시즌. 기존 컬렉션에 비해 60년대 레트로풍과 드라마틱한 무드가 강조됐다.

우선, 로저비비에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걸 축하 한다. 어떻게 수락하게 됐나?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미스터 비비에는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로저비비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는 건 꿈이 이뤄진 것과도 같다.

당신의 첫 컬렉션이다. 기존 로저비비에보다 훨씬 극적이며, 장식적인 터치가 인상적이다. 어떤 해석을 보여주고 싶었나? 내 슈즈 디자인의 보이지 않는 선생이 바로 미스터 비비에다. 첫 데뷔 컬렉션은 로저비비에의 아카이브를 깊이 탐구해 그 DNA에 충실하되 보다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이브 생 로랑과 디올 쿠튀르 컬렉션의 슈즈 디자인을 하던 1960년대 아이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브랜드의 오랜 시그너처를 바꾼 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 스퀘어 버클을 과감하게 키우거나 주얼 장식을 더한 방식 말이다. 디자인을 시작하며 어디서부터 접근할지 막막했을 때 로저비비에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영화 <세브린느> 를 떠올렸다. 영화를 보니 방향이 좀 더 선명해지더라. 최근까지의 스퀘어 버클은 그저 우아하기만 했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 카트린 드뇌브는 그저 얌전하고 우아한 부르주아 여성이 아니라 당시 최신 유행을 즐기는 트렌드세터였다. 좀 더 경쾌하 고 활기 넘치는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트레 비비에 펌프스와 비브 런 스니커즈. 나에겐 큰 도전이 었고 무척 만족스럽다.

현대 여성은 더 많은 선택지를 요구한다. 특히 불편을 감수하는 아름다운 디자인과 실용적이고 스트리트적 요소가 반영된 디자인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식으로 균형을 잡을 건가? 그 둘 사이 균형에 대한 답은 아카이브 에서 찾았다. 미스터 비비에의 아카이브 중 90퍼센트가 키튼힐이다. 하 이힐보다 키튼힐이 더 젊어 보이고 실제로도 반응이 좋다.

요즘은 트렌드 주기가 너무 짧아, 공들여 만든 패션의 자리가 점점 축소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클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편 좋은 가격에 웰메이드 디자인을 제공하는 건 우리의 의무다.

로저비비에에서는 처음으로 남성용 슈즈를 선보였다. 최근 루부탱, 지미추 등이 남성용 스니커즈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남성 라인을 어떤 식으로 전개할지 궁금하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고민 중이다. 참고로 트레 비비에의 남성 버전에 대한 문의가 많다.

당신이 그리는 로저비비에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은? 인생의 즐거움,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다. 로저비비에 매장에 들어온 여성이 패션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렸으면 좋겠다. 즐기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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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로서의 행보는 어떻게 시작됐나. 당신의 커리어를 특별하게 만든 슈즈가 있나? 내 비전이 가장 명확하게 투영된 슈즈는 미우미우에서 일하던 당시 만든 글리터 장식을 더한 메리제인 스타일의 키튼힐(2011 F/W 시즌)이다. 그전까지는 슈즈에 글리터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건축가를 꿈꿨지만 내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그 후 에르메스와 구찌를 위해 슈즈를 만들던 삼촌의 슈즈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디올 시절의),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와 함께 일했다. 이들과 일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스승들이다. 미우치아에게선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심미안을, 존에게선 글래머러스함과 쿠튀르적 과장을 배웠다. 그리고 디올의 라프는 여러모로 헬무트 랭을 연상시켰다. 그는 내게 추상적인 감각, 현대 예술 에 대한 조예를 가르쳐주었다.

패션 말고 당신을 매혹시키는 것이 있다면? 인테리어 디자인, 앤티크 주얼리 수집, 오페라와 뮤지컬(그는 실제로 호텔 비비에 파티에서 짧은 오페라곡을 불렀다)에 취미가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 머큐리 역은 나도 잘해낼 수 있었을 거다(웃음).

공식석상에 항상 주얼 네크리스를 하고 등장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지금 하고 있는 목걸이가 내가 처음으로 산 목걸이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사진가 마누엘라 파베시는 독보적인 스타일 감각을 지닌 친구였다. 가령 나이키 트랙 재킷에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앤티크 목걸이를 하는 식이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그녀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더라.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으니 어떤 목표를 세웠을 것 같다. 알려줄 수 있나? 미스터 비비에의 유산을 망치지 않고, 여전히 현대적으로 살아 숨 쉬는 브랜드로 만드는 것.

도쿄는 처음인가?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은? 세 번째다. 매번 짧은 일정으로 들러 아쉽다. 여유 있게 일본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