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부터 카니예 웨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위대한 환상

2019-01-01T17:07:17+00:002019.01.02|FASHION, FEATURE, 뉴스, 피플|

마법 같은 환상을 눈앞에 보여주는 건 마술사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특히 패션 및 예술과 인접한 분야에서 작업하는 이들 중에는 크리에이터들의 탐미적 상상을 현실로 뒤바꾸는 연금술사가 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미래적 심미안을 담아낸 루이 비통 쇼장부터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환상적인 무대, 뮤지션 비욘세와 카니예 웨스트의 짜릿한 투어 스테이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시각적 연금술을 선사한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Es Devlin)처럼.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포즈를 취한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데블린이 착용한 톱은 이자벨 마랑, 스커트는 파비아나 필리피 제품.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포즈를 취한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데블린이 착용한 톱은 이자벨 마랑, 스커트는 파비아나 필리피 제품.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무대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에스 데블린은 시각적 환상을 펼쳐내는 데 능숙하다. 예를 들어 루이 비통 런웨이에는 늘 디자이너가 고심하는 미래주의적인 장치가 등장하고,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것을 눈앞에 실현시킨다. 루이 비통 여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대화는 매우 소중해요. 에스는 진정한 이야기꾼이고, 우리가 속한 세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창조하는 법을 잘 알고 있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오셀로>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살로메> 등 특별한 무대를 위한 환상적인 세트를 설계해온 그녀는 또한 아델, 비욘세, 카니예 웨스트, 위켄드 등 현시대 가장 핫한 뮤지션들이 선택한 꿈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2014년 마일리 사이러스의 콘서트 투어에서 그녀는 무대를 압도하는 슬라이드를 설치했다. 그건 뮤지션의 시그너처인 혀를 날름 내놓은 표정을 연상시키는, 무대에 펼쳐진 혀 모형의 슬라이드였고 쇼맨십에 능한 주인공은 그걸 타고서 등장했다.

이곳은 런던 덜위치에 자리한 세트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집. 그녀의 주방과 거실 벽면은 1895년 당시 집을 짓는 데 사용한 황색의 사암 벽돌을 그대로 활용했다. 이 도시에선 아주 흔한 벽돌이지만, 데블린의 손길이 닿자 특별해졌다. “맨 벽돌을 원했지만, 벽돌이 튀어나온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국립극장의 아는 화가에게 부탁해 수정 작업을 거친 것인데, 그녀가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고친 흔적이 드러나지 않네요”라고 그녀는 벽을 바라보며 흡족한 듯 이야기했다. 데블린의 남편은 무대의상 디자이너인 잭 갤러웨이. 그리고 둘 사이에 11세 딸 레이와 8세 아들 루도가 있다. 그녀의 집에는 런던치고는 규모가 꽤 큰 정원이 있다. 파슬리와 달래를 비롯해 이름 모를 꽃과 들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듯 보이는 나무 등이 자리한 정원은 거실 유리창을 통해 마치 무대처럼 펼쳐진다. 그녀의 집에는 두 개의 스튜디오 공간이 있다. 하나는 데블린이 이끄는 6인조 세트팀을 위한 공간이고, 또 하나는 남편 갤러웨이의 의상 작업실이다. 원래 낡은 페인트 공장을 매입해 수리할 예정이었던 부부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까운 이곳을 2016년에 사들였다.

“처음엔 이 집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작은 방이 너무 많고, 방의 벽은 꽃무늬 천지였어요. 제가 ‘여기서 살 필요는 없을 거 같아’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러더군요. ‘당신은 핵심을 놓치고 있어. 에스, 이만큼 넓은 부지를 갖춘 곳을 런던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라고요.” 수긍할 수밖에 없었죠. 부부는 곧바로 공간 디자인 작업에 착수했다. 이어 디자인팀의 디테일 작업과 지역 장인들의 공정이 이어졌다. 가구와 마루는 대부분 더글러스 전나무로 만들었으며, 인테리어는 부부가 존경하는 영국 디자이너 존 파우슨이 맡았다. 데블린의 스튜디오를 들어서면 <돈 조반니> 공연 때 연출한 무대나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가 설계한 미러 프로젝트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모형 등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스튜디오 창가에 놓인 거대한 손은 2017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카르멘>을 공연했을 당시 만든 것이다. “에스는 넘치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과 야망을 결합하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어요.”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아티스틱 디렉터 알렉스 푸츠가 말했다.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2017년  공연을 위해 만든 거대한 손 모형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2017년 <카르멘> 공연을 위해 만든 거대한 손 모형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브리스톨 대학에서 영국 문학을 전공한 그녀가 무대 디자인으로 전향한 계기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일 년 정도를 보냈을 때다. “극장에 많이 다녀보질 않았지만, 사람들이 런던의 명망 높은 무대 디자인 수업인 모틀리 시어터 디자인 코스에 대해 자주 얘기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 등록해 스튜디오에서 하루 종일 미니어처 모형을 만드는 데 열중했죠.”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예술, 문학, 삶에 대한 열정을 결합시킬 수 있는 분야를 발견했다. 1995년, 공부를 마친 데블린은 런던의 인디 극장에서 일하면서 저예산으로 직접 모든 걸 만들어냈다. 퍼포먼스 아트에 관련된 디자인 경력을 쌓아가던 중 전환점이 된 건, 2003년 ‘영국 포스트펑크 밴드인 와이어를 위한 콘서트 무대를 만들어보라’는 푸츠의 설득. 그녀는 네 명의 뮤지션 각각을 무대 위 유리 큐브 안에 넣었다. 2005년, 웹사이트에서 그녀의 신선한 세트 사진을 본 카니예 웨스트가 자신의 투어 무대 제작을 의뢰했고, 그 작업을 계기로 그녀는 음악과 패션을 넘나드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해가 갈수록 대중문화에 대한 그녀의 통찰력은 더욱 깊어졌고, 그녀에게는 더 비중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중 하나가 루이 비통 쇼의 무대였다. “루이 비통 패션쇼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해요. 에스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죠”라고 제스키에르가 말했다. 데블린은 자신의 이름을 알린 많은 기회에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개인적 감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연극 무대 일을 좋아한다. 그녀는 2015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상연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햄릿> 무대를 위해 자신의 집에서 직접 가구들을 공수하기도 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가장 인상적인 디자인은 바로 기초적인 재료에서 얻어지는 것들이에요.” 디자인 큐레이터 리비 셀러가 말한다. “에스는 세트 디자이너의 지위를 격상시켰죠.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주도적인 존재로 나아갔으니까요.”

그동안 여러 협업 파트너들을 위해 기억에 남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해온 데블린. 그녀는 요즘 또 다른 특별한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있다. 출발은 그녀의 첫사랑인 ‘책 읽기’에서 시작된다. “수천의 관중이 거대한 팝 콘서트에 깊이 열중한 모습을 지켜보는 건 무척 흥분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일을 ‘독서 프로젝트’로 연결하고 싶어요.” 데블린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 책을 읽도록 만드는, 시각이나 청각적 자극을 활용한 작업을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당분간 아이들과 정원을 떠나야 할 정도로 중대한 일이라며. 그러니 조만간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그녀의 환상적인 마법을 기대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