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회화 아티스트 크리스토퍼 울과의 만남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100퍼센트의 추상을 향하여

2019-01-10T13:34:55+00:002018.12.28|FEATURE, 컬처|

오랫동안 엘리트 컬렉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가 중 하나,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뉴욕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로 익히 알려진 그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맨해튼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크리스토퍼 울.

맨해튼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크리스토퍼 울.

이 사람은 말수가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소위 ‘작품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작가이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1980년대 말, 겉치레에 반항적이고 전복적이었던 ‘텍스트 회화’로 유명해진 미술가가 인터뷰를 혐오한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동쪽 끝 블록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기꺼이 <W> 팀을 초대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그는 따뜻하고 걸걸한 목소리에 편안하고 적극적인 태도의 소유자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뉴욕의 보헤미안적 펑크록 아트와 음악 신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음에도, 그는 자신이 시카고의 중산층 출신임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중서부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와 친밀함을 갖추고 있다. 1955년생 미국 작가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그는 일찍이 수집가들에게 인기 많은 작가였지만, 2013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한 이후 작품 경매가가 더욱 치솟았다. 비평계의 극찬을 받은 그 전시는 가장 중요한 미국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울을 추대하는 사실상의 대관식이었다. 그는 회고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기념비적인 규모로 모든 것을 아우른 전시 때문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창의적으로 다시 일어서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한다. 물론 성공적인 회고전의 이점 중 하나는 작가로서 증명해야 할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일 테다.

스튜디오 바닥에서 건조 중인 종이 작업.

스튜디오 바닥에서 건조 중인 종이 작업.

그는 <W> 매거진을 위해 석판화를 제작했다. 프린트의 배경으로는 금속판으로 만든 에칭 판화를 썼고, 그 위에 붉고 검은 모노타이프를 줄지어 작업했다. 그러한 리토그래피 판화는 울의 최근 프로젝트 중 하나다. 스튜디오의 한쪽 벽면에는 봄이 오면 시카고에 위치한 코벳 vs. 뎀프시(Corbett vs. Dempsey) 갤러리에서 전시될 로르샤흐 스타일의 대형 실크스크린 회화, 그리고 새 페인트 드로잉 시리즈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 작업한 이미지와 작품을 재활용, 재전유, 재조립하는 것은 울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으로, 회화의 층위와 밀도를 충돌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는 끊임없는 자기 참조와 작품의 용도를 변경시키는 작업에 대해 “반응이나 반작용을 야기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종종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울의 작품 세계에서 이미지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미지는 수시로 추가되거나 제거되고, 재조정된다.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그는 이 스튜디오가 자리한 건물을 1991년에 사들였는데, 당시 길 건너편 공터에는 노숙자들이 캠프를 차리고 모여 살고 있었다. “그때가 정말 위험한 동네로 명성이 자자한 이스트 빌리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젊을 적에는 차이나타운에 머물렀죠. 어쨌든 그 나이 때는 뉴욕에 있지 않으면 예술가가 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뉴욕이 제 작품의 일부가 됐어요.” 그의 급진적인 변화, 즉 흑백 문자 스텐실 작업과 집을 칠하는 패턴 롤러를 사용하는 작업은 도심 빈민가의 낙서에서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이다. “뉴욕이라고 하면 지극히 흑백이 떠오릅니다. 젊은 시절 저에게 뉴욕이 대부분 밤의 이미지기도 했고요.”

크리스토퍼 울을 스타 작가로 이끈 작업 스타일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의미를 담은 일명 텍스트 회화다. 1987년 월스트리트의 ‘검은 월요일’ 사고(뉴욕 증권 시장에서 일어난 주가 대폭락) 후, 울은 ‘집을 팔아라 차를 팔아라 아이들을 팔아라(Sell The House Sell The Car Sell The Kids)’라고 쓴 첫 번째 텍스트 회화를 선보였다. 그 작품은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6 백만 달러 이상에 팔리는 등, 크리스토퍼 울이라는 작가의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당시 젊었던 울이 그 작업에 대한 반응을 걱정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작품은 실험이었죠. 그 전에는 추상화를 그렸거든요. 어리고 불안정할 때였는데, 갤 러리스트인 폴라 쿠퍼가 그 그림을 슬쩍 보고는 ‘내 감정하고 똑같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요. 바로 안심이 되더군요. 그 작품은 나에게 확실히 새 출발이라고 할 수 있었죠. ”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울은 텍스트 회화를 통해 사회적 힘과 미학적 힘이 혼합된 상태를 포착했고, 그건 오늘날에도 묵직한 감동을 전달한다. 한 편으로 울의 회화는 당대에 과도하게 회자된 ‘회화의 죽음’이 라는 논쟁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했다. 손맛을 흉내 내어 대량 생산한 이미지와 단순한 스타일을 찬양하는 격이었기 때문이 다. 또한 그 캔버스들 위에는 물감 자국과 잡티가 가득 차서, 작품에 이면의 층위가 유령처럼 존재하는 듯했다. ‘팝아트’의 언어로 말하는 그 회화들을 울은 연예 산업과 광고 간판을 참조해 만들었다. 예를 들면 ‘집을 팔아라 차를 팔아라 아이들을 팔아라’라는 문구는 1979년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따온 것이고, 또 다른 텍스트 회화의 문구는 1977년에 발매된 리처드 헬의 음반 커버에서 빌려온 것이다. 캔버스 위의 텍스트는 단순하고 어색하지만 중층적인 의미의 공간을 창출하여, 마치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관객이 그것의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조금은 정치적인 언급이기도 했죠. 하지만 제일 처음 나는 그것을 페인팅 자체로만 바라 봤어요.” 몇 년 후, 울은 새로운 실험으로 넘어갔다. 관습에서 탈피해 회화의 층을 쌓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연구했다. 흩뿌리기, 엉키게 하기,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문자 대신 추상적이면서도 글자처럼 보이는 곡선, 얼룩 등등. 그는 다양한 기법을 이용해 창출한, 혼돈의 상태지만 작가에 의해 잘 통제된 형상을 캔버스 위에 묘사했다.

한 작가의 일대기는 작품 스타일과 다른 요인에 따라 몇몇 시기로 나뉠 수 있지만, 어쨌든 울을 미술계 스타로 떠오르게 만든 것은 묵직한 울림을 담은 텍스트 회화다. 평론가 데이브 히 키(Dave Hickey)가 울의 작품을 통렬하게 비판했는데도 불구하고 울은 잘난 척하는 미술가들에게까지 충격적인 영향을 줬 다. 추상화가 조 브래들리는 미대에 다니던 시절 울의 텍스트 회화를 처음 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어떤 면에서 울의 작 품은 너무 비열하고 대립을 부추기지만, 또한 정말 웃기고 섹시하며 보는 이를 한 대 때리는 듯한 재미가 있었죠. 울은 정 말로 좁은 기준을 정해놓고, 그 바깥에 있는 것들을 엄청나게 조롱합니다. 마치 누군가가 35년 동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을 보는 것 같아요. 그는 절대로 자신만만함을 잃지 않죠. ”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작업 중인 작품과 도구들. 스튜디오 곳곳에서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 뭉치가 보이는데, 사막 마을인 마파에 있는 스튜디오 주변에서 주운 것이다.

회화 작업을 하는 것 외에도 울은 항상 흑백 사진을 찍었다. 그중 어떤 것은 회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2007년 텍사스 서부의 작은 사막 마을인 마파(Marfa)에 집을 산 후 울은 조각 작업도 열심히 했다. “여기 있는 조각들 일부는 마파의 집 근처 에 있던 사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거예요. 그곳은 뉴욕과 는 달리 무척 드넓거든요. 뉴욕은 예전과 달라졌어요. 거긴 이제 저에게 일터이거나 친구들이 있는 곳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뉴욕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단어에서 초기 회화 텍스 트의 스텐실을 추려낸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는 조각을 위한 재료를 마파의 집 근처에 있는 사막에서 수집한다. 걸어 다니다가 땅바닥에서 낡은 울타리와 건초를 묶는 철사를 찾고, 그것을 모아 서정적인 낙서처럼 보이는 작고 추상적인 축소 모형을 만드는 식이다. 농장의 철사는 그의 최근 회화 대부분에 서 발견되는 촉각적인 선의 효과를 자아낸다. 축소 모형 중 몇개는 3D 스캐닝과 확대를 거쳐 청동과 강철 공장에서 제작해 야외 조각물로 발전한다. “처음 철사를 발견했을 때, 나는 그것을 내 드로잉의 3차원 회화 버전으로 여겼습니다. 회화와 조각 의 차이는 그 크기겠지요. 회화의 크기란 벽이나 방 등의 공간 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심지어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지 같은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하지만 조각은 일단 밖으로 나가면 그러한 관계로부터 훨씬 멀리 벗어나죠. 조각이 훨씬 더 개방적이고 독립적입니다.”

울은 여전히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마주친 몇몇 작업물은 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뉴욕스러운 흑백 이미지가 연어색을 닮은 핑크, 나무껍질 같은 갈 색, 물결 모양의 노란 선 등으로 대치됐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오랫동안 유화 작업을 하지 않았고, 아주 가끔씩만 색을 이용할 뿐이었는데, 스튜디오 곳곳에 오일 스틱과 물감 튜브가 있었다. 그는 이제 붓 대신 그것들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한때 ‘회화 종말의 사도’로 불리던 크리스토퍼 울은 그의 이스트 빌리지 스튜디오의 꼭대기 층에서, 다루기 힘들고 변덕스러운 사후 세계를 축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