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멀리건의 공적이면서 사적인 삶의 이야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조용한 반항

2018-12-07T12:36:40+00:002018.12.14|FEATURE, 피플|

주위의 누군가 배우를 꿈꾼다면 말리겠다는 사람. 어린 딸이 언젠가 끼를 보이기 시작한다면 골치 아파할 엄마. 영화 <와일드라이프>를 마친 캐리 멀리건이 공적이면서 사적인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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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라이프>에서 열연한 캐리 멀리건(Carey Mulligan)의 그 즉흥적이고 난도 높은 연기에 감탄한다면, 제이콥슨이라는 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 부인은 캐리가 소심한 일곱 살 소녀였을 때 교회 성가대를 이끈 사람이다. “제가 솔로로 노래할 수 있도록 한 첫 번째 인물이었어요. 연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었죠.” 이제 서른세 살이 된 캐리 멀리건은 최근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제이콥슨 부인을 방문해 감사를 전했다. “부인은 제 뒤에 서 있곤 했어요. 저는 첫 솔로 때 아주 조용히, 조금 소심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녀의 손이 제 등을 부드럽게 밀었죠. 그러자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었어요.” 그 시절 어린 소녀는 여전히 캐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살고 있다. 2009년 새로운 할리우드 스타 탄생을 알린 영화 <언 에듀케이션>에서 미끈한 포식자의 희생양이 되는, 꽃봉오리처럼 매력적인 어린 여성을 연기하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끈 이후에도 말이다.

배우로 사는 시간이 흘러 이제 그녀는 고통받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건 사실 주인공이 되는 일보다 훨씬 힘든 것이었다. <와일드라이프>에서 캐리 멀리건과 제이크 질렌할은 열네 살 소년의 부모 지닛과 제리를 연기한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제리는 맹렬한 산불과 싸우는 직업을 택하고,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지닛은 삶이 절망스럽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북미에서 10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배우 폴 다노의 첫 번째 연출작이자 리처드 포드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모든 매력을 탈색하듯 빼 버린 채, 어떤 인물이나 사건도 느슨해지지 않는 무자비한 내용. 제이크 질렌할이 분한 제리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면서 지닛은 남편의 몫까지 대신하게 되고, 한 남자와 함께 아들을 학대하기 시작한다. 불쌍한 아이는 영문을 알 수 없다.

캐리는 지닛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악당과 피해자 양면의 모습을 담았다. 상처 입은 욕구를 억제할 수 없으며, 심지어 자신도 그 욕구를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다. 영화 속 소년 또래의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영화가 상영하는 도중에 “그러지 마!”라고 소리칠지도 모른다. 캐리 멀리건의 연기는 작품 스토리만큼이나 충격을 던져준다. 감독 폴 다노는 말했다. “캐릭터가 굉장히 복합적이긴 하지만, 캐리는 아주 날카로운 배우죠. 그녀의 의도는 명확했어요. 지나치게 감상적인 배우가 그 역할을 맡았더라면 산산조각이 났을 캐릭터예요.”

캐리가 <와일드라이프>를 택한 건 사람들의 기대는 물론 스스로가 품을 법한 기대마저 저버리기 위해서였다. “누군가가 어떠한 일을 능숙하게 하면, 사람들은 그가 그 일을 계속 반복하길 원해요. <언 에듀케이션> 이후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변덕스러운 소녀에 관한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는데 별로 하고 싶지가 않더군요. 몇 년 전 메릴 스트립과 출연한 <서프러제트>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였어요. 하지만 이젠 메시지가 강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아요. 많이 노력하지 않고도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떠맡고 싶지 않거든요.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보이고요.”

파란색 스웨터는 보테가 베네타, 모자와 벨트는 프라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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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부터 캐리는 모든 것을 제대로 훈련받았다. 그 덕분에 그녀는 주변의 신뢰를 얻었다. 키라 나이틀리는 캐리에게 ‘디바가 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스타로 사는 법’을 보여주곤 했다. 둘은 <오만과 편견>에서 만난 사이다. 키라 나이틀리의 동생 키티 역으로 캐리는 첫 영국 시대극 연기를 했다. “저야 그때보다 몇 년이 지나 이름을 알렸지만, 당시 키라는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하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했어요. 그 유명인이 저에겐 촬영장에서 주연 배우로 지내는 법을 보여주는 모델이었죠. 눈부신 스타이면서 매우 친절하고 다정했어요. 마치 앞으로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일이 있어도 변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그때 저는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관찰했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배웠어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게 그녀가 성장 과정에서 단단한 뿌리를 갖지 못했다는 고백은 아니다. 캐리는 단지 자신이 조금 다른 종류의 나무라고 상상했을 뿐이다. 캐리가 어릴 적에 그녀의 아버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오랫동안 호텔을 경영했다. 그녀의 오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일했다. 캐리가 자선 단체인 ‘워 차일드’를 위해 일하는 건 대부분 오빠의 영향 때문이다. 캐리와 가족 모두 신실한 신앙심을 지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캐리가 일찍이 간절하고 끈질기게 원한 길은 연기였다. 부모님은 크게 실망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저 저를 인생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실망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거죠. 삶이란 워낙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한데, 배우의 길이란 또 다르게 위험하잖아요. 부모가 된 이제야 그들을 이해하겠어요. 만약 제 딸이 어디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저는 그 순간 ‘오, 안 돼!’라고 생각할 거예요(웃음). 그러고선 긴장한 채 딸을 통제하려고 하겠죠.”

캐리 멀리건은 일찍부터 쓰라린 실패를 겪어본 몸이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A 학점을 얻은 후, 가족 몰래 최고의 연기 관련 대학 세 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연기로 자살을 앞둔 여성의 독백을 선택한 게 실수일지도 모르겠다고. 그 실패가 캐리를 좀 더 단련시켰다. 유명한 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제작자는 캐리가 다니던 학교 교장과 친구였다. 멀리건은 그 제작자에게 편지를 썼다. 그렇게 런던 시어터 워크숍으로 안내된 캐리 멀리건은 그때부터 바람을 등에 진 듯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운명이 완전히 일그러지기도 해요. 그것이 제가 아는 누구라도 배우가 되겠다고 하면 반대하려는 이유랍니다.” <다운튼 애비> 제작자는 사실 애초에 캐리에게 그녀가 원하는 연기라는 걸 하게 됐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연기를 인생의 도둑이라고 했어요.”

데님 재킷은 구찌, 안에 입은 흰색 셔츠 드레스는 알렉산더 매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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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캐리에게 연기는 인생의 도둑이 아닌 것 같다. 2012년 그녀는 음악가인 마커스 멈퍼드와 결혼했고, 이제 세 살과 한 살이 된 아이 둘이 있다. 쉿, 캐리는 가족에 대해 말하는 걸 꺼리는 편이다. 부부는 런던에 있는 집과 데본에 있는 농장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인스타그램에서 셀렙 부부가 아이들과 닭을 쫓는 사진 같은 걸 볼 일은 없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브랜드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듯,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도 쓰지 않는다. <오만과 편견>에서 같이 연기한 제이미 도넌(당시 그는 키라 나이틀리와 사귀었고, 지금은 셋이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낸다)은 이런 말을 했다. “캐리는 연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결국 연기는 그녀에게 직업일 뿐이에요. 그녀는 배우들이 생활에 휩쓸려 이사 가곤 하는 LA 대신 아이들을 위해 살 수 있는 환경을 택했죠. 저는 항상 캐리가 그런 선택을 할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지난해 캐리는 커리어 사상 가장 대담한 도전을 했다. 지난여름 런던 공연 후 일정 기간 뉴욕에서 선보인 데니스 켈리의 연극 <걸스 앤 보이즈>의 유일한 인물로 계약한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면, 저는 독백을 꼭 해보라고 추천합니다.” 캐리의 말이다. 혹시나 앞으로 이 연극을 보게 될 독자를 위해 자세히 말하진 않겠지만, 캐리는 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연기를 하고, 그 결말은 희망적이지 않다. 연극 오디션을 보는 시기에 그녀는 둘째를 임신했다. “첫 번째 장면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지금 제 아이들과 같은 나이예요. 저는 배역과 진짜 아이들을 분리해내기 위해 의식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연기하면서 제 아이들을 떠올렸던 적이 없어요. 완전히 만들어진 가상의 두 아이만 생각한 결과, 그 극적인 대상들로 인해 괴로운 일 같은 건 없었어요. 막상 정말 긴장한 부분은 연극 초반에 사람들을 웃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 한 도전 중에 가장 두려웠답니다. 저는 코미디 출연 제의를 거의 받지 않는 배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코미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캐리는 잉마르 베리만이 <파니와 알렉산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연극 인생을 기념했던 것 같은 ‘작은 세계’를 소중히 여긴다. “<와일드라이프>를 촬영할 때, 오클라호마에 있는 방갈로를 빌려서 스태프들과 다 같이 머문 적이 있어요. 같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그런 순간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로맨틱하다고 느꼈죠. 제가 일하지 않을 때 그리워하는 부분이에요. 물론 시나리오 첫 페이지를 절반쯤 읽다가 목이 닫히는 기분이 들면서 운 일도 있죠. 끔찍했어요. 연습을 취소해야 하는지 긴급 회의까지 열렸으니까요.” 하지만 이내 일곱 살 그녀의 곁에 있던 제이콥슨 부인이 캐리의 등에 손을 얹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껏 이미 많은 배우가 <와일드라이프>의 지닛처럼 상징적인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냈어요.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 블랑쉬 드부아를 연기하던 케이트 블란쳇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그 이상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캐리는 이제 휴식을 취할 것이다. 연극 무대도 당분간 잊기로 했다. “저는 오랫동안 다른 연극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우리 아이들을 목욕시켜줄 시간을 뺏긴다는 뜻이니까요. 말도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