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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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컬렉션이 돌아왔다. 그것도 25년 만에! 더 굉장한 건, 오리지널 룩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블유를 위해 특별히 공개한 그런지 컬렉션 캠페인 촬영장의 비하인드 신. 마크 제이콥스가 직접 모델의 피팅을 살피고 있다.

더블유를 위해 특별히 공개한 그런지 컬렉션 캠페인 촬영장의 비하인드 신. 마크 제이콥스가 직접 모델의 피팅을 살피고 있다.

천재는 늙지 않는다. 다만 세상이 그를 알아주는 시기가 다를 뿐. 최근 마크 제이콥스를 천재 디자이너로 인정받게 했던 ‘그런지 컬렉션(Grunge Collection)’이 마크 제이콥스 2018 스페셜 캡슐 컬렉션으로 부활했다. 이것은 그가 페리 엘리스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 뜨거운 센세이션을 일으킨 1993 S/S 시즌 그런지 쇼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이기도. 그 당시 그런지 컬렉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며, 이것이 과연 패션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컬렉션을 발표한 직후 그는 해고되었지만, 그런지는 이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 90년대 패션을 대표하는 트렌드가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전설적인 그런지 컬렉션이 2018년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유는?  ‘창작의 비전을 타협 없이 그대로 런웨이 위에 보여주고자 했던 나의 첫 결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컬렉션’이라는 마크 제이콥스의 말처럼, 지금 시대에 필요한 어떤 태도와 시선을 일깨우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더구나 타협을 모르는 이 천재의 배짱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25년 전에 선보였던, 앳된 얼굴의 케이트 모스를 비롯해 크리스티 털링턴 등 당대의 슈퍼모델들이 입고 런웨이에 선 컬렉션 중 26가지 룩은 모두 오리지널 패브릭과 프린트 등을 이용해 동일한 디자인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처럼 어떤 재해석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자신감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에 대한 강한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과연 그의 전설적인 런웨이 룩이 현재를 살고있는 세대에게는 또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 여기 더블유와 나눈 그의 목소리를 통해 한 패션 천재의 열정적인 메시지를 헤아려 볼 것.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돌아온 그런지 컬렉션 1993/2018’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돌아온 그런지 컬렉션 1993/2018’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

우선 25년 전의 그런지 컬렉션이 당신의 삶에서 의미하는 바가 궁금하다. 그런지 컬렉션의 25주년을 맞이해 이 뜻깊은 컬렉션을 부활시키자는 아이디어에 나와 팀원들은 흥분했다. 사실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을 통해 그런지를 응용하자는 이야기는 종종 있어 왔는데, 이번에야말로 그런지 컬렉션을 통해 나의 비전을 드러내고 싶다는 결심을 굳혔다. 어떤 창의적인 타협도 없이 말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리조트 컬렉션으로 재등장한 그런지 컬렉션이 궁금하다. 패션은 실제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1992년에 내가 그런지 컬렉션을 준비할 당시의 아이디어는 내가 알고 있는 진짜 여성들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옷을 입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당시 패션은 지나치게 완전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모델들을 비롯해 내 주위 여성들은 실제 삶에서 그런 옷을 입지 않았다. 그들은 빈티지 실크 나이트가운과 닥터 마틴부츠를 신고 내 사무실에 들어오곤 했다. 단, 이번 컬렉션에서 캐주얼한 룩을 위한 소재만큼은 최고급 캐시미어와 실크 등을 사용했다. 이러한 컬렉션의 관점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에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돌아온 그런지 컬렉션 1993/2018’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돌아온 그런지 컬렉션 1993/2018’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

그런지 컬렉션의 컴백이 단순한 노스탤지어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지 컬렉션을 떠올리고 부활시킨 가장 첫 번째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 이 컬렉션이 공개된 이후, 매 시즌 우리의 작업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마크 제이콥스 디자인 팀과 함께 살펴본 원본은 원래 약 60개 정도였고, 우리는 오래된 사진과 비디오를 살펴보며 옛 소장품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방향이 명확해졌을 때, 그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적절하다고 느껴지는 26개 룩을 선택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오리지널 버전에 가깝게 만들어냈다.

그런지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을 때 그토록 엄청난 반응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나? 1993년 당시 패션계에 있어 ‘그런지’라는 개념은 표준의 틀을 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큰 센세이션 이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접근하진 않았지만, 그 당시 유행한 것과는 다른 뭔가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사실은 예감했다.

그런지 컬렉션이 오늘날 1993년 페리 엘리스의 그런지 컬렉션 쇼장을 기억하지 못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겐 어떤 감정을 안겨줄까? 예를 들어 그 당시 쇼에선 케이트 모스와 그녀의 딸인 열여덟 살 릴 라모스처럼 서로 다른 두 세대에게 각각 이번 컬렉션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설 거라고 생각하나? 스타일 관점에서 볼때, 이 컬렉션은 오늘날의 세대와 매우 관련이있다. 사람들은 20년 전보다 더 캐주얼하게 옷을 입고 있으니까. 오늘날처럼 스트리트 패션이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런 스타일에 이끌려 고급스럽게 포장된 스트리트 룩을 제공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편안하게 입을 진짜 옷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듯, 오늘날을 대표하는 핫한 모델인 지지 하디드가 그런지 컬렉션 캠페인에 참여했다. 11월 7일 공개된 캡슐 컬렉션은 11월 말 마크 제이콥스 국내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듯, 오늘날을 대표하는 핫한 모델인 지지 하디드가 그런지 컬렉션 캠페인에 참여했다. 11월 7일 공개된 캡슐 컬렉션은 11월 말 마크 제이콥스 국내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반면 당신은 최근 2019 S/S 시즌 마크 제이콥스 뉴욕쇼를 통해“스타벅스에 가기 위한 옷을만든 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때마다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최근의 뉴욕 컬렉션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차림에 관한 것이 아닌, 옷을 차려입기 위한 컬렉션이었다. 이처럼 각각의 컬렉션은 나에게 다른 의미 를 지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생각에 따라 종종 그 방향을 바꾸곤 한다.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그것이 싫을 때까지 사랑하고, 그것을 사랑하기 전까지 그것이 싫다”라고 할 수 있다.

프레스 자료에 그런지 컬렉션 소개와 더불어 소닉 유스, 너바나, 스매싱펌킨스와 같은 90년대를 대표하는 록 그룹의 플레이리스트를 추천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패션은 옷 입기 그 이상의 것이며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포괄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패션은 무엇인 가? 그리고 앞으로 패션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와 내가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있어 패션은 삶을 사는 기술의 일부이기도 하다. 예술, 영화, 음악이 삶과 문화를 구성하는 일부분인 것처럼 패션 역시 삶의 한 측면이 될수있다.그리고 그 당시 패션은 무엇보다 나와 내 친구들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음악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영감은 모든 종류의 인생 경험에서 나오고,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 진실로 남을 것이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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