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을 상상하든 항상 그 너머를 보여주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그가 이끈 구찌 2019 크루즈의 행선지는 다름 아닌 남프랑스 아를, 알리스캉. 그는 그곳을 무대로 자신의 판타스틱한 상상을 현실화했다.

가끔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고, 결국 그 그림을 현실화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에너지가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천재 예술가일까? 창의적인 독재자일까? 크루즈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행복하고 여유로운, 바람마저 감미로운 해안의 따사로운 햇살을 떠올리는 반면 구찌의 수장인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는 달랐다. 그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서늘한 묘지, 바로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도시인 아를을 대표하는 알리스캉(Alyscamps)이었다. 샹젤리제의 프로방스식 호칭인 알리스캉은 아를의 오래된 명소이다.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여러 그림에도 등장하는 이곳에는 삼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적막한 오솔길을 지나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 묘지가 자리한다. 4세기부터 유명인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 석관과 웅장한 건축물이 어우러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특별한 장소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바로 이곳, 중세적 기운이 가득한 장소에서 구찌 크루즈 컬렉션을 펼쳤다.

 

며칠 전 다른 도시에서 치러진 크루즈 컬렉션이 비와 함께 소란스러웠던 탓에 기우제까지 지냈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로 쇼 준비에 공을 들인 그날, 5월 30일이 되자 이 남다른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이윽고 예술과 옛 시대에 대한 깊은 애정, 아방가르드한 철학과 패션에 대한 열정의 화신인 이 탐미주의자는 고요히 자신의 생각을 실행시켰다. 전 세계에서 모인 주요 프레스와 VIP를 맞이한 서늘한 묘지는 뜨겁게 치솟은 불길로 마치 고대 의식이 행해지는 성스러운 전당처럼 보였다. 그 웅장한 규모와 낯선 풍경에 감탄하는 이들의 소란을 잠재우듯 고딕 스타일 의상을 입고 강렬한 캐릭터로 무장한 모델들이 이끼로 뒤덮인 고대 무덤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일련의 크루즈 룩들 중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제의 스타일의 자수가 수놓아진 코트에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귀고리와 목걸이가 매치된 룩은 신비한 뉘앙스마저 풍겼다. 순간 이 특별한 장소에 신비한 주술적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쇼 자체가 장엄하고 고전적인 무대극처럼 보였다. 여기에 화려한 자수 장식의 벨벳 케이프 드레스를 입은 미망인이 부케를 들고 등장하자 마치 연극의 한 장면과도 같은 패션 플롯이 완성되었고 말이다. 한편 미켈레가 영감을 안겨주는 인물로 자주 언급한 엘튼 존. 프런트로에 앉은 그의 앞으로 타이거 프린트의 스키니 팬츠와 네온 컬러 벨트 백을 매치한, 마치 록스타 같은 모델이 등장하자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 시공간의 흥미로운 혼재가 느껴졌다. 이처럼 다채롭게 이어진 모델들의 런웨이를 통해 관객은 그가 보여주려고 한 그 무엇, 즉 고대 묘지에서 기원한 영감의 원천과 구찌 하우스의 코드가 절묘하게 혼재한 기묘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나아가 미켈레가 얼마나 깊이 이 공간과 호흡하며 영감을 받았는지 상기시키는 아이템들도 눈길을 끌었다.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람 몸에 염소 뿔과 다리를 지닌 파우누스 프린트 백, 자기 꼬리를 삼킨 뱀을 형상화한 우로보로스가 프린트된 르(벨) 백, 샤토 마몽 호텔의 세탁물 가방에서 영감을 받은 숄더백 등은 쇼의 주제를 담은 동시에 구찌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쇼를 마치고 구찌 2019 크루즈 컬렉션을 위해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알리스캉은 고대 로마시대의 공동묘지이지만, 한편으로 공동묘지가 아닙니다. 원래 공동묘지인 이 장소는 1700년대 이후 산책로로 변모했으니까요.” 이처럼 두 가지 의미가 결합된, 공동묘지인 동시에 공동묘지가 아닌 곳에 서서 그는 얼핏 무언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단순히 그렇지만은 않은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가 생각한 우리의 삶, 나아가 패션의 본질도 이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무릇 모든 대상엔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와 하나의 캐릭터로 규정될 수 없는 다채로운 이면이 있게 마련이니까. 마치 어린 왕자의 메시지처럼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패션의 최전선에서 외친 그. 나아가 줄곧 자신의 쇼를 통해 기존의 대상에 대해 새롭게 비틀어보기를 시도한 디자이너답게(물론 기존의 구찌 브랜드 아카이브조차) 자신의 전복적인 정신을 전파했다. 그리고 이 모든 컬렉션은 바로 지금,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구찌ㅜ매장에서 판매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고 있으리라. 그 어디서건 독창적인 구찌의 미학과 미켈레의 철학을 오롯이 드러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