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미스터 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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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명 모델이 등장한 런웨이, 디지털 월 속 히스토리 영상, 게스트들이 한데 어우러진 우아하고 뭉클한 만찬의 순간.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아 뉴욕 센트럴파크를 수놓은 랄프 로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만찬이 열린 센트럴파크 베데스데 분수의 로맨틱한 광경.

150명 모델들과 함께한 피날레 속 랄프 로렌.

지난 9월, 2019 S/S 뉴욕 패션위크의 중심은 단연 랄프 로렌이었다. 현존하는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이끄는 미국을 대표하는 랄프 로렌이 브랜드 창립 50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기 때문. 지난 50년간 미국 패션의 상징이자 미국적인 스타일을 정의해온 랄프 로렌의 50주년 쇼가 열린 장소는 뉴욕의 랜드마크인 센트럴파크. “50주년을 위해 랄프 로렌만의 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면서 정통적인 스타일의 런웨이를 랄프 로렌답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장소가 저에게 특별한 공간인 뉴욕의 센트럴파크였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거장의 말이다.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17개의 디지털 월에서는 지난 런웨이 하이라이트 비디오 아카이브를 상영했다. 해가 지고 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야외 영화관처럼 분위기 있는 공간이 연출되었다.

여성 컬렉션을 완벽하게 소화한 블랑카 파디야, 카이아 거버, 지지 하디드가 백스테이지에서 포즈를 취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쇼장으로 가는 길목에 설치된 대형 미러 박스. 브랜드의 아카이브 영상이 홀로그램 방식으로 상영되어 마치 랄프 로렌 뮤지엄에 들어선 듯했다.

1967년부터 진행된 랄프 로렌의 하이라이트 컬렉션 영상. 지금 보아도 세련된 룩들을 감상하며 현장에 모인 게스트들은 랄프 로렌의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가을날 저녁. 센트럴파크 입구에는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커플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모두 드레스 코드 ‘Black Tie’에 맞춘 성장 차림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오프라 윈프리, 로버트 드니로, 앤 해서웨이, 카니예 웨스트, 그리고 한국의 김혜수와 제시카를 포함한 브랜드의 VIP와 게스트들이 어우러진 가운데 랄프 로렌의 밤이 시작되었다.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디지털 영상 조형물이었다. 50주년을 맞은 브랜드가 그동안의 결과물을 디지털 설치물로 보여준다는 것은 디지털 혁신에 대한 포용을 의미한다. 현장에는 반원 모양의 대형 미러 박스에 LED 비디오 스크린이 17개 설치되어 있었는데, 1967년부터 열린 랄프 로렌의 런웨이 비디오 아카이브를 디지털 방식으로 상영해 몹시 흥미로웠다. 한편 게스트가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챔버형 미러 박스에는 ‘50년의 회상(50 Years of Reflection)’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전시되었다. 광고 캠페인에서 재현된 상징적인 이미지의 비디오와 홀로그램으로 브랜드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 무엇보다 랄프 로렌의 아카이브에서 선정한 400개 이상의 이미지와 비디오는 컬렉션이 시작되기 전 브랜드의 지난 시간을 마치 영화처럼 체험케 해 의미가 있었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랄프 로렌.

오프라 윈프리와 피어스 브로스넌의 다정한 모습.

압도적인 오라를 뿜어낸 슈트 차림의 로버트 드니로.

베라 왕,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마이클 코어스 등 디자이너들도 자리를 빛냈다.

패치워크 형식의 카펫과 벨벳 소파가 어우러진 우아한 무드의 런웨이.

이 공간에는 블레이크 라이블리, 제시카 차스테인, 피어스 브로스넌과 포피 델러빈, 로지 헌팅턴 휘틀리 등 마치 아카데미 시상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배우와 모델이 가득했다. 이들은 샴페인과 핑거푸드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고, 캘빈 클라인, 마이클 코어스, 타미 힐피거, 캐롤리나 헤레라,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등 기라성 같은 후배 디자이너들도 대거 방문해 시선을 모았다.

쇼가 시작됐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카펫, 민트색 소파가 어우러진 가운데 랄프 로렌의 장엄한 서사가 펼쳐졌다. 이번 쇼에서는 랄프 로렌 2019 S/S 여성 컬렉션과 폴로 랄프 로렌, RRL(Double RL) 컬렉션을 한 무대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에서 미국적 디자인에 대한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의 커리어에 영감을 주었던 주제들을 다채롭게 표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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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컬렉션에서는 편안한 니트와 비즈 스커트를 매치한 이브닝 룩, 샤 드레스에 무심한 듯 걸친 두툼한 니트 카디건, 벨벳 재킷과 실크 스커트의 조합 등 랄프 로렌이 가장 잘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상이 쏟아져 나왔다. 샹들리에 귀고리에 오묘한 빛의 벨벳 드레스를 소화한 미카 아르가나라스와 패치워크 드레스를 입은 지지 하디드의 압도적인 워킹 속에 쇼는 절정에 이르렀다.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 컬렉션에 이어 진행된 폴로 컬렉션은 시작부터 게스트들의 미소와 박수, 탄성의 삼박자를 자아냈다. 베이비, 키즈 모델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 엄마와 아들, 할머니와 손녀, 10대 남매와 20대 커플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족의 형태를 런웨이 위에 재현하며 진정한 패밀리 룩을 선보인 것. 워킹 중간에 돌연 걸음을 멈춘 아이와 성인 모델 품에서 잠들어버린 아기, 게스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여유 있게 걷던 꼬마 모델까지, 그 공간에 있던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런웨이가 아닐 수 없었다. 아냐 루비크, 캐롤린 머피 등 브랜드 초창기에 함께한 상징적인 얼굴부터 카이아 거버, 딜런 브로스넌 등 현재 활동 중인 셀렙 2세 모델들, 어린이와 개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150명의 모델이 런웨이 입구 계단에 모여 포즈를 취했을 땐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랄프 로렌이 꿈꿔온 세계, 보여주고 싶은 정신을 망라한 쇼였고, 그였기에 가능한 쇼였다.

로지 헌팅턴 휘틀리와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

화려한 퍼 아우터 차림의 포피 델러빈.

반짝반짝한 모습의 카밀라 벨.

앤 해서웨이와 제시카 차스테인.

50년을 기리는 축제의 밤을 위해 랄프 로렌이 준비한 것은 컬렉션뿐만이 아니었다. 쇼가 끝난 뒤 베데스다(Bethesda) 분수 주변에 마련한 만찬에서는 마치 파리의 야외 카페로 이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에 있는 랄프 로렌의 레스토랑인 ‘랄프(Ralph’s)’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꾸며졌다고. 다양한 패턴과 소재가 어우러진 테이블 세팅, 화이트 & 블루 플라워 패턴의 맞춤형 도자기, 식기류와 접시, 심플한 음료 잔과 손으로 직접 만든 빵 바구니 등 랄프 로렌 홈 컬렉션 피스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메뉴는 뉴욕에 위치한 랄프 로렌의 레스토랑 ‘더 폴로 바(The Polo Bar)’에서 제공하는 미국의 클래식한 메뉴로 구성되었다. 콜로라도 리지웨이에 위치한 랄프 로렌의 농장 ‘Double RAL Ranch’에서 공수한 필레미뇽이 메인 요리!

오프라 윈프리의 축사와 함께 모두 건배.

디너 내내 울려퍼진 오케스트라의 공연.

한국을 대표해 참석한 배우 김혜수는 블랙 롱 드레스를 입고 고혹미를 뽐냈다.

쇼를 즐기는 카니예 웨스트.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턱시도 재킷으로 매니시하게 스타일링하고 현장을 찾았다.

보 디테일 블라우스 룩의 제시카.

도나 카란, 로버트 드니로, 오프라 윈프리와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자리한 랄프 로렌의 테이블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여기 우리는 당신의 영감과 그것을 담아낸 모든 결과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죠. 아름다움과 가족, 가정과 자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디자인하는 랄프 로렌의 지난 50년간의 디자인과 그의 세계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축사를 건넸다. 랄프 로렌은 “지금의 분위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나를 흥분시킵니다. 지금까지의 길은 나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내 가족, 회사 안의 많은 좋은 사람들과 팀을 이뤘기에 가능했죠. 나는 행운아예요. 모두 사랑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브랜드의 역사를 고이 담은 디지털 영상물, 기립 박수가 쏟아진 컬렉션과 피날레, 런웨이 끝까지 걸어오며 결국 눈물을 보인 랄프 로렌을 에워싸며 다 같이 울컥했던 그날의 분위기는 영영 잊지 못할 거다. 현장의 모두가 이 위대한 디자이너에게 존경을 보낸 그 순간을 기억하며, 브라보 랄프 로렌!

디지털 에디터
사공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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