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이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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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에 데뷔해 패션 화보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모델. 이젠 모델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연기를 알아가고 있는 신인 배우. 무엇이든 잘할 수 있으니 시켜만 달라는 그녀, 이호정.

검정 터틀넥은 캘빈 클라인 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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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주말 드라마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촬영 때문에 많이 바쁜가? 이호정 특별히 바쁘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렇다고 안 바쁜 건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그렇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신은 적지 않은데,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면 촬영이 끝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잘 맞춰주신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다. 정말 여러모로 감사한 게 많다. 우리 드라마 감독님은 안 좋아할 수가 없는 분이다.

촬영 외 시간에는 뭐하나? 필라테스 열심히 하고, 최근 영어 과외를 시작했다. 교포에게 배운다. 생각보다 빠르게 영어 실력이 늘어 뿌듯하다. 그동안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어려워서 답답했다.

모델과 연기 일, 둘 다 해보니까 어떤가? 음, 꽤 다르다. 처음에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진 촬영하는 것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거라고 여긴 거다. 근데 다르더라. 사진은 말 그대로 순간을 포착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동작을 취하고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걸 다다닥 찍어서, 그중에 베스트만 건지면 된다. 연기는 말과 행동, 표정 등 그 모든 것이 베스트여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베스트여야 한다’라. 아무래도 연기가 훨씬 어렵다. 똑같은 카메라 앞이어도 사진 찍을 때는 더 신이 난다. 신나서 시키지도 않은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웃음). 연기는 아직 신나서 뭔가를 하는 단계가 아니다. 한참 멀었다.

페이턴트 소재의 허리 스트랩으로 연출한 하운즈투스 코트는 지방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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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드라마 촬영으로 얻은 게 있나? 연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 선배님들이 촬영 중간중간 이런저런 사항을 알려 주시는데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발성이 부족한 것 같다’, ‘자세가 구부정하다’ 이런 지적을 받으면 신경이 쓰여서 고칠 수밖에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선배님들이랑 촬영하는 게 더 좋다. 그 긴장 속에서 내 것을 찾아가는 게 느껴진다, 계속 배우는 것 같고.

이번 드라마에서 극 중 주연인 조현재 배우는 방송사 톱 아나운서 강찬기 역할이고, 그의 후배 기자 이현수로 출연했다.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 때 기자를 자주 만나봤을텐데 기자 역할을 직접 해보니까 어떤가? 난 방송사 사회 부 기자로 나온다. 아나운서의 발성은 일상 톤과는 완전히 다르더라.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 연기보다 발성, 발음 연습을 아주 많이 했다. 아나운서실에 직접 가서 배우기도 하고, 스케줄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나운서에게 내 대본을 보내고 녹음본을 받았다. 그걸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했다. 그냥 ‘이현수’라는 인물 자체가 딱 나인 것 같았다. 덤벙대고, 눈치도 없는 게 비슷해서 연기하기엔 좋았다(웃음).

배우로서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생각하나? 개성 있지. 나에겐 마니아층이 있다(웃음). 그 개성 때문에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점도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 드라마가 주말 극이다 보니 요즘 아줌마 아저씨들이 날 많이 알아본다. 그게 정말 민망하고 적응이 잘 안 되는데, 그러면서 기분은 또 좋다.

외모 이야기지만, 무쌍꺼풀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무쌍’, 매력 있다. 무쌍에겐 뭐든 잘 어울리는 면이 있다. 약간 백지 같은 느낌이랄까? 화장을 안 했을 때는 순해 보
이는 느낌, 화장을 하면 세 보이는 느낌이 난다. 모델로서도, 배우로서도 유리하다.

이호정의 또 다른 매력은? 매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웃음)? 옷과 연기를 포함해 뭐든 잘 소화할 수 있다.

줄무늬 니트 원피스는 프로엔자 스쿨러, 가는 뿔테 안경은 폴 휴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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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연기를 보면서 소름 끼친 적이 있나? <셔터 아일랜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지막 장면에서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정말 소름 돋았다. <화차>의 김민희도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국 영화’ 하면 그녀가 떠오를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얼마 전 개봉한 <독전>의 모든 캐릭터들, 특히 김동영과 이주영이 연기한 농아 남매는 정말 매력적이고 인상 깊었다.

혹시 본인이 한 연기를 보다가 오글거려서 소름 끼친 적은 없나? 소름까지는 아니어도 오글거린 적은 많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15회, 내가 남자에게 “우리 오늘부터 1일 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휴, 그건 차마 못 보겠더라(웃음). 흐름상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고백이지만, 감독님이 전체 이야기를 풀어가려면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하셨다. 웃으면서 찍고, 웃으면서 봤다.

뭘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낼 때 가장 이호정답다고 느끼나? 집에서 혼자 밥 시켜 먹을 때(웃음). 물론 메뉴는 맨날 바뀐다. 또 혼자 이어폰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달리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운동이고, 그 순간이 좋기도 해서 새벽에 혼자 나가 경리단길 일대를 뛸 때도 있다.

2012년, 열여섯 살에 모델로 데뷔했다. 이호정에 관해서라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린 나이에’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동안 내가 쌓아온 커리어를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어린 나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특별히 안 든다. 그런 수식어를 즐기기로 했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안 남기도 했고.

브로치 장식의 재킷과 비대칭 디자인의 프린트 블라우스, 승마 팬츠는 모두 끌로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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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배우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가장 도전적이라고 생각한 일은 뭔가? 지난 5월에 강화도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민망했다. 유명한 사진작가도 오시고, 내 지인은 다 패션계에 있는데 눈이 얼마나 높겠나? ‘와서 코웃음 치고 가면 어쩌나’ 걱정했다. 사진가도 아닌 내가 사진전을 준비한다는 과정 자체가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왜 하필 강화도인가? 내가 인물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그것들이 나한테는 다 추억이고 예쁜 사진들이지만, 사람들이 보고서 공감할 만한 사진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서 풍경 사진 위주로 전시했다. 고즈넉하고 힐링 콘셉트의 사진을 전시하는 장소로 강화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마침 아는 분이 강화에서 카페를 운영하신다. 거창하게 전시를 열 마음은 없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지인들이 서너 시간 쉬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작년에 한 인터뷰를 보니 ‘모델 일은 천직이다’라고 했더라. 배우는 어떤가? 천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앞으로 갈 길이 먼 느낌이다.

최민식 같은 배우를 10이라고 한다면 이호정은 어느 정도 될까? 0.5 정도? 하하하!

감독이나 작가가 되어 이호정이란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어떤 역할을 주고 싶나? 직설적인 성격에 말도 툭툭 내뱉는 사람. 뭔가 걸크러시가 느껴지는 센 캐릭터. 내 목소리가 중성적이다. 그런 역할을 맡으면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태어나도 이쪽 일을 할 건가? 옛날에는 한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다른 인생도 살아보면 괜찮지 싶다. 다시 태어나면 외국에서 살면 좋겠다(웃음). 어렸을 때 유학 가서 거기서 쭉 사는 인생 같은 거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호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뭐든 하고 싶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맡겨만 주십시오, 잘할 수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
정환욱
포토그래퍼
주용균
박한빛누리
헤어
이일중
메이크업
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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