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나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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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정상급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페라 가수 박혜상.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 부르면 그 무엇도 개입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몰입의 순간이 시작된다.

로고 드레스는 펜디, 하트 모양의 귀고리는 에이치앤엠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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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상의 목소리는 독보적이다. 어수선한 촬영 스튜디오 한가운데서 힘을 살짝 빼고 부른 푸치니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한 소절만으로도 사람들의 몸에 전율을 일게 했다. 10초 남짓의 시간 동안 울려 퍼진 그 소리는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는 그의 목소리를 두고 ‘신성하다’고 말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레라하우스의 영 아티스트로 선발되어 활동하다가 2015년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한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이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었다. 다수의 콩쿠르와 국제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박혜상’이란 이름이 ‘별 중의 별’로 떠오른 건 지난 ‘2018 메트 갈라’ 무대에서였다. 메트 갈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연례 자선 파티로 ‘미국 동부의 오스카’로 불릴 만큼 화제를 모으는 행사다. 마돈나, 리한나, 스칼렛 요한슨, 조지 클루니, 휴 잭맨 등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그날. 박혜상은 늘 그래왔듯 담대하게, 아름답게, 오페라 공연을 펼쳤다. 어쩌면 그날의 진짜 주인공은 그였을지 모른다. 모두가 찬사를 보냈고, 박혜상이란 인물을 궁금해했다.

일 년 내내 전 세계를 돌며 세계적인 극장을 누비는 그녀가 짤막한 일정으로 서울을 찾았다. 5년 만에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는 개인 리사이틀 때문이다. 박혜상은 이 공연에서 클라라 슈만, 가브리엘 포레, 안토닌 드보르자크 등 평소 본인이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다채로운 곡을 불렀다. 개인 공연 후에는 9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정식 취임한 세계적인 지휘가 마시모 자네티가 처음 선보이는 공연에 함께해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아리아를 불렀다. 오케스트라 현악기 수십 개의 활이 날렵하게 떨어질 때, 턱시도를 입은 은발의 거장이 공중으로 힘껏 점프할 때, 그 합에 맞추어 박혜상은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절절한 제스처로 노래를 불렀다. 겹겹이 포개진 그의 드레스 자락이 하늘거리던 순간, 노래가 격정적인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 느껴지던 진동과 울림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곡 앞에서 그는 겸허하게 돌진했다. ‘오페라의 미래’로 칭송받는 아름다운 여인이 부르는 그 노래에 완전히 주저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신에게 능력 하나를 받을 수 있다면 ‘순간 이동’을 통해 서울에서 뉴욕으로 단숨에 날아가고 싶다고 장난스레 말하는 박혜상. 아직은 공개할 수 없는 놀라운 계획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다. 1년 후, 2년 후 우리는 박혜상이란 이름을 기적 같은 곳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검정 슬리브리스 롱 드레스는 보테가 베네타, 깃털 장식 신발은 발렌티노, 귀고리는 자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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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이후로 거의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단 두 번의 공연 후 바로 다시 출국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마시모 자네티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취임 연주회에 함께하자고 제안을 받았어요.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를 두고 서로 계속 메일을 주고 받다가 결국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아리아로 결정했죠. 저도 너무 좋아하는 음악가이고, 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도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예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모차르트라는 세기의 음악가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 있나요? 사실 모차르트는 신이 내린 작곡의 대변인이었던 것 같아요. 일반 사람은 도저히 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곡을 남겼잖아요. 신이 이렇게 쓰라고 영감을 줘서 그걸 그대로 나열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분량이죠. 쉼 없이 썼다고 해도 너무 방대한 양의 작업을 했어요. 서른다섯에 요절했는데 그는 천재 그 이상의 아티스트였어요. 모차르트의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그 안에 유머가 넘쳐흘러요. 그리고 그 유머가 굉장히 심술궂게 꼬여 있어요. 어둡고 슬픈 이야기도 유쾌하고 코믹하게 풀어내죠. 모차르트가 저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내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가난하든, 힘들든 항상 긍정적으로 명랑함을 잃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이죠.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두고 평생 공부한다고 말해요. 그의 노래를 계속 부르는 건 정신 건강에도 좋고 테크닉 향상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들 하죠.

모차르트의 여러 곡을 연습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느껴진 곡도 있었나요? ‘내 사랑이여, 안녕히’라는 뜻의 ‘벨라 미아 피암마(Bella Mia Fiamma)’라는 곡요. 이 아리아는 모차르트가 1787년 가을에 어느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했어요. 곡을 제때 완성하지 못할까 봐 소프라노가 모차르트를 방에 가둬놓고 곡을 쓰게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해지죠. 결국 화가 난 모차르트는 소프라노가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도록 굉장히 어렵게 곡을 만들었다고 해요. 저도 이번에 연습하면서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겪었죠. 최근에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정통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성악가인 체칠리아 바르톨리 선생님께 코치를 받았는데, 본인에게도 쉽지 않은 곡이라고 하시더군요. 노래의 마지막 부분 굉장히 난도 높은 구절에서는 선생님의 손을 꽉 잡고 둘이 함께 불렀어요. 온 힘을 다해 그분의 에너지를 온전히 느끼면서 앞으로 행진하듯 걸으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어려운 구간을 해내고야 말았죠. 너무 행복했어요.

꽃 장식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4 몽클레르 시몬 로샤, 검정 운동화는 프라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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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시험과 각종 콩쿠르, 오디션으로 누구보다 치열한 길을 달려왔어요. 그 이면의 시간 상당 부분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언어적인 측면에서 이미 타고난 사람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자격지심을 갖게 해요. 세계적인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때때로 있어요. 이탈리아어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그 언어로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멘탈이 무너지더군요. 세계적인 극장에 초대를 받아서 노래를 부르는데도 자신감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공부와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죠. 언어는 현지에서 직접 부딪쳐야지만 제대로 체득하게 되는 면이 있어서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얼마간 살면서 어학연수를 받았어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무대 위에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각 언어마다 느끼는 고유의 운율적인 아름다움은 어떻게 다른가요? 제게 프랑스어는 센티멘털하게 느껴지는 언어예요. 아름다운 파스텔 톤의 색깔이 칠해진 모네의 그림 같달까요. 이탈리아어는 가장 화려하고 컬러풀한 색을 가진 언어 같고요. 이탈리아에 살아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정말 태평하고 자유로워요. 남들 시선에 무신경하고 그저 삶이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태도죠. 그런 정서가 언어에도 묻어나는 것 같아요. 반면에 독일어는 잿빛 느낌이 나요, 발음 때문일 수도 있는데 벽돌처럼 거친 텍스처를 가진 언어죠. 그런 거친 언어를 아름답게 깎아내고 다듬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작업이겠죠?

5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 리사이틀에서는 어떤 곡을 불렀나요? 그동안 다른 무대에서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했어요. 레거(M.Reger)의 자장가 섹션도 있고 평소에 제 안에 스패니시 에너지가 꿈틀거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저만의 색깔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스페인 작곡가 투리나( J.Turina), 오브라도스(F.J. Obrados)의 노래도 선곡했어요. 그리고 클라라 슈만의 작품 가운데 제가 특별히 사랑하는 곡도 들려드렸죠. 로베르트 슈만도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은 당시에 여자라는 이유로 훨씬 제약이 많았음에도 그 시대에 그토록 아름다운 멜로디를 썼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그녀의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지금처럼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는 상황에서 여성 음악가의 목소리가 이렇게라도 나올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오페라 가수로서 작품을 만날 때 희극과 비극 중 어떤 것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비극에 더 많은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희극보다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을 만나면 그 여운이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노래와 연기에서 비극이 강한 몰입감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오페라는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이상 타인의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에요. 공연을 앞둔 시점엔 계속 맡은 역할과 노래만 생각해요. 잠들기 직전에도 끊임없이 떠올려요.

그동안 참여한 오페라 가운데, 유난히 떠나보내기 힘들었던 작품도 있나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비극적인 여자, 비올레타를 연기하면서 눈물을 참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죽음의 문턱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연습하면서 사실 많이 울기도 했고요. 그런 시간들에 익숙해지면 눈물을 머금고서도 노래를 흔들림 없이 부를 수 있어요.

버건디색 드레스와 깃털 장식 신발은 발렌티노, 안에 입은 핫 핑크 슬립은 4 몽클레르 시몬 로샤, 귀고리는 자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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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연례 자선 파티인 ‘2018 메트 갈라’ 무대에 서서 화제가 됐어요. 공연이 끝난 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정말 화려한 현장이었어요. 난생처음 밟아보는 레드카펫을 얼떨떨하게 걸어가는데 그때 우연히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르네 플레밍 선생님이 뒤에 계셨나 봐요. ‘웃어, 혜상아!’라고 저를 북돋아주셨죠. 그런데 정작 제 공연 순서가 되어 무대에 올랐을 때는 떨릴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어요. 무대 한가운데 올라가니 객석 맨 앞줄에 리한나, 조지 클루니, 안나 윈투어, 도나텔라 베르사체처럼 대단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공연이 끝난 후에는 앤 해서웨이가 직접 찾아
와서 ‘너무 잘했다고,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부를 수 있냐’고 말해줘서 저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죠. 그날 톱스타들과 사진 한 장 못 남긴 것이 좀 아쉽긴 해요. 가문의 영광이고 대단한 자리였다는 걸 당시엔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 가진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나요? 제가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은 그렇지 않거든요. 평소에 생각도 많고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이 받아요. 겉으론 그렇지 않은 척하려고 일부러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상처도 잘 받고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저를 괴롭히고 머릿속을 떠다니던 안 좋은 생각이 사라져요. 복잡한 마음으로 연습실에 들어가도 막상 노래를 시작하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요.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하게 되죠. 그것이 음악이 주는 힘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로 이걸 포기하지 못하겠어요. 음악이 제게 주는 힘이 너무 커져버렸거든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의 린더만 영 아티스트로 보낸 한 철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뉴욕에서 저의 오페라 커리어를 시작해서 좋은 기회를 통해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쳤어요. 이탈리아에 혼자 있으면 외롭거든요. 그래서 구글 드라이브에서 옛날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제가 불과 5년 전에는 그곳에서 오페라 <팔스타프>를 보고 감격에 겨워하는 셀프 영상을 찍어놨더라고요. 지금 그 무대에 제가 서 있을 거라곤 당시엔 꿈에도 몰랐어요. 사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메트’가 기대하는 박혜상의 모습을 채우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그런데 제가 여유 있게 마음을 갖고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그곳에서 마지막 연습을 하던 날,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더니 지도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혜상, 힘들 때면 언제든지 214호 문을 두드려! We’ll be There, Anywhere Anytime, Whenever You need’ 그때 정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나의 집이 됐구나, 내가 언제든지 문을 두드리면 그 자리에 있어줄 사람들이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적인 극장이 제게는 최고의 둥지가 되어준 거죠. 모든 것이 감사했어요.

최근 본인에게 크게 와닿았던 문장이나 구절이 있나요? 얼마 전에 제가 존경하는 분과 축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축구 경기를 보면 공을 가진 사람이 제일 힘들죠. 모두가 달라붙어서 그 공을 뺏으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힘들게 뛰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과 이런 말을 했어요. ‘인생은 원래 힘든 게 본전이다’라고요(웃음). 전 그 말이 왜 이렇게 와닿을까요?

피쳐 에디터
김아름
패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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