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BAR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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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 레코드, 한우와 위스키의 페어링, 이색적인 크래프트 칵테일까지. 요즘 생겨나는 바에서 자주 포착되는 풍경을 정리했다.

우리 동네 내추럴 와인 바

올해 미식업계의 화두는 단연 내추럴 와인이다. 작년부터 슬금슬금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던 내추럴 와인으로 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운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내추럴 와인 가이드 앱 ‘Raisin’에 들어가서 보면 파리, 도쿄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내추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좌표가 포도송이처럼 오밀조밀 뜬다. 서울에도 이제 그런 ‘내추럴 와인 바 지형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르삐에로

르삐에로

폭염경보가 울리던 지난 7월, 용산구에 내추럴 와인 바 두 곳이 나란히 오픈했다. 슬록(@slok_seoul)과 르삐에로(@lepierrot.hannam)가 바로 그곳. 오픈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슬록 입구엔 이미 빈 병이 가득했다. 네덜란드 언어로 ‘꿀꺽꿀꺽’ 마신다는 이름처럼 이곳에는 취향 좋은 서울 멋쟁이들이 드나든다. “도쿄에 자주 갔었는데, 작은 공간에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일상적인 음식에 와인 한두 잔 곁들일 수 있는 문화가 너무 좋았어요. 내추럴 와인은 한 모금만 마셔도 침이 가득 고여서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죠.” 이윤경 대표의 말이다. 뭐랄까, 이곳의 콘셉트는 한마디로 ‘귀여움의 응축’ 같다. 요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 말이다. 강낭콩 모양의 ‘콩군’은 슬록의 로고이자 마스코트. 콩 샐러드, 마파 두부, 면 두부 땅콩소스 무침, 비트로 빨갛게 색을 낸 후무스 등 다채로운 콩 요리가 메뉴에 있다. 귀여움의 정점은 메뉴판이다. 햇빛에 말린 미끈한 작은 조약돌, 천사가 선물한 붉은 과일 바구니, 펑키한 딸기공주 등 주인장이 직접 마셔보고 애정을 담아 적은 와인 소개 문구에 웃음이 번진다. 슬록은 젠체하지 않고 그저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캐주얼하게 즐겼으면 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담긴 공간이다. 창 밖으론 푸른 정원이 보이고, 자작나무로 만든 귀여운 가구가 매장을 한결 밝고 경쾌하게 만든다.

슬록

슬록

슬록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르삐에로가 있다. 와인도 ‘킵(Keep)’이 되나요? 늠름한 위스키나 보드카 병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던 말을 이곳에서 듣는다. 도쿄에서 10년 넘게 거주하며 내추럴 와인의 매력을 발견한 김관희 대표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문을 여는 내추럴 와인 바다. 와인이 시간과 변화의 술이라는 걸 이곳에서 오롯이 느낀다. ‘내추럴 와인 실험소’ 같은 느낌이랄까. 와인 4병을 같은 날, 동시에 따고 처음 맛부터 1주, 2주, 길게는 한 달 까지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가 건넨 오픈한 지 2주 지난 내추럴 와인을 한 모금 흘려넣었다. 주스처럼 신선하고, 생생하고 발랄하게 개성을 뿜어내는 그 맛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열었을 때 제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와인을 2주 열어두었다 마셨을 때 훨씬 맛있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판매하기 전에 미리 오픈해둔 와인도 있어요. 손실이 조금 있더라도, 내추럴 와인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죠.” 올리브, 치즈 등 작은 포션의 안주와 프랑스 랑그독 지방의 전통 요리인 카술레를 와인에 곁들여 즐길 수 있다. 바 한편에서는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그날의 음악을 선곡 중이다. 독특한 이력과 사연을 지닌 와인메이커들을 짤막한 영상으로 만들어 틀어주는 상영회도 열린다. 낯설게 느껴질 내추럴 와인을 스토리와 음식을 통해 풀어내려는 시도는 서울 이곳저곳에서 포착된다. 서울 내추럴 와인 바의 시작을 알린, 한남동 빅라이츠(@biglights_seoul)에
서는 토요일마다 ‘대광토요낮술회’를 2시부터 6시까지 연다. 다채로운 개성의 글라스 와인과 음식을 즐기며 내추럴 와인이라는 신세계에 빠져들기 좋다. 남산 자락 아래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kr)의 제로 콤플렉스와 바 피크닉도 내추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핫 플레이스. 홍대, 광화문에 이어 청담동에 오픈한 애주가들의 사랑방 몽로에서도 참치 타르타르나 저염 명란구이처럼 와인 친화적인 요리와 함께 소믈리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알곡 같은 내추럴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내추럴 와인 + 이색 음식 페어링 추천 스폿
내추럴 와인과 이색적인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는 연남동 핫 플레이스 두 곳.

툭툭누들타이(@tuktuknoodle) 태국요리 전문점 툭툭누들타이는 이미 입소문을 제대로 탄 연남동의 터줏대감. 이곳에서 최근 내추럴 와인을 본격적으로 요리에 페어링하기 시작했다. 여름에 선보여 화제를 모은 대형 물고기 ‘적자 병어’에 이어 최근엔 기름이 잘 오른 제철 농어를 튀겨 단짠 조합의 피시소스를 곁들여 낸다. 내추럴 와인을 유쾌하게 소개하는 김은지 이사가 설명했다. “내추럴 와인은 필터링을 하지 않아 감칠 맛이 잘 느껴져요. 그렇기 때문에 매운맛, 짠맛, 신맛, 감칠맛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태국의 피시소스를 사용한 요리에 곁들이면 각각의 산미가 서로 기죽지 않으면서 잘 맞죠. 특히 오렌지 와인은 그 밀도와 산미가 똠양꿍과 재미있게 어우러져요. ”

게스트로펍미러(@gastropubmirror) 삼성동에서 아방가르드한 요리를 선보인 심주석 셰프가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오픈한 내추럴 와인 바. 그가 와인 핸들링과 요리를 동시에 담당하는 작은 공간이다. 40여 종의 내추럴 와인이 있고, 가격대가 4만원대부터 시작된다. 와인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높은 셰프가 신착 와인을 직접 테이스팅하고 메뉴 구성에도 반영하는 점이 흥미롭다. 셰프가 추천하는 페어링은 양고기 크로켓과 필립 장봉이라는 와인메이커가 만드는 파라디라는 레드 와인. “장시간 브레이징한 양고기의 녹진한 풍미와 주스처럼 꿀꺽 넘어가는 와인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위스키에 빠진 한우

우라만

우라만

3~4주간 웨트에이징을 거쳐 부드럽고도 묵직하게 퍼지는 한우의 풍미와 스모키한 피트(Feat) 향이 훅 올라오는 위스키의 절묘한 만남. 소월길 우라만(@woorahman)은 웨트에이징 한우 오마카세와 위스키 페어링을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바다. 헤드 그릴러 김정수 팀장을 위시한 전문 서버가 구워주는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각 부위에 어울리는 추천 위스키가 준비된다. “육즙이 풍부한 고기와 위스키가 만나면 보다 깊이 있고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어요. 끝맛도 깔끔하게 잡아주고요.” 잘 숙성되어 육즙이 터져 나오는 채끝 등심에 짭짤한 어란과 와사비를 곁들인 후 부드러운 글렌모리낙 한 모금을 마셔보자. 고소하고 톡 쏘는 기름진 맛을 알싸하게 감싸는 위스키의 질감을 잊지 못할 것. 경매를 통해 충북 음성의 1등급 한우를 공급받는 옥스바(OX Bar)에서도 다양한 위스키와 한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정평이나 있는 숙성 티본스테이크와 버번위스키의 마리아주뿐 아니라 다양한 시그너처 과일 칵테일과의 조합도 추천 코스. 위스키의 향에 적당히 취했을 때 진한 사골라면으로 해장하는 것도 별미다. 분더샵 7층에 자리한 우엑스(WX)는 특별한 날 해 지는 서울 풍경을 바라보며 프라이빗한 식사를 하기에 좋다. 북해도산 우니와 생트러플 러시아 캐비아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한우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다. 오펀 배럴 레토릭 같은 프리미엄 버번과 함께하면 산해진미가 모여 발산하는 느끼함을 잡아준다. 도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수린은 한식을 베이스로 한 하이엔드 고깃집으로 마장동 본앤브레드의 1++ 암소 한우로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는 곳. 벽면에 줄지어 장식된 빈티지 맥캘란을 통해 주인장의 와인과 위스키 사랑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강원도 참숯으로 시어링한 고기에 밴 은근한 훈연 향은 몰트위스키와도 어울립니다. 알타리 백김치나 장아찌 등 시고 짠맛의 반찬을 곁들일 때도 맛의 중심을 잡아주죠.” 콜키지 프리로 원하는 위스키를 가져가기 좋다.

술과 디저트의 상관 관계

호스팅하우스

호스팅하우스

달콤한 와플과 샴페인 한 잔. 낮술의 신세계가 이런 것일까? 브루클린 어느 골목에 있을 법한 바 호스팅하우스(@hostinghouse)는 공간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을 해주는 호스팅하우스에서 만든 카페 겸 바다. 맞은편 로프트 스타일의 편집숍과 3층에 자리한 루프톱 역시 뉴욕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이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공간. 오후엔 카페로, 밤이면 분위기 좋은 바로 변신하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뉴욕 와플 장인에게 전수받은 비법으로 만든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와플이다. 김석준 대표는 여기에 샴페인을 곁들이길 추천한다. “뉴욕에는 오후 시간대 와플과 버블감 있는 주류를 함께 먹는 ‘버블 앤 와플’ 문화가 있어요. 술을 마시다 보면 달콤한 것이 당기는 욕구를 십분 충족시켜주는 거죠.” 독주를 마시기 전 당분 보충을 제대로 해주는 곳으로는 내자동 한옥바 코블러도 빼놓을 수 없다. 기본 안주로 내주는 ‘코블러 파이’는 블루베리를 졸여 만들어 숟가락으로 퍼 먹는 녹진하고 따끈한 파이. 2차로 방문했다면 이 달콤함이 갈급할 것이고, 독주를 시작하기 전이라면 폭죽을 터트리는 전희라 할 수 있다. 코가 찡긋할 만큼 달기에 성미가 센 위스키 온더록이나 네그로니, 진 피즈와도 잘 어울린다. 서울드래곤시티,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서울 용산의 와인 바&델리인 알라메종에서는 가을을 맞아 여성 방문객에 한해 고디바 트뤼프 초콜릿과 함께 주정 강화 와인인 포트 와인 한 잔을 제공한다. 주스티노스 마데이라의 리저브 파인 미디엄 5년산으로, 오렌지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9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요즘 여기서 마셔요
바텐더, 소믈리에에게 물었다. 최근 다녀온 인상적인 바는?

서촌 참(Cham) 마이너스를 이끌던 임병진 바텐더가 지난 7월 서촌에 새롭게 오픈한 바다. 20평 남짓의 공간에 바 좌석과 테이블 좌석이 있는데, 특히 천장의 유리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가운데 좌석이 명당이다. 바텐더가 만들어준 시원하고 달콤한 보스턴 쿨러를 들이켠 다음 그가 추천해주는 다음 잔을 마셔도 좋겠다. 임병진 바텐더는 업계에서 노력형 인간으로 유명하다. 집중해서 칵테일을 만드는 그의 남다른 퍼포먼스를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그와 조금 친해지면 얼마나 백치미가 넘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편안한 공간도, 칵테일의 색깔도 모두 그와 참 닮았다. -서용원(헬카페 스피리터스 바텐더)

한남동 푸시풋 살룬 한남동 골목길 어느 건물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기차를 연상시키는 마법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바 안으로 입장하면 외국인 바텐더와 활동적인 서버들이 주는 특유의 경쾌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푸시풋 살룬에는 다른 바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기계가 하나 있다. 라모스 진 피즈라는 칵테일은 셰이커 안에 재료를 넣고 오랜 시간 흔들어서 만든다. 보통은 바텐더들이 직접 손으로 하지만, 이곳에는 사람 대신 재료를 섞어주는 셰이커 기계가 있다. 요구르트처럼 독특한 텍스처를 가진 그 칵테일을 한 잔 마셔보시길. -이왕윤(믹솔로지 믹솔로지스트)

청담동 라뷸 서울의 유일무이한 샴페인 바로 실력 있는 소믈리에가 구하기 힘든 다채로운 샴페인을 모아서 소개해준다. 갈 때마다 그의 추천을 믿고 마시는 편이다. 250종류의 샴페인을 갖춘 것도 대단하지만, 국내에 4병밖에 없는 빈티지 샴페인을 보유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유명 한우 고깃집 오너가 함께 운영하는데, 그래서인지 햄버거에 들어 있는 패티의 맛과 품질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9월부터 모든 메뉴에 캐비아를 얹어서 먹을 수 있다는 소식이다. -경민석(정식당 헤드 소믈리에)

브랜드 뉴 레코드 바

콤팍트 레코드 바

콤팍트 레코드 바

콤팍트 레코드 바

우아하게 시작된 술자리가 2차로 3차로 무한대로 이어지다 보면 그 끝엔 언제나 음악 바가 있다. 꼬깃꼬깃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내고 자신의 페이버릿 송이 마침내 플레이되면 해갈을 느끼던 아 옛날이여! 레트로와 올드함의 상징인 음악 바 혹은 엘피 바와 다른 ‘힙’을 장착한 공간이 오픈했다. 신사동 한적한 길가에 있는 콤팍트 레코드 바(@kompaktseoul)는 원래 20년 넘게 ‘펠리칸’ 치킨집으로 운영되던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바의 최종 이름 후보로 ‘펠리칸’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는 후문. 작은 공간에 소리가 꽉 차도록 막혀 있던 천장을 뚫고, 빈티지 스피커 ‘Altec A7’을 들여놓으니 음악을 듣기에 제법 그럴듯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반바지에 조리를 신고 출근한 콤팍트의 주인장이자 360 사운즈의 멤버인 DJ 진무가 하얀 휴지로 디제이 부스의 장비를 느긋하게 닦기 시작한다. “제 직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가벼운 마음으로 바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요즘 서울에 별로 갈 만한 곳이 없잖아요. 음악과 술을 워낙 좋아하고 그런데 클럽은 잘 안 가게 되니까… 그러다 운 좋게 한적하고 주차도 잘되는 공간에 자리가 나서 바로 계약했죠.” 콤팩트가 아닌 독일 철자로 콤팍트를 사용한 이유는 ‘C’보다 ‘K’가 예뻐서라고. 이런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가 곳곳에 숨어 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앉아보면 넉넉하고 푹신한 자체 제작 의자처럼. 레코드판을 세트장 소품처럼 장식품으로 활용하지 않은 점도 ‘콤팩트’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0평 남짓의 공간에서 호위병처럼 DJ를 경호하는 스피커의 존재감. “투박하게 생겼지만 힘과 소리가 쭉쭉 뻗어 나가는 것이 꼭 미국 자동차 같죠. 옛날 주로 극장에서 쓰던 스피커인데 나팔 악기들의 소리를 실제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구현해요. 옛날에 레코딩된 음반의 소리를 기가 막히게 뽑아냅니다.” 콤팍트에서 최고의 안주는 음악이다. 주류 리스트와 안주는 간결하다. 익숙한 위스키 이름이 대부분. 안동에서 만든 숙성된 하몽 플레이트는 흥미로운 믹스 매치.

사이드 노트 클럽

사이드 노트 클럽

360 사운즈의 또 다른 멤버인 DJ 소울스케이프가 큐레이션한 바가 있다.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라이즈 오토그래피 컬렉션은 요즘 가장 핫한 호텔 중 하나. 15층에 위치한 루프톱 바 & 라운지 사이드 노트 클럽(@sidenoteclub)의 바이닐 컬렉션에 그가 참여했다. 솔 뮤직을 위주로 힙합, R&B, 브라질 음악 등 매달 테마를 다르게 해서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최신 전자음악을 명민하게 소개해온 클리크 레코드의 공동 대표인 커티스 캄부도 함께하고 있다. 청담동 르챔버의 바텐더가 만드는 탄탄하고 창의적인 칵테일도 사이드 노트 클럽의 흥을 한껏 고취시킨다.

평균율

평균율

음악 바는 대부분 초저녁부터 운영되지만, 여기 낮부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을지로에 위치한 평균율(@pky_euljiro)은 정오부터 자정까지 운영된다. 평균율은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도 평균율만 있다면 음악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근사한 말에서 비롯됐다. 이곳에서는 재즈를 중심으로 솔, 펑크 등 다양한 음악을 바이닐 레코드로 들려준다.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위스키 잔 술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다. 스모키한 피트(Peat) 향이 짙게 피어나는 위스키인 탈리스커를 베이스로 한 하이볼이 인기가 많다. 묵직하고 어둑하지만, 탁 트인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과 살랑거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한낮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이 있을까 싶다.

술술 읽고 마시는 삶
애주가들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술책’ 신간 네 권.

술 잡학사전 - 입체북

<술 잡학 사전>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호주의 주류 전문 교육기관인 험블 텀블러를 이끌고 있는 레어 버더가 쓴 <술 잡학사전>은 술의 매력에 빠진 주류 초심자라
면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어디 가서 상식을 몰라 민망한 경우는 없게 만들어줄 넓고 얕은 지식이 알차게 담겼다. 더 이상 근사한 레스토랑의 두툼한 와인 리스트에 진땀을 흘릴 필요도, 이자카야에서 읽지 못하는 사케 이름으로 버벅거릴 이유도 없다는 뜻. 책을 펼치면 음미와 탐닉의 기쁨이 시작된다.

애주가의 대모험_표지입체2

<애주가의 대모험> 1년 52주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술을 마신 한 남자가 있다. 기원전 6000년경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벌꿀 술 미드부터 2000년대 이후에 새롭게 탄생
한 피클백에 이르기까지, 음주 모험가 제프 시올 레티는 저서 <애주가의 대모험>에서 세계사, 문화사, 지리학을 들며 술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풀어놓는다. 질 좋은 술, 맛있는 술, 기억에 남는 술, 그리고 시대를 비추는 술…. 각지의 술 전문가들과 함께 술의 역사적 순간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파헤친 생생한 음주 체험기에 취해보자. 술에는 마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느 애주가의 고백_입체 표지2

<어느 애주가의 고백> 술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힘들고 지칠 때, 축하할 때, 날이 좋을 때 혹은 문득 쓸쓸할 때 언제든 생각나는 순간 곁에 있어주는 술이 우리의
시간을 앗아가는 것이라면? 암울한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독일에서 2014년 출간된 다니엘 슈 라이버의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은 술과 동고동락했던 삶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얘기다. 술이란 거의 같은 현상을 낳는다. 아무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술의 뒷모습. 건강한 애주가라면 그 뒷모습을 담담히 바라볼 용기도 필요하다.

칵테일 입체

<칵테일의 모든 것> 이 한 권의 책에 1933년 금주법 폐지 이후부터 지난 80여 년간 〈에스콰이어〉가 축적해온 음주와 관련한 지혜가 녹아 있다. 다년간 쌓은 음주 경험을 바탕으로 주류 문화 담당 피처 에디터와 칵테일 전문 칼럼니스트가 수십 년간 쌓인 자료에서 꼭 마셔봐야 할 칵테일을 선별해 정리한 것. 14가지 필수 칵테일 레시피를 비롯한 100여 가지 칵테일 레시피를 비롯해 술과 곁들이기 좋은 안줏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촘촘히 녹아 있다.

호텔에서 마신다

레스케이프 호텔

레스케이프 호텔

레스케이프 호텔

칵테일 & 내추럴 와인 사용법 레스케이프 호텔은 남다른 F&B 큐레이션으로 오픈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바 ‘마크 다모르’는 ‘월드 베스트 바 50’에서 런던 아르티장(Artesian) 바를 4년 연속 1위에 올려놓은 바텐더 크루 택소토미와의 협업으로 메뉴를 구성했다. 분홍색 메뉴판을 펼치면 이전에 볼 수 없던 15가지 창의적인 칵테일 맛의 그래프가 펼쳐진다. 제라늄처럼 주로 향수 원료로 사용되는 희귀한 재료에서 독특한 아로마를 추출하여 흥미로운 맛의 스펙트럼을 열었다. 직접 만든 재스민 리큐어로 만든 팰른 페탈스(Fallen Petals)는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뛰어나고 식용 꽃을 흥미롭게 사용했다. 2018년도 한국 소믈리에 대회 우승자인 조현철 소믈리에가 이곳의 와인 리스트를 책임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 세계 트렌디한 레스토랑의 주요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호텔 내에 있는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에서는 내추럴 와인 150여 가지를 구비해두었죠.”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더 모던’의 셰프들과 협업한 요리에 엄선해서 고른 내추럴 와인을 매칭해볼 수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

파크 하얏트 서울

사케 사용법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요리가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의 뮤직 바 ‘더 팀버 하우스’에서 스키야키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전라남도에서 올라온 투뿔 등급 한우와 각종 야채를 가쓰오부시와 간장 베이스의 육수에 함께 넣고 끓여서 풀어놓은 달걀에 찍어 먹으면 된다. 주당들이 혹할 만한 포인트는 부드러운 사케로 평가받는 ‘스이진 준마이’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는 점. 스키야키와의 마리아주를 고려해서 선택한 사케라고. 평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운영하며, 가격은 1인 6만9천원. 이번 프로모션은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샴페인 사용법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에서 샴페인 바캉스를 준비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샴페인 3종류와 레스토랑의 시그너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루이 로드레, 드라피에, 들라모트와 같은 유명 샴페인에 트러플 오일을 입힌 프렌치 프라이, 크랩 케이크와 같은 기포 있는 술에 착착 붙는 요리가 함께 제공된다. 100년 역사를 가진 고즈넉한 나인스 게이트 창가석에 앉아 원구단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미식은 호사 그 자체다. 오후 9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되며, 가격은 1인 기준 7만원.

신토불이 크래프트 칵테일
JW 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 더그리핀 서정현 바텐더에게 듣는 크래프트 칵테일이란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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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에 구운 차돌박이 한 점과 말린 김치를 올린 칵테일 ‘솥 SOT’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냈나? 솥은 ‘Savory Oriental Tasty’의 약자로 동양적인 한국의 멋진 맛을 담고자 한 칵테일이다. 지난 6월에 열린 제임슨 칵테일 대회의 주제가 한식과의 페어링이었는데, 외국인이 우리나라 음식 중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을 고민했을 때 차돌박이가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았다. 가볍고 식감도 재미있으니까.

사이드 디시와 합을 맞춘 차돌된장찌개 맛의 칵테일은 어떻게 구현했나? 차돌박이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차돌된장찌개가 생각났다. 짭쪼름하고 구수한 된장 플레이버가 위스키와도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된장으로 시럽을 만들었고, 간수가 밴 두부를 이용해 단맛 나는 두부 크림을 만들어 칵테일 위에 올렸다. 스파이시하면서도 된장 향이 올라오는 깔끔한 칵테일을 부드러운 두부크림이 마무리해 그 조합이 마치 된장찌개를 먹는 듯한 맛을 선사한다. 달고 짠맛의 페어링이 평가단에게 호평을 받았다.

당신의 시그너처 칵테일인 서울 셀렉션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경복궁, 동대문, 남산타워,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4 가지 우리나라 랜드마크를 이용해서 외국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동대문 문라이트’의 경우 밤에 동대문에 가면 딱 이 분위기로 불빛이 떨어지는데, 그걸 보고 착안해서 만든 칵테일이다. 담솔이란 전통주를 베이스로 야생 자두 향이 나는 슬로우진 몽키 47, 직접 만든 라벤더 시럽, 라임주스, 아마레또, 살구향 나는 리큐어를 믹스해 쉽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서빙 후 직접 만든 식용 라벤더 향수를 뿌려 마무리한다. 대표 칵테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대중적으로 만들었다.

전통주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왕실의 비밀’에는 문경바람이 쓰였다고 들었다. 사과 증류주인 문경바람은 한국의 칼바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전통주이기도 하고 칵테일을 만들기에도 좋다. 성질이 강해 약이나 쌍화탕을 마시는 기분이 들 수도 있는데, 사과 향이 은은히 퍼지며 스모키 향이 섞이는 매력적인 칵테일이다. 크래프트 칵테일을 만들 때 여러 가지 맛을 낼 수 있도록 고민한다.

전통주가 칵테일을 만들기에 좋은 특별한 장점이 있나? 전통주는 여러 요소를 섞어도 누룩 향이나 증류주의 느낌을 제거하기가 어렵다. 역으로 얘기하면 베이스를 잘 살린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런 칵테일을 만들어 소주의 재인식에 기여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소개한 크래프트 칵테일은 모두 퍼포먼스가 화려하다.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지? 서울 셀렉션 4가지가 다 불빛이 나오거나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나오거나 훈연 스모크를 입히는 등의 퍼포먼스가 있다. 동대문 메리어트 서울 스퀘어점을 찾는 고객의 니즈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한지나 잔으로 만든 랜드마크는 각자 어떤 풍경과 이야기를 담고 있고, 칵테일이 그 감동을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드라이아이스로 극저온 칠링을 하면 퍼포먼스를 보는 분들도 재미있어하고, 순간적으로 음료가 슬러시가 될 정도로 차가워진다. 향과 퍼포먼스, 눈으로 먼저 마시는 칵테일이다.

피쳐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이창민
이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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