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모든 것을 이룬 시대의 아이콘 퍼렐 윌리엄스. 그가 패션과 음악, 그리고 최근 경험한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 말한다.

퍼렐 윌리엄스는 20년이 넘도록 우리의 삶을 다룬 곡을 만들어왔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만 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체 짐작할 수 없다. 몇 년 동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다섯 곡 중 한 곡은 퍼렐이 프로듀싱한 곡이었다. 45세가 된 그의 이마에서 여전히 미간 주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샤넬의 핸드백 캠페인을 준비할 때나, 클립스(Clipse)의 거친 랩 트랙을 프로듀싱할 때나,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자신의 가구 디자인을 전시할 때나, 더 보이스에서 심사할 때도 여전히 퍼렐처럼 쉽게 로 컬처나 하이 컬처,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퍼렐의 진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퍼렐과 이틀 넘는 시간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빌보드 어워드에서 카밀라 카베요와 함께한 싱글 신보 ‘상그리아 와인’의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돌아온 후, 우리는 패션과 음악 그리고 그의 인생 관점이 바뀌었던 시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퍼렐이 걸어온 흥미로운 지난날의 행보를 회고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그의 작업 과 세계관을 새롭게 들여다보았다.

테일 코트와 셔츠는 랄프 로랜 퍼플 라벨, 트라우저 언더커버, 선글라스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스터드는 버드 셔츠메이커스 제품, 손에 착용한 주얼리는 모두 퍼렐 윌리엄스 개인 소장품.

테일 코트와 셔츠는 랄프 로랜 퍼플 라벨, 트라우저 언더커버, 선글라스는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스터드는 버드 셔츠메이커스 제품, 손에 착용한 주얼리는 모두 퍼렐 윌리엄스 개인 소장품.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 근황이 궁금하다. 일에서 시작해서 일로 끝난다. 최근에 나는 기꺼이 헌신하고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신과 사람들, 가족 그리고 일이다.

아버지가 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해 당신은 세 쌍둥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의 탄생 이후에 당신의 계획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달라. 음악 활동에 있어서 최근 에 영감 받은 부분이 있나? 음악은 아름다운 다른 존재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마스터키다. 리믹스 또한 아주 중요하다. 리믹스를 통해 채드 휴고(Chad Hugo), 셰이 헤일리(Shay Haley)와 함께 세상에 다가갈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지금 흑인과 라티노 사회는 미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다. 당신은 이미 예전에 정치적 이슈를 다룬 적이 있었 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트럼프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인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인지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첫 번째 싱글인 <랩댄스(Lapdance)>는 부시 정부에 대한 외침이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댄서라고 느낀다. 그들은 단지 쟁점 주변을 돌며 춤을 출 뿐이다. 아까 말한 대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세 가지는 신과 타인, 가족 그리고 일이다. 신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은 거대한 업보로 이어진다. 현재 내가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버지니아 비치 (Virginia Beach)의 필름 스튜디오에 사운드 스테이지를 짓는 일이다. 나는 버지니아에서 자랐고, 다시 갚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와 넷플릭스 드라마 <록산느>를 제작했다. 두 작품을 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뮤지션으로서, 이야기 전달을 특히 좋아한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변화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이야기를 전하는 의미와 수단의 확대라고 표현하고 싶다. 폭스엔터테인먼트에서 우리의 음악을 담은 뮤지컬 영화 <아틀란티스>를 제작했다. 아틀란티스(Atlantis)는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단지다. 1977년 무렵의 10대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나에 대한 100% 실화는 아니다. 나는 1973년에 태어났다. 다만, 각본은 나의 어린 시절 모습에 대한 이웃의 기억을 기반으로 쓰였다. 이 또한 버지니아에 사운드 스테이지를 세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히든 피겨스>는 내가 자란 햄튼 로드(Hampton Roads)에서 일 하는 세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수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촬영을 위해 애틀랜타에 가야 했다. 현재, 사운드 스테이지는 개인적으로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과 활동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도시와 이웃의 경제 궤도를 바꿔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파스텔 컬러로 뒤덮인 인도 거리에서 열린 홀리 페스티벌(Holi Festival)에서 찍힌 당신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의 본질을 정말 잘 담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당신이 다루는 놀라운 색의 표 현 방식에 근접했달까.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나? 아디다스의 초청을 받았다.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다. 마하리시 부족의
음악은 굉장했다! 그들의 리듬과 노래하는 모습, 음악 노트, 전부 다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신이 질문한 색에 대해 답하자면, 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다. 그중 노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세상 속의 모든 색과 사람이 담아내는 색, 그리고 그 속에서 음악과 함께했던 순간은 비현실적이었다.

당신은 작업할 때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몰입의 단계에서 하는 편인가? 누구나 몰입의 단계에 있을 수 있다. 내게 몰입은 제 2의 천성 같은 것 인데, 몰입 상태에 들어서면 어떤 상상력이 발현되고, 그 순간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약간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마치 우주가 이 모든 걸 미리 꾸며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블러드 라인(Blurred Lines)’과 ‘해피(Happy)’가 2013년에 공개되었다. 당신에게는 아주 굉장한 해였다. 그때 무엇을 보았는가?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늘 프로듀서, 가수나 래퍼의 위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아티스트로 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경험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내 삶의 궤도는 나의 관점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면, 이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삶의 궤도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들이 자신 앞에 나란히 떠오르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주가 당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거대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킷과 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재킷과 셔츠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아로마테라피 같은 방법으로 우주 속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한다. 당신도 이와 같은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 당신이 말하는 바가 샤머니즘이라면 2013년에 경험했다. 2013년의 어느 날, 우주가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간다. 단지, 남은 인생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경험을 세상 사람과 나누고 다른 사람도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빛을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이 세상에는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존재가 존재했고 현존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건 바로 우주이다.

당신은 아주 겸손하지만 그동안 참여한 여러 분야에서 이미 시대를 앞서왔다. 니고(Nigo)와 함께 론칭한 스트리트 웨어 레이블인 ‘빌리어내어 보이즈 클럽 앤 아이스크림(Billionaire Boys Club and Ice Cream)’이나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한 협업은 최근 버질 아블로처럼 하이 컬처와 로 컬처 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나는 단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하이엔드나 데일리 웨어나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1990년대에 숀 콤스(Sean Combs)는 이미 우리를 위해 경계를 부숴버렸다. 그는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 같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람이다. 그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 배드 보이(Bad Boy) 브랜드와 함께하면서도 늘 베르사체의 옷을 입고 다녔다. 그는 특별한 소수의 전유물로만 여겨진 하이엔드 세계의 문을 대중에게 열어주었다. 하이엔드 브랜드에 접근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샤넬에 대해 잘 모른다. 비록 내가 그의 옷을 입기 시작한 최초의 남성 중 한 명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만약 내가 아니라 퍼프 대디나 제이지였더라도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벽을 허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종종 보석을 세팅한 긴 목걸이를 걸치고 여성용 샤넬 재킷을 입는다. 비기(Biggie, Notorious B.I.G)가 그런 패션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신도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가 샤넬 선글라스를 쓴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몇 가지 아이템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모습은 나의 관심을 사로잡고 말았다.

당신은 최근에 샤넬의 애플 뮤직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를 큐레이션 했다. 칼 라거펠트와 당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달라. 각자 서로의 어떤 점을 존경하는가? 칼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런웨이에서 내가 입을 옷을 스케치 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몇 개월 후 스케치한 옷이 완성되었고,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러한 작업을 50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 칼과 함께 일하고 그가 구상하는 작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존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2015년 당신이 투자한 플라스틱 재활용 원단 업체 ‘바이오닉 얀 (Bionic Yarn)’의 원단을 사용하여 지스타 로우(G-Star Raw)와 협업 데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샤넬도 플라스틱 재활용 섬유를 사용하 는 것에 대해 열려 있을까? 지스타는 바이오닉 얀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샤넬과 현재 진행 중인 협업에 갑작스럽게 끼어들 수는 없다. 샤넬은 슈퍼 럭셔리 브랜드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열려 있지만 말이다. 나는 샤넬과 최근 몇 년 동안 환경과 바다를 아주 진지한 주제로 다뤄왔으며,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많은 사람이 잘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구의 85%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불화가 넘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긍정적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나의 신발과 옷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사람들도 긍정적인 제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핑크색 휴먼메이드(Human Made) 후디와 무에타이 쇼트를 멋지게 소화했다. 브랜드 속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말해달라. 나는 늘 휴먼메이드와 아디다스 휴(Adidas Hue) 라인을 입는다. 휴먼 메이드는 니고와 함께한 프로젝트다. 그리고 헬스 얼티메이텀(Health Ultimatum)의 약자인 휴(Hue)는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거울 속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묻는다. ‘나 자신을 실망시켰는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는지? 나 자신을 잘 관리하는지?’ 매번 거울을 보는 순간이 진실된 ‘헬스 얼티메이텀(최후의 통첩)’이다.

당신은 25년이 넘도록 음악을 만들었다.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되고싶은가? 공무원 같은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