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 선정한 영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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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가 선정한 영 아트 스타. 여성 사진가로 규정되기 거부한 아티스트, 26세에 불과한 나이. 비범함과 참신함, 영민함을 장착한 코코 카피탄의 예술 세계는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나는 코코 카피탄,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에서 목격할 수 있다. 전시 오픈 하루 전날, 이 전도유망한 아티스트를 만났다. 자신 역시 평범한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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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설치 존에서 포즈를 취한 코코 카피탄.

서울에 꽤 일찍 왔던데 그동안 뭘 하며 지냈나? 대부분의 시간을 전시를 준비하는 데 할애했고,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약간 있었다. 고궁을 둘러봤는데, 우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밍글스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식사를 했다.

젯셋 라이프가 성향에 맞나? 어떤 도시를 가장 사랑하나? 낯선 문화권에 가면 새로운 기운을 흡수할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요즘은 내 스튜디오가 있는 런던에 머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복잡한 도시 생활만 하기는 쉽지 않다. 내 고향 마요르카에 있는 발데모사를 수시로 떠올린다.

당신의 시작부터 얘기해보자. 당신은 스페인 남부 세비야와 마요르카섬에서 자랐고, 런던 LCF와 BCA에서 공부했다. 당신은 젊은 세대에 대해 얘기하는 작가이니, 당신의 유년기가 궁금하다. 서울보다 훨씬 작은 스페인 남부에서 자랐다. 난 확실히 놀이터에서 뛰노는 평범한 애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다름’을 배척하기보다는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었다.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자랐다. 단지 어머니가 대학에 가라고 한 영향이 컸고,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이런 대규모 전시는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전시를 준비하는 데 힘든 점은 없었나? 대림미술관과의 전시는 어떻게 성사됐나? 대림미술관의 제안을 받은 후 먼저 서울과 미술관에 대해 리서치해봤다. 흥미로운 제안이 었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아직 26세이기 때문에 회고적인 성격의 전시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생각했고, 유럽과 한국 관객의 성격이 다른 점도 고려했다. 작품을 고르고 작품 간의 스토리를 묶어 공간을 구성하는데 미술관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얼마 전 <보그> 우크라이나판 커버에 등장한 당신의 모습이 반가웠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진이었는데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더라. 어떤 의도로 촬영됐는지 궁금했다. 마요르카에서 홀로 여름방학을 보내는 나와 상상으로 만들어낸 남자 쌍둥이 형제의 자화상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은 나를 담아낸 거다. 허영심과 모순을 포착한 거라고 할 수 있다. <보그> 우크라이나의 아트 이슈와 전시 준비 시기가 맞물려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다. 핸드라이팅, 드로잉, 페인팅, 사진, 영상까지. 매개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로운 성향은 어디서 비롯한건가?  전시 부제처럼 삶 속에서의 시간은 아주 유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시도를 통해 다양한 예술 형식을 섭렵하고 싶다. 한 영역에서 최고가 되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지런한 성격인가. 그렇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말이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

이번 전시의 포스터.

런던에서 느낀 스노비즘에 대한 역발상을 담아낸 작품이 모여있다.

런던에서 느낀 스노비즘에 대한 역발상을 담아낸 작품이 모여있다.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시간씩 훈련하는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드팀 선수를 촬영한 작품.

전형적인 패션 사진의 틀에 도전한 패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짐 크란츠의 말보로 광고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논란이 일었던 리처드 프린스의 작품을 다시 패러디한 카피탄의 페인팅

패션적 요소보다 인물이 지닌 태도와 성향에 주목한 세일러 시리즈.

패션적 요소보다 인물이 지닌 태도와 성향에 주목한 세일러 시리즈.

상상 속의 쌍둥이 형제와 포즈를 취한 카피탄의 자화상.

상상 속의 쌍둥이 형제와 포즈를 취한 카피탄의 자화상.

구찌 후디를 입은 소녀. 작가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위치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구찌 후디를 입은 소녀. 작가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위치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구찌 제품에 들어간 #Cococapitanwriting 말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위로 같은 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 영감은 어디서 얻나?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한데 상상하는 청자가 있나? 아직도 내 라이팅이 들어간 구찌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면 어색한 기분이 든다. 난 항상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글을 쓰는데, 친구끼리만 아는 농담을 써서 올릴 때도 있고 주로 일상에 관한 글을 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것을 손쉽게 표현하는 방법이랄까. 어떤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내가 쓴 텍스트를 읽을 때도 있는데, 실제의 나와 인터넷상의 나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상식은 진화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장 좋아하는데, 당신의 가장 유명한 라이팅 중 ‘Common sense is not that common’이 앞의 명제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신 작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 ‘누구나 상식이 있고, 그는 비슷할 것이다’라는 전제가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개인적 견해가 있고, 나에게 당연한 것이 남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술의 역할은 상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는 분명 수많은 이견이 존재하고, 그것의 인정을 통해 예술적, 사회적 환기가 이뤄지지 않을까.

당신과 BOF가 나눈 인터뷰 중에 좋았던 대목이 있다. “사진을 여성적, 남성적 시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미래의 시선이란 성별 구분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보면 여성적, 남성적 시선을 무의식중에 구분한다. 이는 성 역할 구분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스테레오타입은 없어져야 하나? 앞으로는 좀 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와서 남녀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있어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포토그래퍼라는 규정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내 작업이 여자여서 이런 작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지금 하는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 역할을 강요한다. 특히 아시아는 서구권과 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남자는 가장의, 여자는 육아의 역할을 강요받지 않나. 예술 활동을 통해 보이는 상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스테레오타입 대신 젠더리스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남녀 구분 상관없는 독립적인 이미지 말이다.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도 비슷한 의견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전시 중 금화가 가득 담긴 양동이가 앞에 놓인 미켈레의 초상화를 봤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를 후원해 르네상스 예술이 번성했듯, 아티스트와 후원자의 관계라니. 협업 파트너 이상의 유대 관계를 연상시킨다. 그와의 협업은 정말 새로운 방식이었다. 여느 패션 브랜드의 작업 방식과는 굉장히 달랐다. 사실 구찌와 협업 전까지 내 핸드라이팅을 예술 작품으로, 콘텐츠로 여기지 않았다. 내 핸드라이팅은 단지 나 지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는데, 구찌가 그런 식으로 내 작업을 조명했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미켈레는 멋진 사람이다.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끈기와 열정이 대단하다. 글로벌 패션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는 사람이다. 아까 얘기한 젠더의 구분을 깨는 시도를 가장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당신의 작업 중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드 수영팀 시리즈를 좋아한다. 다큐멘터리식 접근, 그리고 내밀하고 진솔한 시선이 느껴진다. 피사체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된 것은 무엇인가? 어릴 때 싱크로나이즈드와 관련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훈육과 인내에 대해 배운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들은 주 6일 동안 10시간씩 매일 강도 높게 훈련한다. 처음에는 선수들에게 말도 걸고 교감을 시도했는데, 지금은 관여 대신 철저히 관찰자가 됐다.

마크 코헨, 윌리엄 잉글스톤, 로버트 프랭크 등 미국 스냅샷 세대 사진가를 히어로로 꼽았다. 스마트폰 덕분에 스냅샷을 쉽게 찍을 수 있지 않나. 당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건 어떤 것인가? 집 안의 작은 부분이나 돌, 꽃 같은 소소한 것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아이폰으로 사진 찍는 건 지양하는 편이다. 크게 인화할 것을 고려해서 작은 카메라를 항상 휴대한다.

최근엔 어떤 작업을 했나? 이번 전시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전시를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나? 수영장 설치 존에 있는 대형 핸드라이팅 작품처럼 일상의 소소한 행위가 모아지면 얼마나 큰 스케일이 되는지, 평소에 작은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낙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아직도 너무 젊은 나이다.  미래에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하드 워커 아티스트.

서울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내 삶에서 아주 바쁜 시기를 함께했다. 나에게 예술적으로 큰 기회를 준 도시로 기억할 것이다.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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