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신세계

이채민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다가온 주얼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쇼메에 있어 주얼리는 단순한 장신구를 떠나 사랑의 증표이자 문화와 역사가 깃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해주는 매개체다. 도쿄에서 열린 전시<The Worlds of Chaumet>는 빛나는 과거와 현재의 감각을 잇는 ‘컨템퍼러리 클래식’의 선구자, 쇼메의 정수를 담고 있다.

 쇼메의 역사를 아로새긴 300여 종의 다채로운 디아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장.

쇼메의 역사를 아로새긴 300여 종의 다채로운 디아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장.

프랑스 황실을 대표하는 주얼러로서 쇼메가 쌓아올린 238년의 우아한 역사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난 6월 25일, 도쿄 미쓰비시 이치고칸 박물관에서 열린 의 프리뷰 전시를 살펴보며 그 기대 어린 궁금증에 대한 명확하고도 매혹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두터운 시간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더구나 현재에도 여전히 쇼메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고 있는 황홀한 아카이브 속 주얼리들.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한 화려한 여인들의 초상화라는 두 가지 축은 결국 주얼리가 여인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정표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황실 주얼러로서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쇼메만의 우아함은 독창적인 아름다움으로 귀결되었다. 쇼메의 역사를 아로새긴 여인들이 품어온 주얼리는 단순히 금 조각에 온갖 휘황찬란한 보석을 세공한 결과물이 아닌 1780년 이래 역사와 문화, 나아가 당대의 예술과 미학을 관통하는 오브제로서 그 가치를 오롯이 드러냈으니까. 이번 전시 기획에 참여한 루브르 박물관의 명예 관장인 앙리 로이레트는 “쇼메는 모든 예술적인 오브제에 항상 호기심을 보여왔습니다. 쇼메가 동시대 창조물에 쏟은 관심과 영감은 아시아 예술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이어지기도 했죠”라고 밝혔다. 이처럼 전시장 곳곳에선 우리 눈에도 익숙한 동양적인 미학을 담은 주얼리와 리빙 오브제도 발견할 수 있다.

큐피드의 화살이 관통하는 펜던트 워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이 어우러졌으며, 펜던트 목걸이나 코르사주 장식으로 착용 가능하다. 1910년대.

실제 깃털을 장식한 입체감 넘치는 벌새 형태의 아그레뜨(헤드피스).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세팅되었으며, 브로치로도 착용 가능하다. 1880년대.

투르말린, 스피넬, 다이아몬드 등이 세팅된 백합 모티프 티아라. 중앙의 꽃은 분리해 브로치로도 착용 가능하다. 2016년.

일본 신화 속 비와 천둥의 신, 라이진을 표현한 브로치. 골드에 오팔, 루비, 에메랄드 등으로 북을 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1900년대.

당대 초현실주의 작가에게서 영감을 받은 조각가 로베르 르무안이 제작한 문어 네크리스. 문어가 해초에 매달린 모습이 열정적인 연인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루벨라이트, 수정, 다이아몬드 등이 세팅되었다. 1970년.

생동감 넘치는 여섯 마리의 제비 브로치. 행운과 부활을 상징하는 제비를 모티프로 했으며, 헤드피스로도 착용할 수 있다. 1890년.

조제핀 황후의 상속자인 로이히텐베르크 가문에 전해진 에메랄드 티아라. 꽃 장식은 분리되어 브로치로 착용할 수 있다. 1830~1840년대.

벨에포크 시대의 화려한 볼륨감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스코티시 매듭 브로치. 타탄 체크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컬러 스톤을 세팅했다. 1907년.

전시장에 들어서자 옛 여인들의  기품 넘치는 초상화와 더불어 여전히 오늘날 쇼메 메종의 디자이너와 장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장품의 드로잉 등을 두루 발견할 수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주얼리에 감탄하는 동시에 그 주인공 하나하나에 깃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 보니 이 유서 깊은 주얼리 하우스가 주장하는 ‘Grace and Character’를 보다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었고 말이다. 18세기부터 이어져온 3백여 가지의 보석 세공 기술과 창조적 감성이 담긴 페인팅과 드로잉, 헤리티지 작품을 비롯해 유럽의 박물관과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품을 모아 완성한 이번 전시는 그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그 주얼리들의 면면에는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진 시대적인 트렌드를 주얼리에 반영한 쇼메의 전통이 담겨 있다.

물론 이번 전시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마스터피스들도 자리했다. 쇼메의 상징이자 브랜드가 창립된 1780년부터 당대 유행한 예술 사조를 반영한 ‘디아뎀(Diadem)’, 즉 티아라를 비롯한 권력과 위엄이 상징인 왕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3백여 가지의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특별한 감흥을 전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자 나폴리의 여왕, 카롤린 뮤라의 디아뎀. 골드에 진주를 장식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을 음각으로 조각한 마노가 특별하다. 1810년대.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자 나폴리의 여왕, 카롤린 뮤라의 디아뎀. 골드에 진주를 장식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을 음각으로 조각한 마노가 특별하다. 1810년대.

특히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자 나폴리의 여왕인 카롤린 뮤라를 위해 특별 제작된 디아뎀은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주인공들을 음각으로 조각해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귀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백합이 세팅된 티아라는 자연에서 영감을 취한 쇼메의 정체성을 담아낸 걸작으로서, 중앙의 꽃 모티프는 브로치로도 분리해 착용할 수 있다. 나아가 쇼메는 이번 전시를 위해 로마 교황청이 소장한 작품을 공수했다. 대관복을 입은 나폴레옹 1세 황제의 초상화에 등장한 바로 그 교황관 말이다.

나폴레옹 1세 황제가 교황 비오 7세를 위해 제작한 교황관. 황실과 쇼메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이번 도쿄 전시를 맞아 바티칸 교황청에서 쇼메에 복원을 의뢰했다. 에메랄드 상단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십자가는 복원을 통해 새롭게 세팅된 것. 1804-1805년.

나폴레옹 1세 황제가 교황 비오 7세를 위해 제작한 교황관.황실과 쇼메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물로,이번 도쿄 전시를 맞아 바티칸 교황청에서 쇼메에 복원을 의뢰했다.에메랄드 상단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십자가는 복원을 통해 새롭게 세팅된 것. 1804-1805년.

나폴레옹 1세 황제가 교황 비오 7세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 선물로 회자되는 이 디아뎀에는 에메랄드와 진주를 비롯해 다채로운 컬러 스톤이 화려하게 세팅되어 황실 주얼러의 작품다운 명예를 현시했다. 나아가 전시장에 나란히 놓인 초상화와 그 속에 등장한 의미 있는 ‘주얼리 이상의 주얼리’를 동시에 만나는 경이로움과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전했다. 그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새롭게 접목한 전시장은 공감각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는데 일례로 티아라를 헤드피스뿐만 아니라 네크리스로 연출하는 방법을 모니터를 통해 엿보고, 제비를 모티프로 한 주얼리가 놓인 전시장 벽을 따라 제비 떼가 날아오르는듯한 드라마틱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밀 이삭 모티프의 아이코닉한 티아라가 담긴 도쿄 전시 포스터.

밀 이삭 모티프의 아이코닉한 티아라가 담긴 〈The Worlds of Chaumet〉 도쿄 전시 포스터.

9월 17일까지, 도쿄에서 그 매혹적인 여정을 이어갈 <The Worlds of Chaumet> 전시. 도쿄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쇼메가 펼쳐내는 그 황홀한 신세계를 꼭 마주하길 바란다. 단순히 조제핀 황후와 나폴레옹의 러브 스토리에 기인하거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은 채, 여전히 오늘날의 기품 넘치는 모던 레이디를 유혹하는 ‘컨템퍼러리 클래식’의 빛나는 현장을 엿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궁극적으로 동시대와 소통하는 쇼메의 현대적 진화는 ‘캐릭터는 달라도 누구나 우아해질 수 있다’는 신선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순간에도 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쇼메의 본질적인 우아함은 마치 ‘영원한 우아함’이라는 가장 강력한 비전을 품은 듯 보였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사진
Courtesy of CHAU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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