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레스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49회째 열리는 세계적인 사진 축제 <아를, 사진과의 만남>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그가 아를에서 보고 느낀 사흘간의 여정을 <더블유>에 전해왔다.

7월 사흘이란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열린 사진 축제에 다녀온 사진가 레스.

7월 사흘이란 짧은 기간 동안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열린 사진 축제에 다녀온 사진가 레스.

 ‘올해의 밤’ 섹션에 초대를 받아 야외 스크린 형태로 사진 전시를 선보인 레스의 작업 ‘Moonlight Sleepers’

‘올해의 밤’ 섹션에 초대를 받아 야외 스크린 형태로 사진 전시를 선보인 레스의 작업 ‘Moonlight Sleepers’

검은 밤, 대형 스크린 위로 눈을 감은 얼굴이 뜬다. 무아지경, 무의식,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 ‘Moonlight Sleepers’, 타이틀 자막이 뜨면 프로듀서 문이랑이 만든 몽환적인 사운드와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이 느릿느릿 넘어간다. 사진가 레스의 개인 작업이 아를 사진 축제 오프닝 기간에 상영됐다. ‘올해의 밤(Night Of The Year)’ 섹션에 초대받아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 아를에 다녀온 레스. 그는 2004년부터 스트리트 스냅 사진을 기반으로 활동을 시작해서 이후 패션 매거진, 아이돌 화보 작업 등 상업 사진으로 영역을 넓히며 두 분야의 작업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는 사진가다. 이번에 선보인 작업은 2010년부터 약 8년에 걸쳐 찍어온 사진 연작이다. 꽤 오래 잠든 사람의 모습만 찍어온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때 드러나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언가에 몰입해서 푹 빠져 있는 모습, 자신을 포착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상태. 그런 순간을 찍고 싶었어요.” 관성을 배반하는 작업, 뭔가 흐트러져 있는 상태, 예상치 못한 순간. 그의 스냅 사진을 관통하는 것들이다. “제 스냅 사진의 대다수는 무방비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목격한 상황을 기록한 것이죠. 언제부턴가 사람을 풍경처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상을 그냥 바라보고, 관찰하고, 빠르게 포착하는 방식으로요. 잠든 사람을 사진으로 찍으려면 반복적인 촬영이 어려워요. 한 컷 찍고 촬영이 중단될 수도 있어요. 인기척이나 번쩍하고 터지는 조명 때문에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니까요. 간섭과 개입이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빠르게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죠.” 레스의 작업이 소개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리플릿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When one is asleep, ‘Real Me’ comes out.’ 그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탁 트인 야외에서 사진 축제를 즐기고 있는 관객들.

탁 트인 야외에서 사진 축제를 즐기고 있는 관객들.

사진을 진지하게 관람하고 열띤 토론 중인 관객들.

사진을 진지하게 관람하고 열띤 토론 중인 관객들.

레스가 이번에 작가로서 참여한 아를 사진 축제는 역사가 길다. 1970년부터 열리기 시작해서 올해 49번째를 맞이했다. 크고 작은 갤러리와오랜세월지역의역사를품은유적지, 교회 등 다양한 공간에서 35가지에 이르는 사진 전시회가 동시다발적으로 3개월 동안 열린다. 묵직하고 진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를 이루는데, 레스가 인상적으로 포착한 지점은 사진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다. “전시 공간이 대부분 냉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엄청 더워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작품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보고 또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심지어 스크린 상영회에서는 영상이 끝나면 모두가 박수를 쳐요. 사진에 대한 그런 반응이 낯설고 희한했어요.” 올해 아를 사진 축제의 굵직한 화두 중 하나는 미국 사진가들이다. ‘America Great Again’이란 타이틀로 로버트 프랭크, 폴 그레이엄, 레이몽드 파르동 등 거물급 사진가들의 세계관을 조명했다.

.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가 요나스 벤딕선이 선보인 종교를 주제로 7명의 교주를 찍은 작업 .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가 요나스 벤딕선이 선보인 종교를 주제로 7명의 교주를 찍은 작업.

수십 개 점이 찍힌 지도를 따라 사흘 동안 촘촘하게 전시를 둘러본 레스가 가장 인상적으로 포착한 작가는펑리(Feng Li)와 요나스 벤딕선(Jonas Bendiksen). “펑리는 중국 작가인데 그가 거리나 일상에서 포착한 찰나를 담은 사진을 쭉 바라보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이상한 기운이 있어요. 사흘 동안 수십 개 전시를 둘러봤는데, 그 작가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종교처럼 예민한 주제로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은데, 네덜란드 작가 요나스 벤딕선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돌며 작업한 종교 시리즈는 정말 대단했어요. 종교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인물의 일상, 교주가 신도들과 함께 있는 모습, 종교 행사에서의 극적인 순간, 세 카테고리로 사진을 담아냈는데, 고생을 정말 많이 했겠다 싶더라고요. 더 멋진 건 이 전시를 교회처럼 생긴 공간에서 했는데, 세 가지 사진을 파사드 벽면에 삼각 구도로 설치한 방식이었어요. 성역에 대한 도전을 아트로 승화시킨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7월에 시작된 아를 사진 축제는 9월 23일까지 계속된다. 반고흐가 사랑한 도시이자 프랑스 남부 특유의 목가적이고 점묘화 같은 풍경을 마주칠 수 있는 그곳, 아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