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파워 볼륨, 60년대 미니스커트, 뉴 스포티즘, 뉴 웨스턴, 오트 후디.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특정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무대 위로 소환했고, 오리지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으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조합으로 트렌드를 창조했다. 밀란, 런던에서 더블유 에디터가 영민하게 포착한 2018 F/W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MILAN 2018.2.20~26

몬스터 주식회사

눈을 비비고 구찌 런웨이를 다시 바라본 건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머리통을 들고 나온 모델이나, 이마 위에 눈을 붙이거나 용과 뱀을 액세서리로 들고 나온 모델 때문이었다. 이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해석한, 모든 경계가 해체되는 시대에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는 요즘 세대에 대한 메타포적 장치였다. 특유의 장식주의와 너드식 접근은 여전했고, 여기에 파라마운트사나 MLB의 로고 등 미국 문화에서 받은 영감이 추가됐다. 구찌가 문화를 뒤섞었다면 돌체&가바나는 인류 복식사를 총집결해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듯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주교와 수녀, 성도와 큐피드,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룩 등 르네상스의 부활을 주문하는 듯 화려함이 절정을 이뤘다. 이번 시즌은 맥시멀리스트의 정의를 새롭게 한 시즌으로 기록될 듯하다. 단순히 치장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융합해 거대한 믹스 컬처를 구현한 디자이너들 덕분에 말이다. 이번 가을, 새로운 맥시멀리스트의 출현을 거리에서 누려보시길.

 

형광의 질주

프라다 쇼가 캄캄한 밤에 열린 건, 쇼장 밖 어두운 도시 공간에 떠 있는 프라다 네온사인을 위해서였다. 거대한 네온사인이 프라다 쇼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임을 직감했고, 이내 눈이 시릴 정도의 형광색으로 가득한 런웨이가 이어졌다. 형광색 튤을 덧댄 슬리브리스 칵테일 드레스, 작업복 같은 두툼한 패딩과 베스트, 나일론 소재를 가미한 스트링 부츠 등은 브랜드의 부르주아적 옷을 해체하고 형광색으로 잔뜩 무장한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줬다. 또 대담한 패턴과 체크, 형광색으로 80년대 글램 바이브를 표현한 베르사체, 폐기물과 패션의 결합을 유별난 형광 컬러 조합으로 완성한 마르니, 재클린 케네디를 컬러 슈트를 입은 인간 스키틀즈로 오마주한 모스키노까지, 각자의 의도대로 활용한 형광색은 특유의 정서로 느리게 흘러가는 줄만 알았던 밀라노의 시간을 더없이 미래적인 시간으로 만들었다.

 

저 땅끝까지

이번 시즌은 유독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개를 세로로 많이 저어야만 했다. 맥시스커트나 드레스, 바닥에 끌릴 법한 팬츠 등 가을 낙엽 좀 쓸겠다 싶은 길이의 옷이 대거 등장했으니. 전통적인 미니멀리스트 질샌더가 선보인 두꺼운 양모로 만든 우아한 코트와 전위적인 테일러링 팬츠, 보다 절제된 감각으로 단정한 실루엣과 감도 있는 컬러를 사용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아름답고 실용적인 아우터는 충분히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그렇다고 롱&린 실루엣이 미니멀리스트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막스마라는 스테디셀러 아이템 테디베어 코트에 허리춤이 풍성한 맥시스커트를 매치해 변주를 더했고, 미쏘니는 노을로 물들인 듯한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의 니트 드레스에 존재감 넘치는 모자와 롱 스카프를 매치하는 멋진 스타일링을 무대에 올렸다. – 패션 에디터 이예지

 

LONDON 2018.2.16~20

쓰고 적고 그리고

직접적인 단어와 슬로건은 디자이너의 메시지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섹스는 아이디어의 중요한 시작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알렉스 컴포트의 책, <더 조이 오브 섹스>의 일러스트가 담긴 우아한 깃털 드레스에 ‘Sex, More Joy’와 같은 단어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마리 카트란주의 쇼를 본 이들이라면 오프닝부터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Bauhaus’ 장식 드레스에서 그녀가 바우하우스에 매료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장식성과 테크닉은 건축적인 드레스로 구현되었다.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인턴들이 무대에 선 MA의 걸들은 ‘Power Woman’, ‘Truth Beauty’ 등 손글씨가 적힌 오버사이즈 톱을, 애슐리 윌리엄스의 반항기 가득한 젊은이는 ‘Don’t Know, Don’t Care’가 적힌 후디를, 패브릭이 중심이 된 포츠는 울과 관련된 다양한 언어를 블랭킷에 새겼다. ‘모직’이라는 한글의 등장도 신선했다.

 

부풀려

80년대 맥시멀리스트의 귀환을 예감케 한 건 캘빈 클라인과 마크 제이콥스 등을 필두로 한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파워 숄더와 오버사이즈 실루엣, 볼륨을 극대화한 부풀린 소매는 이후 4대 도시 전체를 휩쓴 메가 트렌드로 꼽혔다. 런던의 오버사이즈 행보는 파워풀하거나 서정적이거나, 이 두 노선을 함께 취한다는 점이 특징. 심장이 쿵쾅대는 비트 사이로 가레스 퓨의 거대한 어깨 실루엣이 드러났을 때 쇼의 드라마성은 배가되었고, <Saddler well’s> 극장에서 열린 샬라얀 컬렉션은 어깨가 동그란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만나 부드러운 선을 연출했다. 재킷을 뒤집어 입은 형태의 토가, 하운즈투스 체크 패턴의 여유로운 재킷을 선보인 나타샤 진코를 비롯해 시몬 로샤와 이사 아르펜, 마르케스 알메이다는 부풀린 러플 장식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샤이닝 스타

스팽글과 비즈가 뒤덮인 반짝이 드레스가 낮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까? 이번 시즌 런던 디자이너들은 밤을 위한 이 화려한 옷을 데일리 룩으로 제안하고 싶은 눈치였다. 대표적으로 마르케스 알메이다는 은색 라메로 완성한 보머 재킷과 팬츠, 앞치마 형태의 슬립 드레스로 쿨한 작업복을 만들었고, 에르뎀은 화려한 시퀸 스커트에 화이트 셔츠로 오피스 룩을 제안하는가 하면, 플리츠스커트와 재킷이라는 단정한 옷차림 위에 메탈릭한 코트와 프린지 목 장식으로 세련된 오피스 룩을 완성했다. 특히 크리스토퍼 케인은 컬러풀한 크리스털을 베이식한 니트 카디건과 스웨터에 장식해 베이식 아이템을 쿠튀르급으로 올리는 데 한몫했다. 스팽글 장식 슬리브리스 드레스에 하이톱 스니커즈를 매치한 J.W.앤더슨은 스타일링과 컬러 활용도 면에서 훌륭한 예가 될 것이다. – 패션 에디터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