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 다미

이채민

영화 <마녀>의 주인공 김다미가 베일을 벗었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영화에 ‘올해의 발견’이 있다는 사실이다. 말간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는 배우 김다미가 카메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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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대 1, 1500대 1,2000대1. 로또나 벼락을 맞을 확률도 아니다. 미지의 배우가 타이틀롤을 얻기까지 넘어야 하는 관문의 두께다. 올여름 신예, 발견, 원석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또 한 명 탄생했다. 김다미라는 이름의 배우. 6월 27일에 개봉하는 영화 <마녀>는 그녀로부터 시작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인 여배우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흔치 않은 영화에 2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이 지원했고, 3차에 걸쳐 오디션이 진행됐다. 캐스팅 후일담을 묻자 김다미가 말했다. “사실 경쟁률이 1000 대 1이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이 끝난 후 알게 됐어요. 감독님께서 제가 자윤 역으로 결정됐다고 전화로 알려주셨을 때 기분이 얼떨떨했어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담이 크게 다가와서 마냥 기뻐하기 어려웠죠.” 김다미를 만나기 전까지 박훈정 감독은 초초했다고 회상했다. “<마녀>는 원래 <신세계> 다음으로 준비한 작품이었다. 영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던 시점에 김다미 배우를 만났다. 첫인상부터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배우가 가진 고유의 분위기가 참 독특했다. 구자윤의 캐릭터와 아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영화는 여성이 서사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작품이다. 피해갈 수 없는 질문에 박 감독은 제작 보고회에서 이렇게 답했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을 두고 고민했다. 인간이 악하게 태어나서 선하게 변해가는지, 선하게 태어나서 악하게 변해가는지 궁금했다. 만약에 그것이 결정돼서 태어났다고 했을 때 ‘인간은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일까?’ 여기서 부터 <마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창작자의 설명처럼 구자윤이란 여자는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다. 지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 앞에 계속해서 의문스러운 사람이 나타난다. 평온했던 일상이 뒤흔들리며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김다미는 시나리오를 일독했던 그날의 기억을 ‘긴장감’과 ‘신선함’으로 요약했다. “누아르 영화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그 장르 영화만 몰아 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영화 <마녀>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자윤이라는 캐릭터는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에요. 그러다가 어느 날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비일상적인 일들로 혼란을 겪는 인물이죠.” 김다미와 구자윤 사이에 어떤 교집합이 있을까? “낯가림도 있 고 성격이 차분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에요. 자윤이는 뭐랄까 속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 닮은 것 같아요.”

줄무늬 검정 드레스는 발렌티노, 검정 스트랩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

줄무늬 검정 드레스는 발렌티노, 검정 스트랩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

도화지처럼 뭐든 흡수해서 자기 색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이 배우가 더 궁금해졌다. 이름의 뜻, 나이, 혈액형, 취미 생활, 최근에 본 영화 등등 사소한 질문을 던지며 소개팅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고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했어요. 학부 시절에는 연극 수업에 더 많이 참여해서 사실 영화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오케이 사인을 내면 ‘내가 연기한 게 정말 맞을까? 제대로 한 걸까?’ 늘 의문을 품었어요.” 그렇지만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호평했다. 자윤의 숨을 조이게 만드는 귀공자 역으로 변신을 시도한 최우식은 “감정 신에서 눈물이 한쪽으로만 살짝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첫 데뷔작인데도 연기를 매끄럽게 잘했다.”라고 말했다. 자윤을 집요하게 쫓는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희순은 김다미를 두고 ‘단언컨대 올해의 신인’이라고 강조했다. 김다미의 이름을 공식석상 처음으로 알린 제작 보고회 현장에서 가장 높은 데시벨로 셔터가 터진 순간은 네이비색 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이 단아하게 등장했을 때다.

배우로서 첫 화보를 찍던 날, 김다미는 하늘색 원피스에 흰 운동화를 신고 촬영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용수처럼 곱고 꼿꼿한 선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다가올 플래시 세례와 스포트라이트가 두렵지 않은지 물었다. “사실 아직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크게 없어요. 대중교통도 편하게 잘 타고 다니고 있고, 지금까지 저를 알아본 분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가 끔 기사에 등장하는 제 모습이 진짜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웃음).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김다미에 대해 모르지 않을까요?”

김다미는 집에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평소에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데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기묘한 이야 기>와 <웨스트 월드> 시리즈다. 최근에 극장에서 몰입해서 본 영화는 <독전>, 알 파치노를 좋아해서 그가 나온 작품은 모조리 다 봤다며 해맑게 웃었다. 혈액형 오형, 모든 것이 다 잘 되라는 이름의 뜻처럼 김다미는 단아함 속에 낙관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녀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건강’이다. “몸이 원래 강한 편은 아니어서 평소에도 건강즙에 관심이 많아요(웃음). 한약도 잘 챙겨 먹고 있고 자전거에 취미를 붙여서 열심히 타고 있어요.” 작년 5월 오디션을 시작으로 일 년간 쉼 없이 달려 왔기에 아직도 촬영이 끝나지 않은 기분이라고 했다. “영화가 개봉하고 홍보 활동이 완전히 끝나면 그때야 진짜 끝났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마녀>라는 작품이 제 인생의 시작점이 되는 영화임은 분명해요. 그것에 연연하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열어두고 담담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배우로서 계속해서 잘 살아가고 싶어요.” 말간 얼굴과 담담한 말투를 가진 배우 김다미. 이제 막 움을 틔운 그녀에게서 단단한 무엇을 본 듯했다.

더 많은 화보 컷은 더블유 7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김영준
스타일리스트
남주희
헤어
백흥권
메이크업
이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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