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체의 모양을 비추는 용도인 거울은 어둠 속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지만, 주변에 빛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설치 작가 이반 나바로는 거울과 네온사인으로 영속하는 무한의 세상을 만든다.

커다란 드럼 안에 자리 잡은 ‘WEBEATME’라는 구절. ‘WE’와 ‘ME’는 거꾸로 하면 비슷한 단어라 거울의 반사 작용과도 그 맥락을 공유한다.

커다란 드럼 안에 자리 잡은 ‘WEBEATME’라는 구절. ‘WE’와 ‘ME’는 거꾸로 하면 비슷한 단어라 거울의 반사 작용과도 그 맥락을 공유한다.

이반 나바로는 1972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그 이듬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헌법을 개정해 1990년까지 나라를 주물렀다. 그 정부에서는 밤이면 전력을 차단하고 어둠 속에 사람들을 가뒀다. 칠레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주도하는 독재 정권 아래서 자란 설치 작가 이반 나바로. 나라에서 시위를 막기 위해 불을 끈 동굴 같은 세상 속에서 그의 예술도 싹텄다. 시인이 시를 쓰고, 가수가 노래하듯이, 그에겐 전기를 활용하는 행위도 일종의 저항이었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은 어둠을 매혹적으로 밝혔다.

여기에 거울이 더해졌다. 거울과 거울 사이에 물체가 있으면 그것은 서로를 반사하며 양적으로 팽창하고 무한대로 확장한다. 거울 중에서도 매직 미러라고 불리는 일방향 거울이 있다. 검찰 취조실 같은 데서 쓰이는 거울로 심문과 고문, 사형이 집행되는 나라에선 매직 미러가 죄수와 참관인의 세계를 분리하는 벽처럼 쓰이기도 했다. 한쪽 방향에서는 그것이 거울로 보여도 반대 방향에서 보면 유리처럼 맞은편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반 나바로는 매직 미러로 작은 동굴 같은 터널을 만들고, 네온사인을 끊임없이 확장시킨다. 그의 작품 앞에 서 있으면 터널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네온사인 구조물이나 텍스트가 무한히 반복되는 저 먼 끝에 블랙홀을 닮은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데, 사실 그 모든 광경은 거울 안에 갇혀 있다. 작가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게 만드는 반사 효과를 활용하여 거울 속에 신기루 같은 세상을 만들어놓는다. 자유가 없었던 사회에 갇혀 자유를 꿈꾸고 살려내려 한 것처럼. 검찰에 불려가면 매직 미러의 한쪽 면만 체험할 수 있겠지만, 4월에 시작해 6월 3일까지 <The Moon in the Water>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현대로 향하면 거울이 조형하는 신비한 통로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사치 컬렉션, 파리 루이 비통 컬렉션, 서울에선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This Land is Your Land.’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This Land is Your Land.’


<W Korea> 전시 제목인 ‘The Moon in the Water’는 무슨 의미인가?
이반 나바로 달빛이 물가에 어른거릴 때가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물에서 보는 건 다분히 초현실적인 경험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반사 현상이다. 반사가 일어나면 실재하지 않는 무엇도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작품은 네온사인의 빛과 거울을 통한 반사를 이용해 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1960~70년대 칠레의 민중 가수 빅터 하라의 노래를 들으며 이번 전시에 대해 생각하다가, ‘Moon in the Water’라는 가사가 들렸다. 그 표현이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딱 알맞다 싶었다.

전시 오프닝 때 작가는 실제 연주가 가능한 이 드럼 작품으로 퍼포먼스도 했다.

전시 오프닝 때 작가는 실제 연주가 가능한 이 드럼 작품으로 퍼포먼스도 했다.

당신은 미술인인데 해외 인터뷰를 보면 음악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번 전시 오프닝 때도 드럼 작품으로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음악과 미술 활동을 연결하길 좋아하나?
음악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4월 중순까지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프로젝트로 설치된 ‘This Land Is Your Land’ 역시 미국 포크송 가수인 우디 거스리의 유명한 곡에서 실마리를 얻은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레이블도 있는데, 이름이 ‘우에소(Hueso)’, 스페인어로 ‘뼈(Bone)’라는 의미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최후의 순간까지 남는 게 뼈다. 그렇다면 뼈야말로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레코딩도 기록한다는 뜻이니까 레이블 이름을 뼈라고 지었다.

레이블 이름이 ‘뼈’라니 데스 메탈이나 무시무시한 음악을 추구할 듯한데, 웹사이트에 공개된 몇 곡을 들어보니 왠지 아메리칸 어패럴 매장에서 흘러나올 법한 팝 분위기도 있고, 계속 재생해두고 싶었다. 음원으로 듣고 싶은데 들을 수 없는 곡의 목록도 많았고.
주로 한정판 LP를 만들어 판매한다. 과거 내가 직접 만든 음악이 실린 판은 90장 정도만 만들었고, 뮤지션들의 LP는 500장 정도 제작한다. 우리 레이블의 음악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세상에 공개된 적 없거나 제대로 녹음조차 되지 못한 곡을 살려낸 음악, 나 같은 사람이 아닌 프로 뮤지션이 만든 음악, 마지막으로 나처럼 실험적인 시도로 만들어진 음악. 나는 주류 음악이나 음악으로 돈을 버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저 녹음하는 행위를 통해 그 예술 활동이 나의 다른 예술 활동에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는 데 신경 쓰고, 녹음하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있다.

 언어를 심은 드럼 연작 앞에 선 작가.

언어를 심은 드럼 연작 앞에 선 작가.

음악이 지닌 사회적 권력을 말하고자 드럼 연작도 꾸준히 선보인다. 음악의 사회적 권력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전쟁터나 시위 현장에는 행진하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마칭 밴드가 자주 등장한다. 군악대가 북을 치며 행진하는 건 무리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다. 음악은 그렇게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드럼 연작을 보면 내부에 텍스트를 심어놓은 경우가 많다. ‘BLAST’ ‘CLAMOR’처럼 드럼이 내는 사운드 자체를 연상시키는 단어도 있지만, ‘DEMAND’ ‘RISE’ 같은 단어는 마칭 밴드의 가치와 힘을 의미한다. 상업적 목적이 없는 음악은 하나의 소셜 콘텐츠다. 사회적으로 특정 역할을 해내는 것, 그것이 음악의 관념이나 가치일 수도 있다.

혁명과 자유를 화두로 삼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생겼나?
음악이란 어떤 식으로든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소장한 수많은 LP 판의 음악은 대개 혁명과 전쟁이 주제다. 그것들은 한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일종의 사운드트랙이다. 나는 칠레 독재정권 아래서 자랐다. 그 정부는 오랜 세월 밤이면 아예 전력을 차단하는 식으로 국민을 컨트롤했다. 사람들은 저항하고, 싸우고, 쟁취한 자유를 축하하기도 했다. 그런 정서가 고스란히 그 시기의 음악에 담겨 있고, 이는 마칭 밴드의 존재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앞서 포크송을 언급했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의 한 시절이 떠오른다. 한국에도 1970~80년대에 양희은이라는 가수의 ‘아침 이슬’처럼 금지된 민중 가요가 있었다. 당신이 관심을 갖는 칠레의 암울한 시기에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은 IT로 대표되는 기술이 발달한 나라로 인식된다. 그런데 더 알아보면 남미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4년 전 한국에서 개인전을 했을 때도 그랬고, 내가 한국을 잠시 겪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본 현상은 사람들이 현실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이 훌륭하면 첨단 사회의 느낌이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럴 것만 같거든. 그러나 내 느낌에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는 남미와 상당히 유사하고, 경제 면에서는 미국과 비슷한 듯하다.

네온사인을 이용한 작품은 일단 외적으로 황홀해서 눈길을 끈다. 그러나 작품을 마주했을 때 어두운 동굴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과 당신이 심어놓은 텍스트 때문에, 서서히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 작품은 희망과 좌절 중 어느 쪽 정서에 더 가까운 것 같나?
큰 드럼 작품 중 거울 너머로 ‘BOMB BOMB BOMB’ 형태의 글자가 보이는 게 있다. 나는 작품으로 메시지를 주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진 않다. 네온사인의 빛은 아름다운데 그것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텍스트가 자리하고 있으니 관람객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할 것이다. 작품의 정서는 그저 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물론 텍스트를 주시한다면 거기서 어떤 긴장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게 중요하다. 그런 긴장감 때문에 관객은 작품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하게 된다. 설사 관객이 네온사인의 화려함과 예쁜 디자인만 즐긴다고 해도 작가가 일일이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해가는 여정이 궁금하다. 번뜩이는 순간을 발판 삼아 밀고 나가는 편인가, 천천히 집요하게 매달리는 편인가?
아이디어가 번쩍하고 떠오르는 순간이란 거의 없다(웃음). 아주 긴 시간을 거쳐 완성한다. 완전한 확신이 생겼을 때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이상 걸리기도 하고. 진짜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이 뭔지 아나? 아이디어가 많고, 심지어 아이디어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작업으로 발전시키기도 잘 하지만, 어떤 소재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결론 내리기까지가 길고 힘든 시간이다.

처음 거울과 네온사인을 이용한 스타일을 정립했던 때는 언제인가?
뉴욕의 한 조명 가게에서 작은 램프를 본 적이 있다. 작가 생활 동안 번뜩이는 순간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 정도다. ‘어떻게 저런 빛의 효과가 나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당시 지갑이 없었다! 1시간 뒤 돈을 가지고 다시 가게에 갔더니 그사이 램프가 팔렸더라. 램프를 해체하고 분해해서 원리를 파악하려 했는데 말이다. 그 후 6개월 동안 끙끙대며 실험을 거쳐 그 원리를 알아냈다. 다음엔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단계를 거쳤다.

사실 네온사인이라고 하면 세련미보다는 빈티지한 이미지다. 한국 문학에서는 복작거리는 도시나 쓸쓸한 뒷골목을 묘사할 때 네온사인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네온사인은 50년 전에 제작된 것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할 정도로 수명이 길다. 향수병을 연상시키거나 예스러운 이미지로 활용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2010년경부터 몇 년 동안 네온사인이 갑자기 패셔너블한 소재로 떠올랐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됐고, 네온사인으로 만든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당시 아트 페어에 가보면 웬만한 작가들이 다 네온사인이 포함된 작품을 내놓을 정도였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여전히 네온사인을 이용하는 작가라면 이 재료의 본질을 탐구하고 파악한 인물일 것이다.

신작인 ‘Vanity’ 연작 앞에 서면 거울에 관객의 모습이 비치고 관객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신작인 ‘Vanity’ 연작 앞에 서면 거울에 관객의 모습이 비치고 관객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The Moon in the Water> 전을 찾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시장에 온다는 건 귀한 시간을 들인다는 거니까, 그 시간 동안 작품을 경험하면서 이왕이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술을 즐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