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장 줄리앙에게 코끼리란

이채민

2년 만에 서울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다시 찾은 아티스트 장 줄리앙. 긍정적인 에너지와 위트 넘치는 그를 만났다. 앙증맞은 코끼리와 함께!

이번 〈Lineage〉 전시 주요 작품 앞에 자리한 장 줄리앙.

이번 〈Lineage〉전시 주요 작품 앞에 자리한 장 줄리앙.

지문이 연상되는 미로 같은 선 사이를 한 사람이 묵묵히 걷고 있다. 지난 5월 3일 공개한 장 줄리앙의 <Lineage> 전시 포스터에는 가족, 시간의 흐름, 기억, 미래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함축돼 있다.

커다란 코끼리와 전시 오프닝 때 선보인 라이브 드로잉 작품이 함께 자리한 스튜디오 콘크리트 1층 전경.

커다란 코끼리와 전시 오프닝 때 선보인 라이브 드로잉 작품이 함께 자리한 스튜디오 콘크리트 1층 전경.

그의 전시가 펼쳐지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들어서면, 1층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회색 코끼리를 마주할 수 있다. 코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코끼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일상적인 삶도 웃음으로 재해석하는 장 줄리앙의 그림은 보면 볼수록 그를 더 알고 싶게 만든다.

<W Korea> 전시의 테마와 코끼리의 존재가 궁금하다.
Jean Jullien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전시를 통해 가족과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삶의 기억, 일종의 생명의 선과 같은 의미를 떠올렸달까. 주름, 손금,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는 작은 역사와 같은 인생의 이야기로 테마를 확장해 나갔다. 코끼리는 동물 중에서 가장 높은 기억력을 가졌다는 점과 가족을 꾸려 생활한다는 점, 코끼리 피부의 특성과도 의미가 깊다. 전시 장소가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코끼리가 회색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한정판으로 선보인 콘크리트 코끼리 작품은 아티스트 이원우와 만든 것인데, 콘크리트의 물성적 특징과 더불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오브제로 구체화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앎이 깊어진다는 점에서 나이 드는 게 좋다.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아들과 유대가 깊어질수록 삶이 아름답다는 걸 느낀다. 가족과 함께 보낸 세월과 행복한 기억 등 내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면, 늙는다는 건 그리 나쁘지 않 은 일인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 아보며 내가 남긴 것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성찰하면서 조금 허무하고 진지해질 때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심각하기보다는 유머러스한 방식과 재미있는 요소들로 나이 듦에 대해 보여주고자 했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부모님과 살다가 공부하러 런던으로 떠났을 땐,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가족이었다. 함께일 때 편안하고 신뢰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소속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시 첫날을 맞아 라이브 드로잉 쇼를 선보일 계획이다. 긴장이 될까?
드로잉은 내게 가장 익숙한 일이지만 스케치북에 그리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그리는 건 다르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보통 라이브 드로잉 전에 미리 노트에 스케치를 구상하고 쇼를 시작한다. 오늘은 붓을 이용해 굵직한 선이지만 미니멀한 그림을 그려서 그 대비를 보여줄 거다.

다양한 기분을 나타내는 장 줄리앙의 얼굴 시리즈를 입은 누누 컬렉션의 인형.

다양한 기분을 나타내는 장 줄리앙의 얼굴 시리즈를 입은 누누 컬렉션의 인형.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그림을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두 살된 아들 루다. 누누(NouNou) 컬렉션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컬렉션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스테레오 바이닐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허재영의 딸이 루를 두고 누누라고 부른 데에서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 누에다가 S를 붙이면 Nous, 즉 불어로 ‘우리’의 뜻을 지닌다는 것도 좋았다. 이처럼 심플하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예쁜 책을 열었을 때 튀어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를 상상하는 방식은 내 작업에도 적용된다.

편집숍 비이커에서 여름 시즌 누누 컬렉션을 소개했다.
LA에서 살 때 아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어린 시절 입은 셔츠를 입힌 적이 있다. 패턴도 많고 버튼이 없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옷을 떠올렸다. 하와이안 셔츠, 해변, 서핑을 좋아하는데 그런 요소를 담은 그래픽 셔츠도 있다. 이번이 누누의 세 번째 컬렉션이다. 우리 브랜드의 가장 상징이자 대표 라인이 얼굴 시리즈인데, 보다 창의적인 기지를 발휘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싶었다. 허재영과 누누 컬렉션을 론칭할 때부터 이것이 단지 옷 레이블이길 바라지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걸 어떻게 표현해 만들 수 있을지가 늘 우선이다. 러그, 우산, 인형 등을 통해 익숙한 콘텐츠에서 벗어나 재미있고 새로운 ‘일탈’을 선보이고 싶다.

누누 셔츠를 보니 문득 올해 여름을 어떻게 보낼 예정 인지 묻고 싶다.
올해 7월엔 샌프란시스코에 가 서핑할 계획인데, 매해 여름이면 영국도 간다.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동생과 서핑을 즐긴다. 서핑은 초급 이상의 실력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다(웃음)! 서핑 문화도 좋아하고, 예전엔 스케이트보드도 자주 탔다. 해변에 관한 쇼를 두 번 진행했을 정도로 해변은 내게 늘 영감을 준다. 한쪽은 모래/땅이라는 문화가, 한쪽은 바다/물이라는 문화가 공존하는 해변 특유의 내러티브가 마음에 든다. 또 해변에는 자연이 선물한 문화와 사회적 환경의 요소가 혼재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신문을 읽고, 공놀이를 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등 일상에서 하는 여러 행동을 하지만 모두 몸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지금 당장 바닷가로 갈 수 있다면 꼭 챙길 세 가지 물 건은?
수영복. 난 누디스트가 아니니…(웃음) 스케치북과 붓도 챙길 거다. 하나 더 넣을 수 있다면 선글라스!

요즘 당신이 꽂혀 있는 것은?
작품 면에선 다양한 그림을 시도해보는 것.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에디 드 프레토 음악에 꽂혀 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하이브리드의 완전체 같은 느낌이 든다. 독특한 외모와 그만의 패션 스타일을 보면서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게 마음에 든다. 나이가 들면서 늘 루틴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창의성은 언제나 변화, 변동에서 오기 때문이다. 바다의 파도처럼 말이다. 바다는 항상 평화로워 보이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난 성난 파도가 몰려드는 바다가 좋다.

반대로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웃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 붓 페인팅 뿐 아니라 펜슬 드로잉처럼 어떤 스타일의 작품에서도 나만의 유머와 퍼스낼리티를 느끼게 하고 싶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
더 큰 스케일의 드로잉, 페인팅이다. 벽만 한 크기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 너그러운 아티스트로 다가가고 싶다. 조각에도 관심이 있다. 그림은 2차원이지만 조각은 입체적이기 때문에 그림에선 10%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나 장면 뒤에 숨은 이야기를 더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아직은 조각가 친구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만의 조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다. 여름에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열리는 조각 페스티벌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10m에 달하는 거대한 캐릭터를 구상 중이다.

패션 에디터
백지연
포토그래퍼
박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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