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은 건축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다. 마라케시, 케이프타운, 마이애미에 최근 들어선 대규모 뮤지엄의 태생기를 듣고자 건축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예술가의 유산
이브 생 로랑 뮤지엄 마라케시
yves Saint Laurant Museum Marrakech
by Studio KO

모로코 마라케시에 들어선 이브 생 로랑 뮤지엄은 프랑스 기반의 건축 설계 사무소인 스튜디오 KO에게 의미 깊은 프로젝트다. 2000년에 회사를 설립한 이래 맡은 최초의 뮤지엄 프로젝트였고, 2017년 10월 공개된 이곳으로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18 ‘Best New Public Joint’ 부문에서 수상했기 때문이다. 설립자인 카를 푸르니에와 올리비에 마르티는 오래전부터 마라케시라는 도시에 빠져 매년 이곳을 방문했다. 그리고 파리에 회사를 설립한 지 1년 만에 마라케시에도 사무실을 차렸다. 이 도시는 파리, 런던, 뉴욕 등에 비해 신진 건축가로서 기회를 잡기가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KO에서 설계한 대표작으로는 런던 모노클 숍 맞은편에 자리한 호텔 칠턴 파이어 하우스(Chiltern Fire House)와 마라케시의 자연을 만끽하기에 훌륭한 리조트 도메인 로열 팜(Domaine Royal Palm)이 있다.

W Korea 이브 생 로랑 뮤지엄은 스튜디오 KO가  금까지 선보인 프로젝트 중 첫 뮤지엄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스튜디오 KO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가 제안했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이브 생 로랑과 마라케시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고, 입찰 경쟁 같은 소란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 프로젝트에 우리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난해 피에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뮤지엄이 완성되어 다행이다.

뮤지엄에는 전시실뿐 아니라 서점, 갤러리, 공연장도 있다.
사실 마라케시에는 문화 공간이 부족하다. 피에르는 이 도시에 문화적 활기를 주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완성된 공연장은 라이브 오페라를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부를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방문자의 경험과 동선이었다. 최대한 유동적으로 흘러가길 바랐는데, 그래야 뮤지엄이 실제보다 크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은 외관만 봤을 때는 단층에, 벽돌과 흙만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마라케시의 건축법에 따른 것인가?
화재 안전, 장애인 시설, 빌딩 규정에 관한 건축법은 전 세계가 거의 비슷해져 가고 있다. 다만 마라케시에는 건물 색상에 대한 규제가 있다. 모든 건물은 붉거나 황톳빛이다. 팀 내부에서는 뮤지엄의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오직 테라코타로만 지을지 말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재료의 가짓수가 줄어들수록 건물의 인상은 강해지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건물을 옷에 비유하는 걸 좋아하는데, 마치 직물 한 장이 바닥부터 위로 들어 올려지고, 완성된 모습이 덴텔(Dentelle)과 유사한 테라코타 레이스가 되는 상상을 하며 설계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난관에 부딪친 적은 없나?
모든 아랍 전통 건물에는 빛을 끌어들이는 파티오가 있고, 중앙에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분수가 있다. 뮤지엄 건물 내에 파티오를 만들면서 분수와 물을 연상시키는 녹색 타일을 깔고 싶었는데, 그 녹색은 탠지어에 있는 피에르 에르제 저택의 굴뚝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색을 만든 공예가의 부재로 결국 그 주택에 존재하는 여러 녹색을 결합한 느낌으로 타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뮤지엄에 거의 보석(파티오)을 끼워 넣는 과정이었다.

스튜디오 KO에서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항상 “무엇이 이 프로젝트가 여기 존재할 수밖에 없게 만들까?”를 자문한다. 이 뮤지엄은 주거 지역에 위치한다. 우리는 뮤지엄이 자랑스럽지만 겸손하고, 장엄하지만 개별적이길 원했다. 건물을 구성하는 테라코타, 타일, 대리석은 모두 모로코산이다. 덕분에 원래 이 뮤지엄이 도시에 존재한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뮤지엄 외에 마라케시에 방문했을 때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한다면?
무조건 마조렐 정원과 베르베르 뮤지엄. 우리는 영감을 얻기 위해 메디나 지역을 걸어 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베르베르 마을에 다다르는데, 허름하지만 품위가 배어 있는 곳이다. 또 메디나의 바자 마켓, 자크 가르시아가 디렉팅한 라 마무니아, 편집 매장인 차비 시크, 그랜드 카페 데 라 포스테랄지도 추천한다.

 

뮤지엄이 된 곡식 창고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Zeitz Museum o f Contemporary Art Africa
by Heatherwick Studio

노먼 포스터, 데이비드 치퍼필드, 자하 하디드의 명성을 잇는 영국의 건축가를 꼽을 때면 토머스 헤더윅이 빠지지 않는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런던의 헤더윅 스튜디오는 투명 아크릴 6만 개와 씨앗 25만 개로 만든 2010 상하이 엑스포의 영국관, 싱가포르의 러닝 허브, 뭄바이 사파이어 증류소 등 한눈에 봐도 실험적인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설계 기법을 반영한 프로젝트를 통해 동시대 기술과 예술이 집결된 건축을 선보여왔다. 자국의 공공시설물 프로젝트에서도 헤더윅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2 런던 올림픽 성화대,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비롯해 몇 년 전 리뉴얼한 런던의 상징, 빨간 2층 버스(레드 데커)도 모두 헤더윅의 작품이다. 현재 스튜디오에는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 180여 명이 상주하며, 이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외부 파트너들과 협업한다. 2017년 9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공개된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MOCAA)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술관으로, 헤더윅의 명성을 새삼 뜨겁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W Korea 그간 진행한 헤더윅의 프로젝트를 보면 재료와 요소의 결합을 반복해 완성한 하나의 유기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헤더윅 스튜디오 특정 스타일을 의도하거나 지향하지는 않는다. 어떤 설계 기법보다 인간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종종 그것이 전부일 때도 있다. 우리는 숙련된 발명가들이다. 특별하고 평범하지 않은 장소의 콘셉트와 구성에 대해 경청하고, 질문하고, 결과를 이끌어가며, 우리만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예산에 맞춰 건축물을 현실화하는 데 쓰인다.

헤더윅은 전 세계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에 어떤 매력을 느꼈나?
기존 구조물과 건물의 특이한 형태를 살려 설계할 수 있는 기회라 몹시 들떴다. 원래 곡물 저장 창고로 쓰였던 거다. 도시에 건물을 짓는다는 건 주변 구조와 상황, 환경과 협업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예 철거해버리는 것은 결코 도시가 진화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1921년에 세워진 곡물 저장 창고에 대한 경의를 담아 곡물 낱알에서 영감을 얻어 뮤지엄을 설계했다.

헤더윅의 건축물은 분명 압도적이다. 예산 역시 굉장할 것 같다.
이 뮤지엄의 예산은 2800만 파운드였다. 하지만 헤르초그 앤 드 뫼롱이 최근 완성한 런던 테이트 모던 확장 리뉴얼 공사의 예산보다 적다. 우리는 건물 외관 유리창의 지지대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해외 업체가 아닌 케이프타운 현지의 제조 공장과 협업하며 예산을 절감하기도 했다.

뮤지엄의 규모가 꽤 방대해 보인다.
상설과 기획전, 사진, 의류 관련 전시실은 물론, 공연장, 미디어 포럼 공간, 영구 소장품을 위한 공간, 도서관, 레스토랑, 조각 공원과 뮤지엄 숍으로 구성돼 있다. 뮤지엄과 붙어 있는 바로 옆 건물은 호텔이다.

기존 건물의 구조 자체가 워낙 독특했다.
빡빡하게 모여 있는 수십 개에 달한 콘크리트 튜브 형태를 유지하면서 예술적이면서도 뮤지엄의 용도에 맞게 설계해야 했다. 각 공간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건물을 사각형으로 얼린 아이스크림이라 생각한 뒤 반 스쿱 정도 떠내듯 둥글게 잘라냈고, 잘린 단면의 가장자리는 기존 건물과 차별화를 주기 위해 광택으로 처리했다.

케이프타운의 날씨, 토양 등 지역 기후의 특수성 때문에 특별히 고려한 점도 있나?
물론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프라를 고려해 ‘지속 가능성’에 집중했다. 미술품과 관람객을 위한 갤러리의 온도와 습도, 이를 유지하기 위한 공조 시스템과 전기까지. 지역의 공용 전기 설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케이프타운 인근의 해수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자가 발전기를 설치했고, 결과적으로 에너지 효율도 높일 수 있었다.

프로젝트 일정 탓에 케이프타운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것 같지만 혹시 이 도시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나?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의 자연을 대표하는 명소다. 우드스탁에 위치한 마켓 홀인 올드 비스킷 밀에 가면 뭘 먹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테스트 키친 같은 훌륭한 레스토랑과 푸드 트럭이 즐비하다. 뮤지엄이 위치한 워터 프런트 지역도 추천한다.

 

마이애미의 새 비전
마이애미 현대미술연구소
The Institute o f Contemporary Art Miami
by Aranguren + Gallegos

스페인 건축 스튜디오 아랑구렌 & 갈레고스(Aranguren + Gallegos)는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본 도형을 주재료 삼아 건물의 인상을 빚는다.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꼽히는 카라반첼 주택(Carabanchel Dwellings), 마드리드 드로잉 & 일러스트레이션의 메카인 ABC센터, 옛 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호텔 알칼라 데 에나레스(Parador for Tourism in Alcala de Henares)를 검색해보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한 ‘A&G’만의 스타일이 있다. 스튜디오의 두 축인 마리아 호세 아랑구렌 로페스와 호세 곤살레스 갈레고스의 뿌리는 마드리드 건축학교. 둘은 모두 이곳을 졸업하고, 프로젝트 교수로 일하면서 그들의 제자이기도 했던 10여 명의 동료와 함께 마드리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마이애미 디자인 지구에 들어선 마이애미 현대미술연구소(ICA 마이애미)는 2017년 11월 문을 열었다.

W Korea 미국에서의 첫 프로젝트였다고 들었다. 물리적인 거리와 업무 방식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나?
아랑구렌 & 갈레고스 원격을 활용한 의사소통은 언제나 어렵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도와준 현지 건축 스튜디오의 협력으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미국은 건설 시스템과 자재가 완전히 표준화돼 있어 향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애초에 완벽을 기해야 했다. 스페인은 그렇지 않다.

오피스, 레지던스, 공공시설과 달리 뮤지엄을 지을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나?
뮤지엄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안하는 곳이다. 작품과 전시의 의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들을 연결하는 모든 선을 통해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것이 ICA 마이애미가 스스로 콘텍스트로 작용하기를 목표로 하는 이유기도 하다. 작품을 읽고, 또 읽는 과정이 그것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인해 해석이 달라지고 향상되는 장소 말이다. 현대 미술 작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며 표현의 형식을 깨고 있고, 오늘날 우리 같은 건축 스튜디오가 제안하는 뮤지엄은 이러한 공간적, 개념적, 기술적, 실용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ICA 마이애미는 기존 연구소가 영구 이전하 면서 새롭게 건축된 프로젝트다.
이전에는 협소한 산업 창고 건물이어서 명색이 디자인 관련 기관이라고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지난 몇 년간 ICA 마이애미는 꾸준히 성장했고, 그 중요성 역시 부각됐다. 더 큰 공간, 제대로 된 문화 이벤트를 열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면 파사드 디자인에 가장 큰 힘을 준 듯하다.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뮤지엄의 정면, 즉 남쪽 파사드는 삼각형의 알루미늄판으로 추상적이면서도 급진적 이고, 풍부한 표현력을 느낄 수 있게 디자인했다. 알루미늄 조각들이 각각 ‘위대한 자석(Great Magnet)’이 되어 우리를 붙잡고 새로운 뮤지엄의 안으로 들어서도록 유혹하는 동시에 호기심, 불안, 쾌감을 일으키길 바랐다. 북쪽 파사드는 통유리창으로 설계해 자연 채광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뮤지엄 내부에 카페나 레스토랑이 없다고 들었다.
북쪽 입구의 식물에 둘러싸인 조각 정원이 카페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마이애미는 대표적인 휴양 도시다. 이곳의 날씨를 잘 안다면 굳이 카페가 내부에 필요하지 않음을 알 거라 생각한다. 조각 공원은 뮤지엄 건물이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덕분에 쾌적한 공기 속에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고루한 질문이지만, 현대 뮤지엄의 본질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작품과 예술 설치물을 보여주고, 보관하는 장소이자 도시적 레퍼런스로서 문화적 오브제가 되는 것. ICA 마이애미는 남미와 미국의 관문인 이 아방가르드한 도시를 재생시키는 변화의 엔진이 될 것이다.

언젠간 A&G의 스튜디오가 있는 마드리드도 방문하고 싶다. 그때 가볼 만한 장소를 추천한다면?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세라노의 커머셜 허브를 추천한다. 그보다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프라도 대로로 향하시길.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뮤지엄뿐만 아니라, 18세기에 완성된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기념물을 다수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