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 공간에 없는 것은 남자뿐이 아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 그래서 처할 위협도 없기에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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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적한 주택가에 여자 혼자 산다는 것.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여성 타깃의 강력 범죄 뉴스를 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계되고, 주변의 염려를 살 만한 일이다. 혼자 사는 많은 여성이 집을 계약할 때 조건 1순위로 삼는 건 바 로 ‘안전’일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남성들은 마치 잠재적 가해자로 몰린 것 같다며 서운함을 내비치곤 한다. 물론 모든 남자를 지시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여성의 불안에 동감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알며 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일상에서 애쓰는 남자도 많다. 하지만 그런 남성일지라도 여성 타깃 범죄의 기미나 전조는 결코 알아채기 힘들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유. 당신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공식적으로 남성이 입장할 수 없는 여성 전용 공간에서 마음 편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여성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 수요에 따라 여성 고객을 배려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여성 전용 공간은 좀 더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생기고, 또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여성 전용 ‘코리빙(Co-Living) 하우스’인 ‘커먼 타운’은 기존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보다 안전 강화와 삶의 질 향상 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입주자는 계약 시 재직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직증명서에서 필터링하는 것은 단 하나. 불법의 소지가 있는 직업인가의 여부다. 입주자들이 마치 회사의 채용 과정을 방불케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건 결국 안전감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인테리어는 서울에서 혼자 월세 내며 살면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수준으로 대단히 모던하고 깔끔하다. 공용 공간은 여느 카페나 다이닝 공간 못지않게, 그러면서도 개인 공간은 철저히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게. 같은 불안과 위협 속에 살아온 여성 개개인이 모여 서로 존중하고 때론 의지하는 일상이 커먼 타운에서는 가능해 보인다.

해외의 경우 여성 전용 공간의 확장과 성장이 더 급진적이다. ‘커리어를 쌓는 여성들의 홈베이스’를 표방하는 미국의 여성 전용 셰어 오피스인 ‘더 윙(Wing)’은 최근 워싱턴 DC에 4호점을 열었고,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에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연회비는 2350달러로 약 250만원 수준. 20세기 초 미국의 여성 사교 클럽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업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터의 당선을 위해 보다 견고한 여성 네트워크 구축을 희망하며 시작됐지만, 대선 과정과 결과를 보며 무례한 남성 권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자 목표를 전환했다. 현재 더 윙에는 남성 클라이언트도 출입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서 성업 중인 ‘고젝 샤리’는 창업자의 친언니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성추행을 당한 이후 이런 피해나 경험을 줄이고자 시작된 여성과 아이 전용 공유 교통(오토바이 및 택시) 서비스다. 현재 등록된 여성 운전사는 600여 명. 창업한 지 2년 만에 25개 도시에 진출했다. 이들은 우버나 그랩처럼 앱을 통해 고객과 접선해 아이를 학교에 통학시켜주고(인도네시아 부부 중 80%가 맞벌이다) 여성의 안심 귀가를 돕는다.

여성만을 위한 리조트도 문을 연다. 미국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크리스티나 로스(Kristina Roth)가 핀란드의 한 섬을 매입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빽빽한 나무 숲과 발틱해에 둘러싸인 섬의 풍광에 매료된 크리스티나는 남성의 시선이 휴식에 방해가 됐던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립스틱조차 바를 필요 없이 여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여성 전용 리조트 ‘슈퍼쉬(Supershe)’ 설립 계기를 밝혔다. 이미 세계 각국의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슈퍼쉬는 6월 공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화상 채팅 면접을 거쳐 멤버십제로 운영될 예정이고, 가격은 7박 기준 3500달러. 여성 전용 공간을 두고 역차별 주장을 펴는 남성들은 슈퍼쉬에도 이미 몇 차례 항의한 모양이다. 이에 슈퍼쉬는 “공식 개장 이후에 시간을 두고 신뢰할 만한 남성 고객을 받을지를 고려 중이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앞서 언급한 더 윙은 지난 3월 남성의 출입을 금지한 것을 두고 뉴욕시 인권위원회로부터 남성 인권을 침해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뉴욕시 인권법이 ‘대부분의 비공개 클럽을 포함한 공공시설 제공 사업체’가 고객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라고.

양재동에 국내 첫 여성 전용 당구장을 오픈한 블루오션당구 클럽의 유성모 대표 역시 남성들에게 종종 항의를 받았다. “설득을 한다. 남성들은 여기 아니어도 주변에 갈 만한 당구장이 여럿 있지 않느냐고. 여긴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시도하는 곳이니 양해해달라면서.” 그래도 커먼 타운, 더 윙, 고젝 샤리, 슈퍼쉬에 비하면 이곳은 남성에게 훨씬 열린 공간이다. 별도의 면접도 필요 없고 여성과 동행한다는 전제하에 입장하고 게임도 할 수 있다. 과연 남성들이 이곳에서 당구를 치고 싶어 할 정도로, 그간의 당구장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쾌적했다. 유성모 대표는 여성 전용 공간이 하나의 블루오션 아이템이 된 듯하다면서, 다만 업종을 즐기는 여성의 성향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조언한다. “사실 지속 가능성 면에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당구장은 수익을 내려면 새벽까지 영업해야 하는데, 여성들이 밤늦도록 당구를 치지는 않더라. 단골들은 정 그렇다면 남성 고객도 받으라고 말하지만 본래 의도가 훼손되는 게 싫어 고민 중이다.” 그는 양재동 공간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강남역에 수익을 위한 직장인 대상의 당구장을 또 하나 준비 중이다.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만큼, 로고나 인테리어의 감성적 매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4년 싱가포르 최초로 문을 연 여성 전용 셰어 오피스인 울프 웍스(Woolf Works)는 지난 4월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한 달 이용료는 최소 200달러이며, 지정 좌석을 원할 경우 600달러를 내야 하는데, 사진상으로 엿본 울프 웍스는 생활 공간과 단절됐다는 것 외에 공간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와 휴식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아시아 시장은 여성 전용, 공유 오피스 같은 아이템이 아직 신생 사업으로 인식돼 그만큼 손익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둘 것.

여성 전용 공간 관련 시장이 이제 막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 시장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는 모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익명을 요청한 관계자는 “결국은 여성이 불편함도, 위협도 느끼지 않을 모두의 공간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라고 조심스레 답해왔다. 늦은 밤 귀가하거나 짐이 많은 여성을 위한 핑크선 주차 공간에 버젓이 차를 대는 남성들이 확연히 줄어들고, 지하철 여성 전용 칸을 역차별이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왜 이런 제도가 생겼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남성이 늘어난다면, 그의 말처럼 이상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요원한 미래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