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카츠가 거대한 화폭에 남긴 인물은 만화처럼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은 대상의 인상을 충분히 담아낸다. 20세기 중반부터 새로운 사실주의 화풍을 이끈 이후 90대에 접어든 지금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 그가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알렉스 카츠.

알렉스 카츠.

알렉스 카츠를 이야기할 때면 현대 초상회화의 대가보다는 선구자라는 말을 앞에 놓고 싶다. 그는 탁월한 역사가 쌓인 ‘결과’로서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스타일을 열어젖힌 ‘시작’으로 그를 계속 기억하는 것이 여전히 젊은 이 화가에게 더 어울린다. 1927년생인 그는 왕성하게 전시회를 연다. 주로 초상화를 그리되 대상의 세밀한 부분은 생략하고, 한 순간을 캡처한 듯 특징을 포착하여 단순하고도 우아하게 그린 그림. 그는 정보를 전달하는 초상화보다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는 초상화를 시도한 인물이다. 뉴욕에서 팝아트와 광고 속 현란한 색채가 시각을 교란하던 시절, 카츠는 자신만의 ‘클로즈업’으로 누군가를 화폭에 옮겼다. 옷의 휘날리는 선이나 액세서리를 통해서도 개성과 인상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본 카츠만의 양식은 그 시대에 파격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다. 그가 바니스 뉴욕의 쇼윈도에 그림을 그리거나 H&M 같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파격이 현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알렉스 카츠의 회고록을 보면 ‘감정적으로 유대 관계가 있는 사람을 그리면서 내 그림의 스타일이 견고해지길 바랐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대상에 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자신이 안정적으로 반복해서 탐구할 수 있는 뮤즈를 원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바로 아내인 아다(Ada)였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그린다. 수십 년에 걸쳐 한 뮤즈를 붙드는 게 지속 가능했던 저명한 작가가 또 있던가? 알렉스 카츠는 앤디 워홀보다도 한 해 먼저 태어난 자다. ‘동시대’라고 포괄적으로 말하기엔 여러 시기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활동하는 카츠이기에, ‘이 시대’에 우리는 거의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뮤즈를 담아내는 화가 하나를 둔 셈이다. 미술 평론가들이 높게 사는 점 중 하나도 그 새로운 재생산이다. 알렉스 카츠의 작업실 풍경과 참고 이미지를 요청하자 그는 수십 장의 사진을 <더블유>로 보내왔다. 소중한 가족 앨범을 넘기며 추억을 꺼내듯, 1970~80년대에 촬영한 부부의 한때를 소개하면서. 그는 서울 전시를 준비하며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를 질투했을걸?”

알렉스 카츠의 <아름다운 그대에게>전이 4월 25일부터 7월 23일까지 잠실에 있는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최신작을 포함한 회화와 더불어 설치물, 판화 등 70여 점이 공개된다. 대형 캔버스가 특징인 그의 회화를 마주하면 클로즈업된 대상이 눈앞에 확대된 채 다가오는 듯 압도적일 것이다. <더블유>는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을 앞둔 카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막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였다.

 


 

<Wkorea>바로 얼마 전까지 여행을 다녔다고 들었다.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냈나?
ALEX KATZ 미국의 한 신문사와 관련된 일이 있어 잠시 로마에 머물렀다. 테르미니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숙박하며 인근 갤러리들을 방문했다. 도시적인 삶의 중심인 뉴욕 에 살다가 오랜만에 역사적인 것들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에 있으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 단절된 느낌이 너무 좋았다.

곧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신작 여러 점이 공개된다. 사람 기분과 컨디션이 매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신작을 작업하는 기간 동안 당신의 주된 감정이나 상태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캘빈 클라인 시리즈, 로라 시리즈, 코카콜라 걸 시리즈는 작년에 작업한 것들이다.

Alex Katz, Coca-Cola Girl 3, 2017 Oil on linen 127 x 101 cm (50 × 40 in) ©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Alex Katz, Coca-Cola Girl 3, 2017
Oil on linen
127 x 101 cm (50 × 40 in)
©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Alex Katz, Laura 15, 2017 Oil on linen 121,9 x 121,9 cm (48 x 48 in)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Alex Katz, Laura 15, 2017
Oil on linen
121,9 x 121,9 cm (48 x 48 in)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사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작품에 큰 감정을 싣지 않는다. 늘 그림과 어느 정도 심리적인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래야 거대한 캔버스를 채우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란 그럴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캘빈 클라인 시리즈의 경우 우연히 택시 뒷좌석에서 본 광고에 깊은 인상을 받아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블랙 앤 화이트의 배합에 매료됐다. 좀 이상하지만, 감동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캘빈 클라인을 아는 지인이 그에게 내 이야기를 했고, 브랜드에서 나에게 몇 번 속옷을 보냈다. 캘빈 클라인 씨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에세이를 써주기도 하고. 그와 나는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적인 결과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잘 통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 걸 시리즈는 붉은색 컨버터블을 타는 금발 여성을 그린 작품인데, 이 시리즈는 아직까지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작업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말을 탄 폴란드인 기수’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 이 시리즈를 통해 미국의 판타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렘브란트가 17세기의 판타지를 그렸다면, 나는 20세기 미국의 판타지를 그린 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물론 접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의 작품 중엔 대상의 주변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것처럼 일부 형태만 클로즈업한 채로 캔버스에 구현한 것들이 있다. 사진으로 치면 카메라의 줌을 많이 당겨 포착한 상태 말이다. 처음에 이런 식의 그림을 시도한 이유가 뭔가?
나는 대중매체, 사진, 광고, 영화의 클로즈업 샷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거주하는 뉴욕은 1960년대부터 예술과 대중매체의 중심지였다. 자연스럽게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이미지에 노출되면서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숙고하게 됐다. 한 가지 색채로 캔버스의 배경을 채우고,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방식처럼 클로즈업된 상태로 인물을 배치하면 그 대상의 전체를 캔버스에 옮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탄생한다. 또 관람객이 예상치 못하게 잘리거나 클로즈업된 인물을 마주하면 작품을 보는 집중도도 높아진다. 다년간 그런 작업을 했고, 지금도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당신의 그림은 광고나 카툰 같은 미디어와 함께 자주 거론된다. 1960~70년대는 신문물이 쏟아지면서 회화보다 TV나 사진을 통한 광고가 색다르게 어필하던 시절이지만, 그것을 회화 버전으로, 특히 당신만의 뷰로 접할때 의 느낌은 또 다르다. 그릴 대상을 포착하는 당신의 기준은 뭔가?
모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의 유무.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모델로 고용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던 데, 사실 ‘외모가 돋보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그리고자 하는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람, 혹은 그 상황에 위치한 사람을 그린다. 나는 애초부터 광고 중에서도 광고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은 모두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다. 모델과 작업할 때면 사진으로 그 사람을 촬영하고, 나중에 홀로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완성할 때 모델 없이 사진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 속의 색은 실제 색과는 다르다. 그래서 색상을 마무리할 때는 최대한 밝은 빛 아래서 한다. 풍경화 작업은 자연광 아래에서 하는 것을 선호하고.

당신이 가장 많이 작업한 대상은 바로 아내 아닌가? 오랜 세월 아내를 그렸고 여전히 그리고 있다. 그건 보통의 남편이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아내의 얼굴을 응시하고 관찰했다는 뜻이다. 아내를 모델로 삼을 때면 그림에 감정이 좀 더 실리기도 하나?

Alex Katz, Ada, 2012 Oil on linen 244 x 305 cm (96 × 120 in)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Alex Katz, Ada, 2012
Oil on linen
244 x 305 cm (96 × 120 in)
©Alex Katz, VAGA, New York/SACK, Korea 2018

아다는 완벽한 모델이자 나의 뮤즈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아다를 그리면서 늘 새로운 모습의 아다를 표현하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품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모델과 어느 정도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아다라고 해서 그 점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아내 말이, 내가 그녀를 처음 그릴 때 긴 시간 아주 집중해서 마치 노려보듯이 자길 관찰했다고 하더라. 그때 아내가 조금은 두려운 감정마저 들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오랜 시간 주의 깊게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아내도 모델 역할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뚫어져라 쳐다봐도 편안하고 익숙해하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웃음).

미술과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볼 때,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 뉴욕은 어떤 도시라고 느끼나?
1950년대 뉴욕은 단연 예술계와 서양 미술의 중심이었지. 소호의 많은 갤러리에서 유명 화가의 전시를 유치했다. 그러나 그 동네의 임대비와 생활비가 상승하면서 작가들이 좀 더 저렴한 지역을 찾아 떠났다. 요즘 소호의 갤러리들은 사진전, 판화전 등 소소한 전시는 개최하지만 이전과 같은 유명 작가의 전시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대신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등의 미술대학에서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곳의 커리큘럼이 괜찮은 것 같더라. 어쨌든 이전과 달리 뉴욕은 예술가를 독점하는 도시가 아니라고 본다.

과거 인터뷰에서 지나가듯이 이런 말을 했다. 미대 재학 시 야외 풍경화 수업을 통해 ‘내 삶을 회화에 바쳐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고. 그 운명적인 계기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삶을 바칠 뭔가를 찾는 경험은 꼭 미술학도들뿐 아니라 청춘에게도 인상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맨해튼에 있는 쿠퍼 유니언 미대를 다니다가, 졸업을 앞두고 메인주에 있는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다소 학구적인 쿠퍼 유니언과 달리 스코히건은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야외에서 수업을 많이 했다. 자연광 아래에 거대한 캔버스를 두고 빠르게 채색해가며 그림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이런 방식의 작업이 나와 잘 맞았나 보다. 이전에는 드로잉, 카툰 등의 기초 작업을 많이 한 후 유화 작업을 진행했는데, 스코히건에서는 그러한 준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캔버스에 채색을 했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 물감 층 위에 또다른 물감을 덧칠하면서 말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그렸는데, 그렇게 하려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머릿 속에 미리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큰 캔버스에 그릴 때는 어느 정도 면밀한 계획도 필요하지만.

알렉스 카츠.

알렉스 카츠.

알렉스 카츠를 논하는 사람들은 ‘스타일’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 그건 물론 멋이라기보다는 회화 양식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당신 작품은 패셔너블한 회화다. 패션 스타일에는 신경을 쓰는 사람인가? 가장 자주 손길이 가는 의상이 있다거나.
내가 작품을 표현할 때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이 스타일이다. 외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나만의 양식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식의 초상화에 관심을 갖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왜 모든 걸 그림으로 말하려고 하나? 사실 사람의 얼굴과 스타일만 봐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얼굴에 그가 살아온 삶이 이미 배어 있고, 스타일에서 그 사람의 개성이 다 표현되기 때문이다. 즐겨 입는 옷에 대해 물었는데 적절한 대답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30대에 술자리를 줄이고 담배도 끊었다고 알고 있다. 대신 운동을 시작했다고? 당신이 오랫동안 왕성하게 작업하는 비결은 체력인가?
일반적으로, 사람은 몸이 비둔해지면 그만큼 두뇌 회전도 안 되는 법이다. 소화도 안 되고 기분도 안 좋고. 나는 일찍이 몸과 두뇌의 연관성을 알았던 것 같다. 조깅과 수영을 즐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조깅하러 나간다. 아, 여름이면 뉴욕을 떠나 미국 북동쪽에 있는 메인주에 가서 머무른다. 거기에도 집과 스튜디오를 마련해놨는데, 근방에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서 수영하는 내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당신의 그림에서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뭘까?
사람들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하지.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림을 예로 들자면 지금은 패셔너블한 그림, 패션을 소재로 한 그림이 흔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그런 작업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림은 진지한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시대는 늘 변하고, 영원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시절에도 패션을 소재로 한 작품에 도전했다. 변화하는 시대와 내 작품이 잘 들어맞았지. 다시 말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모든 건 변한다. 그게 바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