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수영장’이 나오는 이탈리아 영화 두 편에서 발견한 근사한 스타일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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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이탤리언 시네아티스트 루카 구아다니노의 ‘사랑과 욕망’ 삼부작인 것을 알기 전에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스틸컷 한 장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미국적 성향이 두드러진 건장한 남자와 정반대 인상의 앳된 소년이 유럽의 작은 마을 어딘가에 앉아 느긋하게 독서를 하는 장면. 패션에 관심 있는 이라면 레이밴의 가장 클래식한 모델 오리지널 웨이페어러를 쓴 소년의 라코스테 폴로 셔츠와 낡은 청바지, 손목의 카시오 시계를 눈여겨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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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눅진한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스타일은 두 남남 주인공이 타는 묘한 감정선만큼이나 시선이 갔다. 1983년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퀴어 영화는 패션이 주가 아님에도 주인공들의 패션에 살펴볼 구석이 많다. 영화 의상은 루카 감독의 전작 <비거 스플래쉬>로 이미 합을 맞춘 바 있는 줄리아 피에르산티(Giulia Piersanti)의 솜씨인데, 8090 아이템들에게서 세련된 기운이 느껴진 건 아마도 그녀가 셀린의 니트 디자이너이기 때문일 터(이미 발렌시아가, 디올 옴므, 미쏘니를 거친 그녀다). LA와 로마를 오가며 자란 그녀는 자신의 가족 사진을 비롯해 당시 패션 잡지와 영화, 실제 촬영지 이탈리아 크레마 사람들의 가족 사진을 참고하는 등 리서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엘리오의 베네통풍 배낭, 줄무늬 티셔츠, 올리버의 컨버스 척테일러는 80년대 클리셰에 갇히지 않으려는 그녀의 멋진 의도. 튀는 감 없는 이런 아이템은 지금 당장 저걸 입고 이탈리아 햇살을 즐기고 싶은 기분으로 이끈다.

a bigger splash
전작 <비거 스플래쉬> 속 틸다 스윈턴이 입은 것은 30, 40대 여성의 공감을 더 얻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지 판텔레리아섬의 시로코 바람이 휘젓는 디올의 흰색 치맛자락과 라피아 모자, 마을 축제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크림색 점프슈트 차림 등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한 더없이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옷은 영화에 시각적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뜨거운 열기 같은 여름의 감각이 그리워진다. 이제 곧 여름이 와서일까.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는 단순한 취향답게 도시의 거추장스러움은 덜고, 쉽게 입었다 벗을 수 있는 것들로 트렁크를 채울 것이다. 여행은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조금씩 변하고, 스타일도 변화를 겪는다. 여름과 스타일과 여행 사이에는 그렇게 미묘한 상호작용이 있다. 근사한 스타일을 빌려 여름에 보내는 연서. 사랑이 충만한 영화처럼 나의 여름에도, 당신의 여름에도 무언가 찾아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