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사랑받은 것들

이채민

2005년 데뷔해 13년간 꾸준히 인정받고 있는 영화, 음악, 드라마, 공간, 인물, 제품을 추렸다. 마치 더블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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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계천 복원 사업 완결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한 고가도로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에서 비롯된 시대의 유물이었다. 그래서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 공공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그 기능마저 다했는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서울시는 시내 곳곳의 고가도로의 안정성 문제, 도심 환경 개선의 이유를 들며 바삐 철거 작업에 들어갔고, 그중 청계 고가도로는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영원히 자취를 감췄다. 공사에 들어간 이후에도 청계천은 자주 들썩였다. 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되어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복원 사업 중단을 요구해 실제로 공사를 멈추기도 했던 반면, 베니스국제건축비엔날레에서 최우수 시행자상을 받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2015년 뉴스에 따르면, 1년 중 시민들이 청계천을 가장 많이 찾는 때는 10월이라고.

2 영화 <달콤한 인생> 개봉 송강호 주연
<밀정>을 성공시키고 강동원, 정우성 주연 <인랑>의 개봉을 앞둔 김지운 감독의 명작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반칙왕>을 두고 고민하다 결국 이 영화를 선택하곤 한다. 조폭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는 몇 번이고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영화가 커리어 하이였음을 확신케 하는 이병헌의 연기뿐 아니라 러시아어를 하는 오달수의 해괴한 코미디,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김영철의 명대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조연이었던 황정민이 칼을 휘두르고는 “인생은 고통이야” 하고 잠언을 던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아직 김지운 감독의 최고작은 <달콤한 인생>일 것이다. 아, 하나 더. “나한테 왜 그랬어요?”

3 무한도전 첫 방송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도전>은 2005년 4월 23일 첫 방송을 송출했다. <무한도전>을 만든 멤버를 꼽자면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정형돈, 노홍철, 전진, 황광희가 떠오른다. 이후 전진과 황광희는 병역 의무로, 정형돈은 건강 문제로, 노홍철은 음주운전 이슈로 하차했고, 현재 양세형과 조세호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예능 초기의 ‘리얼 버라이어티’이기도 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건 멤버들의 끈끈한 유대,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는 동네 바보 형들의 상징성을 넘어, 대중문화 패러디는 물론 스포츠, 직장생활, 예술 창작에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접근 때문이리라. 3월 개편을 앞두고 김태호 PD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고 있어 2018년 <무한도전>에 또 다른 변화가 예상된다.

4 세 장의 음반
2005년 첫 싱글 ‘Pon De Replay’를 발표했을 때 13년 후의 리한나를 예상한 사람들은 얼마나 됐을까. 리한나는 이후 14번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는데, 21세기 들어 그보다 많은 1위를 기록한 아티스트나 밴드는 없다. 팝 음악의 변방인 카리브해 바베이도스 출신의 이 아티스트는 마돈나 이후 가장 높은 음반 판매 기록을 세운 여성 싱어로 팝 역사를 새로 썼다. ‘존 전설’, 존 레전드의 ‘Ordinary People’ 역시 13년 된 노래. 사소한 일로 웃고 다투는 평범한 연인 관계를 그린 가사가 드라마틱한 그의 목소리와 멜로디에 담겨 전달된다. 전 세계 연인들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듣는 대표적 ‘로맨스 송’. 3월 올림픽공원에서 그의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다. 국내에는 2005년 발매된 밴드 W의 2집 ‘Where The Story Ends’가 있다. 테크노와 모던록이 적절하게 분배된 이 음반에서 가장 히트한 곡은 ‘Shocking Pink Rose’. 차분하게 끓어오르는 ‘Highway Star’나 ‘은하철도의 밤’도 13년 전 곡이란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무드와 템포로 구성돼 있다.

5 배우 김옥빈, 설리 데뷔
2000년대 초반을 휩쓴 ‘얼짱 신드롬’은 하두리만큼이나 향수를 부르는 단어가 됐지만 당시 열풍 속에 등장한 김옥빈은 현재 한국 영화의 지형도에서 중요한 연기자로 성장했다. <박쥐>와 <악녀>라는 양극단의 장르 영화로 칸 영화제에 진출, 연기력은 이미 검증받은 상태. 액션부터 심리적 묘사가 필요한 드라마까지 수많은 영화의 기획서 안에 김옥빈의 이름이 빛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직 연기자로서는 ‘미완의 대기’인 설리 역시 2005년 드라마 <서동요>의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아역에서 아이돌로, 그리고 연기자로 커리어의 방향을 틀어온 설리는 ‘화제의 작품’ <리얼>에서 희생된 감이 있으나 여전히 팬과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6 슬기와 민 국내 데뷔
그래픽 디자인 듀오 슬기와 민이 공동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2년 무렵. 2005년은 이들이 네덜란드에서의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해다. 첫 작업은 ‘국제현대무용제’인 모다페의 포스터였고, 2006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첫 전시를 열었는데, 이 전시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홈페이지(sulkimin.com)에서 보면 알 수 있듯, 편견을 지우고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능숙한 이들은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이고 편집자이면서 (스펙터 프레스, 작업실 유령의) 발행인기도 하다. 최성민은 김형진 워크룸 프레스 대표와 함께 <2005~2015, 그래픽 디자인>을 기획하기도 했다. 슬기와 민에게도 안 해본,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남아 있을까? 월간 <디자인> 2017년 5월 인터뷰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사이니지와 음악 관련 브랜딩이라고.

7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개봉
처음에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건 부정적인 이슈 때문이었다. 부대 내부 촬영 협조를 위해 국방부에 가짜 시나리오를 전달하고는 군 생활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를 졸업 작품으로 찍은 어느 영화과 학부생의 스캔들. 하지만 영화는 이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고,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대되기도 했다. 이 영화로 신인상을 받고 주연급 연기자로 성장한 김성훈은 하정우라는 예명으로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로 우뚝 섰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개봉 이후부터 지금까지 ‘군대 가기 전 꼭 봐야 하는 영화’ 중 단연 최고로 꼽힌다.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 대학생 감독 윤종빈은 <범죄와의 전쟁>을 거쳐 황정민 주연 <공작>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8 붕가붕가레코드 설립
불경스러운 레이블 명칭에 비해 그들의 활동은 창대했다. 소속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인디로 시작해 메이저에 진출한 케이스 중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장기하와얼굴들, 잊히지 않는 멜로디로 무장한 브로콜리너마저, 라틴을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하는 데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블루스를 인디화한 씨없는수박 김대중이나 이미 시작부터 장르를 뛰어넘은 독특한 보이스 컬러의 소유자 김일두는 물론 뉴웨이브를 끌어안은 모던 록 눈뜨고코베인이며 최근의 새소년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곰사장’ 고건혁 대표가 설립 초기부터 섭외한 그래픽 디자이너 김기조.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로고와 음반 디자인 덕분에 붕가붕가레코드는 초기부터 디자인 신에서도 주목하는 레이블이 될 수 있었다.

9 화요 25도, 41도 출시
증류식 전통 소주로 알려진 화요는 희석식 소주인 초록병과 따로 또 같이 국내 주류 시장에서 성장해왔다. 25도는 일본의 쇼추, 41도는 보드카, 2010년 출시된 17도는 일본의 사케, 오크통에 숙성시킨 엑스프리미엄은 위스키와 경쟁한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전 세계 어떤 주류도 국내 초록병의 장벽은 뚫을 수 없다는 업계의 불문율 속에서 그저 고급 전통 소주를 판다기보다는 한식 문화의 고급화, 그리고 세계화를 목표로 제품을 출시해왔다. 2년 연속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가온과 1스타 레스토랑 비채나를 운영하는 것도 모두 그 일환. 지난 2월에는 명절을 겨냥해 프리미엄 생막걸리를 한정판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의 독보적 존재였던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위협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10 드라마 세 편
김선아, 현빈 주연의 <내 이름은 김삼순>은 30대 직업 여성의 사랑을 다룬 현실 밀착형 드라마였지만 특유의 유머와 절묘한 인간관계가 뼈대를 형성하면서 최고 시청률 50%를 기록했다. 시청자들과의 공감 형성이라는 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은 여전히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고, 연애와 인간관계에 애로사항을 겪는 이에게 조언 주듯 권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같은 해 등장한 <건빵선생과 별사탕>은 공효진과 공유라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인기가 높아지는 연기자의 등장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당시의 주연 배우들이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지 살펴보면 이 드라마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뱀파이어 가족이라는 독특한 설정, 기묘한 유머 감각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위트로 오랫동안 그 진가가 변하지 않는 콘텐츠로 남아 있다. 시즌 1, 2를 집필한 고 신정구 작가는 더블유 초기에 고정 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1 작가 주호민 데뷔
주호민은 자신의 군대 생활을 바탕으로 그린 자전적 군대 만화 <짬>으로 데뷔했다. 이후 내놓은 <무한동력>, <신과 함께>가 연이어 호평을 받으며 강풀, 윤태호 등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만화가’로 부상했다. 네티즌들에게는 ‘파괴왕’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그가 ‘성지순례’를 다녀온 청와대는 곧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파괴왕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도 했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역대 한국 만화 원작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으며, 8월엔 속편 <신과 함께-인과 연>이 개봉할 예정. 이말년, 기안84와 더불어 웹툰 만화가가 하나의 캐릭터로 소비되는 시대적 현상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12 유튜브 창업
2005년, 동물원에서 찍은 18초짜리 영상을 업로드하며 보잘것없이 출발한 동영상 사이트는 곧 구글이 인수했고, 디지털 시대 인류의 문화유산이 됐다. 물론 유튜브는 지나간 역사의 아카이빙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가 탄생한 무렵 태어난 디지털 키즈들은 책과 TV 대신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재생하며 성장했다. 이들은 이제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을 달고 유튜브에서 경제 활동을 하거나 쇼핑을 하고 텍스트 대신 유튜브 링크를 주고받으며 또래와 소통한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기록할 수많은 크리에이터야말로 유튜브의 가장 큰 수익 모델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신정원
아트워크
최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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