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매혹적인 저항

이채민

매혹적인 신세계를 펼치고 있는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 그의 뜨거운 영혼을 담은 컬렉션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저항 행위로서의 패션 스피릿을 설파한다.

2018S/S 시즌, 새로운 구찌 컬렉션을 두 번이나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한 번은 지난 9월, 밀란 패션위크 기간에 펼쳐진 봄/여름 시즌의 구찌 남녀 통합 쇼로 자욱한 연기 아래 등장한 매력적인 괴짜들의 조합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12월, 싱가포르에서 선보인 구찌 S/S 아시아 프레젠테이션 현장.

지난 12월, 싱가포르에서 선보인 구찌 S/S 아시아 프레젠테이션 현장.

그 후 싱가포르의 역사적 명소인 ‘아트 하우스’에서 펼쳐진 아시아 프레스 프레젠테이션에서 다시 만났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추구하는 개성 넘치는 미학을 좀 더 찬찬히 마주할 수 있는 황홀한 기회였다. 예전 싱가포르 의사당 건물이었던 아트 하우스라 불리는 ‘하우스 오브 팀버’는 지난 11년간 각종 전시와 문화 예술 공연을 열어온 곳이다. 구찌 컬렉션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이곳을 택한 건 지극히 미켈레다웠다. 특히 새로운 시즌의 대표적인 컬러 팔레트와 풍부한 프린트를 활용해 마치 밀란의 쇼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창의적인 감각과 동시대적 감성을 담아낸 디스플레이는압도적이었다.

미켈레는 지난 9월 밀란 패션쇼에서 선보인 컬렉션의 모든 결과물이 ‘저항 행위로서의 창작 행위(The Act of Creation as an Act of Resistance)’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 사회의 관습적인 유행을 거부하고 개개인의 개성과 가치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 컬렉션이라는 의미심장한 선언이었다. 한 시즌 내 여러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확장된 컬렉션을 선보여 그 의미를 부각시킨 점도 눈길을 끌었다.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친분이 있는 팝 뮤지션 엘튼 존의 이니셜을 더한 룩.

구찌의 수장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친분이 있는 팝 뮤지션 엘튼 존의 이니셜을 더한 룩.

프랑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레테(Natalie Lete), 스페인 출신 세르지오 모라(Sergio Mora), 일본 작가 유코 히구치(Yuko Higuchi)와 함께한 다양한 프린트 작업을 비롯해 세계적인 뮤지션 엘튼 존(Elton John)과도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해 컬렉션 내 스페셜 라인으로 출시했다.

레트로 무드가 깃든 여성 컬렉션과 디즈니 캐릭터를 모티프로 한 남성 컬렉션을 착용한 모델들. 구찌는 지난해부터 밀란 패션위크 기간 동안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레트로 무드가 깃든 여성 컬렉션과 디즈니 캐릭터를 모티프로 한 남성 컬렉션을 착용한 모델들. 구찌는 지난해부터 밀란 패션위크 기간 동안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공주와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의 벅스 버니 캐릭터, 일본의 대표적인 아케이드 게임 개발사인 세가(Sega)의 로고 폰트까지…. 미켈레는 어떤 한계도 두지 않은 채, 문화와 예술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대상에서 영감을 받은 위트 넘치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지난 세기, 펑크와 미니멀리즘, 아방가르드 등 시대 정신으로 무장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구찌의 미켈레는 패션 스피릿이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지금, 홀연 등장해 패션에 심드렁해진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요동치게 했다. 자신에게 창작은 일종의 시적 행위라고 표현한 그. 절박함, 환영, 갈망이 뒤섞인 채 분출만 기다리는, 마치 화산 중심부의 분화 과정과 같다는 그의 창작의 정수는 기존 전통의 껍데기를 깨고, 견고해 보인 전통의 본질을 전복하고, 그걸 신선하게 트위스트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런 관점에서 그에게 창작은 일종의 ‘저항 행위’다.

경계를 허문 다채로운 영감을 통해 편견과 상식에 저항하는 구찌의 매혹적인 2018 S/S 컬렉션 백스테이지.

경계를 허문 다채로운 영감을 통해 편견과 상식에 저항하는 구찌의 매혹적인 2018 S/S 컬렉션 백스테이지.

이번구찌 2018 S/S 컬렉션은 특히 창작을 위한 저항 활동에 집중했다. 미켈레는이를 우리가 놓치고 있지만 새롭게 쟁취할 수 있으며, 이미 존재하는 대상에 도전하는 반란이라고도 설명했다. 그의 유쾌한 반란을 지지하는 이들이 열광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우리 눈앞에 마치 심령술사의 환영처럼, 무수히 많은 과거에 존재한 일상적인 단서와 그것을 새롭게 트위스트한 매혹적인 저항 정신을 적절히 양념한 성찬을 준비했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여행하는 듯, 패션 스피릿의 교감을 통해 정신적인 유대감까지 경험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놓은 것이다.

싱가포르의 아트 하우스에서 선보인 구찌 S/S 프레젠테이션 현장. 드라마틱한 울트라 바이올렛 색상의 메탈릭 시퀸 장식 드레스가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의 아트 하우스에서 선보인 구찌 S/S 프레젠테이션 현장. 드라마틱한 울트라 바이올렛 색상의 메탈릭 시퀸 장식 드레스가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의 구찌 S/S 시즌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다가서자 가장 먼저 아름다운 보랏빛의 환상적인 이브닝 가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시즌, 팬톤에서 발표한 가장 주목받는 색상인 ‘울트라 바이올렛’을 입은 채로. 나아가 S/S 시즌 여성 컬렉션에는 스포티한 점퍼를 매치한 동시대적인 스타일링을 엿볼 수 있었다.한편 마크라메(장식 끈으로 매듭을 만들거나 엮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 레이스로 이루어진 GG 로고 패턴, 스팽글과 비즈, 페이크 퍼, 새틴 실크 등 더욱 풍성해진 소재로 장식적인 완성미를 갖춘 다양한 아이템도 눈에 띄었다.

비디오게임 회사인 세가의 로고 폰트를 차용한 위트 있는 ‘Guccy’ 백.

비디오게임 회사인 세가의 로고 폰트를 차용한 위트 있는 ‘Guccy’ 백.

양쪽 버클이 서로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된 샌들, 세가 폰트를 적용해 이니셜 마지막 글자를 교묘하게 재조합한 새로운 ‘Guccy’ 백은 미켈레가 언급한 전통의 전복을 위트 있게 전했다.

엘튼 존의 앨범 재킷을 본뜬 프린트 숄더백.

엘튼 존의 앨범 재킷을 본뜬 프린트 숄더백.

또 엘튼 존의 앨범 재킷에서 영감을 얻은 독창적인 프린트의 큼직한 숄더백은 팝아트적인 기운을 느끼게 했으며, 기존의 레트로 구찌 백에서 보이던 패턴을 재해석한 뉴 백들 역시 과거를 새롭게 복원하려는 미켈레의 저항 정신을 잘 담아냈다.

GG 로고를 화려하게 재해석한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로맨틱한 판타지가 담긴 티아라.

GG 로고를 화려하게 재해석한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로맨틱한 판타지가 담긴 티아라.

GG 로고를 화려하게 재해석한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로맨틱한 판타지가 담긴 티아라.

GG 로고를 화려하게 재해석한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로맨틱한 판타지가 담긴 티아라.

그뿐 아니라 구찌 로고를 형상화한 크리스털 장식 귀고리와 헤어핀, 티아라, 동물 모티프의 개성 넘치는 반지, 퓨처리즘이 담긴 선글라스 등 다양한 액세서리에도 레트로 무드와 동시대적인 감각을 근사하게 조합해냈다.

관습에 저항하는 미켈레의 독창적인 심미안이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돋보인다.

관습에 저항하는 미켈레의 독창적인 심미안이 느껴지는 스타일링이 돋보인다.

 스포티즘과 쿠튀르의 경계를 허문 여성 룩. 그리고 티아라를 목걸이로 활용하고 디즈니 캐릭터를 차용한 남성 룩에 국적, 시대, 성의 경계를 허문 미켈레식 접근이 담겼다.

스포티즘과 쿠튀르의 경계를 허문 여성 룩. 그리고 티아라를 목걸이로 활용하고 디즈니 캐릭터를 차용한 남성 룩에 국적, 시대, 성의 경계를 허문 미켈레식 접근이 담겼다.

구찌의 S/S 시즌 남성 컬렉션은 긴 기장, 동그란 라펠, 팝 컬러, 벨벳 소재 등이 두드러진 앙상블로 다시 한번 미켈레 특유의 심미안을 느끼게 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레트로 감성을 두루 담은 클래식함과 저항 정신을 재해석한 테일러링 룩으로 가득했다. 또 스포츠 웨어와 믹스한 포멀 웨어, 재킷에 극도로 짧은 쇼츠를 매치하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스타일링도 돋보였다.

클래식 백의 요소를 차용해 새롭게 선보인 S/S 시즌 숄더백.

클래식 백의 요소를 차용해 새롭게 선보인 S/S 시즌 숄더백.

비디오게임 회사인 세가의 로고 폰트를 차용한 위트 있는 ‘Guccy’ 백.

지난 시즌부터 여성 컬렉션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벨트 백’을 남성 버전의 라지 사이즈로 선보였으며, 바이닐 레코드 모티프나 빈티지 GG 로고 디테일을 더한 큼직한 토트백, 책에서 영감을 받은 세가 폰트가 프린트된 구찌 포트폴리오 백 등 유머를 장착한 제품도 눈에 띄었다.

 ‘Spiritismo’라는 신조어를 통해 패션의 저항 정신을 드러낸 남성 컬렉션 재킷.

‘Spiritismo’라는 신조어를 통해 패션의 저항 정신을 드러낸 남성 컬렉션 재킷.

그중 뒷면에 ‘Spiritismo’라는 독창적인 문구를 새긴 재킷과 주술적인 스톤 장식 목걸이 등은 미켈레의 창의적인 저항 정신을 단적으로 드러낸 아이템이었다.

“저항한다. 삶을 산산조각 낼 위험도 불사하는 가속도와 강박적인 숨 가쁨에 저항한다. 자아를 상실할 정도의 맹렬한 속도를 부추기는 주문에 저항한다. 어떠한 희생도 개의치 않는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환상에 저항한다.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없다. 천천히 오랫동안 버티면서 관심을 기울이고, 폭넓고 기품 있게 호흡하며, 스스로를 내던져 이야기에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패션 혁명 선언문과도 같은 이 글귀는 미켈레 내면의 무한대로 펼쳐진 창의 정신을 대변한다. 무료한 순응주의에 저항하며 일상 속의 꿈을 꾸게 만드는 그의 컬렉션을 보며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외친 체 게바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연성과 표준화된 단조로움을 넘어서 시적으로 사는 법을 알려주는, 이 매력 넘치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 꿈의 이정표를 찾는 환상적인 패션 여행이 꾸준히 이어지길 염원했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사진
COURTESY OF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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