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사랑을 받고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위해 참고 포기하고 견뎌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삶. 대한민국 아이돌은 분명 극한 직업이다.

People Enjoying Music Concert
시상식에서 마이크 앞에 선다는 일은 단지 영광과 성취를 확인하고 거기 기여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자리만은 아니다. 짧고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 연대하고자 하는 인물들을 향해 양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골든 글로브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여성 운동가들을 초청해 함께 레드카펫 위를 걸은 행위는 세상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퍼포먼스였다.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나문희는 ‘나의 친구 할머니들’을 지목하며 시니어들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며, 드라마 <마녀의 법정>으로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을 받은 정려원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응원의 멘트를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1월 10일 열린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디지털 음원 부문 대상을 수상한 아이유의 수상 소감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종현을 추모하다가, 이어 동료 연예인의 안녕을 물었다. 같은 일을 하던 친구이자 뮤지션으로서 힘들고 괴로웠을 종현에 대한 공감은, 자신을 포함한 아티스트들이 느끼는 고독감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위로하는 표현으로 이어졌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티스트들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인 만큼, 사람으로서 스스로 먼저 돌보고 다독이고, 내색하지 않으려 하다가 더 병들고 아파지는 일이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지만, 아이돌은 팬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바라보더라도 안쓰러운 면이 있는 존재들이다. 바쁜 스케줄, 치열한 경쟁, 대중의 판단, 댓글, 악플, 사생활 노출 같은 스트레스 요소들이 이제 막 성인이 되거나 아직 되기도 전인 이들에게 지워진다. 유독 못생긴 날 잘못 찍힌 사진 한 장, 어린 시절 별 생각 없이 달았던 댓글 한 줄이 기사가 되어 온 국민에게 놀림이나 질타 거리가 되는 삶에 누가 과연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창작하는 사람들의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경우, 그걸 털어버릴 방법도 보통 사람만큼 자유롭지 않은 이들에게 이런 스트레스는 더 버거울 것이다. <프로듀스 101>을 보면서 한 출연자 때문에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난다. 모두가 조별 미션을 위 해 밤새 연습을 할 때, 그는 혼자 슥 사라졌다가 나중에 어디에선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발견되곤 하면서 불성실하다는 태도 논란에 휘말렸다. 잠이 많아 회사 생활도 가끔 힘겹게 느껴지는 입장에서 그를 변호하고 싶었다. 아이유의 말마따나 졸리면 능률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가혹한 시스템 속에서도 참고 견딘 이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보상처럼 결국 데뷔하는 모습은 잔인한 순환 고리를 만든다. 공부와는 다른 재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지만, 성공을 위해 개인의 욕망이나 사생활은 통제하고 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 한국의 공부 판타지와 별다르지 않은 경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건국대학교 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데뷔한 아이돌들이 마치 국가대표 운동선수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계획된 생활 안에서 성실하게 생활하며 스트레스 내성이 매우 강한 사람들이죠. 7년, 9년씩 미래를 알 수 없는 연습생 생활을 견뎌내고 그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해낸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비슷 한 나이의 청소년 평균값에 비하면 매우 높은 자아 능력을 갖고 있어요. 과학고나 특목고 수준의 모범생인 셈입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가운데서도 금메달리스트만 주목받듯이 데뷔 이후에도 유의미한 인지도를 얻는 팀은 극소수이며, 부와 명예의 큰 부분은 톱티어에게 편중된다. 팀으로서의 성공 역시 멤버 개인에게 미래에 대한 보장은 되어주지 못한다. 7년 안팎의 활동기를 거친 이후에는 연기나 예능 등으로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사회에 진출하고 50도 되기 전에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보통의 직장인들 이상으로 커리어 생명이 짧다. 대부분은 ‘열심히 하는 밝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는 상투적인 약속 뒤로 숨기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현 교수는 요즘 ‘연예인 병’이라는 이상한 별명이 붙은 공황장애의 경우 실제로 연예인의 생활 패턴상 발생하기 쉬운 조건에 있는 질환이라는 지적을 한다. “흥분 상태로 수천 명 앞에 섰다가, 긴장이 사라지고 나면 허전함을 술로 채우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도 억지로 자신을 쥐어짜고… 그런 반복 속에서 어지럼증, 가슴 답답함 등의 신체 증상을 경험하기 쉽죠.” 연예인, 일반인을 떠나서,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듯이 우울이나 불안이 심해질 때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좀 더 보편적인 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의지로 극복하라는 말은 일종의 폭력이 됩니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의지로 일어나라는 것과 같아요.” 마인드맨션의원의 안주연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상황은 천천히 누적되며 신경정신과 약물은 느리게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으니 임의로 포기하지 않고 치료 기간을 오래 갖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이며.

영국 매체 <가디언>은 종현의 죽음에 대한 기사에서 한국 아이돌들의 가혹한 현실에 대해 ‘헝거 게임’이라고 비유했다. 가상의 미래 국가에서 청소년 대표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며 죽기도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소설 말이다. 아이돌을 주축으로 한 K팝이 고도의 엔터테인먼트로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지금, K팝 소비자의 윤리에 대해서도 성찰할 때다. 다시 아이유의 수상 소감으로 돌아가보자. 시상식 현장에서 아이러니한 장면이 펼쳐졌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정작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아픔을 언급하는 가운데, 카메라가 다른 아이돌 팀을 비추자 몇몇 팬들이 환호를 지른 것이다. 아티스트들의 드러나지 않는 괴로움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는 경청받지 못하는 동시에, 바로 그들이 눈앞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소비되는 현실이 교차되었다. “오늘 하루 동안은 마음껏 축하하고 즐기시다가 모두 잘 주무시면 좋겠다”라고 한 아이유의 이야기에서는 시상식처럼 화려한 자리의 뒤에 돌아가 혼자가 되었을 때, 뒤척이는 불면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에게나 무겁고 긴 밤이 있듯이 연예인에게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 간극과 낙폭은 아마 짐작하기 어렵도록 클 것이고. 눈과 귀를 화려하게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쉴 새 없이 공급되며 소비자들을 슈가 크러시 상태로 만들 때, 그 달콤함에 중독되어서 잊는 일은 없어야 할 거다. 아이돌도 웃는 도구나 춤추는 기계가 아니라 똑같이 약하고 아픈 사람이라는 걸. 그걸 떠올리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무관심하거나, 적어도 악플이라도 덜 다는 일은 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