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그녀 양수임을 만나다

이채민

얼마 전, ‘H&M 디자인 어워드 2018’ 세미 파이널리스트 18인에 사디 졸업을 앞둔 남성복 디자이너 양수임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시 파이널리스트 8인에 선정되었을 때 단독 인터뷰가 성사됐다. 대회가 열린 런던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더블유 코리아>와의 만남에 응했고, 기쁨은 물론 신인 디자이너가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나눴다. 미래는 불확실할지언정 그녀가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디자이너 양수임. 회색 재킷과 초록색 퍼 코트는 그녀 컬렉션의 일부다

디자이너 양수임. 회색 재킷과 초록색 퍼 코트는 그녀 컬렉션의 일부다.

우선, H&M 디자인 어워드 2018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양수임 사실은 H&M이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이 높은 브랜드라 관련 주제를 다룬 사람이 파이널리스트가 될 거라 예상했다.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을 때만 해도 ‘집에 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뛰어난 후보가 워낙 많았다.

H&M 디자인 어워드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한국에서 유일하게 H&M 디자인 어워드에 지원할 수 있는 학교의 특혜를 입었달까. 현재 사디(SADI) 남성복 졸업반에 재학 중인데, 졸업쇼와 대회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준지(Juun.J) 디자이너 정욱준 크리틱 교수의 비평에 힘입어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

양수임 컬렉션의 룩북.

양수임 컬렉션의 룩북.

그러잖아도 그의 영향이 보이는 듯했다. 과감한 퍼 사용이나 팔의 구조적인 모양새 말이다.
“트렌드에 휩쓸려서 스타일링적으로 컬렉션을 만들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신선한 디자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해주셨다.

매년 한국, 특히 사디 학생들이 H&M 디자인 어워드에 진출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해외 무대를 겪은 건 처음인가?
처음이다. 해외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커리큘럼 덕분이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순수 국내파이기 때문에 내심 뿌듯한 점도 없지 않다.

컬렉션의 크로키. 옷의 구조적인 생김새가 돋보인다.

컬렉션의 크로키. 옷의 구조적인 생김새가 돋보인다.

컬렉션의 크로키. 옷의 구조적인 생김새가 돋보인다.

항상 세계적인 패션 전문가들로 심사위원단이 구성된다. 기억에 남는 코멘트가 있나?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 앤 소피 요한슨 심사위원장이 예술 작품을 통해 나만의 재해석을 도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줬다. 언어 장벽이 있었지만,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통해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컬렉션은 영국 비디오 아티스트 질리언 웨어링의 <고백: 초상, 비디오> 전시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가의 작업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고백: 초상, 비디오’는 그로테스크한 가면과 가발로 인종, 목소리, 성별을 가려 신분을 알 수 없게 변장한 인물의 고백을 담은 작품이다. 익명성을 통해 더욱 솔직해질 수 있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다룬 것으로, 그들의 내면과 외모의 교차가 공감각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와 가상의 협업을 한다 생각하고 인체의 확장과 분출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대니얼 마틴 디아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양수임의 드로잉.

대니얼 마틴 디아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양수임의 드로잉.

그렇다면 대니엘 마틴 디아즈의 작품이 공감각적 감상을 옷으로 구체화하도록 이끈 것인가?
그렇다. 딱딱한 다이어그램과 인체의 유기적 세포가 결합한 그의 작품이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전형적인 마네킹 보디를 팽창시켰고, ‘새로운 구조를 가진 사람’을 수채화의 번지는 효과로 자유롭게 그려냈다. 사람들에게 내가 상상한 분출 과정을 이해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뉴 볼륨’을 강조한 서스펜더 장식.

‘뉴 볼륨’을 강조한 서스펜더 장식.

포트폴리오에 ‘뉴 볼륨’이라는 단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아까 언급한 ‘새로운 구조를 가진 사람’과의 연결 고리다. 테일러이지만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방식 대신 나만의 구조를 창조하고 싶었다.

완성도 높은 테일러링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고 들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테일러라고.
할아버지께서 광주에서 양복점을 하셨고, 아버지가 바통을 이어받아 을지로 양장거리에 자리를 잡으셨다. 지금도 예복 맞춤복을 만드신다. 덕분에 ‘테일러’라는 나의 배양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옷을 만드는 게 힘들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역시 가업의 영향인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양장점에 널려 있던 천 두루마리, 원단 견본이 가장 친숙한 것이었다.

옷을 만들 때 중요시하는 점은?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제에 부합하도록 소재 선택이나 만드는 방식, 철학 등 뼈대를 단단하게 세우고 만드는 것은 그다음이다.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친환경적 디자인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소재를 선택했나?
시작할 때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분출과 확장’이라는 주제를 고려해 모가 짧지만 솟아 있는 페이크 퍼를 골랐는데, 훌륭한 페이크 퍼라며 소재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파이널리스트들이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심을 두고 소재를 개발하거나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완성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나 또한 디자이너로서 꼭 가져가고 싶은 점이다.

지금 컬렉션은 과장된 쇼피스가 대부분이다. 커머셜 피스도 함께 가져갈 것인가? 앞으로의 방향성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브랜딩을 한다는 가정하에는 물론 그렇게 할 것이다. 특정 층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원 없이 브랜드를 꾸리기는 어렵다. 자금 부분만 해결된다면 주저 없이 레이블을 시작하겠지만,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취업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파이널리스트에게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금전적 문제가 숙제다. 한국은 아직 신인 디자이너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힘든 구조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라면 모두 하는 고민이다. 나도 그랬으니 동감한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H&M 디자인 어워드 외에 한국 학생들이 해외 시장을 두드릴 수 있는 문이 더 넓어졌으면 한다. 2013년 우승자 김민주처럼 나도 누군가의 선배로 본보기가 되고 싶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박종원
헤어, 메이크업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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