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가서 그의 공간을 둘러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블루 보틀 커피의 모든 매장과 긴자 로프트를 비롯해 화제가 된 리테일 숍을 디자인한 건축가 조 나가사카를 만났다.

서울을 찾은 조 나가사카.

서울을 찾은 조 나가사카.

〈W korea〉2017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세미나에서 청중의 관심과 열기가 대단했다. 지금 ‘조 나가사카’라는 이름 앞에는 ‘일본에서 가장 재능 있는 건축가’라는 수식이 붙는다.
조 나가사카 블루 보틀 커피의 영향력이 확실히 큰 것 같다. 일본에는 뛰어난 건축가가 많다. 감사하지만 몹시 쑥스럽다.

블루 보틀 커피가 일본에 진출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7개 매장을 오픈했고, 7개 매장의 설계를 담당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일인가?
블루 보틀 커피 CEO인 제임스 프리먼의 일본인 지인이 일본에 매장을 낼 계획이라면 나에게 맡기라 소개한 것으로 안다. 제안을 받고 블루 보틀 커피를 경험하고자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매장을 둘러보고 담당자들과 산책을 하며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리테일 숍인 블루 보틀 커피라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공간의 콘셉트는 무엇인가?

블루 보틀 커피 나카메구로 카페.

블루 보틀 커피 나카메구로 카페.

원두, 커피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 세 주체가 불편함 없이 공존해야 한다는 게 브랜드의 정책이다. 지향점은 심플한데, 이를 공간에 표현하는 일은 그다지 심플하지 않다(웃음). 바리스타 공간의 경우 배수 문제 때문에 홀의 바닥과 높이에서 차이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손님과 바리스타의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 이걸 맞추기 위해 바닥을 재공사하기도 한다. 쇼핑몰 내에 있는 매장은 별도의 문을 설치하지 않고 바닥재를 달리하는 정도로만 공간의 경계를 구분한다. 매장 밖과 안의 사람, 바리스타의 눈높이가 모두 일치되도록.

커리어의 시작에 대해 묻고 싶다. 졸업 후 유명 건축 사무소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본인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쉽지만은 않았을 텐테.
일단 과거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 직업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IT 버블이던 시절 막 건축가가 됐다. 온 세상이 “IT, IT”를 외쳤고, 건축은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이었다. 뭐,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진 않다. 유명 건축 사무소에 입사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평탄하고 빠르게 자리 잡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생활이 빤히 보였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일하고 어떤 미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삶. 스튜디오의 흥망성쇠보다 그런 반복이 더 두려웠다. 세상과의 접점을 많이 가질수록 건축할 기회도 더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세미나에서 뺄셈과 덧셈의 건축 기법에 대해 언급했다. 설계할 때 어떤 기준으로 두 기법의 경계를 정하고 선택하는가?
언뜻 두 기법이 대비되는 개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건축과 디자인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라 여기는 게 일반적인데, 그에 맞서보고자 한 거다. 뺄셈의 기법은 (벽이나 문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고, 덧셈의 기법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가구를) 채워 넣음으로써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기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2008년에 진행한 ‘사야마 플랫(Sayama Flat)’. 한 건물 안의 공간 30개를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였다. 건물은 사야마역에서도 도보로 15분 떨어진 거리라 이슈 거리가 없이는 세입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곳이 아니었다. 예산도 워낙 적었고 돈을 들여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차라리 빼보면 어떨까 싶었다. 벽이나 문 등을 뺐더니 자연광이 더 많이 들어 결과적으로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건물로 완성됐다.

그 이후 뺄셈의 기법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인가?
우연히 세로쓰기로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보았다. 문장에서 단어 몇 개를 지우고 다시 읽어보니 완전히 새로운 구성이 되어 읽혔다. 문학적으로 도 성립이 가능하구나 싶었다.

2011년 이솝 아오야마 매장 설계 이후 리테일 포트폴리오가 급격히 늘었다. 분야도 무척 다양한데, 프로젝트의 선정 기준이 있나?

 이솝 아오야마점.

이솝 아오야마점.

데상트 블랑 요코하마점.

데상트 블랑 요코하마점.

‘지식의 재구성(Renewal of Knowledge)’. 얼마나 새로운 지식과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반복되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

블루 보틀 커피는 예외인가?(웃음)
일본 매장들의 콘셉트는 내가 처음 설계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필요로 하는 이상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블루 보틀 커피의 각 매장을 담당한다. 각기 다른 브랜드가 비슷한 콘셉트로 의뢰가 들어올 경우 피한다는 말이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실험해본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
보통 건축에서는 설계비, 시공비, 재료비 순으로 가격이 높아지는데 ‘3.1 필립 림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면서 이 가격 피라미드를 거꾸로 해보자고 제안했다. 설계에 몹시 공을 들이고 재료는 모두 주워 왔다(웃음). 클라이언 트 역시 매우 흡족해했고.

최근 오픈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프트(Loft)의 업스 케일 버전인 ‘긴자 로프트(Ginza Loft)’의 설계도 담당했다. 마침 도쿄 방문 시기와 겹쳐 매장을 방문했는데, 동선이 기존 매장과 무척 다른 게 인상적이었다.

긴자 로프트.

긴자 로프트.

대개 한가운데에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그 주변에 동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면 건물 구석에 위치한 매대는 소외받기 십상이고, 매대 위치에 위계 구조가 형성된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와 건물 가장 바깥 테두리 사이에 메인 동선을 만들어보았다. 그 동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안쪽과 바깥쪽 어디로도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디테일한 부분은 가구 배치로 동선을 만들어 되도록 모든 매대를 둘러볼 수 있게 설계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긴자 로프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만든 함정에 빠진 거다(웃음).

일본의 리테일 트렌드를 짚어보자면?
인터넷으로 간편하고 빠르게 물건을 사는 것과 매장에서 공간을 천천히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뉜다. 트렌드에 민감한 브랜드일수록 오프라인 매장의 ‘회유성’, 즉 온라인 마켓으로 넘어간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끌어들이고 오래 체류시키는 데 집중하는 추세다.

최근 문을 열었거나 오픈 예정인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블루 보틀 커피 산겐자야 카페.

블루 보틀 커피 산겐자야 카페.

지난 10월에 오픈한 블루 보틀 커피 산겐자야(Sangenjaya) 지점의 방문을 권하고 싶다. 산겐자야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데, 50년 넘은 건물을 리뉴얼한 공간이라 건축적으로 볼만한 요소가 다양하다. 2월쯤 교토에 또 다른 블루 보틀 커피 매장이 오픈한다. 정확한 위치는 영업상 비밀. 힌트를 주자면 교토역을 등지고 오른쪽 방향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