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 배우와 20대 여자 배우가 커플을 연기한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로맨스이며, 누가 꿈꾸는 판타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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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효리네 민박> 시즌 2 촬영이 시작된다. 이효리와 이상순, 개와 고양이들, 제작진도 모두 그대로인데 이 프로그램 첫 시즌에서 민박집 알바 생으로 출연한 아이유만 빠진다. 12월부터 드라마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이유가 선택한 드라마는 tvN <나의 아저씨>. 캐스팅 발표가 나고 난 후 상대역인 남자 주인공이 이선균이라는 점 때문에 한바탕 시끄러웠다. 아이유는 1993년생, 이선균은 1975년생으로 두 배우의 나이는 열여덟 살 차이다. 드라마 소개는 이렇다. “각자의 방법으로 삶의 무게를 무던히 버텨내고 있는 아저씨 3형제와 그들과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삶의 고단함을 겪어온 거칠고 차가운 여자가 상대방의 삶을 바라보며 서로를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 이선균의 형제들에 대한 캐릭터 설명은 ‘돈 잃고 별거 중인 큰아들과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간 막내’로 소개되고 있어, 배우만 나이 차가 나는 게 아니라 배역의 설정 자체도 스무 살 차이임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삶을 바라보며 서로를 치유하는’ 관계가 보통의 로맨스, 평범한 연애와는 다르게 신선한 우정으로 그려질까? 이선균의 아내 역으로 다른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뉴스까지 뜨고 나니 부디 그러기를 바라게 된다. 스무 살 차이 나는 아저씨로도 모자라, 기혼자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산뜻하지 못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이유가 눈 쌓인 한라산을 이효리와 함께 오르거나 민박집 난롯가에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꾸벅꾸벅 조는 그림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까우니까.

<나의 아저씨> 말고도 여기저기 아저씨가 넘쳐난다. 상반기 중 방영 예정인 김은숙 작가의 새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는 김태리와 이병헌이 캐스팅되었다. 1990년생과 1970년생의 조합으로 스무 살 차이. 마찬가지로 최근 영화 <유리정원>의 문근영과 서태화, 상반기 중 개봉할 <레슬러>의 이성경과 유해진도 남자 쪽이 스무 살쯤 많은 경우다. 드라마 <블랙>의 송승헌과 고아라, <투깝스> 조정석과 혜리처럼 열네 살 차이 정도는 귀엽게 여겨질 정도다. <레슬러>는 심지어 자신을 좋아하는 또래 남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이성경이 사랑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큰 나이 차를 전면에 드러내며 이야기의 중심 축에 놓지 않는 경우에도 열몇 살 차이 나는 남녀 주인공은 아무렇지 않게 커플을 연기한다. 3, 4년 전 <총리와 나>의 임윤아, <내 생에 봄날>의 최수영도 각기 스무 살 많은 이범수, 감우성과 결혼까지 하는 역으로 나왔다.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더 많거나 적은 역을 연기하는 건 배우에게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스무 살 차이 캐스팅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현상은 어떤 징후처럼 보인다.

이선균에게 특별한 유감은 없지만 역사를 돌이켜보자면 그는 10년 전 드라마인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이미 ‘아저씨’라 불린 바 있다. 상대역의 여자 주인공은 84년생 윤은혜로 두 사람만 해도 적지 않은 아홉 살 차이가 난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저씨는 열 살을 더 먹어도 주인공을 맡고 여전히 20대 여성에게 ‘아저씨’ 소리를 들으며 러브 라인을 만드는 동안 여자 주인공은 더 어린 사람으로 교체된 것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자 배우 풀이 좁고 대부분 입대 중이라 로맨스 드라마 주연을 맡길 만한 인물이 없다는 말도 있다. 안정된 연기력과 흥행 파워를 가진 남자 배우군이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럼, 이선균이나 이병헌, 송승헌 나이 또래의 여배우들은 어디 군대라도 갔나? 남자보다 연기력이 떨어지나? 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특히 로맨스 드라마는 점점 드물어진다.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조합을 우리는 현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주요 시간대 뉴스 진행석에는 언제나 나이 든 중견 남성 앵커 옆에 젊은 여성 앵커가 앉아 있다. 남자가 얼마나 나이 들었는지는 경력과 전문성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그 옆의 여성을 평가하는 잣대는 분명 다르다. 문소리가 직접 연출한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이슈를 일으켰듯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여배우들이 자기 자리를 잡기는 점점 어려운 반면 남자 배우에게는 나이 먹는 것이 전혀 타격이 되지 않는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소비에 적극적인 70년대생을 일컫는 ‘영 포티’라는 유행어를 둘러싼 담론에서도 여성은 빠져 있으며, 40대 남성을 여전히 로맨스의 주체로 포장하고 부추긴다.

스무 살 차이 트렌드의 헬게이트를 확 열어젖힌 건 <도깨비>의 지은탁일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전통적으로 충돌과 화해의 장르다. 남녀 주인공을 사사건건 부딪치게 만들기 위해 신분, 계급, 성격의 격차가 이 장르에서 언제나 등장해온 관습적 장치이며, 차이로 인한 이 싸움을 봉합하고 뛰어넘게 만드는 힘으로 사랑이 작용한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서도 가난하지만 밝고 씩씩한 여주인공과 부유하지만 오만하고 어딘가 결핍이 있는 남주인공의 공식이 늘 변주된다. 하지만 <도깨비>에서는 남주인공이 유능을 넘어 아예 전지전능해진 반면 미성년자인 여주인공은 자신을 꾸려갈 힘이 없이 주변의 핍박을 받는 절대 약자로 전락했다. 일방적으로 구원이 필요한 연약한 여자, 그리고 뭐든 해줄 수 있는 신적인 남자의 구도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판타지라고 하지만, 시각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9백몇 살 먹은 도깨비가 갑옷이나 마법사 망토를 걸친 게 아니라 30대 남자가 지방시나 아크네 스튜디오의 코트를 입은 그림이었다. “저 시집 갈게요, 아저씨한테!” 고등학생의 입으로 말해버리는 순간 아저씨에게 면죄부가 주어지지만, 사실 현실에서 이런 관계는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다.

로맨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유사 연애 효과를 준다. 하지만 스무 살 차이나는 남녀 사이 로맨스에 대해 어린 여성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네이버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에서 스물한 살짜리 여자인 등장인물이 이런 대사를 한다. “이게 다 영화랑 드라마 때문이라고요. 10대가 아저씨랑 썸타고 20대가 아저씨랑 연애하고! 이런 걸 본 아저씨들이 자기도 10대 20대랑 사귈 수 있는 줄 착각하는 거잖아! 여자애들한테도 그릇된 이성관을 심어준다고요!!” 이 아래로는 8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은 댓글이 달려 있다. “제발 어린 여자랑 나이 든 아저씨랑 엮는 드라마 좀 그만 보고 싶다.” “드라마 속 아저씨는 최소 돈 많고 자기 관리 쩌는 사람인데 그거 보고 망상에 쩔어서 들이대는 배 나온 ‘진짜’ 아저씨들…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대중 매체의 재현에 노출된 시청자가 의식을 지배당하거나 모방한다는 건 찬반이 갈리는 이론이지만, 현실 속에서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스무 살 연상의 남자가 자신을 연애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접근한다는 건 설레기보다는 공포스럽거나 불쾌한 일일 확률이 높다.

영화 <노팅힐>이나 드라마 <밀회>, 연극 <해롤드와 모드>가 신선했던 건 로맨틱 코미디에서 전통적으로 권력과 돈 혹은 나이가 많은 성별을 바꾸고, 관습을 비틀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남녀가 상대방의 삶을 바라보며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어디 한번 40대 여자와 20대 남자 캐스팅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여자가 유부녀라면? 20대의 반짝이는 청년이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면? 성별을 바꿔놓고 생각해봤을 때 영 어색하고 이상하다면, 지금의 트렌드라고 괜찮을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