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약한 사람, 주변으로 밀려난 계층,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상상하고 이야기 속으로 불러내는 것. <달콤한 노래>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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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근처의 한 호텔에서 만난 레일라 슬리마니는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간의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인터뷰 외에 매일 강연과 북콘서트로 독자를 만나고, 프랑스 문화원의 행사 일정을 소화하며 부산 강연까지 다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듣는 입매는 온화했고 답변을 떠올리는 눈빛은 또렷하게 빛났다. 슬리마니는 <달콤한 노래>로 2016년 프랑스 최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다. 마르셀 프루스트, 앙드레 말로, 생텍쥐페리, 시몬느 드 보부아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에밀 아자르, 파트리크 모디아노, 파스칼 키냐르, 미셸 우엘벡… 우리가 사랑하는 프랑스 소설가의 리스트에 서른다섯의 나이로 이름을 올렸다는 의미다. 얼마 전 마크롱 대통령의 지명으로 프랑스어 진흥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으며, 여성지 커버 모델이 되거나 패션쇼에 초대받을 만큼 아이코닉한 작가이기도 하다. 잠시 연기를 하기도 했고, 기자로도 일했다는 이력은 그를 더 화려하게 치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이 작가도 일하는 여성이자 엄마로서 매 순간 부딪치는 현실을 첨예하게 인식하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냈다.

유럽에서 큰 논쟁과 반향을 일으킨 <달콤한 노래>는 아마 근래 가장 충격적인 도입부를 가진 소설일 것이다. “아기가 죽었다”라는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고 시작하는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두 아이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이가 아이들을 돌보던 보모라는 사실이 단 몇 페이지 만에 밝혀진다. 하지만 어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왜’에 집중하며 이 책으로 빨려들 수밖에 없는 건 문장의 힘, 그리고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고립, 돌봄노동의 지난함, 이민자와 빈곤층의 문제 같은 묵직한 주제가 현학적으로 흩어지지 않고 구체적인 인물의 삶을 통해 아프게 만져진다. 깊은 밤 잠에서 깨어 느끼는 불안, 두 아이를 키우며 글 쓰는 시공간을 확보하는 ‘자기만의 방’의 문제,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부여되는 완벽함의 굴레에 대해서도 슬리마니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자들은 스스로에게 더 관대해져도 된다고. 이제 겨우 작품 두 개를 세상에 내놓은 이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중이며, 첫 소설인 〈오크의 정원에서〉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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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ea〉이번 방문에서 많은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 가운데 어떤 것이 기억에 남나?

레일라 슬리마니 어제 만난 한 독자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아이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데 대해 제대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문제 의식과 고독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공감했다는 이야기였다. 프랑스 여성들은 자유를 구가하는 줄 알았는데,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고 했다.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제도적이나 일상적 차원에서 여성의 삶이 포괄적인 지원을 받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나 역시 당신의 소설을 읽으며 깨지기도 했다.
프랑스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중압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아름다워야 하고, 만나고 싶은 멋진 여성이어야 하고, 똑똑하고 교양도 있어야하고, 성공해야 하고, 아이들도 완벽하게 돌봐야 하지만 또 아이들에게만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균형 감각까지 가져야 한다. 자녀는 바이올린, 무용, 학업 성적, 외국어 등등 모든 면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도 늘 얼굴에 웃음을 띠고 기분 좋은 여성이기를 요구받는다. 이런건 불가능하다. 혹시 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건 연극 속의 삶이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여성은 아마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고 있거나 알코올 중독이 되어가는 어두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거다(웃음). 현대의 삶은 어디나 여성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변호사인 미리암이 두 아이를 낳으며 육아를 전담하고, 커리어와 단절되어 생활하는 부분까지의 이야기만 떼어놓고 보면 한국에서 지난 한 해 가장 파장이 컸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났다. 국가를 떠나 여성의 보편적인 경험과 그 속의 차별, 고립을 보며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라는 말도 떠오르고.
그 소설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를 들었는데, 불어로 번역되지 않아 읽을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여성에게 경계나 국가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연대를 잘 이루지 못하는 남자들이 유독 연대하는 경우가 여성 혐오라는 현상에서 벌어진다. 제각각인 남자들도 여자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데 있어서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종 가운데 유일하게 암컷을 죽이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반면 여성의 삶에는 경계가 없다. 공적인 사람으로서의 책무와 아이 엄마 역할이 뒤섞이는 것이다. 집에는 못다 한 일을 가져오고 일하러 가서도 누구의 어머니라고 하는 점은 지워지지 못한다. 반면 남성은 철저하게 분리가된다. 자녀가 생기는 순간부터 여성은 가족의 카테고리가 계속 따라다니며 개인의 공간을 갖지 못한다.

소설에서 미리암과 루이즈, 두 여성을 보면 육아라는 과업은 더 훌륭하게 해낼 수록 양육자를 지우는 일로 그려진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 사회적 관계는 육 아에 몰입할수록 흐려진다.
아이들이나 노인 등 독자적으로 뭔가 할 수 없는 존재를 돌보는 노동은 무척 힘든 일인데도 잊혀지기 쉽다. 식사를 돕고, 씻겨 주고… 이렇게 몸과 몸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모성의 어려움은 이동하지 못하고 한곳에 고정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자율적으로 원하는 어디에나 마음대로 갈 수 있던 사람이, 아이가 생기게 되면서 정박해서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큰 문제다. 돌봄 노동이나 가사노동은 한없이 반복적인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게다가 조그맣고 미숙한 아이들이 돌보는 사람에 대해 감사해하거나 뭔가 돌려주지도 않는다. 소리 지르고 울 뿐이다. 어린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유치한 에고이즘도 있다. 인내심이나 이타심, 상호적인 감정의 균형은 성장하면서 조금씩 배워가는 것이니까. 가정은 이런 교육, 전승이 이루어지는 노력의 장이다. 그를 통해 사회가 성숙하고 진화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역할을 어머니나 부모가 해도 눈에 띄지 않지만 보모가 할 때는 더 안 보인다. 한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 특정 역할을 하려면 다른 여성이 가정에서 그 여성의 일을 대신해줘야 한다. 마치 연속되는 굴레처럼. 한 겹 한 겹씩 벗겨가면 마지막에는 가장 작은 하나가 남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그 굴레의 마지막에는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노래>는 성, 인종, 계급 등 여러 층위의 소수자 문제가 겹쳐 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이 모든 조건이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루이즈를 통해 드러난다.
빈곤, 저임금, 고용 불안정 같은 문제는 여성에게서 가중된다. 프랑스의 경우 불법 근로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이민자가 피할 수 없는 불안정한 위치도 마찬가지다. 삶의 조건이 악화된 상태에 놓인 이런 사람들은 도시 주변부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미리암과 폴 부부가 선망을 받는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고, 파리 중앙에 살아가는 반면 루이즈는 주변부에 위치한 변두리의 사람이다.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군중 속의 한명이다. 아침에 1시간동안 만원 지하철을 타야 하는 무명의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소설가의 일이 그런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도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름 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게 현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빅토르 위고, 도스토옙스키, 디킨스… 이런 작가들과 더불어서 현대 문학은 시작되었다. 이전의 소설은 왕자나 공주 이야기, 삼총사 같은 모험담이었고. 현대 소설은 도시 공간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도시에 관심이 많다. 그런 면에서는 서울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품고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2017년에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수상한 사람들이 모두 80년대생 여성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최근 ‘여성에게는 겸손할 권리가 없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여성으로서의 성취를 더 많이 알릴 때 더 어린 세대에게 꿈을 줄 수 있다는 맥락이었다. 당신도 80년대생 여성인데, 공쿠르상을 받았다.
내 스스로 어떤 여성의 상징이 되는 건 반대하지만 차세대 젊은 여성들이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는 사례가 된다면 기쁘겠다.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는 겸양을 간직한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문학은 어려운 작업이다. 어떤 날은 노력도 안 했는데 멋진 문장이 써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애써도 볼품없는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대단한 걸 한 것 같지 않은데 상을 받을 때도 분명 있다(웃음).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 당신의 특수함이 어떤 보편적 시선을 갖게 만드나?
파리에서는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 대단히 코즈모폴리탄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국적이 두 개인 사람으로, 또 나 자신으로 잘 지내고 있다. 오히려 외부인의 시선으로 느끼려고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한 예로, 파리에서는 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엄청나게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한 골목에 아랍 식당, 일본 식당, 레바논 식당이 모여 있고,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아랍 음악, 강연, 음식에서 최고의 것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랍적인 대도시도 나는 카이로가 아니라 파리라고 생각한다. 마그레브라고 하는 북아프리카 지역인들이 파리에 모여서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서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언어는 작가에게 중요한 재료다. 프랑스어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넣고 싶다. 유연한 프랑스어를 알리고 싶다”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부연 설명을 해달라.
프랑스어 진흥 대사는 사무실도 없고 자원봉사처럼 일하는 역할이다. 불어 문화권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각인하고 불어를 보호하는 일을 한다. 프랑스어는 탈식민주의적인 맥락에서 다양한 민족과 국가 사이에 보편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인간 사이에서 어떤 특정 문화나 문명이 뛰어나다는 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한다. 예술과 문화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글쓰기는 ‘자기만의 방’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 육아는 그런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작가로서의 삶을 병 행하는 데 무엇이 중요한가?
가족, 부부, 아이들… 각자의 삶에서 누구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것처럼 나에게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내 방이 있다. 작가로서 글을 쓸 때와 엄마로서 시간을 내는 일을 오간다.

아까 여성들만 요구받는 완벽함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중압감에 시달리는 프랑스와 한국의 여성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신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관대하게 대하는 게 필요하다. 실수가 있어도 된다, 모든것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게 잘 되지 않는 사람이다. 내 부모님은 완벽주의자로 자식 교육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래서 우리들이 뭔가를 대충 하는 걸 참지 못하신다. 그래서인지 나도 뭔가를 잘못할까 봐 늘 불안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성공을 거둘수록 이런 불안은 더 커지는것 같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 역시 작 가로서 불안과 염려가 많은 편이라 밤에 자다가도 깨서 부족했던 점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내가 감히 조언할 수는 없는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하자. 스스로에게 관대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