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출발선에 섰거나, 뚜벅뚜벅 걸어오다 훌쩍 날아오른 사람들. 더블유는 그들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오래 지켜보기로 한다.

 

이승준 · 디자이너
2011년 세인트 마틴 졸업 (텍스타일, 남성복 전공). 2011년 폴 스미스 멘즈 프린트 어워드 우승. 2016년 PLYS 론칭. 2017년 SFDF 수상.

터틀넥은 디자이너 소장품.

터틀넥은 디자이너 소장품.

제13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수상자로 선정된 베를린 베이스의 PLYS 디자이너 이승준. 그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예쁜 색을 입은 새콤달콤한 젤리를 한 입 베어 문 것 같다. “2000년 고등학생 때부터 런던에서 공부했어요. 그러다 베를린에 놀러 갔죠. 당시만 해도 지금과 크게 달랐어요. 날것 같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좋았어요. 결국 졸업 후 베를린행을 택했죠.” 그가 ‘색깔로 전개하는 컬렉션’이라고 일컫는 PLYS.회색빛으로 묘사되는 베를린에서 어떻게 그런 색을 발견했을까? “독일은 세계 최고의 인쇄 기술을 보유한 나라예요. 전단지도 예뻐요. 인쇄물부터 리서치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공사장 인부 옷에서 큰 영감을 받았어요. 통일 후 독일에선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어서 어딜 가든 공사 중인 인부들을 볼 수 있거든요. 네온 베스트같이 공사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색 디테일이 좋아요.” 그를 흥분시키는 것들은 무엇일까? “사이클리스트 유니폼과 스쿠버다이빙 장비요. 베를린은 차보다 자전거가 많은 도시예요. 사이클리스트 유니폼의 강렬한 색깔이 참 매력적이죠.” 확실히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기대되는 디자이너다. 그의 첫 패션 모멘트는 무척이나 특이하다. “열두 살 때 ADHD 진단을 받았어요. 당시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줬는데, ‘로슈(Roche)’의 것으로 기억해요. 패키지의 그래픽 디자인에 단숨에 매료됐어요. 그 기억 속 초록색 막대기와 구성이 PLYS 티셔츠에 반영됐죠.” 그에겐 패션 말고도 관심 갖는 것이 많을 듯했다. “전자 음악, 클럽 신을 좋아해요. 컬렉션의 그래픽적 레퍼런스가 되는 부분 중 하나가 베를린의 하드코어한 클럽 신인데요. 고무나 라텍스, 페티시적인 부분을 장난감과 관련된 이번 봄 컬렉션에 디테일로 녹여내 풀어보기도 했죠. 앞으론 PLYS의 컬러풀한 컬렉션을 대표하는 클래식한 캐리 오버 니트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펼치면서, 키즈웨어, 액세서리, 양말 등으로 확장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정연찬 · 디자이너
2017 S/S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로 더 시리우스 쇼 데뷔. 2017년 런던패션위크의 인터내셔널 패션 쇼케이스(IFS) 어워드 수상. 2018 S/S 시즌 밀란컬렉션 데뷔.

2017 S/S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로 더 시리우스 쇼 데뷔. 2017년 런던패션위크의 인터내셔널 패션 쇼케이스(IFS) 어워드 수상. 2018 S/S 시즌 밀란컬렉션 데뷔.

의상, 액세서리는 모두 더 시리우스 제품.

더 시리우스의 디자이너 정연찬을 말할 수 있는 두 가지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감각’, ‘성실’을 꼽겠다. 신진 디자이너 소개와 더블유 디지털 패션위크 작업으로 인연을 맺어온 정연찬은 어른들 말로 치자면, ‘바르고 성실한 청년’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거기에 우아하게 옷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갖췄으니, 그의 남성복은 여자가 봐도 탐내는 게 당연하다. 화보 작업을 할 때도 해외에서 직접 소품을 공수하면서 작은 디테일에 신경 쓰던 모습이 생생하다. “2017년에는 첫 해외 컬렉션도 선보이고, IFS도 수상하면서 꿈꿔온 해외 활동의 첫 발걸음을 기분 좋게 내딛었어요.” 정연찬의 옷을 직접 보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감상에 젖는다. 예술가이자 완벽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과학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2018 S/S 시즌만 보아도, 부드럽고 묵직한 크림 컬러, 은은하고 맑은 민트 컬러는 물론이고 안감을 뒤집은 듯한 스티치 장식, 레이스 등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요소가 없다. “해외에서도 인정해준 퀄리티에 대한 칭찬이 가장 기억에 남고 뿌듯해요. 직접 눈으로 봤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잖아요.” 그는 소장하고 싶은 아트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룩북도 만든다. 직접 사진 촬영을 하고, 캐스팅 모델과 함께 로케이션 헌팅도 다니며, 소품, 세트 준비는 물론 레이아웃, 종이까지 모두 스스로 진행한다. 못하는 게 없는 다재다능한 정연찬이 그리는 2018년의 계획은 어떨까? “좋은 동료들을 모으고 싶은 소망이 제일 커요. 규모있고 멋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더 넓고 많아진 스톡 리스트를 보유하고 글로벌 인지도 상승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에요.”

 

표지영 · 디자이너
2011년 런던 세인트 마틴 졸업. 2013년 레지나 표 론칭. 2014년부터 세인트 마틴, RCA에서 강의 중.

붉은색 티어드 드레스는 레지나 표 제품.

붉은색 티어드 드레스는 레지나 표 제품.

조지아 오키프, 콘스탄틴 브랑쿠시, 밀턴 에이버리 등 레지나 표의 예술적인 영감은 그의 옷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유의 모던한 실루엣에 정점을 찍는 빅 러플과 같은 곡선적인 터치, 여기에 더해진 낭만적인 색의 향연은 그의 디자인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포인트다. “Effortless, Elegant, Playful. 이 세 가지를 키워드로 꼽아요. 과하지 않은, 꾸미지 않은 듯한 세련된 멋을 추구하죠. 여기에 살짝 트위스트 디테일을 더해요. 순수 예술에 관심이 많아 조형물이나 회화, 설치 미술 등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고요. 옷 하나하나를 볼 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적인 요소나 시각적인 효과를 주로 생각합니다.” 한국보다 런던, 유럽 등지에서 인지도를 쌓으며 자리매김하고 있는 표지영은 이번 2018 S/S 시즌 첫 런웨이 쇼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컬렉션 행보에 나섰다. 이번 시즌,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반인 캐스팅으로 레지나 표를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의 여인들을 런웨이에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 13회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수상으로 국내 활동의 본격적인 발판을 만든 표지영은 4년 전 데뷔 이래 주목할 런던 신진 디자이너로 손꼽히며 작지만 캐릭터가 확실한 프레젠테이션을 펼쳐왔다. 당시에도 건축적이고 아트 피스 같은 세트나 소품, 큐레이션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더 풍부하게 했는데, 예술적인 모티프를 통한 재해석은 이미 처음부터 표지영에게 내재돼 있었다. “모던하고 심플한 실루엣에 예술 작품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형태와 선들을 단순하게 가미하고, 페인팅이나 조형적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신선한 컬러를 조합해 컬렉션을 완성시키죠.” 요리사 남편과 함께 책을 쓰기도 했던 그녀에게 레지나 표와 닮은 퀴진은 무엇일지 물어봤다. “남편 조던 버크(Jordan Bourke)의 음식 같아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너무 과하지 않게 조리해 아름답고, 먹기도 좋고, 건강에도 죻죠. 오래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고 다시 찾게 되는, 그러면서도 심심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 것 같아요.”

 

강동주 · 아티스트
2014년 두산 연강 예술상 수상. 2016년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 작가. 누하동 256, OCI 미술관, 두산갤러리 서울과 뉴욕 등에서 개인전.

플리츠 장식 드레스는 캘빈 클라인 제품.

플리츠 장식 드레스는 캘빈 클라인 제품.

벽에 동그랗고 환하게 조명을 쏘니 공교롭게도 강동주 작가의 보름달 드로잉 연작과 꼭 닮았다. 이 작가는 달, 하늘, 길바닥 같은 것을 드로잉으로 그리며 자신이 도시 공간을 경험하고 이동한 시간을 기록한다. 주로 빛이 사라진 밤의 풍경을, 시간차를 두고 장면을 채집하듯 포착한다. 그에게 시간은 공간과 다름이 없는 가능성이며, 기대하지 않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강동주의 드로잉은 장소의 인상을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두지 않으며 다만 ‘계속해서 과거가 되어버리는 지도’다. “요즘은 서울의 어딜 가도 비슷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작업할 때도 특정 장소에서 작업하지만 무명화시키고 있고요. 이름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어디에 있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그가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을지로의 작업실이다. 88년생인 그의 또래 미술 작가들이 작업이나 전시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던 강동주 작가의 손에는 요즘 하고 있는 목판화 작업에 쓰이는 수평계와 사포가 들려 있었다. “이전에는 주로 먹지 드로잉을 하거나 종이에 흑연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연약한 재료들이 서로 면과 면을 맞댄 상태로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었죠. 조금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매체를 찾다가, 판과 종이가 맞댄 상태로 흔적이 남게 되는 판화를 떠올렸어요.” 새로운 작업인 목판화는 뉴욕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6개월 동안 보낸 시간을 기록한다. 이전에는 장소를 움직이면서 시간대를 기록했다면, 지금은 움직임이 제거된 상태에서 주관적으로 수렴한 시간을 탐구하는 셈이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다는 게 새로운 한계점을 맞닥뜨리는 순간임을 경험한다는 그가 지금 자신과 다투고 있는 결과물은, 1월 중 원앤제이 플러스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