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들의 남다른 정신 세계

이채민

2017 F/W의 끝자락에서. 그냥 흘려보내긴 아쉬운 디자이너들의 기발하고 독특한 정신 세계에 대하여.

패션에서 창조적 행위는 어디까지 인정되는 것일까? 그 창조적 행위는 과연, 늘 대중의 인정과 이해가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크리에이터의 사명은 새로운 발상을, 시선을 제안하고, 그 창의적 적용을 눈앞에 제시하면 되는 것이지 이해나 인정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건 아닐지 모른다. 2017 F/W 컬렉션에서도 수많은 트렌드가 출현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언급하려는 것들은 트렌드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저 기행으로 평가하고 잊히기에는 아쉬운 것들이다. 언제고 다시 소환되거나 그 창의적 재해석이 기다려지는,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 말이다.

먼저 미우치아 프라다가 목가적인 무드의 니트 브라톱에 매치한 액세서리가 뭐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프라다의 조개 목걸이

프라다의 조개 목걸이

바로 발리 스미냑 시내 어딘가에서 팔고 있을 법한 조개 목걸이. 프라다의 퍼 모자와 슈즈, 곰돌이 코트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조개 목걸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 없을 듯싶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듯 전혀 다른 질감이나 쉽게 연관 짓기 어려운 소재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낯선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비상한 감각의 소유자다. 마치 어떤 경계나 금기도 없는 천진한 아이의 눈처럼. 그녀가 보여준 그간의 행보를 떠올려보라. 신인의 맹렬하고 과감한 도전 정신과 동시에 노장의 노련함까지 갖춘,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는 경의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여기서, 미우치아 프라다에 견줄 만한 참신한 상상력을 발휘한 인물로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꼽아야겠다. 그가 이번 시즌 창조한 ‘너드 판타지’ 뒤에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이라는 계절에 주로 활용되던 라피아 아이템을 F/W의 액세서리로 활용한 점은 기발하다.

구찌의 한겨울의 바구니

구찌의 한겨울의 바구니

구찌의 겨울에 즐기는 라피아 모자

구찌의 겨울에 즐기는 라피아 모자

챙이 아주 커다란 라피아 모자는 계절 감을 잃은 채 새틴 슈트, 부츠 차림에 매치됐고, 뱀부 손잡이가 달린 피크닉 백 역시 턱시도에 매치했다. 라피아 소재는 겨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에 맞서는 간단하지만 새로운 발상인 것.

구찌의 쿠튀르적인 드레스와 선글라스

구찌의 쿠튀르적인 드레스와 선글라스

쿠튀르적인 드레스 위에 펑크 무드의 선글라스를 매치한 것 역시 그다운 과감한 도발로 쿠튀르의 수공예적 진지함과 반항적이고 거친 펑크록 무드의 독특한 조합은 특별한 잔상을 남겼다.

이참에 패션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실천하는 디자이너를 살펴보자. 이번 시즌 최강 트렌드 중 하나인 애슬레저 룩의 믹스는 모두 알고 있을 터. 그중에서도 가장 신선한 애슬레저 스타일링을 꼽아보라면, 두말 않고 여성스러움의 대명사이자 쿠튀르 터치로 귀결되는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스타일링이라고 하겠다.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드레스와 러닝 팬츠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드레스와 러닝 팬츠

풍성한 러플 장식 드레스에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스판 소재 타이츠를 매치한 그의 제안은 재치 있는 동시에 우아했다. 지극히 사랑스러운 브랜드와 중성적인 스포티 브랜드의 만남에 심지어 컬러는 모두 시크한 검정으로 무장했다.

한편 코쉐, 르메르, 필립 림, 토가, 에밀리아 윅스테드 등 밀라노, 런던, 파리를 아우르는 트렌디한 브랜드에서는 간결한 방식으로 크리에이티브를 실현해 눈길을 끌었다.

필립 림의 브로치

필립 림의 브로치

에밀리아 윅스테드의 허리 춤에 브로치

에밀리아 윅스테드의 허리 춤에 브로치

그들은 하나같이 브로치를 의외의 곳에 달아 신선함을 주었는데, 이를테면 데님 팬츠의 허리춤이나, 가슴 정중앙, 단추의 바로 옆 부분 같은 지점에 달아 아주 쉽게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은 늘 일상에 관한 것이라 말했다.

마거릿 호웰의 앞치마

마거릿 호웰의 앞치마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이번 시즌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오브제인 앞치마를 스타일링에 적용한 마거릿 호웰, 마리앰 나시르 자데, 집시 스포츠 등 신인 디자이너들의 비범한 상상력에도 주목하고 싶다.

한편 디자이너는 색 조합에서도 독보적인 창의성을 드러내곤 한다. 팬톤에서 트렌드라 발표한 컬러를 당당히 무시하고, 독창적인 색을 주장한 브랜드를 꼽자면, 형광색을 과감하게 적용한 마르지엘라와 코쉐, 푸치를 언급할 수 있다.

마르지엘라의 형광 믹스

마르지엘라의 형광 믹스

코쉐의 형광 믹스

코쉐의 형광 믹스

형광색은 사실 다른 색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해 스타일링에 활용하기에는 난감한 색이다. 그런 형광색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디자이너들의 선구적 마인드와 창의성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핑크와 형광 주황의 만남, 형광 연두와 베이지의 만남 같은, 기이한 색 조합이 전한 참신함은 이들 용감한 크리에이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드레스와 등산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드레스와 등산화

톰 브라운의 패딩 턱시도

톰 브라운의 패딩 턱시도

톰 브라운의 스케이트 신발

톰 브라운의 스케이트 신발

마지막으로 등산화와 여성복의 만남을 선도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리고 패딩 소재로 턱시도를 만들고, 스케이트 구두를 만든 톰 브라운의 창의성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등산화 특유의 투박함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해 그녀의 해체적인 드레스와 매치했는데, 컬러풀한 끈, 말 이빨같이 투박한 솔기, 흙색 가죽 등 그 기묘한 조합은 이 노장이 여전히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음을 알 수 있다.그들은 아마 지금 창의성의 경지를 뛰어넘어 또 다른 세계로 가고 있지 않을까.

알투자라의 플라워 드레스와 전투화

알투자라의 플라워 드레스와 전투화

몬세의 드레스 매듭

몬세의 드레스 매듭

프링글의 아웃도어 활용법

프링글의 아웃도어 활용법

톰 브라운의 펭귄 가방

톰 브라운의 펭귄 가방

마이너적이고, 상식과 충돌하는 그들의 행보가 대중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트렌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디자이너의 자질은 사물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 즉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잘 팔리는 옷을 만들어 이윤을 취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일 역시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있음에 패션은 늘 새롭게 나아가는 것일 터. 그리고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창의성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더불어 독특한 정신 세계를 포착하고, 끊임없이 궁금증을 갖고,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그런 디자이너들과 함께 동시대를 호흡하는 우리의 책무라 생각한다.

패션 에디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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