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일상에서 오장육부가 뒤틀리도록 웃고 싶을 때 누구를 쳐다봐야 할까? 여기, 남다른 통찰력으로 웃음이라는 정수를 길러낸 6인의 코미디언을 호명한다. 웃긴 사람들의 바탕엔 웃기지만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정교한 농담의 시인 루이 C.K.

The New York Comedy Festival and The Bob Woodruff Foundation Present the 10th Annual Stand Up for Heroes Event
‘관찰형 코미디(Observational Comedy)’라는 장르가 있다.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관찰한 에피소드 를 다루는 코미디 형식인데, 이 스타일이 현재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의 3자 대화” 혹은 “신부와 도둑이 천국에 갔는데…”라는 식으로 농담을 위한 특정 상황을 가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소개팅을 했는데 말이지”처럼 경험을 기반으로 한 개그. 관찰형 코미디는 다수가 공감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웃음 포인트를 잡아간다. 나는 이 장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취향에 맞는 유머 코드이기도 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 이 분야 최고는 단언컨대 미국 코미디언 루이 C.K.다. 심야 토크쇼에 나와 실수로 초콜릿을 먹은 자신의 애견을 토하게 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과산화수소수를 먹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상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루이 C.K.의 주 소재는 40대 남성의 일상다반사다. 그는 이혼, 두 딸의 육아, 중년의 변화가 초래하는 자기 혐오 등의 경험담과 그를 통해 깨달은 인생과 현대 문명의 부조리함을 조롱한다. 집필이면 집필, 공연이면 공연, 그는 빈틈없는 코미디언이다. 그가 직접 쓰는 대본은 단어의 선택과 운율이 무척이나 정교해서 처음 들을 때는 웃기기만 한데 나중에 천천히 뜯어보면 버릴 단어가 하나 없다. 효율적인 전제 제시부터 여러 단계로 뻥뻥 터지는 펀치 라인(웃음이 터지는 포인트)까지, 그의 농담은 사뭇 웃음을 목적으로 쓰인 시다. 공연 능력 역시 필력만큼이나 탁월하다. 목소리와 말투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을 연기하는 코미디의 기본기도 뛰어나지만, 대본을 입체적으로 살려주고 듣는 이의 귀에 팍팍 꽂히도록 하는 전달력도 최고 수준이다. 무조건 말을 쏟아내기 바빴던 젊은 시절의 미숙함도 걷어내 이제는 관객이 숨 돌리고 웃을 수 있는 적절한 쉼표까지 찍어주면서 점차 유머의 강도를 쌓아 올리는, 신기에 가까운 리듬과 타이밍도 갖췄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루이 C.K. 2017>이라는 공연 영상은 절정에 다다른 그의 기량을 여실히 보여준다. 낙태라는 민감한 소재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다루는 오프닝에서부터 동성애 혐오에 대한 우회적 도발이 돋보이는 마무리까지, 그는 쉴 새 없이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특히 그리스 신화 속 아킬레스의 이야기를 ‘부모 고마운 줄 모르는 자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연결하는 대목이 그의 특기를 잘 보여주는 백미. 깊이가 있어서 더 웃기는 코미디언이자 웃겨서 더 깊이가 있는 코미디언, 그게 바로 루이 C.K.다.

비극을 품은 코미디 트레버 노아

Comedy Central's The Daily Show Presents: The Donald J. Trump Presidential Twitter Library Opening Reception
발생시키는 코미디의 원재료가 자신의 상처나 슬픔인 경우의 예술가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로빈 윌리엄스가 그랬고, 짐 캐리도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자신이 겪은 실체적인 고통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언은 드물다. 그중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트레버 노아(Trevor Noah)다. 트레버 노아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코미디언 중 드물게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다. 2011년경 그가 처음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의 메이저리그 격인 미국에 진출할 때, 다들 그저 ‘남아공 악센트를 이용한 개그’를 펀치라인으로 미는 희극인일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트레버 노아의 아버지는 스위스계 독일인, 어머니는 아프리카 원주민 계열로 그들은 흑백 가족이다. 그가 태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남아공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게 불법이었다. 트레버 노아로서는 존재 자체가 범죄의 증거물이었던 셈이다. 그는 자기 부모를 두고 진짜 부모가 아닌 척해야 했고, 세 식구가 함께 다닐 때면 부모는 각각 길 건너편에서 따로 걸어야 했다. 혼혈이라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피부색 때문에 그는 백색증 환자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사의 불행하고 슬픈 이 이야기를 트레버 노아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육성으로 전한다. 그리고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지금은 따로 떨어져 사는 아버지와 대화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웠는데, 하필이면 교재가 히틀러의 연설 실황 녹음이라 히틀러 억양을 쓰는 ‘흑인 히틀러’가 됐다는, 어찌 보면 끔찍한 이야기도 그의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얹히면 좌중을 뒤흔드는 펀치라인이 된다. 코미디언으로서 트레버 노아의 장점은 자신의 상처를 세일즈하는 기술이나 특이한 인종적 구성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무자비한 비속어와 막장 시추에이션이 난무하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계에서 드물게도 절제된 비속어와 은근한 상징으로 음담패설을 순화할 줄 안다. 그런데도 적나라한 용어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숱한 라이벌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밀도의 웃음을 선사한다. 트레버 노아는 현재 수많은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시사 토크쇼 <더 데일리 쇼>의 호스트다. 그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다.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우경화됐으며 대통령이 나서서 인종 차별을 하는 그 정권에 적절한 풍자를 날릴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풍자 개그의 용자 유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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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여러 덕목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 여러 가지 중 대부분에 있어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왔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정치인에게 가장 모자랐던 덕목 하나를 꼽으라면, ‘기꺼이 비판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판하면, 목소리를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비판받을 일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면서 비판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풍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판과 풍자는 이를테면 동전의 앞뒤다. 비판이 가능해야 풍자가 산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날 선 비판 감각이 녹아 있지 않은 풍자에는 멋과 맛이 깃들기 어렵다. 1990년대에는 김형곤이라는 위대한 코미디언이 이걸 해냈고, 그 뒤를 김제동이 이었다.

시사 풍자는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장르는 물론 아니다. 그냥 웃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웃음과 함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버무려야 하는 까닭이다. 절묘한 균형 감각 역시 필수다. 이런 측면에서 웃음과 현실 사이에 선 현묘한 외줄 타기가 곧 풍자 개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현역인 김제동과 더불어 유병재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인 대다수가 여전히 과한 엄숙주의에 빠져 풍자당하는 걸 모욕으로 인식하는 시대에, 그는 용감하게 그들에게 메스를 들이밀어 그걸 웃음으로 싹 바꿔놓는다. 나처럼 ‘페이스북에서만 용자’인 타입의 인간은 오늘도 그의 풍자 개그 영상을 보고, 대리 만족하며 낄낄거린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가장 큰 고질병이 쓸데없는 엄숙주의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지금도, 풍자 개그를 하려면 어떤 각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유병재라는 사람에게선 그 각오가 느껴진다. 동영상으로도 공유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유병재 스탠드업 코미디>를 직접 관람하면서 ‘대리 만족 뽕’ 한 번 강하게 맞고 싶었는데, 표를 구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 시절 천재적인 ‘별난 여자’ 박미선

이경실, 연예대상 MC라면 이정도는 기본
30년 전, MBC 〈일요일일요일밤에〉를 보는 것은 한 국민학생(그때는 초등학생이 아니었다)에게 일종의 의식 같은 일이었다. 일요일 늦은 시간에 코미디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던 데다, 〈일요일일요일밤에〉의 코미디는 심형래가 간판이던 KBS 〈유머일번지〉나 〈한바탕 웃음으로〉의 코미디와도 달랐다. KBS가 유행어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MBC는 상황이 일으키는 재미나 순간적인 재치로 웃겼고, 거기엔 사회 풍자도 약간이나마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박미선의 스탠드업 코미디 ‘별난 여자’는 <일요일일요일밤에〉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웃긴 순간을 만들어냈다. 개그맨 시험을 볼 때 준비물 없이 언니에 관한 농담만으로 합격한 이 신인은 그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오직 입담으로 사람들을 뒤집어지게 했다. 여자로 살면서 겪은 이상한 남자들,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과장 보탠 농담으로 풀어내는 솜씨는 지금 생각하면 천재적이었고, 불가사의할 만큼 희귀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여성이 ‘여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스탠드업 코미디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미선은 2000년대 초반 즈음엔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해 ‘미달이 엄마’를 연기했고, 그 후로는 KBS <해피투게더>와 MBC 〈세바퀴>처럼 멘트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진행자로 활약했다. 어떤 영역에서든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누군가의 엄마를 연기하거나 남자 MC들 사이를 중재하는 영리한 진행자 외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MC로 다시 주목받은 계기 역시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 출연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며 화제가 된 이후였다. 박미선은 얼마든지 여성이자 주인공으로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은 쉽게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해 결혼할 만한 남자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것처럼, 가끔씩 ‘별난 여자’ 시절의 감각이 슬쩍 드러날 뿐이다. 물론 박미선은 이미 대단한 예능인이다. 30년 동안 이렇게 꾸준히 잘하는 예능인이 얼마나 있나? 하지만 그건 단지 오래 살아남아서가 아니다. 30년 전의 박미선은, 천재였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다 살리지 못하는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이만큼 하고 있다.

코미디언 그 이상의 행보 마츠모토 히토시

Claudia Cardinale 'Pardo Alla Carriera' - Red Carpet - The 64th Festival del Film di Locarno
가까운 나라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일본의 코미디언은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경이로운 코미디언은 나의 영원한 ‘본좌’ 김준호를 제외하면 일본의 마츠모토 히토시(Matsumoto Hitoshi)다. 일본의 코미디는 에도 시대부터 전승된 ‘라쿠고(만담)’라는 전통 오락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츠모토 히토시는 이 전통 있는 장르를 혁명적으로 현대화한 일본 코미디의 아이콘이자 쇼 MC, 예능 프로듀서, 영화 연출가다. 그는 1982년, 또 한 명의 거물급 코미디언인 하마다 마사토시와 함께 다운타운이라는 콤비로 활동을 시작했다. 둘 다 일본 코미디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관서 지역 출신이다. 1963년 효고현 아마가사키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코미디 기획사에서 훈련을 받은 두 사람이니, 나름 일본 코미디계의 성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성취는 빠른 속도의 재담이나 바보 연기, 반복 개그, 유행어, 몸 개그 등 기존의 정형화된 만담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다운타운은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아이러니를 포착해 느긋한 말투로 웃음을 뽑아내는 신세대 만담을 개척했다. 관서 사투리 특유의 능청맞고 심술궂은 악센트로 창의적인 펀치라인을 구사하고, 느긋하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상대에게 자신을 공격할 만한 요소를 던지며, 공격을 받는 순간 당해주거나 맞받아치는 팀워크와 타이밍은 오랜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짜인 캐릭터성보다 일상적인 토크로 웃음을 뽑아내는 두 사람의 스타일은 쇼 MC로 활약할 때 더 돋보인다. 게스트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동물적인 스토리텔링 능력. 낯선 사람에게서 금세 특징과 캐릭터를 캐치하는 관찰력. 출연자의 말에서 모순되는 지점이나 불편한 지점을 포착해 웃음을 끄집어내는 논리력. 논리를 장식하는 기이하고 독창적인 비유까지, 이런 능력은 연기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극작에 가까운 영역이다. 그 덕에 다운타운이 진행하는 쇼는 말주변이 없는 게스트가 출연해도 일정 이상의 재미가 보장됐다.

전성기였던 2000년대에 비해 2010년대에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만, 여전히 일본 예능 신에서 다운타운을, 특히 마츠모토 히토시를 넘어설 사람은 없지 않을까?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절대 웃으면 안 되는〉 시리즈, <마츠모토 히토시의 재미있는 이야기> 시리즈 등은 모두 본인이 직접 기획한 작품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가키노츠카이>는 거의 30년 째 같은 제작진과 출연진으로 방송 중이다. 그 밖에 마츠모토 히토시는 수많은 레귤러 버라이어티를 남긴 것을 비롯해 책을 쓰거나 영화를 연출하는 등(영화 <심볼>로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코미디언의 영역을 넘는 광폭의 행보를 걸어왔다. 기타노 다케시를 잇는 다재다능한 코미디 크리에이터로서 일본 내 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라 할 것이다.

작은 것들의 신 케빈 하트
케빈 하트(Kevin Hart)를 두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 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미식축구장을 스탠드업 코미디 쇼만으로 가득 채우는 그 힘에서부터 일단 설명이 가능하다. 케빈 하트는 비참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코카인 중독으로 감옥을 오갔으니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이는 케빈 하트식 스탠드업 코미디의 근원이 됐다. 약물 중독자인 아버지를 오히려 개그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키가 157cm에 불과한 케빈 하트는 포화 상태로 갇혀 있는 에너지를 신경질적으로 뿜어낸다. 단신임에도 NBA 올스타전 특별 경기중 3점 슛 콘테스트에서 현역 선수 드레이먼드 그린과 동점을 거두기도 했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검문당하는 에피소드처럼 키 콤플렉스에 대한 개그 역시 다수 선보이는 인물이 악을 쓰고 현역 선수와 대결해 동점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코미디 퍼포먼스라 할 만하다.

코미디 쇼를 할 때 케빈 하트의 캐릭터 패턴은 흑인 남성 특유의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하다가 울거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식으로 귀결된다. 사막 한가운데서 괜히 타조에게 볼펜을 던진 이후 타조에게 쫓겨 도망 다니면서도 눈물을 보였고, 자신이 직접 무시무시한 롤러코스터를 탄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돌려본 직후에도 역시 눈물을 흘렸다. 간혹 여성 비하 단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밝히는 이야 기 후반에 이르면 그가 일종의 위악적 제스처를 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케빈 하트는 거친 흑인 남성 사회 속에서 억지로 버티는 일에 스트레스받는, 연약하고 솔직한 ‘게토 보이’다. 그는 어린 시절 슬플 때면 영화 <록키>의 배경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뛰어올랐다고 한다.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그는 또 울곤 했다.

<코난 오브라이언 쇼> 중 아이스 큐브와 함께 등장한 에피소드를 보면 케빈 하트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Thug Life!”를 외치며 터프 가이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러나 아이스 큐브가 내가 아는 가장 갱스터다운 투팍조차도 항상 안전벨트를 맨다고 말하자 바로 안전벨트를 맨다. 자신의 잘못, 특히 남성다운 데서 오는 행동을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는 행동 자체가 꽤 21세기적 양식에 걸맞지 않나 싶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 케빈 하트가 현시대를 대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