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무엘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서사무엘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

2018-03-28T05:36:29+00:002017.10.27|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뮤지션 서사무엘은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조금씩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브라운 색상의 지퍼 니트와 안에 입은 검은색 티셔츠, 차콜 색상 팬츠, 이중으로 된 독특한 디자인의 벨트는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브라운 색상의 지퍼 니트와 안에 입은 검은색 티셔츠, 차콜 색상 팬츠, 이중으로 된 독특한 디자인의 벨트는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W Korea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길었던 추석은 어떻게 보냈나?
서사무엘 실컷 음악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두 달 전 프라이머리를 인터뷰했는데 이렇게 말하더라. “서사무엘은 마인드적으로 신기한 친구다. 책도 많이 읽고, 자기가 쓰는 가사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동감한다(웃음). 책은 요즘 바빠서 잘 못 읽고 있지만.

랩을 하다가 보컬을 시작했다. 힙합인 듯도 아닌 듯도 한 묘한 음악이다.
애매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그런 소리 듣는 게 기분 좋다. 래퍼, 싱어, 작곡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 참 다양한데 그게 바로 장르의 개척인 거 같다.

래퍼 출신이라서인지 노래할 때 리듬을 타는 감각이 확실히 다르다.
노래, 혹은 랩, 특정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게 계속 바뀌고, 하고 싶은 걸 그때그때 할 뿐이다. 내 목소리를 가진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퍼포먼스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면, 작곡과 프로듀서 역할 쪽으로 더 나아갈 수도 있을까?
내 음악을 만드는 게 좋지, 누군가를 바꿔주는 데는 관심 없다. 영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내가 전면에 있어야 한다.

가사와 삶이 일치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당신의 말을 들으니 ‘Ego Death’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앞으론 어떤 식의 사람이 될진 아직 모르니까/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장담 않고 스며들게 놓아둘게” 하는.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대한 노래인데, 가사처럼 내가 사는 동안 시야를 넓혀가며 많이 배우고, 느끼고 싶다. 길게 서사무엘의 완성은 70대로 보기 때문에 천천히 채워가면서 살려고 한다. 내 노래를 통해 사람이 저런 방식으로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고, 음악을 이용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기도 하다. 위대해지고 싶다.

70대의 서사무엘이 완성형이라면, 스물일곱 살인 지금 몇 퍼센트나 와 있나?
햇병아리 애벌레 번데기 정도다. 데뷔 한 지 2년밖에 안 됐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가능성을 높게 본다. ‘저런 애도 저렇게 해내는구나’ 하고 느낄 만한 뭔가를 보여줄 거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너무 냉정한 것 아닌가? 데뷔 앨범으로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R&B/소울 음반’ 부문 상을 받았고, 또 7개월 만에 두 번째 앨범, 단독 공연. 천재라는 수식도 종종 따라다니는데.
내가 가진 재능이 있다면, 노력하는 재능이다. 한 가지에 집중해서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타고나서 잘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있을 때 그걸 엄청나게 파고들어서 증명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입시생 때 피아노 작곡이 그랬고, 랩이 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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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최근에는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내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이론적으로 길을 잡아줄 수 있는 분을 만났다. 딱히 어떤 목표가 있다기보다 하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하고 생각한다. 30대에 빛을 발하지 않을까?

보컬 트레이닝 말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살을 뺀 것. 90에서 61킬로그램까지 체중을 줄였다. 그리고 악기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 또 하나, 요즘 피부로 와닿는 건 ‘다양한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 지식은 인터넷을 통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빨아들인 것이 대부분인데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가 나서서 경험하고 찾아볼 시기가 온 거다. 성인의 시야로 다양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접하면서 지구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걸 눈으로 보고 싶다.

그런 관점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멋진 경치는 어린 시절 아버지 덕분에 많이 접했다. 그런 풍경보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고 싶다. 말이 안 통하는 그런 곳, 이를테면 짐바브웨가 떠오른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서, 빵 하나를 사기 위해서 수레 가득 돈을 가져가야 하는 나라였다고 한다. 10년 사이에 그 나라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다.

작곡을 전공했는데 랩은 어쩌다 하게 됐나?
랩을 한 시기는 2년 정도로 아주 짧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당시 한국 힙합 신의 래퍼 형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나 열정이 멋져 보였다. 열아홉 살에 힙합 레이블 빅딜 레코드에 들어가면서 그 꿈을 이뤄 가슴 벅찼지만, 내가 랩에 재능이 있거나 래퍼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서도 나오고 대학에도 적응을 못 하면서 힘든 시기를 거쳤다. 그래서 군대에 다녀왔는데 더 적응이 안 되더라.

방황한 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10대 때는 어떤 아이였나?
갈팡질팡했다. 목동의 찐따 같은 아이였다. 어떻게 하면 음악을 업으로 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지금 얘기를 나눠보면 당신은 확신에 차 있고 자신감도 강해 보이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느 순간 깨달음처럼 왔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크더라. 그전의 나는 자존감이 거의 없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해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에 간 경험이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어느 노숙자가 나에게 다가와 담배 있냐고 묻는데, 그 당당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게 존엄을 잃지 않는 자세가 있었다. 그 후로 나도 기왕에 한번 사는 것, 용기를 내게 됐다. 평소에 안 할 거 같은 행동도 해보게 되고. 그런 생각의 변화를 기점으로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 것 같다.

위대해지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대함의 정의는 뭘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내 족적을 크게 남기겠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11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