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는 거의 극장을 떠났지만, 영화가 지나간 자리에서 계속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있다. 11년 전 <괴물>을 시작으로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이 스캔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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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지나갔다. 작년 여름에는 <부산행>이, 재작년에는 <암살>과 <베테랑>이, 그 전해에는 <명량>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 천만 관객의 문을 돌파했다. 당장 다음 달 개봉 예정인데도 개봉일을 확정 짓지 못한 영화가 늘어가지만, 흥행과 성공을 어느 정도 예약해둔 일명 ‘텐트폴’ 작품은 일찍부터 개봉 시기를 정해놓고 그즈음 영화들의 일정에서 기준점 역할을 한다. 그런 영화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시달리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러 면에서 큰 몸을 자처하는 작품은 태생적으로 최대한 많은 스크린에 ‘와이드 릴리스’돼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여름의 주인공이었던 <군함도>는 국내 2600개 정도 되는 전체 스크린 중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 처음으로 2천 개가 넘는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업계 사람들도 놀라게 만들었다. 메인 투자사이자 배급사인 CJ와 류승완 감독이 언론과 언론임을 주장하는 매체에 오르내리는 동안, <군함도>의 스크린과 관객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영화는 9월 중순 현재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약 660만 관객 스코어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화제나 논란을 일으킨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간 후에도 보편적 주제로 치환되어 새로운 담론 지형을 형성할 수 있다. <군함도>의 여파에 관해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인터넷과 SNS상에 넘치는 대중의 의견을 보며 느낀 점 하나는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라고 할 때 먼저 떠올리는 핵심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국뽕’ 혹은 친일과 역사 왜곡 제기 등 영화의 내용을 바라보는 사람,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논하는 사람,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여론 몰이와 선동 세력을 의심하는 사람 등. 이 중 <군함도>가 끝이 아닌 시작이 되기 위해서 이제라도 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스크린 독과점 이슈일 것이다. 그건 영화 산업 구조와 연관된 문제이고,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애먼 논의만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급은 한마디로 극장에 영화를 파는 세일즈를 말합니다. 배급사가 극장을 갖고 있다면 영화를 많이 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죠. 물론 어떻게 해도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돼요. 하지만 될 것 같은 영화를 조금이라도 안 되게 만든다거나, 잘 안될 것 같은 영화를 조금이라도 흥하게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영화감독 J의 말이다. <군함도>가 나타나자 이보다 한 주 앞서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눈에 띄게 극장에서 사라진 점을 두고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싸움이 나고 있다. ‘<덩케르크>는 피해자다 VS 예매 성적이 안 좋아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극장이 내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식의 의견 충돌이 그렇다. 제작, 투자, 배급이라는 3요소에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일 배급은 보통의 관객에겐 극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CJ, 중앙미디어네트워크에서 인수한 메가박스, 롯데 3사에 모두 배급사가 있고, 어차피 대다수 관객에게 극장이란 이 3사에서 운영하는 곳 중 하나이니까.

그런데 대기업 3사에 New까지 더해 4강 체제였던 투자 배급사는 <밀정>으로 국내에 첫 진출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와 <곡성>을 맡은 20세기폭스 코리아 등이 등장하면서 ‘다자 구도’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3강 체제가 굳건하거나 더욱 강화되는 곳은 극장 쪽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산업결산보고서에 따르면 멀티플렉스 3사인 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의 매출 점유율이 무려 97%다. 이 극장들은 다시 본사 직영점과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위탁점으로 나뉜다. 한 영화 저널리스트는 그간 여러 입장의 관계자를 만나보면서 결국 영화와 관객의 접점을 쥐고 있는 건 극장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서울에 극장이 너무 늘어났어요. 멀티플렉스나 잘 갖춰진 극장일수록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그럼 잘될 만한 영화를 걸 수밖에 없겠죠. 선택권이 없다고 푸념하는 관객이 많은데, 다양한 영화에 관을 내줘도 관객이 안 든다는 극장 역시 많아요. 그래서 요즘엔 그때그때 좌석 점유율에 따라 영화가 걸렸다 내렸다 하는 경우도 잦아요. 극장 측의 재량인거죠.”

특정 영화가 극장을 장악하는 요인으로 어느 한쪽만 명백히 호명하긴 힘들다. 수직 계열화된 구조에서 각자는 핑퐁게임을 하듯 책임을 전가해도 일견 맞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고, 관객이라는 이름의 동전은 블록버스터가 개봉할 때야 극장을 찾는 이와 다양한 선택권을 쥐고 싶은 이가 양면으로 맞물려 있다. 이런 가정은 어떨까? 멀티플렉스의 점장들이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올여름 기대작에 많은 스크린을 내준 거다. 이런 미시적 요인이 기록적 독과점이라는 결과에 단 1%도 기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자본이라는 개념은 명확한 반면, 관객의 정서나 타이밍 같은 것은 불확실한 변수다. <군함도> 논란이 뜨거울 동안 어느새 극장에 안착하여 천만 관객을 넘긴 쇼박스 배급의 <택시운전사>는 개봉 첫 주 스크린 수가 2천 개에 조금 못 미친다. 독과점의 기준은 뭘까? 스크린 수란 영화를 한 관에서 한 번만 상영해도 집계되는 것이니 사실 그보다 정체가 분명한 개념은 해당 영화가 얼마나 상영했는지 알려주는 상영 점유율일 텐데, 개봉주 기준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그 어느 한국 영화보다 월등히 높다. 외국 영화는 외국 자본이라 우리 사정 아니니까 이 논의에서 제외하면 되는 걸까?

독과점 스캔들에 휘말릴 정도의 규모가 되는 한국 영화에 ‘천만’은 꿈의 숫자 만은 아닌, 상징적인 기준치가 된 듯하다. 독과점 문제가 처음 크게 불거진 게 2006년 <괴물>이니, 2005년 <왕의 남자>는 스크린 독과점 스캔들과 상관없는 마지막 천만 관객 영화였다. 천만의 전당에 한국 영화 16편이 오르는 동안 천만 관객용 영화의 공식도 꾸준히 쌓였다. 16편을 쭉 늘어놓고 보니 오달수 출연작이 7편이라면, 투자사가 주연급 조연으로 오달수라는 부적을 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의식이나 가족애를 다루며 재미뿐 아니라 교훈까지 얻어 나가게 만드는 작품(<국제시장> <명량> <암살>)은 보다 넓은 관객층에게 통한다. 다른 말로 집단적인 무의식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야 고른 연령대의 관객이 움직인다. 순전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만으로 천만을 찍은 사례는 <도둑들> 정도일까, 비극이든 희극이든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데가 있어야 천만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열하고 보니 이 공식이란 게 썩 나쁘지 않다. 역시 천만이 움직일 땐 다 이유가 있었다. 투자사의 관심을 받을 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감독이나 작가의 자격마저 미달이라는 자조가 들려오지만.

얼마 전 CJ CGV 대표는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공론화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영화 산업의 수직 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은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 오는 10월에 열릴 국정 감사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CGV 대표를 볼지도 모른다. 영화 상영 횟수나 비율에 상한선을 두자는 건 오래전부터 많은 영화인이 언급한 부분이다. 물론 규제에는 더 과학적인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장치 마련을 위해 소동을 치르는 세월동안 천만 관객을 노리는 한국 영화가 또다시 독과점 스캔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 관객의 입장에선 그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