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소재의 향연을 추구하는 맥시멀리스트와 절제와 덜어냄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미니멀리스트 간에 극적인 대결이 펼쳐진다.

절제의 승부사, 미니멀리스트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대전제가 되어버린 현재 1990년대가 뜨거운 화두인 이유는 이 시기가 유일하게 재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이 만개한 당시를 예언하고 선도하고 이끈 하우스가 환영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터. 뉴욕 모더니즘의 선구자 캘빈 클라인에는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라프 시몬스가 수장으로 자리 잡고 있고, 헬무트 랭이 떠나고 쇠락의 길을 걷던 브랜드 헬무트 랭은 캡슐 컬렉션 론칭을 통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흐름은 전통적인 미니멀리스트들의 행보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라프 시몬스는 미국에 보내는 오마주 ‘아메리카나’를 통해 미니멀리즘의 역사를 다시 썼고, 전통의 강자 질샌더는 여전히 감도 높은 컬러 팔레트에 크고 각진 어깨의 슈트를 조합시켰다. 유러피언 하우스 중 대표적 미니멀리스트로 꼽히는 르메르는 부드러운 크림색에 투박한 코듀로이 소재를 적용한 인상적인 룩으로 노련한 미니멀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친환경주의자 스텔라 매카트니의 따뜻한 정서가 돋보이는 울 코트나 특유의 독창적인 조형미를 완성한 자크뮈스까지, 절제 속에서도 디자이너들의 해석은 이토록 다채롭다. 미니멀리스트는 수도승에 가깝다. 장식을 배제하고 한정된 요소를 조합해 감각의 끝을 찾아가는 고행의 길을 걷기 때문. 대신 옷을 입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발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지만, 감각의 절정을 직접 입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드라마 퀸, 맥시멀리스트


미니멀리스트의 반대편에는 절제를 모르는 맥시멀리스트가 있다. 소재, 색상, 장식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태도까지 갖춰야 하는 드라마 퀸 말이다. 패션 판타지 월드로 인도하는 것이 그들이기도 하다. 맥시멀리스트가 없는 패션 월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중세 시대 장식주의를 사랑하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화려함의 극치를 넘어 세상의 온갖 캐릭터를 집합시킨 119벌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의 룩을 런웨이에 등장시켰고, 이는 판매 쾌조로 이어지고 있다. 발맹을 이끄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섬세한 기술력은 또 어떤가. 그는 비즈가 달린 프린지와 번쩍번쩍한 금색 장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쿠튀르식 기조를 펼치는 중. 또, 괴상한 촛대나 수레바퀴를 헤드피스로 활용해 쇼걸 퍼레이드를 선보인 모스키노는 눈요깃거리 가득한 쇼의 미덕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한 가지 룩 안에 페더, 퍼, 파이톤, 코듀로이까지 현란한 소재의 믹스 매치를 선보인 프라다, 트롱프뢰유에서 시작해 오색찬란한 프린트의 대가로 거듭나고 있는 마리 카트란주, 뉴욕의 글래머러스함을 품은 마이클 코어스, 로큰롤의 방종함을 과시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까지, 이들이 펼쳐낸 호사스러움 덕분에 패션 월드는 여전히 황홀하고 풍요롭다. 퍽퍽한 일상에 지쳐 있다면 자신감 넘치는 맥시멀리스트로 변신하자. 태도만으로도 한결 윤택하고 빛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