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면서 힙합이 아닌, 식케이의 음악

이채민

당신이 지금 힙합 커뮤니티 한 곳을 찾아 게시판을 둘러본다면, 식케이(Sik-K)의 이름을 금방 발견할 것이다. 그는 랩 스타보다 팝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영 블러드다.

코듀로이 소재 코트는 프라다, 검은색 팬츠는 디스퀘어드2 제품. 목걸이와 티셔츠는 본인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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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ea <더블유> 독자 중 식케이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 거라고 짐작하나?
식케이 음,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여전히 대세인 <프로듀스 101>과 당신의 연결 고리를 언급하는 데서 시작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들어보겠다. 거기서 12위로 아깝게 워너원 멤버가 되지 못한 정세운이 오늘 솔로곡을 발표했다. 그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인물이 바로 식케이다.
이제는 개인적으로도 아는 사이가 됐지만, 처음에는 회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 친한 프로듀서 듀오인 그루비룸을 통해서도 요청이 들어왔고. 어떤 친구인지 여기저기 물어봤더니 다들 착하다고 하기에 작업하기로 했다. 나도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종영한 <쇼미더머니 6>에선 본선까지 진출한 초등학생 래퍼 조우찬의 무대에도 깜짝 등장했다.
같이 춤을 추는 부분이 있었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무대 올라가기 직전까지 연습했다. 우찬이가 이제 개학해서 인기를 좀 실감하는 것 같 더라.

힙합 신을 일으키는 젊은 피가 활발하게 돌고 있는 때다. 그래도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티스트가 등장할 줄은 몰랐지만…. 스물넷이면 음악 하면서 선배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기도 하나?
앨범다운 앨범을 발표한 지는 이제 1년 됐는데, 열아홉 살 때부터 음악 신에서 활동했으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주로 만난 셈이다. 형이라고 해봐야 마인드가 젊은 형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간혹 ‘이거 들어라, 저거 들어라’ ‘힙합이란 이런 거다’ ‘저런 건 멋이 없다’ 식으로 말하는 선배는 아무래도 꼰대처럼 보인다. 나는 ‘힙합’이 되고 싶지 않다. 노래를 하고 싶다. 어느 한 가지에 갇혀 있기는 싫다.

발표한 곡을 쭉 들어보면 멜로디가 살짝 있는 랩을 하거나 노래하는 경우도 많다. 래퍼 넉살이 이런 스타일을 일컬어 ‘노랩’이라고 농담하던데, 직관적이어서 신조어로 만들어도 되겠더라.
노래할 때도 랩하듯이 좀 거칠게, 그리고 보컬을 배우지 않은 티 내면서 그냥 한다. 우리나라에선 가수와 래퍼를 구분하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 둘을 굳이 나누는 건 일종의 편견이다. 내가 <쇼미더머니>에서 조우찬과 합을 맞춰 안무를 선보인 것도, 정세운과 작업한 것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겠지. ‘래퍼가 춤을 춰? 래퍼가 아이돌 음악에 피처링을 해?’ 하는 식으로. 예를 들어 패션만 해도 초크가 유행 하니까 그걸 착용하고 다니는 남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만약 래퍼가 초크를 차고 나타나면 다른 래퍼들이 욕할 거다. 하지만 난 뭐든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포용하는 사람이고 싶다.

식케이식 음악에 녹여내고 싶은 특징이 있다면 뭔가?
차분하면서도 신나는 음악이라고 말해두겠다. 지금은 커리어 초반이니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단계이긴 하다. 피처링을 즐기는 이유가 내 스타일이 아닐 것 같은 음악도 내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슈 디올 포트레이트의 스웨터와 슈즈는 디올 옴므, 바이커 팬츠와 서스펜더는 클림 by 세나트레이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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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에 새 앨범을 발표한다. 지난 두 앨범은 EP지만 수록곡이 각각 열 곡 이상이었다. 이번엔 어떤 음악을 담았나?
풋풋한 사랑, 진한 사랑, 하룻밤의 사랑 등 사랑에 대한 노래를 두루 담은 다섯 곡짜리 EP다. 어떻게 보면 대중적인 테마인데, 정규 앨범을 만들기 전 이런 걸 충분히 해보고 싶었다. 3부작으로 흐르는 프로젝트를 계획했고, 작년 , 올해 라는 앨범에 이어 이번이 그 3부작의 마지막이다. 보이콜드라는 실력 있는 프로듀서와 만들었다.

하이어뮤직은 박재범이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 차차말론과 새로 차린 레이블이고, 당신을 비롯해 지소울과 요즘 가장 핫한 프로듀서 팀인 그루비룸 등이 속해 있다. 박재범이나 AOMG라는 이름이 소속 아티스트에겐 일종의 브랜드 역할을 해주지만, 역으로 박재범이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을 통해 또 다른 기운을 받고자 할 것 같은데?
아, 재범이 형이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형도 나와 내 친구들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게, 앨범을 내기도 전에 공연이나 파티를 하고, 늘 알아서 뭔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거다. 앨범과 상관 없이 이것저것 도모하는 생활이 자연스럽다.

박재범은 레이블 수장이기도 하지만 제이지의 락네이션과 아티스트로 계약을 맺었으니, 자기 갈 길이 바쁠 것 같다. 그가 어떤 조언을 해주나?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을 가끔 한다. 그러고는 자기도 조급해한다. 오늘 저녁엔 레이블 식구의 생일 파티가 있어서 형이 비싼 스테이크를 쏘기로 했다.

그루비룸이 만들고 당신을 포함해 여러 래퍼들이 모여 부른 ‘응 프리스타일’이라는 곡이 작년 유튜브 뮤직의 글로벌 광고 음악으로 채택됐다. 광고에서 뮤직비디오가 오래 노출됐기 때문인지 유튜브 내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현재 2천2백만이 넘는다. 작년에 낸 앨범으로 연말에는 유럽 투어도 했고.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에서 공연했다. 제의는 나에게 들어왔는데 옐로즈맙이라는 내 크루와 함께하고 싶어서 요구했더니 들어줬다. 런던에선 관객이 한 600명 왔나? 소규모일 줄 알았는데, 무대 올랐다가 사람들 많은 거 보고 당황했다. ‘이 사람들 내 노래를 어떻게 알지? 아니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 따라 하는 거야!’ 신기했다.

유독 한국 힙합 신에서는 아티스트와 리스너 모두가 트렌디함 여부를 자주 언급하는 것 같다. 잘나가는 외국 래퍼의 특정 스타일을 차용하면 트렌디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고. 트렌드가 그렇게 중요한가?
트렌드에 늘 레이더를 세우고 산다. 음악만이 아니라 패션, 뮤직비디오, 사진, 무대 연출 모든 게 포함된다. 지금은 한국 시장만 고려해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다. 글로벌하려면 글로벌한 흐름을 캐치해야 한다. 나도 내 스타일을 구축하려 하지만, 그러면서도 평생 트렌드를 따라잡고 싶다. 시간이 흘러 클래식이 되는 명반은 다 특정 시기의 트렌드였다고 생각한다.

트렌디함에는 양날의 검처럼 카피와 레퍼런스 논쟁도 같이 따라다닌다. 당신은 힙합 커뮤니티에서 트레비스 스캇이라는 미국 래퍼와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내가 만약 트레비스 스캇과 같이 작업하는 날이 오면 그때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내 작업 스타일을 말하자면, 만약 어떤 아티스트를 레퍼런스 삼아 곡을 만들면 그가 불렀을 때도 딱 어울릴 법한 걸 만들려고 한다. 그런 사운드를 구사하고 바이브를 캐치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걸 최대한 해냈을 때 만족도가 높다. 최근 LA에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갔다가 트레비스 스캇의 레코딩 엔지니어를 만나 내 음악을 들려주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힙합뿐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꽤 많아 그 이름들을 쭉 읊으면서 이야기했고, 그는 내 음악의 다양한 배경을 인정하면서 좋은 말을 건네왔다. 작년에 개코 가 피처링한 ‘Ring Ring’이라는 곡을 발표했을 때도 어느 해외 아티스트의 곡과 비슷하다는 반응을 들었다. 하지만 그 아티스트에게서 같이 작업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K-POP 스타가 내 웨이브를 탔다’고 생각하더라.

스스로 트렌드 만드는 일은 어려울까?
트렌드 속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트렌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디만 해도 솔로 활동 초반에 누구누구 따라 했다고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지금 지디가 어떤가? 박재범 형은 과거 자기가 했던 랩은 너무 못해서 못 듣겠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못 하고, 또 안 하는 멋진 사람이 돼 있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스웨그’란 뭔가?
남의 눈치 안 보는 것.

요즘 큰 고민이나 화두는?
벌써부터 ‘너무 달렸나?’ 싶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꾸준히 곡을 만들고 일을 한다. 앨범 작업 하나가 끝나면 속이 좀 후련해야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다음 프로젝트에 돌입해 있다. 계속 달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달까? 힘들어도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스트레스가 인풋이 되는 셈이다.

롤모델이 있나?
내 꿈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내 롤모델이다. 10대 때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유대를 못 느꼈는데, 성인이 되어서야 아빠가 여느 아빠 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어른이 아들과 대화를 통해 당신의 생각을 바꾸기도 하니까 대단한 거다. 아빠처럼만 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내 강박증도 아빠한테 물려받은 것 같다. 비행기 타기 전 4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하는 분이고 준비성 역시 철저하다. 내가 지금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롤모델은 아빠이고, 그럼 식케이에게 박재범이란?
내가 크리스천이라면 예수님,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이라고 여길 대상(웃음). 그리고 고마운 사람이다. 작년 여름에 앨범 낼 때는 내가 레이블에 속한 상태가 아니었고, 형이 그냥 투자를 해줬다. 물론 투자금의 다섯 배를 벌었지. 재범이 형은 열아홉 곡이나 수록한 정규 앨범을 내고 그런다. 형을 보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한국 힙합 신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힙합이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계속 영양가 있고 충격적인 음악이 나오면서 신이 더 커지길 바란다. 그것 외엔 힙합 신을 두고 딱히 다른 할 말은 없다. 나는 랩 스타가 아니라 팝 스타 가 되고 싶다. 나의 영역을 더 넓게, 크게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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