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고 독보적인 문체를 가진 작가도 가까운 이에게 편지를 쓸 때만큼은 본연의 마음을 먼저 드러낸다. 편지 쓰는 일이 낯선 시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가들이 누군가에게 남긴 사적인 문장을 엿본다.

8-9 W 0096

발신인 박인환 수신인 아내 이정숙

사랑하는 나의 정숙이에게
오늘 저녁 나는 당신에게 또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나는 오늘처럼 우울했던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을 대구에 두고 나만 이 부산의 거리 (당신도 이거리를 나와 함께 걸은 일이 있겠으나)를 헤매고 있는 것이 슬펐습니다. 나는 행운의 사람인데도 어째서 이다지도 쓸쓸한 것일까? 나는 나 혼자 여기 와서 우울한 것이 어디 있는가? 자문자답하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 떨어져 있는 것이 한없이 서럽습니다 . 당신이 있는 곳에서 나는 살고, 나는 죽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내 옆에 없으니 울고 싶고, 웬일인지 죽을 것 같습니다. 방이 뭐냐, 돈이 뭐야 ? 나는 당신이 있는 곳이 한없이 그리워질 뿐입니다. 나를 당신은 욕하시오. 미워하시오. (후략)
박인환  12일 밤

– 박인환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엮은이 문승묵, 예옥)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실린 시 ‘목마와 숙녀’, 가수 박인희가 노래로 부른 ‘세월이 가면’으로 기억되는 박인환. 이 편지는 1951년 그가 <경향신문> 기자로 부산에 홀로 떨어져 살며 월급 18만원을 받던 시절 아내에게 쓴 것이다. 대구와 부산이면 이역만리도 아니건만, 당시 그의 편지들엔 대구를 피난처 삼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향한 애정이 절절하다. ‘키스, 키스 보냅니다’ ‘다방에 너무 오래 있지 마시오’ 같은 문구도 보인다.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은 산문집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에 처음 실렸다.

 

발신인 스타인벡 수신인 아들 스타인벡  4

1966년 7월 16일 새그 하버에서
사랑하는 존에게.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문제가 있는 지역에 주둔해 있을 때 나 역시 같은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도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를 억지로 끌고 온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그런 한편으로 끝이 났을 때는 언제나 거기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러고는 또 다른 것을 찾아 나섰지. 한번 시작되면 맹목적인 공포심은 사라지고, 또 다른 차원의 공포심이 자리 잡았다. 나중에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단다. 그러고는 결론을 얻었지. 공포심의 균형을 조절하고 공포심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너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공포심이 들면 그와 동시에 처해진 상황이 비참하게 느껴진단다. 작은 술병을 가지고 갔는지 모르겠구나. 가죽으로 만든 작은 휴대용 술병 말이다. 그 술병에 항상 위스키를 가득 채워두거라. 브랜디라면 더욱 좋지. 그 술병이 있으면 큰 위안이 된다. 허세를 처벌하는 법은 없다. 그게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낫다.(후략)

– <세상을 바꾼 65개의 편지>(지은이 도리 매컬로 로슨, 옮긴이 김유신, ㈜자음과모음)

소설 <분노의 포도>로 퓰리처상을, 20여 년 후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존 스타인벡은 <에덴의 동쪽>을 발표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때 종군 기자로 여러 나라를 누볐다. 전쟁 직후 태어난 그의 아들도 성인이 되자마자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육군에 입대했다. 전쟁터로 떠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존 스타인벡은 전시 상황을 겪어본 자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을 한다. 편지의 말미를 보면, 아들이 유명 인사인 아빠에게 자기가 전출 명령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언급이 나온다. 존 스타인벡은 ‘이전까지 대통령에게 한 번이라도 청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너를 보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더라면 내가 더 비참했을 것이다’라고 쓴다.

 

발신인 조르주 상드 수신인 친구이자 애인 프레데리크 쇼팽

프레데리크 쇼팽에게
1847년 7월 28일, 노앙.
어제 마차를 주문했고, 이런 살인적인 무더위에다 몸까지 불편한 것을 무릅쓰고 출발하여 파리에서 하루 묵으면서 당신 소식을 알아볼 참이었어요. 당신의 무소식이 나로 하여금 그 정도로 당신의 건강을 염려하게 만들었어요. 그동안 당신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을 텐데 아무런 답장이 없군요. 그래요, 지금 당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 직감을 당신 의식이 속삭이는 언어로 생각하세요. (중략)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당신이 모든 병으로부터 조속히 치유되기를 빌어요. 그게 지금의 내 바람이에요(그러는 게 마땅하고요). 그리고 9년간의 독점적인 사랑을 이렇듯 기이하게 결말지어준 것에 대해 신께 감사드려요. 가끔씩 소식 전해주세요. 나머지 일을 재론한다는 것은 무용한 일이에요.

– <조르주 상드의 편지>(옮긴이 이재희, 지식을만드는지식)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 대표 작가, 조르주 상드. 72년 생애 동안 무수한 사람과 사랑 혹은 우정을 나눈 정열의 화신은 남자처럼 슈트를 입고 시가를 피우며 자유분방하게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들과 주고받은 편지 양이 워낙 방대한데, 보존된 것만 1만8천 통 정도이고 분실된 것까지 합하면 그 양이 수만 통에 이를 거라고 한다. 쇼팽과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인 관계를 이어갔다. 이 편지는 그녀가 쇼팽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남자는 문자를 ‘씹고’ 여자는 문자로 이별을 통보한 셈. 상드의 다른 편지들을 보면 상드가 반대한 딸의 결혼을 쇼팽이 몰래 도운 일이 둘 사이가 틀어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발신인 이상 수신인 동생 김옥희

여동생 김옥희에게 –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
8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애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 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 차로 가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중략)
아직은 이 사회 기구가 남자 표준이다. 즐거울 때 같이 즐기기에 여자는 좋다. 그러나 고생살이에 여자는 자칫하면 남자를 결박하는 포승 노릇을 하기 쉬우니라. 그래서 어느만큼 자리가 잡히도록은 K 혼자 내버려두라고 재삼 내가 다시 충고하였더니 너도 OK의 빛을 보이고 할 수 없이 승낙하였다. 그리고 나는 너 보는 데서 K에게 굳게 굳게 여러 가지로 다짐을 받아두었건만… 이제 와서 알았다. 너희 두 사람의 애정에 내 충고가 끼어들 백지 두께의 틈바구니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내 마음이 든든하지 않으랴. (중략)
이틀이나 걸렸다. 쓴 이 글이 두서를 잡기 어려울 줄 아나 세상의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만을 사다고. 닷샛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 <이상 전집2>(엮은이 김종년, 가람기획)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이 남자 친구와 몰래 만주로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모티프 삼은 이 편지의 주제는 한마디로 ‘오빠가…’ 로 시작하는 잔소리다. 한국 문학사상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오감도’라는 초현실주의작을 남긴 문인이 여동생에게 쓴 글은, 꼬치꼬치 따지는 모양새와 뒤끝이 명확해서 그의 시처럼 난해하진 않다. 장문의 호통과 걱정 속엔 물론 장남으로서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이상은 이 편지를 1936년 9월, <중앙>이라는 잡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에서 그의 외침이 느껴진다.

 

발신인 박완서 수신인 호원숙

어젠 집에 잘 들어갔느냐. 네 운전 경력이 20년 가까운데도 나는 네가 차를 몰고 다니는 게 늘 불안하다. 특히 친정에 왔다 갈 때면 운전 조심하라고 타이르고 나서도 집에 도착할 시간까지 내내 기도하는 심정이 되곤 한다. 우리 집에서 너희 집까지는 서울의 끝에서 끝 아니더냐? (중략)
엄마가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을 하게 된 건 네가 고등학교 가고 나서였다. 초등학교 때 현금 나르는 일을 시킬 만큼 너를 어른 취급해왔으니까 중학교 가고부터는 집안의 대소사나 근심거리를 마치 동서끼리나 친구 사이처럼 기탄없이의논해왔다. 그러나 소설 쓰는 것만큼은 너에게도 눈치 못 채도록 감쪽같이 해치웠지. 좀 황당했을지도 모르는 엄마의 변신을 네가 앞장서서 환영하고 격려해준 것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중략)
늘 뭔가를 시키고 부탁만 해서 미안하지만 한 가지만 더 하겠다. 만약 엄마가 더 늙어 살짝 노망이 든 후에도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면 그건 사회적인 노망이 될 테니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네가 모질게 제재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말년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

– 박완서 산문집 <호미>(열림원)

수필가 호원숙은 생전 박완서에게 더없이 든든한 맏딸이자 조력자였다. 일찍부터 동생들과 알아서 집안일을 ‘어레인지’하며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고, 출판사나 신문사에 가는 걸 부끄러워하는 엄마 대신 하굣길에 원고를 전해 나르던 딸. 산문집의 마지막 챕터에 실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실제로 부친 편지는 아니지만, 두 모녀만이 잘 알 수 있는 기운으로 가득하다. 작가라는 존재가 엄마이기도 할 때의 풍경 역시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들은 긴밀한 모녀 사이였을 뿐 아니라 손발이 척척 맞는 짝꿍이었다.

 

발신인 이상 수신인 친한 김기림

(전략) 그러나 저러나 동경 오기는 왔는데 나는 지금 누워 있소그려. 매 오후면 똑 기동 못할 정도로 열이 나서 성가셔서 죽겠소그려. 동경이란 참 치사스런 도십디다. 예다 대면 경성이란 얼마나 인심 좋고 살기 좋은 ‘한적한 농촌’인지 모르겠습디다. (중략)
사실 나는 요새 그따위 시밖에 써지지 않는구려. 차라리 그래서 철저히 소설을 쓸 결심이오. 암만 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20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중략)
나는 이곳에서 심히 가난하오. 오직 몇몇 장 편지가 겨우 이 가련한 인간의 명맥을 이어 주는 것이오. 당신에게는 건강을 비는 것이 역시 우습고… 그럼 당신의 러브 어페어에 행운이 있기를 비오.
29일 배.

– <이상 전집2>(엮은이 김종년, 가람기획)

염상섭, 현진건, 김동인, 채만식 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인들 상당수가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1930년대. 김기림은 <조선일보> 기자이자 이상과 함께 ‘구인회’라는 문학 동인으로 활동한, 이상의 멘토 같은 존재였다. 1936년 가을 소설 <날개>를 발표한 이상은 곧 동경으로 건너갔다. 금홍이 이후 만난 변동림(이후 김환기와 결혼한 김향안)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동경발 편지에서 이상이 스스로 ‘그따위’라고 말하는 시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위독’. 그러곤 지상 최종의 걸작 소설을 써보겠다며 매달린 작품이 <종생기>인데, 우리는 이 낯선 이름의 소설보다 <날개>로 이상을 기억한다. 동경에서 수상한 조선 지식인으로 찍혀 한 달간 투옥한 이상은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동경에서 사망했다.

 

발신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수신인 프랜시스 스콧 스카티 피츠제럴드

1938년 7월 7일
사랑하는 스카티에게.
너에게 앞으로 몇 년 더 편지를 쓰게 되리라고 생각지 않으니, 편지 내용이 냉엄해 보이더라도 이 편지를 두 번 읽어보기 바란다. 너는 지금 받아들이기를 거부할지 모르겠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편지 내용 가운데 일부나마 진실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중략)
너만한 나이였을 때 나는 큰 꿈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네 엄마와 마침내 결혼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꿈이 둘로 갈라졌단다. 이미 결혼하자마자 후회하였지만, 참아내면서 어떻게든 극복해보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다른 방법으로라도 그녀를 사랑하려고 했다. (중략)
너는 이제 성인의 관점이 생길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장래가 있어 보이는 경우에만 성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추신: 일기를 계속 쓰고 있다면, 10프랑짜리 아내 책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내용으로 채우려 들지 마라. 나는 날짜와 장소에는 관심이 없다. 네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한, 뉴올리언스 전쟁에도 흥미가 없다. 글을 쓸 때 재치 있게 애쓰지 마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저 진실을 사실대로 쓰면 그만이다.
추신: 이 편지를 한 번 더 읽어보거라. 이 편지는 내가 두 번 쓴 것이다.

– <세상을 바꾼 65개의 편지> (지은이 도리 매컬로 로슨, 옮긴이 김유신, ㈜자음과모음)

스콧 피츠제럴드는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남겼지만, 딸에게 이 편지를 쓸 즈음에는 작품 활동이 원만치 않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였다. 그가 술에 탐닉했기 때문인지 아내인 젤다 피츠제럴드는 신경 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상황. 그런 시기에 외동딸이 기숙학교에서 몰래 빠져나갔다가 제적을 당했다. 피츠제럴드는 ‘이 편지는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선언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꼬인 문제가 있는 여느 가정의 공식처럼, 아내와 장모에 대한 날 선 원망을 숨기지 않는다. 아빠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은 딸은 당시 정신이 번쩍 들었을까, 더욱 비뚤어졌을까?

 

발신인 나쓰메 소세키 수신인 친구 마사오카 시키

  1. 4. 9
    런던 캠버웰 뉴로드 플로든 6가 S.E.나쓰메 긴노스케로부터
    시타야 구 가미네기시 정 82번지 마사오카 쓰네노리에게

시키 군, 교시 군. 그 후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해 미안하이. 자네는 환자이니 당연히 긴 편지를 보낼 수는 없을 테지. 교시 군도 편집 일이 다 망할테니 <호토토기스 >를 보내주는 정도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출발 전부터 예상했네. 그러니 편지가 오지 않는 것에는 그리 놀라지 않네만, 이쪽은 런던이라는 세계의 만물상 같기도 하고 말 시장 같기도 한곳에 와있으니 가끔은 보고 듣는 것들을 자네들에게 보도할 의무가 있겠지. (중략)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나오지 않으니 참, 난처하네그려. 어쩔 수 없으니 오늘 아침 일어나서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호토토기스 >에서 모집하는 일기체 형식으로 써보여드리지. (중략)
오늘 신문에는 러시아 신문에 실린 일본에 관한 평론이 있다. 만일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니 조선에서 자웅을 겨루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선은 무슨 죄인가 싶다. 그다음에 톨스토이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다. 톨스토이는 얼마 전 러시아의 국교를 경멸했다고 해서 파문당했다. 천하의 톨스토이가 파문을 당한 일이라서 크게 시끄러웠다. (후략)

–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옮긴이 박지영, 지식을만드는지식)

하이쿠’와 ‘단카’를 정립해 일본 근대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 마사오카 시키,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 두 사람은 스스로 문학자의 길이 천직인지 확신하지 못했을 20대 초반부터 시키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무려 1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공연물을 즐기는 비슷한 취향이 우정의 발판으로 작용했다고. 소세키가 영국 유학 시절 쓴 이 편지에서, 훗날 대작가로 불릴 사람조차 ‘막상 이야기하려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쓴 모습이 왠지 귀엽다.

 

발신인 김유정 수신인 친구 필승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중략)
필승아.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 <김유정 전집2>(엮은이 김종년, 가람기획)

‘김유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는 작품 <동백꽃>과 지병 ‘폐결핵’일 것이다. 그리고 곧잘 회자되는 또 하나가 ‘필승 전’으로 불리는 이 편지다. 필승은 김유정의 절친한 벗이자 소설가인 안회남의 본명. 생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는 문장들은 김유정이 이 편지를 쓰고 11일 뒤에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비통하게 다가온다. 편지에서 김유정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번역할 만한 탐정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고, 그럼 50일 안에 번역본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번역료를 손에 쥐면 건강을 위해 닭과 뱀을 고아 먹어보겠다고도 말한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발신인 프란츠 카프카 수신인 애인 밀레나

메란-운터마이스, 오토부르크 여관에서
사랑하는 밀레나
(전략)난 이곳에서 아주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사멸해갈 육신을 이렇게 세심하게 보살핀다는 것을 견디지 못할 정도랍니다. 내 방 발코니는 정원 속에 가라앉아 있는 듯한데 꽃이 만발한 덤불이 무성하게 둘러싸고 있지요 (이곳 식물들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프라하에서는 웅덩이가 얼어버릴 만한 날씨인데도 여기 내 발코니 앞에는 꽃들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답니다). 게다가 따스한 햇볕까지 듬뿍 받고 있습니다 (아니, 약 일주일 전부터는 짙은 구름이 낀 하늘에 내맡겨져 있었지요). 도마뱀과 새들이 어울리지 않게 짝을 지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이런 메란을 정말 당신에게 안겨주고 싶군요. 당신은 최근에 ‘숨도 쉴 수 없다’는 편지를 했지요. 그 말 속에는 이미지와 의미가 아주 가깝게 나타나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약간은 부드러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심에서 보내는 인사와 함께 당신의 카프카

–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옮긴이 이인웅, 지식을만드는지식)

카프카는 20세기의 대표적 ‘고독자’답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 한 듯하다. 두 여자와 세 번의 파혼을 한 후, 그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간 상대 밀레나는 유부녀였다. 두 사람은 카프카가 요양 겸 여행 삼아 이탈리아 남부의 메란으로 떠나기 직전인 1919년 한 모임을 통해 우연히 만났고, 글을 쓰며 번역 일을 하던 밀레나가 카프카의 산문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관계가 발전됐다. 밀레나 역시 카프카를 사랑한 것 같지만, 바람둥이 남편과 헤어지진 못했다. 어쨌든 그녀는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은밀한 연서들을 소중히 보관해 책으로 엮을 수 있도록 편집자에게 전달한 인물. 편집자는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편지 뭉치를 무사히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