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 축제

이채민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와 10년 주기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동시에 열리는 독일의 2017년 여름, 미술 축제의 뜨거운 현장에 다녀왔다.

그랜드 투어의 해가 왔다! 5년마다 열리는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와 10년마다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그리고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게다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과 마이애미 디자인페어에 이르는 미술계 대형 프로젝트가 겹친 유럽. 무수한 오프닝과 디너, 파티는 아트 피플, 셀레브리티, 그리고 기라성 같은 슈퍼 컬렉터들의 등장과 더불어 그 열기를 더했다. 저마다 기호에 맞는 일정에 낭비 없을 에너지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카셀 및 뮌스터 개막 시기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전 세계 각국의 미술관 디렉터, 큐레이터, 컬렉터들이 프리뷰 내내 작품을 보기도 전에 서로 볼을 비비며 비주하고, 하이 & 바이로 귀결되는 스몰 토크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열기는 타이트한 개막 일정에 맞춰 발품을 팔아 각기 다른 도시를 돌아다녀야만 하는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자리임을 방증하는 듯했다. 특히 독일은 지난 5월 개막한 이태리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을 싹쓸이하며 저력과 건재함을 과시했다. 비엔날레 총감독이 지휘하는 본 전시, 아르세날레에 참여한 최고의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황금사자상은 77세의 노장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에게 갔으며 각 국가관의 올림픽이라 일컬어지는 자르디니 공원 내 독일관은 안네 임호프가 선보인 라이브 퍼포먼스 ‘파우스트’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독일은 이후 연이어 개막한 자국 내 두 가지의 큰 미술 행사인 카셀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전을 통해 독일이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영향력과 위상을 다시 한번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수자 ‘Bottari'

김수자 ‘Bottari’

아부바카 포파나 ‘Fundi'

아부바카 포파나 ‘Fundi’

카셀 도쿠멘타
카셀은 과거의 영광에 사는 도시다. 과거 동서독 분단 시기, 카셀은 군사 물자를 교류하던 무역의 중심지로 엄청난 부를 누린 도시다. 통일 이후 중앙역이 문을 닫고 구역사가 폐관하며 -신역사는 아직 남아 있다- 주요 도심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었지만 5년에 한 번 열리는 도쿠멘타는 이 도시의 인프라가 성장하고 활기를 되찾는 돌파구가 되었다. 사실 도쿠멘타에 미감을 향유하고 세련된 예술을 경험하러 오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도쿠멘타는 태생적으로 냉전 시기의 정치적 대립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출범한 전람회이기 때문이다. 1955년 미대 교수이자 디자이너인 아르놀트 보데(ArnoldBode)의 주도로 시작된 이 전시는 파시즘, 큐비즘, 표현주의 등 독일의 나치 정권 치하를 겪으며 발전한 추상이라는 장르와 그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술에서 추상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정치적 배경을 함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쿠멘타는 일련의 정치적 대립과 분단에 기인한 유럽권의 정세에 저항하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장으로 출발했다. 올해 도쿠멘타 14는 <아테네에서 배우다>라는 주제로 그리스의 아테네와 동시 개막했다. 작가 160여 명이 참여하고 대략 250억을 웃도는 전시 예산으로 지난 10년간 쿤스트할레 바젤을 이끈 총감독 아담 심치크가 당대 유럽권 국가의 난제인 이주, 난민, 인류, 역사에 이르는 방대한 사회 정치적 주제를 조명했다.

왜 그리스이며, 아테네서 무엇을 배우라는 것일까? 전시를 살펴보면 비교적 근본적인 역사적 관계를 현실에서 재조명하는 맥락을 잡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최고의 메트로폴리스로서 당대 고급 문화를 주도하고 경제적으로 부흥했으며, 찬란한 신화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런 그리스가 현재 경제 위기로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는 모습은 너무도 역설적이지 않나? 이를 상징적으로 회복하고자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성 작가 마르타 미누진은 아테네 개막 당시 메르켈 총리를 초청하여 그리스와 독일 양국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를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을 전 세계에서 기부를 받은 금서 10만 권으로 꾸며 검열에 저항하며 시대적 배경을 반추하는 대형 설치를 선보였다.

도쿠멘타는 초창기에 대형 전람회를 개최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도시 곳곳을 전시 장소로 활용했다. 프리데리치아눔을 중심으로 도쿠멘타 할레, 신미술관, 칼스루의 정원, 카셀 중앙역, 그린벨트 형제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인 오토네움 등 대략 대여섯 장소 외에 경우에 따라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올해에는 새로운 전시 장소로 예전의 카셀 우체국을 신신 미술관(Neue Neue Galerie)으로 재단장해 개설했다.

 테오 에쉐트 ‘Atlas Fractured’

테오 에쉐트 ‘Atlas Fractured’

이레나 헤이두크 ‘Spiral Discipline Performance’

이레나 헤이두크 ‘Spiral Discipline Performance’

이곳에서는 테오 에쉐트(Theo Eshetu)의 대형 영상으로 전사되는 인종주의 균열에 대한 작품을 시작으로 이레나 헤이두크(Irena Haiduk)가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관객들이 본인의 월급을 설문에 적어 내면 그에 상응하는 상/중/하에 책정된 가격으로 노동 시 착용하라고 제안하는 신발과 옷을 구매하도록 한 것(안타깝게도 필자는 소득 수준이 하로 책정되어 제일 낮은 25유로에 노동 시 착용해야 하는 스니커즈를 구매했다). 1877년에 설립된 신미술관에서는 일부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7세기 걸작과 더불어 전시장 입구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 양현미술상 수상자인 아프리카계 여성 작가 오토봉 엥캉가가 아프리카 식민 국가들에서 채집한 기름으로 제작한 비누를 판매하고 관객에게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로이 로즌 ‘The Dust Channel’

로이 로즌 ‘The Dust Channel’

바로 옆에 위치한 뵐브성에서는 로이 로즌의 ‘The Dust Channel’을 통해 이스라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블랙코미디 영상 <싱글채널>이 상영됐는데, 이는 도쿠멘타 참여 큐레이터들이 하이라이트로 꼽은 작품 중 하나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카셀에서 기차로 대략 3~4시간을 달리면 독일 서북부의 뮌스터에 이른다. 바로크 시기에 설립된 유서 깊은 뮌스터 대학이 유명하고, 도시 곳곳에서 클래식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교육 도시다. 도시 클러스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77년에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가 설립한 뮌스터 조각 대전은 10년마다 100일간, 카셀 도쿠멘타와 같은 시기에 개최된다. 올해는 특별히 말(Marl)시와 협업으로 진행했는데, 도심 곳곳에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설치하는 공공미술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총감독 카스퍼 쾨니히는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장 출신으로 201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마니페스타(Manifesta 10)의 총괄 큐레이터였다. 도시 외곽 아아제 호수 부근 공원에 설치한 도널드 저드의 콘크리트 반구(1977), 제니 홀처가 전쟁의 잔혹함을 나타낸 시구를 새긴 위치한 대리석 벤치들(1987), 그리고 토마스 슈트의 기념비적인 거대 체리 동상이나 브루스 나우먼의 ‘우울한 네모(Square Depression)’ 같은 작품은 이미 뮌스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올해는 전통적인 방식의 공공미술이 지니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띄었다. 약 30명의 작가가 벌인 라이브 퍼포먼스, 사운드 설치, 도시 간판과 정류소에 등장하는 디자인, 그리고 개막전 세 차례 사전 출판된 간행물이 그렇고, SNS 실시간 업데이트를 통해 전시 거점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발굴 현장을 연상시키는 피에르 위그의 설치 작품.

발굴 현장을 연상시키는 피에르 위그의 설치 작품.

주목할 만한 새로운 작품으로는 ‘앞선 삶의 이후(After ALife Ahead)’라는 제목으로 과거 아이스링크로 활용되던 공간의 바닥을 모두 파헤쳐, 마치 발굴 현장을 상기시키는 피에르 위그의 설치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위그는 “기존 미술관 공간에 한계를 느끼고 무엇인가 지속적인 에너지가 가능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내 작업 조건이 성장함에 따라 나도 성숙하고 싶다”며 다수의 장소를 헌팅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히토 슈타이에를의 오토 애니메이션.

히토 슈타이에를의 오토 애니메이션.

한편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에서 감각적인 3D 버추얼 영상으로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적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허무하고 무기력한 심상을 흥미롭게 보여준 일본계 독일인 히토 슈타이에를(Hito Steyerl)도 눈에 띄었다. 그는 한 파이낸스 빌딩 로비에 미래 지향적인 3D 모델 설치 작품과 특정 움직임이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오토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뮌스터 공원 근교 호수에 설치된 니콜 아이젠만의 반추상 인물 조각들.

뮌스터 공원 근교 호수에 설치된 니콜 아이젠만의 반추상 인물 조각들.

에리 아라카와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unster’

에리 아라카와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unster’

한편 뮌스터 공원 내 고수부지 근교 호수에는 니콜 아이젠만(Nicole Eisenman)의 뭉개진 반추상 형상의 퀴어적 인물들이 설치되었다. 테이트 모던의 오일탱크를 개조한 퍼포먼스 복합 공간 테이트 탱크에서 싱글들을 위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인 ‘싱글 나잇’을 선보여 주목을 받은 후쿠시마 출신의 일본 작가 에리 아라카와는 ‘Harsh Citation, Harsh Pastoral, Harsh Munster’라는 제목의 LED패널 7개로 조성한 야외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가 전시 중 일부 작품을 도난당하고 심지어 훼손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조각 대전과 동시에 엘베엘 미술관(LWL Museum)은 51개 전시 공간에서 소장품 35만 점을 자랑하는 양질의 컬렉션 전을 열었다. 피카소 미술관 또한 일부 공간은 뮌스터 프로젝트로 활용하는 한편 유럽의 전설적인 화상 이본 랑베르의 개인 컬렉션에서 기부받은 560점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를 개최했다.

소개한 두 국제적인 전시 장소의 거점이 독일이라는 이유로 독일의 현대미술이 현 글로벌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올해 이 시기에 일어난 여타 대형 전시에서 독일 출신의 작가와 독일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주목받았고, 그 평가도 고무적이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에 한 달여 머물며 경험한 인상은 현대미술 영역에 있어 위계가 최소화되어 있으며, 작가가 사회적으로 지니는 역할에 대한 존중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는 우리나라 미술 현장과 무척 상이했다. 민감한 감각과 정서로 남들이 보지 못하고 발견하기 어려운 현상에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 공감하고 인정하는 부분은 부러운 점이었다. 아직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독일의 카셀과 뮌스터, 가능하다면 베를린에 이르는 여행을 제안하고 싶다. 문화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계층 구조 (하이어라키, hierarchy)에 지친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에디터
황선우
전학순(미술이론)
PHOTOs
MATHIAS VOELZKE, ROMAN MAERZ, DANIEL WIMMER, HENNING RO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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