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가브리엘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황홀했던 항해의 아름다움이 담긴 새로운 샤넬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베일을 벗었다. ‘플라잉 클라우드’라 명명된 이번 컬렉션에서는 우아하고 청량한 여름 바다의 향이 깊게 묻어난다.

이미지컷 (11)
지금 당신이 마주한 이 기사는 새로운 F/W 시즌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이 체감하고 있을 계절은 바야흐로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의 한가운데일 것이다. 부서질 듯 내리쬐는 태양과 반짝이는 바다, 혹은 수영장, 대지로부터 올라오는 넘실대는 열기, 그리고 화사한 트로피컬 색채. ‘여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쉬이 연상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예부터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타히티 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많은 걸작을 그려낸 폴 고갱부터 마주하는 순간 뛰어들고 싶은 풀장의 이미지를 그린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여름은 강렬한 마력으로 아티스트들을 사로잡아왔다. 이는 순수 예술 세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여름은 그 이미지 자체로 애정과 영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디자이너 중에서도 유독 여름, 그리고 여름의 바다를 평생 사랑한 가브리엘 샤넬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3년 전 서울 DDP에서 대규모 전시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이 개최되고, 지난 7월 19일까지 한남동 D뮤지엄에서 샤넬 하우스의 아이덴티티에 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  <샤넬 마드모아젤 프리베> 전시가 열림으로써, 가브리엘 샤넬의 삶과 그녀의 패션 세계는 비단 패션에 관심을 가진 이들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경배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가브리엘 샤넬이 청량한 해변과 바다에 왜 그토록 애정을 품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다. 그 누구보다 가브리엘 샤넬의 DNA를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현재의 샤넬 하우스를 꾸려가고 있는 이들은 ‘유년 시절 극적인 상황을 겪으며 형성된 성격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알려진 대로 어머니를 잃은 뒤 아버지에 의해 프랑스 오바진의 수도원에서 엄격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파리 물랭 지역의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삶을 산 그녀가 후에 목가적이고 풍경 좋은 곳에 특별한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풍광이 빼어난 지역들은 하나같이 바다와 맞닿은 해안 지역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발길이 닿은 모든 해안 도시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을 만났다. 프랑스 도빌 해안에서는 별명과 같았던 ‘보이 카펠’로 널리 알려진 영국인 사업가 아서 카펠(후에 샤넬과 카펠은 오랜 시간 매우 친밀한 관계를 카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지했다)과 연이 닿았고, 베니스에서는 전설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가 속한 발레뤼스의 창단자로 불리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세르 부부를 만났다. 그런데 그 어느 곳보다 그녀의 인생에 정점을 찍어준 곳은, 바로 리비에라 해안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인 장 콕토, 화가 피카소,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공작 등 그녀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우린 마지막으로 언급된 웨스트민스터 공작, 휴 그로스베너와의 만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대부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가브리엘 샤넬이 처음 만난 건, 1923년의 일이다. 이들은 리비에라 해안의 몬테카를로에서 공작 소유의 요트 ‘플라잉 클라우드’에 오르며 첫 만남을 가졌는데, 요트에서의 호화로운 삶과 요트 플라잉 클라우드의 특별한 미감은 가브리엘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이를 방증하듯, DDP에서 열린 <문화 샤넬전: 장소의 정신> 전시에는 플라잉 클라우드에서 포즈를 취한 가브리엘 샤넬의 사진이 여러 장 전시되었다). 당대의 디자인이라 믿기 힘들만큼 모던하고 감각적인 이 요트는, 검정 선체에 흰 목재 갑판을 중심으로 4개의 돛대가 설치된 육중한 크기를 자랑했다.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을 비롯한 친구들은 바다를 부유하는 요트 위에서 태양을 즐기며 수다를 떨고, 식사를 하고, 게임을 즐기며 인생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편의를 위해 40명 가까이 되는 선원들이 요트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는데, 재미난 점은 이 선원들의 유니폼이 샤넬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스트라이프 저지 톱과 낙낙한 실루엣의 테일러드 팬츠, 상징적인 베레모, 그리고 화이트 밴드의 손목시계는 가브리엘에게 더없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를 재해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겨 입던 가브리엘의 룩은 결국 그녀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된다. 그녀는 이 중성적인 룩에 우아한 진주 액세서리로 대비되는 포인트 스타일링을 즐겼는데, 당시 절친했던 친구인 시인이자 소설가 폴 모랑에게 종종 “검게 그을린 귓불에 새하얀 귀고리가 달린 모습을 보면 희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니, 태닝된 여름의 피부와 세일러룩, 그리고 진주의 믹스 매치를 그녀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요트 위에서 시작된 둘의 사랑은 곳곳을 오가며 지속되었고, 1928년경엔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결혼 소문이 돌 정도로(심지어 플라잉 클라우드에서 축하 파티를 열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슬프게도 이듬해인 1929년 끝나고 만다.

이토록 세세하게 90여 년 전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6월 말, 샤넬 하우스가 위에서 언급한 1920년대에 가브리엘 샤넬이 추구한 미감에 헌정하는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바로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 두 사람이 깊게 연관된 공간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연인이었던 시절 플라잉 클라우드에서 만난 또 다른 인연인 건축가 로베르트 슈트라이츠에게 의뢰해 알프스 끝자락, 리비에라 해안 인근의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에 지은 아름다운 별장 ‘라 포자(La Pausa)’가 바로 그 공간으로, 결별 이후 공작은 이를 가브리엘에게 선물로 남겼다. 간결함의 미학으로 가득한 감각적인 일곱 개의 방과 환상적인 정원으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이후 가브리엘이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 아주 가까운 예술가 친구들과 종종 시간을 보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이 특별한 공간을 수놓은 새로운 주얼리 컬렉션 ‘플라잉 클라우드’에는, 가브리엘 샤넬이 요트 위에서 항해를 즐기며 만끽했을 법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가장 먼저, 직설적인 방식의 표현이 눈에 띄는 건 ‘프레셔스 플로트(Precious Float)’ 시리즈. 구명 튜브를 모티프로 한 이 시리즈에는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푸른 색감의 라피스 라줄리가 주로 세팅되어 있는데, 리틀 블랙 드레스부터 심플한 티셔츠와 데님 팬츠 차림까지 두루 어울릴 법한 청량한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항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탄탄한 로프를 모티프로 골드 및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주얼리 라인인 ‘스파클링(Sparkling)’ 시리즈, 돛과 나침반, 고동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 ‘세일러 타투(Sailor Tatoo)’ 라인, 심해의 푸르른 빛을 사파이어로 담은 ‘딥 블루(Deep Blue)’ 세트까지, 주얼리 하나하나를 들여다볼 때마다, 풍요로운 바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에 더해 선원들의 유니폼에서 힌트를 얻은, 보다 은유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라인도 찾아볼 수 있다. ‘서머 크루즈(Summer Cruise)’ 세트의 경우 사파이어와 화이트 골드, 그리고 다이아몬드로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을 형상화했는가 하면, ‘세일러 슈트(Sailor Suit)’ 컬렉션에선 옐로 골드를 가지고 유니폼의 단추를 표현해 포인트를 더했다.


1932년, “나는 여성을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한 가브리엘 샤넬.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바다 위에서의 풍요로운 삶이 투영된 새로운 주얼리 컬렉션은, 한마디로 ‘한여름 밤의 꿈’ 같다. 그만큼 아름답고, 그만큼 작은 실버 피어싱 하나 사듯 쉽게 다가갈 수는 없는 꿈같은 존재인 것. 그러나 청명한 바닷가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같은 주얼리들을 마주한 순간, 많은 이들이 가브리엘 샤넬의 이 말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별자리들로 여성들을 에워싸고 싶었다”고 말한,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