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삐쩍 마른 것만 예쁘다고 여기던 뷰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어리지 않아도, 날씬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다고 말하는, 조금 낯선 ‘미(美)’에 대한 이야기.

뷰티다양성(수정)
2017 F/W 패션위크 때 몇 년 전만 해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련의 사건이 벌어졌다. 끔찍하게 높은 미의 기준 탓에 런웨이에 오를 거라고는생각조차 못한 시니어 모델들이 시몬 로샤와 드리스 반 노튼 쇼에 선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얼굴로 당당하게 워킹하는그녀들의 모습에 관중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런 변화는 뷰티계도 예외가 아니다. 바바라 팔빈과 이리나 샤크, 도챈 크로스, 라라 스톤 등 젊은 미녀 군단만 뮤즈로 거느릴 것 같던 로레알 파리 또한 작년에 수잔 서랜든처럼 나이가 지긋한 배우를 모델로 기용했고 장애가 있는 여성을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심지어 국내에서는 장문복을 모델로 발탁하기도!).

외국이나 국내 할 것 없이 화장품 광고 모델은 바르는 족족 사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예쁘고, 어리고, 날씬한 V라인을 지닌 이들만의 리그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화장품 광고에 개그우먼 박나래, 배우 마동석이 등장하더니 몇 달 전에는 유튜브 구독자가 20만여 명에 이르는 최고령 뷰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바닐라코와 협업을 진행했다. 심지어 롯데 홈쇼핑은 박막례 할머니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제품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사용법을 소개하는 ‘막례쑈’라는 프로그램까지 방송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화장법은 물론 스태프들과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타면서 ‘막례쑈’ 공식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의 영상은 130만 뷰 이상을 돌파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들과 다르고 재미난 콘텐츠라면 무조건 열광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소비자들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호응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동석과 전현무다. 마동석이 에뛰드하우스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을 때는 ‘마블링’, ‘마쁜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큰 호응을얻었다. 근육질 몸매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공손하게 고객을 응대하는 마동석의 광고 속 모습은 어색하지만 왠지 호감 가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했으며 SNS상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매출도 크게 상승했다.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더 파격적인 모델을 찾아 나선 브랜드는 전현무를 모델로 내세웠지만 광고 티저를 공개한 지 3시간 만에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과거 전현무의 여성 관련 발언이 문제가 되며 댓글로 항의가 빗발친 게 그 이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무조건 재미있고 다르다고 해서 인정받는 건 아니다. 기존과는 다른 다양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깊게 생각하고 따질 필요 없는 위트 안에 진솔함이 담겨 있어야 한다. 박막례 할머니의 메이크업 영상을 보며 화장을 배우는 여자는 없다. 저 할머니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사이다 화법이 재미있으면서도, 고령의 나이에 이러한 도전을 한다는 점이 감동 포인트로 작용해 화제가 되는 것이다. 여자가 주요 소비자인 뷰티 브랜드라면 그 기준이 조금 더 까다로위진다. 그저 재미로 포장한 게시물에 달릴 ‘엄지 척’을 상상하며, 자신의 주요 타깃층이 누구인지를 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뷰티 시계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거나 충격적인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다시금 화제가 되는 기저에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 중인 디지털 포맷이 있다. 필요에 의해 구매하기보다 출근길에 핸드폰으로 잠깐 본 영상에 혹해 제품을 구매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친SNS’적 성향이 이런 변화에 불을 지핀 것이다. 뷰티 업계의 구매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밀레니얼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10대 초반의 Z 세대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짧고 파격적인 이미지와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며 세련된 A급보다 촌스러운 B급 짤에 열광한다. 이러한 현상은 뷰티업계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변화하는 과정의 일부, 혹은 새로운 표현 방식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프레스티지 브랜드이건 로드숍 브랜드이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관심과 공감을 얻는 것이 관건이니까. 변화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무척이나 바람직해 보인다. 50년대 후반 예술계에 팝아트가 등장했을 땐 ‘저건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이 아니다’라며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술계는 물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팝아트를 활용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매력적인 인플루언서로 등장하고, 이들에게 열광하는 지금 이 순간을 통해 뷰티업계에도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길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되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미에 대한 기준이라고 할 것도 없겠다. 아름다움엔 기준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아무쪼록 이러한 현상이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침체된 뷰티업계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