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만 들면 볼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인생에는 종이책이 필요한 시간이 있다. 이렇게 근사한 감각을 배우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고, 삶의 다른 속도를 꿈꿔보게 하는 책들이라면.

170711_book16436<블룸 앤 구떼 스타일> / 조정희, 이진숙
가로수길에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안테나 숍들 대신 아직 문구점과 쌀집, 봉제 작업실이 있던 시절, 그 사이로 재밌는 숍이 하나씩 문을 열던 때, 아직 인스타그램도 맛집 해시태그도 존재하지 않던 즈음. ‘블룸 앤 구떼’는 그 동네의 아우라를 만들어낸 카페였다. 꽃과 디저트가 있던 이 공간은 분위기를 사랑하는 멋쟁이들을 끌어 모아서 거리의 풍경을 바꾸었다. 직원들 사이에 ‘빵샘’ 과 ‘꽃샘’으로 통하던 잡지 기자 출신의 파티시에 조정희와 플로리스트 이진숙 두 사람이 작업과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어떻게 잘나가는 카페를 성공시켰는지 비결을 알려주기보다 카페로서 전성기의 인기를 누리고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지켜온 자기다움과 멋에 대한 기록이다.

170711_book16422<나의 오컬트한 일상> / 박현주
미스터리 구성을 취하면서 추리 과정에서 오컬트한 공간들을 방문하고 단서들을 사뿐사뿐 따라간다. 기본적으로 에피소드마다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후더닛 구조의 추리물이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섬세한 감정과 연애의 문제를 아우른다는 것. 원한이나 실종, 사건 사고들의 기저에 깔린 사연은 유령이나 퇴마, 점성술 같은 주제와 연결되는 듯 하다가 결국 사람의 마음을 향한다. 실크 스커트 탐정물이라 할 <나의 오컬트한 일상>이 애틋함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리가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없듯 타인의 내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알고자 하는 간절함을 포기하지 않으며 인간 마음의 불가사의함을 추적한다는 것. 속도감 있게 읽어갈 수 있는 장르 소설적 재미가 단단하면서도,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도 힘이 강하다. 이 달에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이돌과’ 를 쓰는 등 더블유의 필자로도 다양한 주제에 지적인 칼럼을 선보여 온 박현주의 첫 소설이다.

힘빼기의기술_입체북<힘 빼기의 기술> / 김하나
미용실 머리 감기는 의자에 앉아서, 병원 주사 앞에서 엉덩이를 내리고 “힘 빼세요”라는 말을 듣지만 어쩐지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오늘도 더 힘내서 일하고 돈을 모으고 인간관계까지 관리하라고 채찍을 드는데, <힘 빼기의 기술>은 이렇게 치열한 긴장이 몸에 밴 사람에게 좀 느슨하고 헐렁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슬렁슬렁 부채질을 한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같은 전작에서 유연하게 아이디어를 길어내는 법을 써왔던 카피라이터 김하나는 토익 시험장이나 동네 시장부터 머나먼 남미까지 어슬렁대고 관찰하며 세상을 들여다본다. 버둥대는 대신 물 위에 둥둥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배영처럼 여유를 가지고 삶을 대하는자세, 그러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확신의 태도가 매력적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