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페즈, 제시카 차스테인, 케이트 모스, 도나텔라 베르사체, 타라지 P. 헨슨. 더블유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다섯 여자와 특별한 대화를 나눴다. 여성이 어떠해야 한다는 사회의 선입견을 부수며 힘을 키웠고, 또 같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에서 그들은 용감하다.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입은 드레스는 Versace 제품.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입은 드레스는 Versace 제품.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패션 혁명
61세의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깨어났다’는 소식이다. 이 일이 일어난 건 지난 9월, 위대한 자매애를 다룬 페미니스트 사운드트랙을 배경으로 여성의 강인함을 표현한 스프링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일까? 아니면 지난해 10월, 미셸 오바마가 마지막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아틀리에 베르사체 로즈 골드 체인 메일 가운을 끝내주게 소화했을 때인가? 심술난 록 반항아 제인 말리크에게 베르수스 캡슐 컬렉션을 맡겼을 때? 혹은 최신의 베르사체 커피 테이블 북이 나왔을 때였나? 이번엔 지아니가 아닌 오직 도나텔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백만에 다다르고 밀레니얼들이 그녀를 어마무시하다고 부르고 있으니까? 답변이 뭐가 됐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베르사체 하우스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출량은 뛰어 2015년 5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새로운 매장 30개가 지구 곳곳에 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스톤이 회사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호텔 팔라초 베르사체가 두바이의 모래사장에서 싹을 틔워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바로 그녀 도나텔라가 있다. 지금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이며 누군가는 페미니스트적 순간이라고도 부른다. 이 모든 것을 조사하기 위해 밀란에 위치한 베르사체의 본사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기분은 마치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왕국의 여제에게 구애하러 떠나는 것 같았다. 베르사체는 실크 팬츠와 매치되는 검정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 그리고 정글 초록과 더불어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다. 작은 체구에 나이를 잊은 얼굴은 고대 동전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법하다. 비현실적인 입술과 눈으로 소통한다. 머리는 이젠 더 이상 인어공주 길이가 아닌 웨이브 진 보브 헤어였지만 여전히 백금발이다. 아주 빠르게 말하는 그녀는 1990년대 묘사되던 냉담한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생기 있고, 재미있고, 활력이 넘쳤으며, 또한 몹시 지적이었다.

당신에게 힘이란 무엇인가?
진짜 힘이란 새로운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사적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난 “이 시점에서 인생에 사적인 것이라 할 건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난 나누고 싶다. 지아니가 사라진 이래로 내가 배우고 얻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다. 최대한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과 우리 아카이브를 보여주며 같이 일하려고 한다. 자신들이 원더랜드에 있는 것마냥 그 옷과 그 기술을 보는 그들의 표정, 그것이 내게는 힘이다. 그들은 나를 “와아!” 하며 본다. 내가 젊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느끼기에 그들은 우리와 다른, 일종의 변증법적인 소통 방식을 가졌다. 우리 세대처럼 획일화되어 있지 않음을 거기서부터 이해했다. 그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그 세계 속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도.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가 당신의 삶을 바꾸었나?
그렇다. 나에겐 차갑고 정이 안 간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사람들이 날 가깝게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마음을 열고, 웃고, 농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한다. 소셜 미디어는 내 일에 필수가 되어버렸다. 패션은 많은 것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무얼 하길 원하는지,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난 이 모든 정보를 빨아들여 패션으로 선사한다. 삶이 바뀐 까닭에 베르사체의 옷은 이제 더 웨어러블해졌다. 난 세상의 여성을 위해 옷을 만든다. 한 가지 종류의 여성은 없으니까 캣워크에도 다양한 모델을 섭외한다. 오직 한 여성을 위해 혁명을 일으킬 순 없지 않은가!

미셸 오바마의 국빈 만찬 베르사체 드레스는 누가 골랐나?
그녀가 스스로 골랐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여성이다. 힐러리 선거 운동 당시 미셸 오바마의 지지 연설문은 받아 적어 마땅하다. 그건 바로 인생관을 형성하는 말들이다. 그녀가 대통령직에 출마한다면 분명 당선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 비통해하고 있다. 사람들의 공포심에서 양분을 얻은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더 멀리 세계의 여성들과 함께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은 누구인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의 아내였던 코레타 스코트 킹이다.

어린 소녀 시절에는 어땠나?
소녀였던 적이 없다. 지아니 오빠가 늘 나를 꾸며주었으니까. 어릴 때도 새틴 재킷에 페이턴트 가죽 미니스커트, 롱부츠를 신고 다녔다.

언제 스타일의 힘을 자각하게 되었나?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건 불과 5, 6년 전이다. 그전에는 베르사체에 ‘부합하는’ 컬렉션을 생산해야 한다 느꼈다면 지금은 아이가 있는 일하는 여성을 위해 디자인한다. 어쩌면 일을 안 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힘을 가진 여성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 말이다. 난 우리가 더 많은 걸 할 수 있고 남자보다 강하다는 걸 여성에게 보여줘야만 한다. 남자들은 인생의 프로젝트를 정한다. 예를 들어 CEO가 되고 싶어 한다면, 거기 도달하면 끝인 것이다. 여자들은 더 열려 있다. 어떤 지점에 다다르고도 계속 나아가고 싶어 한다. 남자들에겐 물론 다른 강점이 있지만 우리에겐 용기가 더 있다.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
재능이 있다면 록스타가 되고 싶지만 아마도 이미지 메이커가 되지 않았을까. 재능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스타로 만들어보고 싶다.

아침에 깨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언인가?
일어나서 나의 모든 기기를 확인한다. 딩동 딩동! 이메일과 이탈리아 전화기, 미국 전화기, 아이패드까지. 밤에도 모든 기기를 켜놓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하니까.

글 | Andrea Lee
헤어 | Kiril Vasilev
메이크업 | Renato Bernardi

타라지 P. 헨슨이 입은 드레스는 Lanvin 제품.

타라지 P. 헨슨이 입은 드레스는 Lanvin 제품.

타라지 P. 헨슨의 늦은 절정

타라지 P. 헨슨은 자신이 자란 워싱턴 DC에 대해 설명하면서 돌려 말하지 않았다. “나는 빈민가 출신이에요.” 그녀는 12월에 고향을 방문한 이야기를 했다. “마약, 살인. 동네 전체가 순식간에 망가졌죠.” 그것은 그녀의 강인함과 단호한 낙관주의, 인생이 정복해야 할 무언가라는 흔들리지 않는 철학 등 헨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 대한 증언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역경 가득했던 뿌리에 대해 그때보다 훨씬 더 고상한 곳에서 회상하는 것이 그다지 놀랍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까지도.
포시즌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부드러운 하얀 로브를 입고 매니큐어를 받는 그녀는 뵈브클리코를 홀짝이며 소파에 몸을 말고 있었다. 그녀의 최신작 <히든 피겨스>의 백악관 상영을 이틀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게 바로 내가 나를 위해 상상했던 인생이에요.” 그녀가 이어갔다. “자신의 꿈을 들여다봐야 해요, 실패하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아니죠, 전 절대 아니죠! 전 언제나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어 했어요.”

영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만난 헨슨은 중력처럼 강력한 힘을 행사하며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궤도 안으로 사람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주옥같은 말을 쏟아내며 속내를 드러내자 폭스의 블록버스터 힙합 멜로 드라마 <엠파이어>에서 헨슨이 보여준 활화산 같은 여성 쿠키 리온과 그녀를 비교해보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물론 두 여성에겐 큰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쿠키는 17년을 복역한 가상의 전직 마약상이며, 헨슨은 20년간의 할리우드 생활에서 날카롭게 기술을 연마한 마흔여섯 살의 잘 훈련된 배우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의 의지에 따라 우주를 주무르는 재주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난 영원히 쿠키로 남겠지요, 상관없어요.” 헨슨이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가 조용히 있으면 1분마다 1달러를 주셨어요. 가장 많이 벌었을 때가 아마 5달러였죠.” 헨슨은 지금 전 국민이 다 아는 배우이자 골든 글로브 수상자이지만 그리 끈기 있는 인물은 못 되었던 셈이다. 하워드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엄마가 된 그녀는 주머니에 700달러, 그리고 부양할 어린 아들 마르셀을 데리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난다. 스물여섯 살에. “그리고 전 그 700달러를 불려서 제국을 만들었죠, 아닌가요?” 지난 한 해 동안만 <엠파이어>와 <히든 피겨스> 촬영에 더해 자서전 <어라운드 더 웨이 걸>을 출간하고, 맥에 자신의 코즈메틱 라인을 출시한 헨슨이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엄마라는 점이 제 재능을 향상시켜주었어요.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나의 어떤 면을 열어주었죠. 그 의무감과 보호심이 할리우드에서 저를 현실적인 바닥에 발 딛고 서 있을 수 있게 했어요.”

그 나이의 다른 배우들이 클럽에 나가 네트워킹을 했다면, 그녀는 학부모 총회를 준비했고, 아들을 축구장에서 야구 경기장으로 태우고 다녔다. TV와 영화에서 고정 배역을 맡으면서 동시에 말이다. 아들 마르셀이 성인이 된 지금, 헨슨은 일시 정지 상태로 둔 인생의 특정 측면들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난 아직도 그때의 젊고, 쾌활한 소녀예요. 하지만 저에겐 여성의 현명함이 있지요. 이젠 클럽에 가도 나의 한계를 알아요. 토하거나, 바보 같은 놈과 집에 함께 가지는 않지요!” 헨슨의 첫 번째 출세작이었던 존 싱글턴의 2001년 <베이비 보이>의 이베트부터, <허슬 앤 플로우>에서의 임신한 매춘부 셔그로의 변화나, 오스카 후보로 지목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의 거꾸로 간다>에서의 양모 퀴니까지, 그녀는 스타 반열에 오를 태세를 갖추었고, 더 넓은 인정을 받을 준비가 된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헨슨은 할리우드의 악명 높은 성과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성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나요? 흑인 여성요? 모르겠군요. 저에겐 좋았지요! 부동산도 제법 소유하고 있고, 빈민가에서 벗어났으니까요. 그리고 내 아들은 빈민가가 뭔지 모르죠.” 그녀는 전염성 강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럼, 누군가 내가 받아야 하는 수표에 0들을 붙여줬나요?” 배우이자 감독인 타일러 페리가 전용기로 그녀를 미팅에 데려간 이후로 자신만의 비행기를 갈망한다고 언급하며 그녀가 물었다. “그게 의문이군요, 하지만 아니에요. 전 수표를 쓰지 않죠. 보답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그저 계속 열심히 일할 뿐이에요.”
표면의 멋보다도 이런 내면의 강인함이 <히든 피겨스>의 캐서린 존슨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엠파이어>의 쿠키가 헨슨의 재능 중 오직 일차원의 것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그녀가 수락한 역할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분리주의 정책이 존재하던 1960년대 초반, NASA의프렌드십 7 미션에 대한 궤적을 계산하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수학자로서 미묘하고도 뛰어난 연기를 선사한다. 쿠키가 타오른다면 캐서린은 낮은 온도에서 끓는 인물이다. 두 배역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이 영감을 주고 힘을 준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 수학과 과학은 남자애들 것이었어요. 저는 그런 꿈을 꾸게 허락되지 않았죠. 다시는 어린 소녀가 자라면서 자기는 로켓 과학자가 될 수 없다고 믿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짜증난다고요!” 헨슨이 샴페인을 다 해치우고, 그녀가 최근 친분을 쌓은 오바마 부부 대통령 내외와의 상영회에 대해 얘기할 때는 야단스러움이 약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우린 전에 만났어요. 그들이 내 단축 번호에 있진 않지만요, 영화 상영 후라면 몰라도요.” 지난가을, 오바마 내외가 영향력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백악관 파티에 초대했을 때 헨슨은 <엠파이어>의 촬영장에 있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다. “전 우울했죠, 그들이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건넬 기회가 없겠구나 생각하면서요.” 바로 그 순간 오바마 대통령의 집무실에서의 8년을 축하하는 마지막 만찬에 그녀를 초대하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방금 그걸 원하지 않았던가요?” 그녀는 환호했다. “제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보셨나요?” 갑자기 헨슨은 조용해졌다. 마치 그러한 환상을 현실로 바꾼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처음으로 인지했다는 듯이 말이다. “실로 획기적인 일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마흔여섯이면 전 끝났어야 해요. 그런데 여기 저를 보세요. 전 늦되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녀는 한번 더 숨을 멈추고 눈을 고양이처럼 가늘게 뜨며 말했다. “늦되는 사람들이 오래 남거든요.”

글 | David Amsden
스타일링 | Edward Ennin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