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된 벽돌은 이어져 거대한 파도를 이루고, 검은 유리알은 연결되어 연꽃을 피워낸다. 연약함과 강인함, 순간과 영원, 사색과 소통을 작품에 담는 아티스트 장 미셸 오토니엘을 만났다.

장 미셸 오토니엘은 파리에 아틀리에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에는 파리 3구의 사무실로 출근해서 작품 콘셉트를 구상하거나 데생과 드로잉을 하며, 오후에는 리용역 근처 공장 같은 작업실로 이동해 그 아이디어들을 실제로 구현하고 작품화한다. 5월 3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를 앞둔 그를 더블유 코리아가 직접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한 작업실은 두 군데 중 리용역 근처 아틀리에였다. 제작 과정에 있는 작품들이 실재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1964년 생 아티스트의 아틀리에는 쓰나미 같은 이미지의 유리 벽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파도, 그리고 검정 유리공들이 연결되어 피어난 연꽃 등 한창 제작 중인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W Korea> 작업실을 찾아 오기가 쉽지 않았다. 택시 기사도 이 주소를 모르더라.
장 미셸 오토니엘 여기는 파리리용역의 물류 창고가 있던 장소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더스트리의 풍취가 묻어 있는 곳이다. 파리 안에서 이렇게 넓은 장소를 구하기가 쉬운 일도 아니다.

당신의 웹사이트에서는 다른 장소가 소개되어 있던데. 사이트에 나온 이미지는 파리 3구의 아틀리에다.
나는 현재 두 장소를 규칙적으로 방문하며 일을 진행하고 있다. 3구에 있는 아틀리에에는 주로 오전에 가서 작품 드로잉이나 컴퓨터로 데생 작업을 한다. 이곳은 드로잉을 가지고 오후에 와서 실제로 만들어보는 장소다. 내가 더블유 코리아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도 실제의 작품, 그리고 작품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이곳이라면 내가 어떤 스타일로 일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3구 작업실은 책상과 컴퓨터만 놓인 평범한 사무실 같은 곳이라 재미도 없을 거 같았고.

2003년 파리의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에서 <Crystal Palace>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이 열렸다. 그 전시는 당신의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내 작가 인생 가운데 파리의 뮤지엄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유리로 된 작품을 선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제대로 경험한 첫 전시였으니 내게도 의미가 크다. 여전히 컬렉터나 관객이 그 전시를 이야기할 정도니까. 건물 전체와 그 앞의 정원까지 활용해 많은 작품을 전시해 관람 자체가 일종의 긴 여정 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였다. 침대에서 시작해서 내가 무덤이라고 이름 붙인 정원까지, 마치 태어나서 인생을 내내 여행하는 듯한 구성이었다.

당신이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의 디렉터를 만난 게 파리의 팔레루아얄에 조형물을 세운 걸 기념해 열린 오프닝 파티에서라고 들었다.
까르띠에 파운데이션과의 인연은 더 멀리 올라간다. 내가 로마의 빌라 메디시스로 떠나기 10년 전인 1989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이 파리 시내가 아니라 외곽인 주이앵조사(Jouy-en-Josas)에 위치할 때다. 그때부터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은 내 작업을 지켜보았다고 하더라. 그러다 1989년에 그룹 전시를 했고, 2000년 팔레루아얄의 조형물을 만들었을 때, 까르띠에에서 개인전을 제안했다. 당시 까르띠에를 통해서 갤러리스트인 에마뉘엘 페로탕을 만났다.

전시 이후 작품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 소장되었을때 작가로서 느끼는 소감은 어땠나?
나에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곳이야말로 내 세대의 아티스트와 부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느 미술 재단보다 훨씬 앞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컨템퍼러리 아트를 위한 파운데이션이다. 언급했듯이 나는 아주 일찍 까르띠에 파운데이션과 함께할 수 있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도 받았고, 주이앵조사에서 열린 여러 그룹전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프랑스에서 재단이 후원하고 운영하는 미술을 새롭게 재정의한 곳이다. 그 당시에는 없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반대하거나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다. 럭셔리 브랜드와 컨템퍼러리 아트가 함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까르띠에는 그런 시선에 맞서 자신들이 선택한 예술을 대변하고 보호해야 했다. 예술을 어떻게 후원하는지,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 어떠해야 하는지, 재단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등 새로운 기준을 확립했다. 그들은 주얼리와 그들이 후원하는 예술을 절대로 함께 두지 않았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은 프랑스에서는 가장 원칙적인 미술 재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에 포함된 당신의 작품을 소개해달라.
‘유니콘’은 내가 까르띠에 파운데이션에서 전시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련의 일을 과정으로서 포함하는 작품이다. 예를 들어, 이 유니콘은 마치 가마처럼 어깨에 이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전시는 인생의 여정을 담고 있다. 보통 유럽에서 축제를 할 때 이런 형태가 활용되고 다른 나라나 종교에서는 다른 용도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작품을 실제로 이고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유리로 되어 있어서 들면 깨지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것은 ‘불가능한 작품’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깨지기 쉬운 유리를 작품의 중심 재료로 사용한다. 유리의 어떤 특성에 매료된 건가?
유리는 아주 일반적인 재료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재료이며, 아주 오래된 물질이다. 단단하면서도 연약한 이중성이 특징이다. 수만 년 동안 지속된 소재지만, 당장 깨어지기도 쉽다. 나는 이렇게 초시간적이면서 동시에 찰나를 이야기하는 유리라는 재료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예술품에서 좋아하는 측면 중 하나는 연약하지만 그것이 수 세기를 지나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여리고도 약한 작은 새의 깃털로 만든 예술품이 오랜 세월을 견뎌서 내 눈앞에 존재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 것들을 볼 때면 마음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다. 기나긴 세월 그것을 아끼고 보존하고자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있었을 거다. 거대한 피라미드보다 이렇게 약한 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내 눈앞에 현재한다는 사실은 날 감동시킨다. 그것들은 인간의 사랑으로 오늘까지 온 것들이다.

유리라는 소재가 가지는 시각적인 매력도 작용했을 것 같다.
누구나 유리에 대한 동화 같은 스토리가 하나쯤 있을거라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물을 따르면서 유리컵 너머로 관찰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신기한 마술 같은 일일 수 있다. 내 작업은 이런 것들을 포함한다. 현실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 아름다움을 보게 하는 것. 그렇게 실제적인 관찰이 따르는 작품이다. 나는 현실 안에서 어떤 것이 아름다움이고 몽환적이며 즐거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가장 긍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유리는 이 모두를 표현하기에 정말 좋은 재료라 생각한다.

유리로 아이디어를 구현하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유리는 정교한 테크닉이 필요한 소재다. 기술적으로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는 언제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이태리의 유리 공예 장인과도 일하며, 까르띠에 재단에서 전시할 때는 마르세유에 있는 국제 유리 및 조형예술연구소(CIRVA)와 함께 작업했다. 미국, 인도, 일본의 유리 공예가들과도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배운다.

이전에 유황으로 조각 작업도 했다. 그 재료야말로 영원성을 상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유황을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화산에서 나오는 검은색 유리인 흑요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조적인 검정에 한계를 느낄 때라 이 재료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유황과 유리는 형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것을 녹여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료가 바뀌는 듯한 순간에 내가 개입하고, 형태를 잡아주면 그 모습으로 지속되는 면에 매혹된다.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도 많이 판매되지만, 미술 시장에서 당신의 작품을 재거래하는 건 많이 보지 못했다.
나로선 행운이다. 소장자에게 내 작품의 열정이 전달된 듯한 기분을 주니까. 그 자체로 일종의 러브 스토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은 작품이 구매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시장에서 재판매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소장자가 내 작품을 애정을 가지고 부적처럼 간직한다는 데 크게 감사한다. 하나의 신뢰인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복 을 받았다 생각한다.

주문 제작도 하나?
물론이다. 커미션 워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미술 시장에서 주문이라는 것은 컬렉터와 아티스트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수집가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작품에 대해서, 고객이 생각하는 장소에 대해서, 주문하고자 하는 작품이 어떤 스토리를 품기를 바라며, 원하는 형태는 어떤 것인지, 왜 그 형태이고 색인지 등등.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고객이 나를 믿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에서 예술가는 외로운 위치에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건 드물고 어려운 일이며, 대체로 혼자 작업하고 그걸 시장에 내놓고.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한다. 나는 항상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만남은 내가 다른 새로운 작업을 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듯이 매일 드로잉한다고 들었다. 오늘은 어떤 것을 그렸나?
오늘은 하지 못했다. 어제 프랑스 1차 대선 결과를 보고 드로잉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늘 그려놓는 편인데, 그것이 모두 작품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드로잉은 내 정신을 자유롭게 해준다. 그리는 동안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2016년에 서울에서 개인전이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
그 전시를 통해서 서울을 만났다. 내가 서울에 대해 놀랐던 건 부와 빈, 옛것과 지금의 것이 같은 곳에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한국 특유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도, 그리고 한국인의 직접 화법도 좋았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라는 표현은 함께 일하기에 건설적이었다. 국제갤러리 건너편의 경복궁처럼,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풍부하게 만드는 힘을 서울과 한국의 미술에서 크게 느꼈다. 내가 베르사유 궁의 분수를 제작할 때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다.

팔레루아얄 지하철 역에 장식된 당신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되었다. 그곳을 지날 때 당신도 가끔 사진을 찍나?
아직 한 번도 안 찍어봤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도 잊어버리고 지나가거나, 깜짝 놀라며 ‘그래, 이걸 내가 만들었지’ 할 때도 있다. 파리 안에서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 장소가 약속을 정하는 심벌이 되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 보면 작품으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프로젝트를 계획할 땐, 셀피라는 게 등장하기 전이었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당연히 그때는 생각도 못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요즘의 핸드폰 셀피와 인스타그램 같은 SNS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정말 재미있지 않나? 작가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와 대화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 앞에는 의자도 있어 촬영에 딱이다.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그 장소의 이름이 ‘녹턴의자’다. 내가 학생이고 돈 없던 시절엔, 왜 그렇게 저녁 약속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저녁에 만나려면 항상 어딘가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돈을 내야 했다. 저녁에는 공원이 문을 다 닫는다. 그래서 생각한 게, 누구나 언제든 앉아서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아티스트가 도시를 바꿀 수도 있다는 마음이었다. 작지만 무료로 사람들에게 쉴 곳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랬던 장소가 셀피를 위한 장소로 바뀐 것이다.

아티스트로서 살아가면서 세상에,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함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여긴다. 앞으로 정말 하고 싶고 계획하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이고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예술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그런 밝은 에너지를 가져다줄 귀한 매개체라 생각한다. 삭막하고 슬픈 세상에서도 예술 작품으로 인해 숨을 돌리고,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영향을 주는 작가이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고 싶다. 팔레루아얄 지하철을 나오는 사람들은 잠깐이지만 미소를 짓는다. 아주 잠깐이라 할지라도 괜찮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작은 부분이지만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점이라고 본다.

역사(루이 14세의 춤)부터 자연(연꽃, 작약 등의 꽃들)까지 다양한 대상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다. 요즘 당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다양한 주제와 영감 아래 작업했다. 내가 국제갤러리에서 했던 시리즈이고 올여름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인 연꽃 시리즈는 개인적인 판타지에서 나온 것이다. 영감은 내가 읽는 책, 만나는 사람, 여행, 내가 본 것 등등에서 온다. 그리고 고객과의 대화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고요하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과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2년은 기본이고 9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도 있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지만 난 더 느리게 가는 방향을 택했다. 그래서 이 질문에는, 지금 느끼는 흥미라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것을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번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소장전을 어떻게 관람하면 좋을지, 가이드를 준다면?
작품들 각각의 스토리를 아주 자세히 주시하기를 권한다. 동시에 유리, 금박, 유황 등의 재료와 테크닉도 함께 봐주길 바란다. 내가 내 작업에서 칭찬하고 싶은 것은 프랑스적이지만 열려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해를 얻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요즘의 작가에게 요구되는 점은 개인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하지만 받아들이는 문화에 따라서 그 정체성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것 말이다.

지하철 역 입구부터 베르사유 궁의 분수, 일본 모리 미술관의 정원까지 당신의 작품이 영구 설치되어 있다. 장소 특정성이 두드러진 당신의 작품이 설치될 수 있는 가장 의외의 흥미로운 장소를 상상해본다면 어디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하고 싶다고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웃음). 베르사유는 그곳의 정원사와 상의한 뒤에 계획할 수 있었고, 팔레루아얄 역의 조형물은 파리 지하철 100주년을 맞아 파리 지하철과 내가 함께 장소와 조형물의 형태 등을 상의하고 설치한 것이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하고 싶은 동반자를 찾으라면 우리가 사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을 꼽고 싶다. 세상에는 예술이 대답을 가져올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세상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는 예술가에게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할 때 그들이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시공간에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