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시작되고 있다. 여기 지금 이동휘에게.

1706 이동휘1

파란색 점과 물고기 무늬의 재킷과 반바지는 꼼데가르송, 이너로 입은 톱은 버버리 제품.

<W Kroea>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여러 군데서 들었다.
이동휘 내가 모델처럼 프로포션이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옷이 날개다’라는 말처럼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재밌는 옷을 늘 입고 싶을 뿐이다.

옷 입는 방식은 한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연기와도 맞닿아 있는 면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옷을 잘 입는다’는 기준과는 내가 벗어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옷보다는 연기에서 예민하게 디테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는 취업 준비생이자 사회 초년생의 처지를 단출한 의상으로 보여줬다.
도기택의 의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장 딱 한 벌이었다. 공시생과 취준생의 애환을 드러내는 인물이 패션 쪽으로 조금이나마 주장을 하게 되면 위험할 테니까. 회색도 감색도 입을 수 있겠지만, 스타일 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검정 한 벌로 처음부터 끝까지 갔다. 넥타이도 지하철에서 판매하는 매듭이 미리 되어 있는 걸 몇 종류 구입해 돌려가며 착용했다.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그 인물의 리얼리티를 훼손해버리면 드라마가 피상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극 중에서 내내 입고 나온 트레이닝복이 나름 콜라보 제품이라 가격이 꽤 높았다는 거다. 몇 가지 준비해서 감독님께 보여드렸는데, 그 가운데서 선택하셨다.

연극을 전공했던데, 언제 처음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나?
대학에 너무 가고 싶은데 공부에서는 답을 못 찾겠더라. 음악이나 미술을 배우려니 비용이 비싸고… 최후의 방법으로 몸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봤더니 연기였다. 막상 배우기 시작하니 내 몸, 내 목소리와 눈빛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 상태를 이끌어내는 일이 참 신비하고 즐거웠다. 극단 ‘목화’를 이끄신 오태석 선생님이 대학 은사이신데, 아주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다. “관객은 평상시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괜찮은 척하며 지내기도 하는데,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을 보면서 잠시 그 가면을 벗고 진실된 순간을 공유하면서 쉬어 갈 수 있는 거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연기자로서 사명감 같은 게 생긴 듯하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갈고 닦아서 끝내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택이라는 캐릭터는 공시에 실패하고 취업한, 서른 넘긴 청년이라는 설정이다. 데뷔 기회가 늦게 찾아온 당신이어서 더 공감할 수 있었을까?
28세에 처음으로 돈을 벌어봤다. 그전까지는 내내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었고. 눈떠서 천장만 바라보며 시간 보내다가 퇴근하는 아버지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몰래 나가 공원 돌아다니던 경험이, 도기택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공감대를 형성한 것과는 별개로 요즘 N포 세대의 애환을 꼼꼼하게 다루고 위로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돌아보며 반성하는 게 참 많다.

데뷔 전의 막막한 시간 가운데도 자신에 대한 믿음은 있었나?
원래 스스로를 잘 안 믿는다. 못 믿는 게 오히려 나의 장점이고, 그래서 이 일을 더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채찍질을 계속하는 편이다. 쉽게 자만할 수 없도록 가정교육을 받아서인지 늘 내가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관객이 먼저 알아차린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완성되는 시기는 멀었으니까 그때그때 도전하고 넘어지고 하면서 중심을 찾아가려고 한다.

<응답하라 1988>로 존재감을 알린 이후 <공조> <재심> <원라인>까지 굵직한 영화들에 조연으로 모습을 보였다. 어떤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나?
모두 의미 있지만, 가장 마음에 남는 결과물은 <빨간 선생님>이라는 KBS 단막극이다. 1주일밖에 시간이 없어서 잠을 못 자면서 찍었는데도 피곤하지 않더라. 우선 대본이 재미있었고, 짧은 가운데도 배우로서 기승전결과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캐릭터가 가진 공간이 충분하다고 할까. 그 덕분에 처음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짜임이 단단한 이야기였고, 내가 인물을 표현할 때의 행복감이 컸다. 연기할 때의 즐거움을 첫 번째로 두어야겠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자체발광 오피스>, 그리고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영화 <부라더>의 감독님도 이 단막극 연기를 보고 나를 불렀다고 하시더라.

도롱뇽 역할을 벗어나는 게 숙제였을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깊은 인상을 남겼으니까.
감사한 숙제를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잘 풀어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거고, 시간이 더 걸릴 거 같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도기택은 일단 굉장히 달라 보였다.
다행히 많은 분들에게 도롱뇽 생각이 안 났다는 애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오래전에 찍은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등 배우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이전 연기나 캐릭터의 잔상도 남아 있을 거다. 계속해서 평가받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차근히 단추를 채워가면서, 재미와 흥분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는 게 맞는 거 같다. 액션 장르에 도전한 <공조>도 내 몸을 더 움직여보고 싶어서 선택했다.

배우들은 커리어의 방향을 능동적으로 설정하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자신을 원하는 기획에 응답하는 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니까.
자꾸 인용하는 게 좀 부끄럽지만, 오태석 선생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다. “배우는 주머니에 구슬이 많아야 한다. 어떤 구슬을 꺼내서 보여주고 또 다른 구슬이 필요할 때를 위해 여러 개를 주머니에 갖고 있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게 인생의 룰인 거 같기도 하다. 남의 자리 남의 위치를 부러워하기보다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거기서 나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서 내 편을 조금씩 만들면서 계속할 때 배우에게는 조금씩 문이 열리는 것 같다.

체크무늬 셔츠와 재킷, 팬츠, 발목이 올라오는 샌들은 모두 프라다 제품.

체크무늬 셔츠와 재킷, 팬츠, 발목이 올라오는 샌들은 모두 프라다 제품.

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6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