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격다짐과 긴장이 감도는 <쇼미더머니>에서 트로피와 상관없이 유유히 자기 쇼를 마치고 퇴장한 래퍼. 스타일이 살아 있는 레디의 ‘슈프림’한 인생.

밀리터리 스타일의 재킷과 옆선에 버튼 장식이 있는 트랙 팬츠는 포츠 1961 제품, 스니커즈는 에디터 소장품.

밀리터리 스타일의 재킷과 옆선에 버튼 장식이 있는 트랙 팬츠는 포츠 1961 제품, 스니커즈는 에디터 소장품.

한국 힙합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게 레디는 세련된 이름이었다. 래퍼가 음악은 물론 패션과 태도와 작은 제스처 하나로 자아내는 이미지까지 통틀어 힙합을 보여주는 존재라면, 레디의 힙합엔 멋이 있었다. 그런 레디가 지난해 <쇼미더머니>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소속 레이블인 하이라이트의 수장 팔로알토부터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경연과 방송의 생리를 민첩하게 캐치하기보다는 자기 갈 길 가는 스타일의 레디가 아무래도 그곳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멀쩡한 래퍼도 망신당할 우려가 있는 쇼에서, 그는 방송용 드라마 없이 무난하게 자기 가치를 증명했다. 잘하는 사람은 묵묵히 잘하기만 하면 그걸로 성취하는 바가 있으니까.
곧 시즌 6이 시작하는 <쇼미더머니>가 다시 대대적인 예선 릴레이를 치르는 동안, 지난해 이 서바이벌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인 레디가 앨범을 냈다. 이젠 음악 시장에서 정규인지 EP인지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그저 <Universe>라는 타이틀만 붙여 발매한 여덟 트랙은 싱글을 내던 그가 3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자,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두루 담은 결과물이다. 좀 더 속도감을 내고 싶다는 그는 여름이 지나기 전에 또 다른 음악을 발표할 계획도 세웠다. 그때는 자신이 아닌, 그가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의 곡이 나올 수도 있다. ‘패션 감각 좋은 래퍼’로 유명할 때부터 꽤 궁금했지만,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짐작만 했던 레디를 만났다.

머리에 쓴 선글라스는 에디터 소장품.

머리에 쓴 선글라스는 에디터 소장품.

<W Korea> 레디를 한 번에 잘 드러낼 수 있는 랩 가사로 자기 소개를 한다면? 지금 문득 떠오르는 그 구절로.
Reddy “바지 옆엔 하얀 줄 세 개, Like This. 모자 위에 까만 선글라스, Like This.” 바비가 피처링하고 <쇼미더머니 5> 준결승전에서 부른 ‘Like This’ 라는 곡 일부다. 지난해 그 방송에 출연하면서 많은 분이 내 패션을 언급해줬다. 내 노래 중 한 구절만 꼽자니 쉽진 않지만, 그 문장이 나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가사라 딱 떠오른다.

단순히 외양을 묘사한 표현을 꼽을 줄은 몰랐다.
사람은 누군가를 볼 때 짧은 순간이라도 상대의 겉모습을 먼저 마주치니까, 외적인 면도 중요하다. 나의 내면에 대한 부분을 더욱 신경 쓴 게 4월에 나온 앨범이다. 가사를 통해 ‘레디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웠다.

신곡에서 5년 전보다 50배를 더 벌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지난해부터 돈 많이 벌고 있나?
그렇다, 고맙게도(웃음).

지나간 <쇼미더머니> 이야길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미방송분이었지만, “난 내 꺼 해, 니네 꺼 안 뺏어”라고 랩하는 모습을 봤다. 이 말이 레디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쟁이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아는 이들 모두 내가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거나 우려했다. 하지만 난 그 가사처럼 그저 내 것만 보여주고 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내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듣길 원했고. 우승해야지, 잘해야지 하는 마음 없이 내가 가진 걸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그걸로 족했다. 사람이 독기를 품으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표정과 행동이 있지 않나? 그런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앞으로도 난 그런 사람이 안 되길 원한다.

그런 캐릭터와 힘을 뺀 음악 스타일의 소유자이니 레디가 서바이벌에 도전하는 걸 의외라고 여긴 이들이 많았겠다. 쌈디가 그랬듯이, 당신도 <쇼미더머니>를 흉보는 래퍼였다가 결국 출연해서 힙합 팬들이 왈가왈부하지 않았나?
나도 과거 과도하게 패기 부린 걸 후회한다. 어릴 때는 ‘저런 게 멋있나?’라는 생각밖에 못했고, 내 안에 화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쨌든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이용하는 게 맞겠더라. 가까운 존재인 팔로알토 형이 재작년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점도 자극이 됐다. 말 많은 방송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과 태도를 유지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를 어필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신보인 <Universe>는 어떤 앨범인가?
난 음악을 시작한 후에도 휴먼트리라는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에서 직원으로 오래 일했다. 그 일을 관두고 처음으로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해 만들어서 애착이 간다. 최근 지투 앨범에도 참여한 프로듀서 UGP와 몇 달간 이 작업에만 매달렸다. 가장 나다운 음악이다. 자극적인 요소는 다 빼서 편하게 들을 수 있고, 담백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모든 트랙에 음악을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의 내 이야기를 담았다. 비로소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타이틀곡 제목이 ‘Supreme’이다. 힙합 아티스트를 비롯해 슈프림을 즐겨 입는 사람이 많고, 당신도 워낙 그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레디에게 슈프림이란 뭐길래?
집착과도 같다고 할까? 20대 초반부터 패션숍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 오는 손님이나 놀러 오는 형들은 당시 일본에서 비싼 돈을 주고 슈프림을 사 입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너무 부러웠다. 슈프림은 나에게 단순히 유행하는 스트리트 브랜드가 아니라 내가 드물게 갈망한 무언가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가사로 풀었다. 특정 브랜드를 제목으로 내세우면 방송에도 제약이 생기고 곤란한 점이 있지만, 음악을 시작하던 즈음의 나와 뗄 수 없기 때문에 고수했다.

음악과 패션 외에 다른 관심사는 뭔가?
맛있는 음식과 커피 찾아 다니는 일. 술을 안 마셔서 친구들을 밤에 만나도 커피숍으로 가곤 한다. 한국에서는 빈 브라더스 커피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요즘 좋은 카페가 많으니 하나씩 찾아가볼까 싶다. 최근엔 올드카를 눈여겨보다가 하나 장만했다. BMW E30 M3, 88년도 수동 모델이다. 북미형 버전이라 차 앞뒤에 크롬 범퍼로 장식돼 있다. 그동안 그 차 몰고서 오가는 곳이 뻔했다. 집, 작업실, 카페….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집(Amazing)’이라는 곡에서 최근 인생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직접 노래를 불렀다. 성공의 기준이나 목표가 있나?
요즘 그 점을 자주 고민해본다. 예전엔 단순히 돈 많이 벌면 그게 성공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돈은 벌어도 벌어도 계속 욕심이 나는 것 같다. 결국 평생 목이 마르다는 소리인데, 그렇게 사는 게 성공한 인생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말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재밌고 행복하게 하면서 누리고 싶은 것도 누릴 수 있다면 성공한 삶 아닐까?

커리어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일 서바이벌 쇼를 무사히 거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그사이 스스로를 돌아봤을 것이다. 돈과 명예 외에 무엇이 남아 있던가?
주변 사람들 생각을 하게 됐다. 한동안 정말 정신이 없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은 채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핀란드에서 중국으로, 한국 찍자마자 다시 일본으로, 서울에서 지방 등등으로 오가는 생활이었다. 내가 피곤한 상태라 주변 사람들에게 내 행동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의도와 다르게 상처받은 사람이나 내가 변했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큼은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잘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한국 힙합 문화에 보태고 싶은 말이 있나?
음악인끼리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힙합 레이블이 커지고 크루들이 상업화되면서 ‘끼리끼리’ 문화가 생긴 면이 있다. 그 점이 아쉽다. 남 깎아내리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서도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어릴 때 욕하며 음악 해봤지만, 남는 게 없다. 그리고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누군가와 마음 열고 대화해보면 다 그 사람만의 생각이 있더라.

 

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6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